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모으는 남자’ 김생기 나래코리아 대표


김생기 나래코리아 대표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사생 대회에 나가서 특선을 한 것이 인연이 돼 미술과 친숙하게 됐다. 대학을 나와 수출회사를 경영하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서울 인사동 거리를 거닐다 그림 보는 재미에 빠져 그림을 모으기 시작했다. 컬렉터 경력 10년의 그가 그동안 간직한 그림에 얽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The Collector] 그림과 소통한 10년간의 즐거움과 낭만, 그리고 추억
“컬렉터란 우선은 그림을 좋아하고, 그래서 그림을 수집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그림을 선뜻 사기란 쉽지 않습니다. 가격이 낮다면 점당 몇십만 원에 불과할 것이지만 가격이 높은 경우라면 수억 원을 호가하기 때문입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컬렉터라면 우리나라 서양화의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시기를 구분하고 뼈대를 알고 유명한 화가들과 그에 대한 공부가 선행돼야 합니다. 그림을 모은다는 것은 경제적 논리와 함께 그림에 대한 열정과 즐거움, 그리고 감성이 어우러져야 합니다.”

구로디지털단지에 있는 수출업체 나래코리아 사무실에서 만난 김생기 대표의 컬렉터론이다. 그의 사무실에는 컬렉터답게 다양한 그림과 미술 서적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10년간 미술에 들인 애정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은 그의 손에는 최근 펴낸 수필집 <그림 모으는 남자>가 들려있었다. ‘인사동 그림 속을 거닐다’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지난 10년간 그림과 소통하며 경험한 즐거움과 낭만, 추억을 담았다.
천경자, <미인도>, 1994년, 종이에 석채,13.6×12.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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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중반, 인생을 돌아보다 그림에 빠져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엔 사업만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림과는 무관한 길을 걸어온 거죠. 그런 제가 그림을 모으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 전국어린이미술대회에서 상을 받은 게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때부터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됐으니까요.”

그렇다고 그가 미술반에 들어가거나 미술학원을 다닌 것은 아니다. 이후 그는 그림과는 무관한 길을 걸었다. 법대를 졸업하고 회사를 경영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황염수, <빨간 한 송이 장미>, 캔버스에 아크릴, 13.8×18cm
황염수, <빨간 한 송이 장미>, 캔버스에 아크릴, 13.8×1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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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사업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지만 생각이 많아진 30대 중반, 우연히 인사동 길을 거닐게 됐다. 그때 눈에 들어온 그림이 그렇게 좋았다. 자연히 작가의 생애를 외우게 됐고, 좋아하는 작가는 밤을 새워 자료를 찾아가며 작품을 감상했다. 미술품 경매회사에 드나들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작가와 미술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던 그가 처음 컬렉션 한 작품이 정건모의 <물고기와 아이들>이다. 정건모 선생은 초기에는 구상화를 하다 추상으로 방향을 튼 작가인데 <물고기와 아이들>은 초기 작품에 해당한다. 아이들이 큰 물고기 등에 올라 노는 모습을 담고 있는데, 이중섭 작가의 작품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김기창, <산대희>, 1960년,
김기창, <산대희>, 19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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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의 컬렉션 1~3기 특징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그는 자신의 컬렉션을 1~3기로 구분한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가 1기에 해당한다. 이때는 미술 컬렉터로서 입문기였다. 그때는 신문과 미술 잡지를 통해 그림을 공부하고 인사동 갤러리와 경매 사이트 등을 통해 부지런히 작품을 보던 시기다. 그때 구입한 작품이 정건모 선생의 <물고기와 아이들>을 비롯해 장두건의 <서울 풍경>, 천칠봉의 <추국>, 오지호의 <무등산의 가을>, 박항섭의 <정물화> 등이다.

