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뉴 밀레니엄 슈퍼리치]금융계 리더로 성장한 박현주 신화의 빛과 그림자
‘대한민국 최고의 금융전략가’ 박현주(54)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21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자수성가형 슈퍼리치다. 월급쟁이로 모은 돈을 밑천 삼아 지금의 미래에셋금융그룹을 일구었으니 가히 ‘신화’라 불리기에 족하다.

지난해 5월, 주요 언론은 투자업계의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국내 사모투자펀드가 주축이 된 컨소시엄이 세계적인 골프 브랜드 ‘타이틀리스트’의 모기업인 아큐시네트를 인수했다는 내용이었다. 해외 사모펀드가 국내 유명 기업을 삼켰다는 소식은 종종 접했지만, 국내 사모펀드가 세계적인 골프 브랜드를 인수했다는 소식은 한국인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기도 했다.

금융투자계에 한 획을 긋는 아큐시네트 인수전을 성공적으로 이끈 인물이 박 회장이었다. 박 회장이 아큐시네트 인수를 진두지휘했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역시 박현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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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1호’ 펀드로 시작된 미래에셋의 신화

아큐시네트 인수는 박 회장의 명성을 상기시켜준 계기였다. 금융위기로 수익률이 떨어져 대규모 자금 이탈이 있긴 하지만 그는 증권가에서 신화적인 존재다.

동원증권에 몸담고 있던 시절에는 가는 곳마다 전국 1위 지점을 만들며 숱한 러브콜을 받았다. 증권사에 근무하던 10년 동안 그는 ‘최연소’와 ‘최고’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았다. 그 덕에 30대에 증권사 임원이 됐고, 적잖은 돈을 모으게 됐다.

이 자금을 토대로 박 회장은 1997년 미래에셋캐피탈을 창립했다. 원래 자산운용업을 하고 싶었지만 당시만 해도 인허가가 어려워 캐피털사를 먼저 설립한 것이다. 벤처투자에서도 그의 명성은 이어졌다. 대표적인 투자처가 다음커뮤니케이션, 한국정보공학 등이다.

특히 다음커뮤니케이션은 24억 원을 투자해 1000억 원의 수익을 안겨줬다. 이렇게 번 돈으로 박 회장은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설립했다.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대로 자산운용업의 설립 규정이 납입자본금 100억 원으로 낮춰진 것이다.

펀드 신화의 시작이 된 폐쇄형 뮤추얼펀드도 이때 도입됐다. 국내 최초의 뮤추얼펀드인 ‘박현주 1호’는 이렇게 탄생했다. 박현주 1호는 폐쇄형 펀드로 다수의 투자자가 돈을 모아 거대 자금을 자본금으로 납입하는 형태였다. 폐쇄형 펀드는 일정 기간 돈을 찾을 수 없어 고객들 반응이 신통치 않을 것이란 게 당시 업계 ‘다수의 시각’이었다. 펀드 시장 분위기도 좋지 않았다. 외환위기 여파로 투자자들 사이에는 ‘주식형 펀드 투자=손실’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그러나 박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다른 회사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을 보면서 전형적인 ‘소수 게임의 상황’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운용의 투명성을 원하는 투자자들의 니즈였다. 박 회장은 폐쇄형이란 한계보다 투명한 운용에 초점을 맞췄다. 투명성에 대한 고객의 니즈와 뮤추얼펀드의 투명성은 서로 부합되는 요소였다. 펀드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것도 투명성에 대한 약속의 일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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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판단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1998년 12월 삼성증권 창구를 통해 판매된 ‘박현주 1호’는 2시간 30분 만에 500억 원 한도가 모두 팔려 나갔다. 운도 따랐다. 박현주 1호가 시판된 지 3개월 만에 현대증권이‘바이코리아 펀드’를 공격적으로 팔았다. 발매 4개월 만에 10조 원의 돈을 끌어 모은 바이코리아 펀드 덕에 주가는 크게 올랐고, 박현주 1호는 약 100%의 수익률을 올렸다.

미래에셋을 펀드 명가로 우뚝 세운 또 하나의 공신은 적립식 펀드다. 2003년 출시한 ‘적립식 3억 만들기 펀드’는 펀드의 대중화를 열었다. 적립식 펀드가 중산층 샐러리맨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대된 데는 초저금리의 영향이 컸다.

2001년 이후 사상 최초의 초저금리 시대가 열리면서 저축 상품이 더 이상 자산 형성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렇다고 중산층 샐러리맨들이 고액자산가들처럼 부동산에 투자할 여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박 회장은 이들을 겨냥해 적립식 펀드를 내놓았다. 중산층, 샐러리맨들의 접근을 쉽게 하기 위해 은행을 주요 판매 채널로 정했다.

