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미국 경제가 ‘트라이펙터(trifecta)’에서 벗어날 조짐이 뚜렷하다. 한 나라의 경제에서 트라이펙터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은 경기선행과 동행, 후행 지표가 동시에 부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경제는 2009년 2분기를 저점으로 당초 기대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이 때문에 지난해 상반기에는 적극적 의미의 출구 전략인 기준금리 인상까지 거론됐으나 신용등급이 떨어진 직후 곧바로 비관론이 거론될 정도로 침체 조짐이 뚜렷했다.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후에 판명하겠지만 이때 미국 경제는 경기 회복의 전형적인 경로인 선행과 동행, 후행 지표 간에 앞말이 뒷말을 끌어주는 ‘밴드웨건 효과(bandwagon effect)’가 나타나지 않는 일종의 미스매치 기간이라 볼 수 있다. 그 후 지표가 조금만 좋게 나오면 낙관론이, 안 좋게 나오면 비관론이 반복되면서 증시도 변동성이 크게 확대됐다. 이런 상황에서 트라이펙터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무엇보다 미국 경기 전망과 관련해 커다란 의미가 있다. 정책적으로도 ‘로고프 독트린’과 ‘크루그먼 독트린’, ‘그린스펀 독트린’과 ‘버냉키 독트린’ 간의 논쟁을 결론낼 수 있는 중대한 문제다.
[한상춘 경제용어 교실] 트라이펙터와 누들 볼 효과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된 지난해 8월 이후 미국 경제를 보는 시각은‘누들 볼 효과(noodle bowl effect)’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흐트러졌었다. 낙관론은 회복세가 빠를 것이라는‘소프트 패치’와 완만할 것이라는‘라지 패치’로, 비관론도 저점이 두 개 형성될 것이라는 ‘더블 딥’과 한 번 더 깊은 골이 찾아올 것이라는 ‘트리플 딥’으로 나뉘었다. 인플레이션과 관련해 경기 침체하에 물가가 올라갈 것이라는 ‘스태그플레이션’은 4년 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최근처럼 트라이펙터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미국 경제의 앞날과 관련한 이런 다양한 시각들이 이제는 가닥이 잡힌다는 의미다. 골드만삭스 등은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을 3.5% 내외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3%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0.5%포인트 정도의 인플레 갭이 발생할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8월 이후 미국 경제를 보는 시각은 ‘누들 볼 효과(noodle bowl effect)’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흐트러졌었다.
지난해 8월 이후 미국 경제를 보는 시각은 ‘누들 볼 효과(noodle bowl effect)’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흐트러졌었다.
미국 경제가 좋아진다면 정책적으로도 ‘쌍둥이 독트린’논쟁이 결론 날 수 있다. 위기 이후 재정정책 우선순위를 적자 축소에 둬야 한다는 ‘로고프 독트린’과 경기 부양에 둬야 한다는 ‘크루그먼 독트린’간의 논쟁이 지속됐다. 통화정책 대상과 관련해서는 실물경기만 고려해야 한다는 ‘그린스펀 독트린’과 자산 시장까지 포함해야 한다는‘버냉키 독트린’으로 양분됐다.

극도로 치달았던 논란 속에 지난해 9월 이후 경기 재둔화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크루그먼 독트린’ 시각에서 재정 적자 축소보다 경기 부양이라는 재정정책을 선택했다. 재정 적자 우려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해 왔던 ‘트리플 A(A+++)’라는 신용등급까지 강등된 직후에 재정 적자를 확대시킬 수 있는 부양책을 선택하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나 마찬가지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자신의 신념대로 부양 기조를 고수했다. 특히 지난해 9월에 발표했던 오바마 정부의 부양책에서 눈에 띄었던 것은 단순히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청년층을 위주로 일자리 창출에 우선순위를 뒀다는 점이다.

증시 입장에서도 미국 경제가 트라이펙터에서 벗어난다면 커다란 의미가 있다. 올해 증시가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가는 경기와 자금, 투자 성향 면에서 세 가지 ‘패러다임 시프트’, 즉 구조 변화가 제대로 이행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월가는 보고 있다.

세 가지 패러다임 시프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에 의해 주도돼 온 경기가 민간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단계로 넘어올 수 있느냐 여부다. 특정국 경기가 민간 자발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고용과 설비투자가 늘어야 한다. 그중에서 고용이 관건이다. 트라이펙터에서 벗어날 조짐을 보인다는 것은 이런 여건이 충족되고 있다는 의미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