Ladakh

<오래된 미래>. 언어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헬레나 호지 여사가 라다크를 다룬 책의 이름이다. 인도 속의 작은 티베트. 아리안과는 사뭇 다른 얼굴을 한 사람들이 천사 같은 미소를 지으며 불경통을 돌리는 것도, 겨울이면 길이 막히는 오지에 자리 잡은 것도 티베트를 닮았다. <오래된 미래>가 출간된 지도 수십 년. 인도의 라다크에는 여전히 인류의 오래된 미래가 남아 있을까.
[The Explorer] 라다크, 하늘 아래 마을, 천사 를 닮은 사람들
하늘 가까운 마을에는 천사를 닮은 사람들이 살게 마련일까. 히말라야와 안데스에서 만난 사람들은 유난히 까만 얼굴에 아이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북인도의 라다크, 해발 3500m의 중심 도시 레(Leh)에도 ‘줄레’ 하는 인사와 함께 천사의 미소를 머금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고산지역 특유의 맑은 하늘 아래 검게 그을린 사람들의 얼굴에는 북인도 특유의 오똑한 코와 짙은 쌍꺼풀 대신 작은 코와 외꺼풀 눈이 자리 잡았다.
세상 어느 곳의 아이들 미소가 천사를 닮지 않았으랴. 하지만 라다크에서는 아이들의 미소가 노인이 되도록 변치 않는다.
세상 어느 곳의 아이들 미소가 천사를 닮지 않았으랴. 하지만 라다크에서는 아이들의 미소가 노인이 되도록 변치 않는다.
레의 시장에서 만난 시크교 청년. 대부분 우리와 비슷한 몽골리안인 라다크 사람들 사이에는 이처럼 전형적인 인도 사람들이 섞여 산다.
레의 시장에서 만난 시크교 청년. 대부분 우리와 비슷한 몽골리안인 라다크 사람들 사이에는 이처럼 전형적인 인도 사람들이 섞여 산다.
이곳은 인도의 북쪽 끝 지방. 중국(정확히는 티베트)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라다크에 티베트인들이 처음 들어와 자리를 잡은 것은 지금부터 1000 하고도 100여 년 전이었다. 그들은 고유의 티베트 불교를 간직한 채 독자적인 왕국을 이루고 수백 년을 살았고, 그리하여 중국과 인도 사이의 국경 분쟁지역인 이곳에는 중국인도 인도인도 아닌 라다크 사람들이 지금도 고유의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라다크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운다>는 책을 통해서였다. 스웨덴의 언어학자였던 헬레나 호지는 1970년대 연구를 위해 인도 라다크 지역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십여 년간 그 지역의 언어뿐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연구한 결과, 라다크 지역 사람들의 삶과 생활이야말로 가장 생태적이고 인간적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이어온 이들의 삶이야말로 환경문제 등으로 한계에 부딪친 현대 문명의 미래, 그러니까 ‘오래된 미래’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부족한 고산지대, 생존을 위해 키워온 사람들의 지혜는 욕망을 줄였고, 결과적으로 풍족한 현대사회보다 더욱 행복하게 됐다는 역설은 덤이다.

하지만 하나 둘 새로운 도로가 뚫리고, 외부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라다크의 전통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변화는 인도 정부에 의해 라다크 관광이 시작되면서 일어났다. 외부의 관광객들이 들어와 돈을 뿌리기 시작하자 라다크 사람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행복의 역설보다 훨씬 더 강력한 돈의 역설. 사람들은 불행해졌고, 젊은이들은 타지로 빠져나갔다. <오래된 미래>에는 라다크의 전통사회가 자본의 위력 앞에 맥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는 저자의 안타까운 시선도 담겨 있다. 이후 이 책은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번역됐고, 우리나라에도 1996년 소개된 후 지금까지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내가 라다크를 방문한 것도 <오래된 미래> 덕분이었다. 저자가 ‘라다크의 전통사회는 붕괴됐다’고 말한 지 수십 년이 지났으나, 혹 아직도 그곳에 오래된 미래가 남아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더구나 최근에 그곳을 방문한 사람들의 여행기는 여전히 그곳에 행복이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천국은 함께 행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이름난 휴양지이자 독립 이후 지금까지도 심심치 않게 폭탄 테러가 일어나고 있는 분쟁지역인 스리나가르에서 라다크의 중심 도시 레로 가는 버스를 탔다. 가는 길에 버스가 하룻밤 쉬어가는 카길은 주민의 상당수가 알카에다 소속으로 알려진 도시다. 이 지역의 긴장이 조금만 고조되면 이 버스 길은 기약 없이 끊기곤 한다. 레로 들어가는 편하고 안전한 길을 놔두고 굳이 이 길을 택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구절양장으로 휘어진 길을 보면, 왜 레에서 154km 떨어진 판공초까지 편도만 5시간이 걸리는지 이해가 간다.
구절양장으로 휘어진 길을 보면, 왜 레에서 154km 떨어진 판공초까지 편도만 5시간이 걸리는지 이해가 간다.
다행히 내가 버스를 탈 무렵에는 별다른 이상징후가 없었고, 카길에서 레로 들어가는 버스에서 본 풍광을 찍어 놓은 사진은 그 어떤 그림보다 아름다웠다. 등받침도 뒤로 안 젖혀지는 버스는 불편하고 해발 수천 m의 구불구불한 산길은 차멀미를 일으켰지만,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눈앞의 풍경은 이 모든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게 만들었다. 차멀미 탓인지 풍광에 취한 덕인지 머릿속이 어질어질해질 무렵 레에 도착했다.
전통 복장을 입고 맨발로 마니차를 돌리는 라다크 할머니. 이것을 한 번 돌릴 때마다 불경을 한 번 읽은 효과가 있다고 한다.
전통 복장을 입고 맨발로 마니차를 돌리는 라다크 할머니. 이것을 한 번 돌릴 때마다 불경을 한 번 읽은 효과가 있다고 한다.
판공초 호수에 있는 유일한 편의시설. 음료수와 과자 몇 가지를 판다. 국경 분쟁지역이기 때문에 모든 여행자들은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물론 중국인은 방문 금지다), 저녁에는 통행 금지다.
판공초 호수에 있는 유일한 편의시설. 음료수와 과자 몇 가지를 판다. 국경 분쟁지역이기 때문에 모든 여행자들은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물론 중국인은 방문 금지다), 저녁에는 통행 금지다.
그곳에는 책에서 금방 튀어나온 듯한 사람들이 책에 묘사된 그대로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동네 골목길 꼬마도, 마니차(티베트 불교의 상징인 불경통)를 돌리고 있는 할머니도, 수줍은 마을 처녀도 ‘줄레’라는 인사말과 함께 같은 웃음을 머금었다. 라다크 말에서‘줄레’는 인사말인 동시에 감사의 표현이다. 그래서 이곳에 머물다 보면 하루에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까지도 ‘줄레’를 듣고 말하게 된다. 아직도 이곳은 오래된 미래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여행자의 눈에는 이들의 겉모습만 보이기 때문일까.