적립식 펀드를 판매하면서 박 회장은 ‘노후 준비’를 강조했다. 당시 미래에셋이 내놓은 적립식 펀드의 마케팅 포인트는 노후 준비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에 부합하는 상품이라는 점이었다. 앞서 출시한 디스커버리와 인디펜던스 펀드가 ‘장기투자, 장기수익률’에 초점을 뒀다면 적립식 펀드의 포인트는 ‘노후 준비’였다.

연이은 성공에 힘입어 박 회장의 미래에셋은 2005년, SK생명을 인수했다. 2008년에는 부동산정보업체 1위인 부동산114를 인수하며 증권과 자산운용, 보험, 부동산을 거느린 투자 전문 그룹을 건설했다. 이 같은 성공에 힘입어 박 회장의 성공 스토리는 미국 하버드대 MBA ‘기업가 정신’ 분야에 선정되기도 했다.
증권사 샐러리맨에서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금융인으로 성장한 박현주 회장. 인사이트 펀드 손실과 잇따른 투자 실패 이후 그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증권사 샐러리맨에서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금융인으로 성장한 박현주 회장. 인사이트 펀드 손실과 잇따른 투자 실패 이후 그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인사이트 펀드 대규모 손실로 위기 맞아

승승장구하던 박현주의 미래에셋호는 2007년 말 최고의 위기에 봉착한다. 2007년 10월 말 시중 자금을 싹쓸이하며 펀드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던 ‘인사이트 펀드’가 대규모 손실을 기록한 것이다.

한 달 만에 4조 원어치가 팔린 ‘인사이트 펀드’는, 펀드 출시 6개월 후 리먼브러더스 파산이라는 직격탄을 맞는다. 수익률은 곤두박질쳤다. 출범 당시 6000선이던 중국 주가는 리먼 사태 후 2000선 아래로 주저앉았다. 박현주라는 이름을 믿었던 투자자들은 원금이 반 토막 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을 중심으로 나선 부동산에서도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박 회장은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을 앞세워 ‘맵스프론티어부동산투자신탁’이라는 이름으로 사모나 공모펀드를 설정해 주요 지역의 오피스 빌딩을 사들였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 침체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는 게 부동산 관계자들의 말이다. 메릴린치로부터 사들인 을지로 센터원 빌딩도 공실률이 높아 결국 계열사들을 입주시키고 있다.

미래에셋의 위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인사이트 펀드로 최면을 구긴 박 회장은 중국을 대체할 투자국으로 브라질을 꼽았다.

인사이트 펀드가 반 토막 난 이후 국내 언론에서 모습을 감추었던 박 회장은 2010년 4월 하버드대 강의에서 “저가 상품을 대량으로 찍어대던 중국 제조업은 이제 한국과 질적 차이가 거의 없고, 브라질은 한국보다 거대 기업이 더 많다”며 “중국과 브라질에 대해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브라질 주식 시장은 그의 전망대로 올라가 주지 않았다.


그룹은 재계 48위, 박 회장은 한국 6대 부자 등극

박 회장의 미래에셋호는 1997년 창립 이후 2007년까지 10년 동안 거침없이 질주했다. 리먼 사태와 현재의 금융위기를 맞아 미래에셋은 새로운 전환점에 서있다. 금융전략가인 박 회장의 판단 미스인지, 금융위기의 영향인지 미래에셋의 자산운용 실적은 지난해 국내 최하위를 기록했다. 위기를 직감한 탓인지 올 초 박 회장은 이례적으로 낮은 운용 실적을 내면서 미래에셋 펀드 가입자들에게 큰 손실을 입힌 데 대해 신문 광고를 통해 사과하기도 했다.

위기에 봉착했다고는 하지만 미래에셋그룹은 한국 금융시장을 선도하는 주요 기업이다. 2011년 4월 현재(공정거래위원회 발표 기준) 자산 6조6000억 원, 29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48위 기업이다.

박 회장 개인도 한국의 부자 10위 안에 든다. 지난해 재벌닷컴이 발표한 한국 부자 순위를 보면 박 회장은 이건희 삼성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 회장, 최태원 SK 회장 등의 뒤를 이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 회장의 개인 재산은 총 2조4638억 원으로 추산된다. 1년 전 1조1841억 원보다 무려 1조2842억 원 늘어난 규모다. 순위도 2010년 14위에서 8단계 껑충 뛰어 6위를 기록했다.

미래에셋그룹 가운데 상장기업은 와이디온라인과 미래에셋증권이 유일하다. 박 회장은 이들 기업의 지분이 없다. 하지만 비상장사인 미래에셋캐피탈 지분 44.66%를 비롯해 미래에셋자산운용 79.81%, 미래에셋자산운용투자자문 54.33%, 미래에셋운용리서치센터 99.8%, 미래에셋컨설팅 48.63% 등을 보유하고 있다. 박 회장은 이 지분을 통해 그룹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다.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