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철진 TIS정보통신 회장

TIS정보통신은 세계 최초로 주차유도 시스템을 개발한 벤처기업이다.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점과 서울 강남 코엑스, 신촌 세브란스병원 등에서 만날 수 있는 이 주차유도 관리시스템 개발의 뒤에는 현대정공 사장을 지낸 유철진 회장의 피와 땀이 서려 있다. 늦은 나이에 벤처사업가로 변신해 활기찬 삶을 살고 있는 유 회장의 기분 좋은 이야기다.
일흔의 나이에 20대 정신으로 일구는 벤처의 꿈
유철진 TIS정보통신 회장은 현대건설을 시작으로 현대중공업 부사장, 현대정공(현대모비스) 사장을 지낸 현대맨이다. 그런 그가 환갑의 나이에 벤처사업에 뛰어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만류는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갑의 나이에 벤처기업을 설립한 데는 사업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유 회장이 주차유도 관리시스템이라는 아이템을 생각하게 된 건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 주차유도 관리시스템을 착안하게 된 1998년 즈음, 그는 오랫동안 미루었던 박사 학위 논문 준비를 위해 미국에 머물고 있었다. 논문을 준비하는 동시에 현대정공 고문으로 현지 법인을 돌보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었다.



주차 때문에 비행기 놓친 후 얻은 사업 아이템

그날도 출장을 위해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2만7000대를 주차할 수 있다는 오헤어 공항에 주차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한참 배회한 끝에 겨우 주차를 하고 비행기를 타기 위해 무인 경전철을 탔다. 경전철을 타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군데군데 비어있는 주차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결국 그날 비행기를 놓쳤습니다. 주차하느라 시간을 허비한 거죠. 스타벅스에서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디지털 시대에 맞는 주차 시스템’, 이게 필요하겠더라고요.‘하느님이 저를 위해 남겨놓은 마지막 사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헤어 공항에서의 경험을 계기로 그는 관련 자료를 수집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그는 시카고 지역신문에 ‘오헤어 공항에 발레파킹이 도입된다’는 제하의 기사를 접하게 됐다. 기사를 읽던 중 그는 ‘오헤어 공항에서 주차할 곳을 찾느라 하루 평균 400명이 비행기를 놓친다’는 대목에서 무릎을 쳤다. 그 대목에서 ‘이거 사업이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개발에 앞서 사업성을 검토하기 위해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조사에 나섰다. 조사 결과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얼마간의 요금을 더 내더라도 스마트 파킹 시스템을 이용하겠다고 답했다. 적정한 초과 이용료로 운전자들은 시간당 25~50센트를 선택했다. 시간당 1달러 이상을 더 지불하는 데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학원에서 공부한 게 경영공학입니다. 배운 대로 계산을 해봤습니다. 평균 주차 시간을 하루 4시간으로 잡고 계산했더니 1년에 한 주차 공간에서 600달러의 추가 수입이 나오더군요. 2년이면 1200달러의 추가 수입이 나오는데, 그 정도면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겠더라고요. 다음부터는 순이익으로 고스란히 남는 거죠. 운전자, 주차장 운영자 모두에게 이익이죠.”



“제가 기계쟁이(한양대 기계공학과) 출신입니다. 현대중공업에 있을 때도 직원들 몇 명 데리고 중장비를 개발한 경험이 있거든요. 그 경험을 살려 벤처기업에 뛰어든 겁니다.”



58세에 벤처의 꿈을 꾸게 된 이유
일흔의 나이에 20대 정신으로 일구는 벤처의 꿈
충분히 사업성이 있다는 판단이 서자 곧바로 개발에 착수했다. 1998년 10월 유 회장은 한국에 있던 옛 현대정공 부하 직원에게 전화를 넣어 “스마트 파킹 시스템을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제가 기계쟁이(한양대 기계공학과) 출신입니다. 현대중공업에 있을 때도 직원들 몇 명 데리고 중장비를 개발한 경험이 있거든요. 어려운 일도 아니었죠.”

시스템 개발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1999년 2월 개발을 마친 ‘주차유도 관리시스템’은 미국 특허청에 발명특허를 출원했고, 그해 5월 한국에서도 특허를 출원했다. 이듬해에는 전 세계 18개국에 국제특허를 출원했다.

사업성 검토와 연구·개발(R&D), 특허출원까지 한 번의 걸림 없이 일사천리로 이어졌다. 그런데 판매에서 발목이 잡혔다. 처음 그는 사업 아이템을 제공한 미국 시장을 노크했다. 하지만 실적이 전무한 그에게 공사를 맡기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지인을 통해 오헤어 공항 최고경영자(CEO)를 소개받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공항 CEO는 “주차장 한 층을 줄 테니 자비로 공사를 해보라”고 제안했다.