2기는 2004년 중순부터 2007년까지다. 미술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을 갖고, 작품을 보는 눈도 제법 생긴 시기다. 이때는 좋아하는 작품을 살 뿐 아니라 작품을 되팔 것을 생각하며 신중하되 마음이 끌리는 컬렉션을 했다.
황규백, <창가에 놓여있는 빨간 튤립>, 메조틴트,17.3×25cm
황규백, <창가에 놓여있는 빨간 튤립>, 메조틴트,17.3×2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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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운, <시인의 마음-개>, 아크릴, 45.5×30.5cm
최석운, <시인의 마음-개>, 아크릴, 45.5×30.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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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 구입한 작품이 전광영의 <집합>, 황염수의 <장미>, 장욱진의 <사람과 마을을 지키는 개>, 천경자의 <미인도> 등이다. 특히 그는 천경자 선생의 생애와 작품을 사랑한다. 천경자 선생과는 일면식도 없지만 작가의 그림을 좋아하고 색채의 아름다움에 취해 황홀할 때가 많다.
[The Collector] 그림과 소통한 10년간의 즐거움과 낭만, 그리고 추억
“천경자 선생의 그림 속 여인들은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여자들의 가지런하게 정리된 머릿결에서 단아함과 청순함, 섹시함까지 느껴지죠. 천 선생이 그린 여자들의 머리는 다양한 컬러로 물들어 있습니다. 황금빛 비가 내리는 머리카락, 가닥가닥 색깔이 다양한 머리카락은 눈을 황홀하게 합니다. 작가만의 배합을 통해 새로 탄생한 색깔들입니다. 선생님의 작품에서는 노랑이 노랑이 아니고, 파랑이 파랑이 아닌 거죠. 그 머리카락에서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이라는 걸 느낍니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사 모았던 그 시기를 지나 3기는 2008년부터 현재까지다. 미술의 다양성을 느끼며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마음에 가는 대로 작품을 보려 한다.

2008년 이후 컬렉션을 한 작품으로는 김정자의 <가봉의 수도 리브르빌의 시장>, 최석운의 <시인의 마음-개>, 김용수의 <융합의 서곡>, 김준의 등이 있다.



컬렉션은 작가의 전 생애를 만나는 일

1·2·3기를 거치며 수많은 작품이 그의 손에 머물거나, 거쳐 갔다. 그중에는 그림 값이 올라 다른 그림을 사는 데 보탬이 된 적도 적지 않다. 2기에 구입한 천경자의 4호짜리 <미인도>는 4년 정도를 갖고 있다가 약 4000만 원을 더 받고 되팔았다. 5800만 원에 샀던 장욱진의 작품도 몇 년 후 경매에서 1억 원에 팔았다.

물론 항상 이익을 남기고 되판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와 작품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손해를 볼 확률은 낮아진다. 장욱진의 작품만 해도 그렇다. 장욱진의 작품은 1·2·3기로 나뉘는데, 경매 시장에서 환영받는 것은 1기 작품들이다. 말년으로 갈수록 색감과 형태가 흐려져서 가격이 떨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그 때문에 후기로 갈수록 작품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가격을 떠나서 천경자나 장욱진 선생의 작품은, 그걸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큰 즐거움입니다. 경제적인 이익을 생각한다면 부동산이나 증권에 투자하는 게 맞겠죠. 하지만 제 경우에는 아파트를 한 채 사는 것보다 그림을 몇 점 사는 게 훨씬 행복했습니다.”
[The Collector] 그림과 소통한 10년간의 즐거움과 낭만, 그리고 추억
미술품은 색감과 구도 등을 통해 컬렉터들과 대화한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을 것 같으면 사심 없이 한 점 사서 걸어놓고, 그림과 대화를 하며 만족을 얻어야 한다. 그림이 좋으면 작가와 이야기하고 싶어지고, 술 한 잔 기울이고 싶어진다. 이런 즐거움이야말로 예술작품의 가장 큰 효용가치가 아닐까.

“요즘은 최소형이나 윤길현, 고영훈 선생의 작품에 눈길이 갑니다. 컬렉션이란 작품과 영혼의 교류를 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작품을 산다는 것은 작품을 통해 작가의 전 생애를 만나는 일이거든요. 그런 즐거움 때문에 컬렉션에 빠지나 봅니다.”
“경제적인 이익을 생각한다면 부동산이나 증권에 투자하는 게 맞겠죠. 하지만 제 경우에는 아파트를 한 채 사는 것보다 그림을 몇 점 사는 게 훨씬 행복했습니다.”
“경제적인 이익을 생각한다면 부동산이나 증권에 투자하는 게 맞겠죠. 하지만 제 경우에는 아파트를 한 채 사는 것보다 그림을 몇 점 사는 게 훨씬 행복했습니다.”
글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 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