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의 작은 도시 둔황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모가오굴(莫高窟), 더 정확히는 그곳의 수많은 굴들 중 하나인 장경동(藏經洞)에서 발견된 수만 점의 고문서와 그림, 기타 유물들 덕분이다. 때는 바야흐로 제국주의 세력의 중국 침략이 한창이던 1900년. 당시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었던 둔황의 석굴을 홀로 지키던 도사 왕위앤루(王圓 )는 16호 굴을 청소하다가 한쪽 벽에서 속이 빈 듯한 공명 소리를 듣는다.
인구가 100만을 헤아렸다는 수도 장안(長安)의 모습을 그린 듯한 벽화에는 신라인뿐 아니라 아랍에서 동남아까지 세계 곳곳에서 자신의 전통 복장을 하고 모여든 사람들이 보였다.
또 하나, 내 눈길을 끄는 인물이 있었다. 다양한 모습의 비천상(飛天像) 중 하나가 허리를 꼬고, 머리 뒤로 비파를 연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수십 년 전 서양의 록스타들이 그랬던 것처럼. 20세기 로커들이 그 옛날 둔황의 그림을 어디에선가 봤던 것일까. 아니면 음악에 접신(接神)한 연주자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한 자세를 보이는 것일까.
우는 모래 산에서 본 지상 최고의 일몰
모가오굴을 나와 명사산(鳴沙山)과 월아천(月牙泉)을 찾았다. ‘우는 모래 산’과 ‘달 어금니 호수’라. 대체 어떤 곳이기에 이렇듯 멋진 이름을 가졌을까, 혹 흔히 보이는 중국인 특유의 과장법이 다시 한 번 작동한 것은 아닐까 하는 궁금증을 품고 도착한 곳에는 이름만큼이나, 아니 이름보다 훨씬 아름다운 풍광이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명사산은, 월아천과 만나면서 독특한 풍광을 자아낸다. 거기에 옛 사람들은 건물 몇 채를 인공으로 더해 풍광을 완성했다. 사방으로 보이는 것은 모래 산뿐인데, 달 어금니를 닮은 연못 주위로 작은 풀밭이 있고, 여행자들이 쉬어갈 수 있는 건물 몇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것은 작은 연못과 야자수로 상징되는 중동의 오아시스와는 다른, 중국식(?) 오아시스를 대표하는 풍경이라 부를 수 있을 법하다.
좀 더 아름다운 월아천을 보기 위해 명사산 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갔다. 낙타를 타고 편안히 오를 수도 있었지만, 왠지 모래에 맨발이 푹푹 빠지면서 올라가고 싶었다. 다행히 능선을 타고 오르니 생각보다 수월했다. 그렇게 30분 정도 올랐을까. 드디어 명사산 정상에 이르렀다. 월아천 쪽으로는 누런 모래만 펼쳐지는데, 반대쪽으로는 푸른 숲이 널따란 오아시스 도시, 둔황이 보인다. 그 옛날 실크로드의 여행자들도 명사산 꼭대기에 올라 이런 광경을 보며 가슴 벅찬 감상에 사로잡혔을지도 모른다.
한참을 그렇게 사방을 둘러보며 앉아 있는데, 이윽고 땅거미가 어둑어둑 깔리기 시작했다. 낙타도 관광객도 모래썰매도 썰물처럼 빠져나간 시간, 마침내 사막의 일몰이 찾아온 것이다. 둔황에 도착하는 날 버스 안에서 보았던 일몰도 아름다웠지만, 명사산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특별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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