공사비만 150만 달러.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그는 한국으로 눈을 돌렸다. 한국에서 실적을 쌓은 후 미국 시장에 다시 돌아오겠다고 마음먹었다. 한국에 돌아와 TIS정보통신을 설립한 게 2000년 4월, 그의 나이 쉰여덟의 일이다.

“현대에서 중공업과 정공에 있었으니까 관련된 일을 했더라면 더 쉬웠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자면 후배들 찾아가서 부탁도 하고, 도움을 요청할 때가 생기잖아요. 그게 싫었던 겁니다. 제가 정주영 회장님, 정몽구 회장님 모시면서 배운 게 남들 도움 없이, 자기 노력으로 성취하는 거였습니다. TIS정보통신은 그렇게 바닥에서 시작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롯데 잠실백화점 주차장에 30면을 얻어서 주차 시스템을 설치했다. 실제 주차장에 적용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실험실(LAB)에서는 작동하던 게 실제로는 안됐다. 다시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시스템을 보완했다.

처음 주차 시스템을 본격 도입한 곳은 대구 파티마병원이다. 병원을 신축한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원장수녀님이 예산이 없다며 실비로 공사를 해달라고 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760대 주차장에 주차유도 관리시스템을 깔았다. 대구 파티마병원을 시작으로 삼성동 무역센터, 울산 롯데호텔 등으로 공사가 이어졌다.

주차유도 관리시스템의 위력이 제대로 입증된 것은 2010년 2월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 개점 때였다. 세계 최대 백화점 오픈에 언론은 주차 대란을 우려했지만, TIS정보통신의 주차유도 관리시스템 덕에 예상했던 대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대형 쇼핑몰들이 주차유도 관리시스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현재 홈플러스 40개 매장과 롯데백화점·마트, 연세세브란스 등 47곳에 주차유도 관리시스템이 설치돼 있고, 서울 워커힐 호텔과 홈플러스 금천점 등 8곳은 공사가 진행 중이다.
“우리는 11년간 주차유도 관리시스템을 개발하고 개량해왔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많은 데이터를 보유하게 됐습니다. 이게 TIS정보통신의 가장 큰 자산입니다. ”
“우리는 11년간 주차유도 관리시스템을 개발하고 개량해왔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많은 데이터를 보유하게 됐습니다. 이게 TIS정보통신의 가장 큰 자산입니다. ”
유 회장의 주차유도 관리시스템 예찬

“사업을 하다 보면 시련이 있게 마련이고, 시장에서 인정을 받기까지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저라고 왜 어려움이 없었겠습니까. 주차 시스템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병원 간 전산 관리시스템 개발에 나섰다 빚을 져 힘든 시기를 보낸 적도 있습니다. 그때도 체념하지 않았습니다. 사업에 대한 확신이 있었거든요.”

유 회장은 주차유도 관리시스템이 자리를 잡으면서 최근에야 빚을 모두 청산했다. 지난해 TIS정보통신의 매출은 100억 원에 조금 못 미친다. 유 회장은 올해부터는 매출이 크게 늘 것으로 예상한다. 국내 시장에서 이제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해외에 진출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현대에 있으면서 쌓은 해외 네트워크가 좋은 디딤돌이 될 거라고 그는 믿는다.

“현대에 있을 때 전 세계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때마다 현지에서 함께 일했던 분들을 모셔서 식사를 했습니다. 그 인연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에게 큰 응원군이 아닐 수 없죠. 그들과 뭔가를 만들어간다는 게 저로서는 중요하고 즐거운 일입니다.”

유 회장은 사업가로서 돈도 중요하지만 사회에 대한 기여도 잊지 않는다. 주차유도 관리시스템에 깊은 애정을 쏟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실제 주차유도 관리시스템을 이용하면 주차 시간을 단축해 연간 5000여억 원의 자원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 주차유도 관리시스템과 도로 정보를 연계하면 교통 체증을 15% 정도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주차유도 관리시스템이 이처럼 주목을 받자 후발업체들이 느는 것도 현실이다. 이에 대해 TIS정보통신은 자사의 시스템을 모방해 사업을 영위하는 업체들에 대해 특허 방어에 나설 예정이다. 이를 위해 현재 증거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우리는 11년간 주차유도 관리시스템을 개발하고 개량해왔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많은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고요. 이게 TIS정보통신의 가장 큰 자산입니다. 앞으로 TIS정보통신은 내비게이션에 우리의 주차장 정보를 연계하고, 전기자동차 시대에 대비해 주차장 연계 전기충전 시스템 등을 공급할 예정입니다. 이 밖에 주차유도 관리시스템을 활용한 다양한 사업을 펼칠 예정입니다.”


글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