이러한 의문은 다음 날 찾은 지역 에콜로지 센터에서 어느 정도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호지 여사와 지역 활동가들이 함께 세우고 운영하고 있는 센터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전통적인 가치를 지키면서 생활하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여행자들을 상대로 ‘공정여행’에 대한 교육을 하고 있었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공정여행이란 어렵거나 거창하지 않았다. 지역문화를 존중하고, 그 지역의 환경을 보존하는 데 협조하며, 여행에서 사용하는 돈이 그 지역 주민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허락을 구하지 않고 동네 사람들의 사진 찍는 일을 삼가고, 한 번 사용한 생수통은 ‘리필’해 마시며, 외부의 거대 자본이 경영하는 호텔이나 여행 상품 대신 지역 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작은 호텔에 묵고 그들이 만들어 파는 여행 상품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여행자들의 욕망을 조금 줄이고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니, <오래된 미래>에서 이야기했던 라다크의 전통과도 일맥상통한다.
5시간 차를 타고 구불구불 산길을 넘어 도착한 판공초 호수. 인도 영화 <세 얼간이>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했던 아름다운 호수는 라다크 사람들의 미소를 닮았다.
5시간 차를 타고 구불구불 산길을 넘어 도착한 판공초 호수. 인도 영화 <세 얼간이>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했던 아름다운 호수는 라다크 사람들의 미소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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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 특유의 파란 하늘과 병풍처럼 둘러싼 설산, 아름다운 사람들의 미소를 즐기던 라다크 여행은 판공초 투어에서 절정을 맞았다. 판공초는 레에서 북쪽으로 150km 이상 떨어진 고산 호수다. 우리나라에서도 흥행에 성공한 인도 영화 <세 얼간이>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했던 아름다운 호수가 바로 판공초다.

이곳은 보통 레에서 하루짜리 투어로 갔다 오는데(여기는 지금도 분쟁지역이라 일반인의 1박은 불가능하다), 워낙 구불구불 산길을 가야 해서 편도에만 5시간 정도 걸린다(중간에 해발 5320m로 세상에서 두 번째로 높은 도로를 지난다). 과연 이렇게 비효율적인(?) 투어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새벽같이 오른 여행길은 저 멀리 하늘 호수의 푸른 물결이 손톱만하게 보이는 순간 감동으로 바뀌었다. 옥빛으로 빛나는 호수의 물은 라다크 사람들의 미소를 닮았다.
판공초 호수에서 돌아오는 길에 본 일몰. 워낙 지대가 높아 하늘이 맑고 구름이 낮게 걸려, 라다크의 일몰은 아름다운 황금빛으로 빛난다.
판공초 호수에서 돌아오는 길에 본 일몰. 워낙 지대가 높아 하늘이 맑고 구름이 낮게 걸려, 라다크의 일몰은 아름다운 황금빛으로 빛난다.
Ladakh info

How to Get There

인도의 수도 델리와 라다크의 중심 도시 레 사이에는 매일 비행기가 오고간다. 라다크와 가까운 잠무나 스리나가르에서도 레로 가는 비행기가 있다. 라다크 지방의 풍광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육로 여행이 좋은데, 잠무에서 카길을 거치거나 마날리를 통해 가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지만 육로는 겨울(보통 11~6월) 사이에는 이용할 수 없으니 주의할 것.



Where to Stay

중심 도시인 레에는 제법 머물 만한 호텔이 많다. 그중에서도 라다크 사라이(Ladakh Sarai), 라다크 레지던스(Ladakh Residence) 등이 인기 호텔이다. 괜찮다면 선한 미소의 동네 사람들이 운영하고 있는 작고 깔끔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무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Another Site

북쪽의 판공초 호수로 떠나는 당일 여행은 라다크 여행자들의 필수 코스. 오가는 데만 10시간 가까이 걸리지만 해발 4350m에 있는 호수의 풍광은 그 모든 것을 보상하고도 남는다. 육로를 이용한다면 가는 길 자체가 환상적인 볼거리가 된다.
[The Explorer] 라다크, 하늘 아래 마을, 천사 를 닮은 사람들
글·사진 구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