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컬렉터 이원복 교수 “내가 경험한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
만화 <먼나라 이웃나라> 저자인 이원복 동덕여대 교수는 와인 만화책을 낸 와인 마니아다.

최근 그는 LG상사 트윈와인과 함께 와인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와인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이원복 교수의 와인 컬렉션을 구경하기 위해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그의 집을 찾았다.

LG상사 트윈와인이 이원복 동덕여대 교수와 함께 ‘이원복 와인’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 교수는 국민의 역사 교과서로 불리는 <먼나라 이웃나라>의 저자이자,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의 저자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50만 권 이상 팔린 스테디셀러의 저자인 이 교수 자체가 와인 애호가로 유명하다.

이번 프로젝트는 와인 애호가인 이 교수가 추천 와인을 선정하고, LG상사 트윈와인이 수입과 판매를 담당하게 된다. 이를 통해 와인은 어렵고 비싸다는 편견을 없애고 보다 친근한 와인 문화를 만드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다. 또한 ‘이원복 와인 셀렉션’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은 ‘이원복 재단’에 기부돼 사회공헌 활동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돼 그 의미를 더했다.

그 첫 번째로 이 교수가 선택한 와인은 칠레의 ‘비냐 마이포(Vina Maipo)’와 스페인의 ‘리오하 베가(Rioja Vega)’다. ‘비냐 마이포’는 칠레 최고의 와인 산지 마이포 밸리의 이름을 딴 유일한 프리미엄 와인 브랜드이며, ‘리오하의 빛나는 별’이라는 뜻을 가진 ‘리오하 베가’ 역시 스페인의 고급 와인 생산지인 리오하에서 지역명을 쓸 수 있는 유일한 와인 브랜드다.

와인 세일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와인 마니아

이 교수가 첫 번째 셀렉션을 선보인 일주일 후, 잠실에 있는 그의 아파트를 찾았다. 아파트 숲 한가운데 자리한 그의 집은 같은 동에서 가장 높은 층이었다. 거실을 지나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서재로 안내돼 갔다. 와인에 대한 그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와인 셀러는 서재 바로 앞에 있었다. 100여 병이 들어가는 와인 셀러 4개에는 여행 기념으로 산 매그넘 와인에서 보르도 그랑크뤼 1등급 와인 까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와인 컬렉션은 크게 두 가지 목적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재산적 가치이고, 나머지는 순수하게 보관에 의의를 두는 거죠. 제 경우는 후자에 해당합니다. 제 나쁜 버릇 중에 하나가 와인 세일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때마다 박스째 사다 보니 자연 셀러도 늘어서 4개가 된 겁니다.”

이 교수는 최근에도 피오체사레 와인 1상자를 샀다. 평소 좋아하는 와인인데, 최근 좋은 가격에 살 기회가 생겼던 것이다. 가게에서 병당 14만~15만 원에 파는 와인을 반값에 살 수 있었으니, 와인 좋아하는 그가 그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현재 그의 와인 셀러에는 300여 병 정도의 와인이 저장돼 있다. 주량이 와인 1병 수준인 이 교수는 한 달에 10병 정도의 와인을 비운다. 그렇게 비워진 자리는 세일이나 특별한 기회에 사게 되는 와인으로 채워진다.

그러고 보니 이 교수가 와인을 시작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1999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객원교수로 가면서 심심해서 시작한 게 와인이었다. 그때만 해도 와인을 잘 모를 때라 10~20달러 정도로 싼 와인을 마셨다. 2001년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도 와인에 대해 잘 몰랐다. 그러다 와인에 대한 책을 쓰려고 마음먹으면서 본격적으로 와인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무리라는 걸 알면서도 그가 책을 쓰기로 한 건 와인에 관한 문화 사대주의에 빠지는 게 염려스워서였어요. 귀국해서 보니까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이 거의 와인 교과서가 돼 있더라고요. <신의 물방울> 자체가 문화 사대주의에 빠져서 쓴 책인데도 말이죠.”

사실 <신의 물방울>은 일본에서 그리 인기 있는 책이 아니다. 와인에 관한 한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다. 일본은 100년의 와인 역사를 자랑한다. 그 사이 일본에는 다섯 차례의 와인 붐이 있었다. 일반 와인을 시작으로 보르도 와인, 부르고뉴 와인, 이탈리아 와인, 그리고 최근에는 샴페인까지.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와인이 일반화됐고, 와인 가격이 무척 합리적으로 조정됐다.


프랑스, 칠레, 이탈리아, 호주 등 세계 와이너리 투어
이원복 교수에게 와인을 안다는 것은 합리적인 가격에 질 좋은 와인을 고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교수는 이탈리아 바롤로 와인을 추천한다.
이원복 교수에게 와인을 안다는 것은 합리적인 가격에 질 좋은 와인을 고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교수는 이탈리아 바롤로 와인을 추천한다.
와인 공부를 시작하면서 와이너리 투어가 시작됐다. 2007년에는 와인의 본고장인 프랑스 보르도와 부르고뉴, 샹파뉴, 알사스 등 주요 와인 산지의 와이너리를 섭렵했다.

그중 그의 눈을 확 뜨게 해준 와이너리가 로마네 콩티였다. 로마네 콩티는 연간 생산하는 와인이 적은 만큼 와이너리도 생각보다 작다.

하지만 규모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그 고색창연한 모습은 보는 이의 눈을 황홀하게 한다.

2009년에는 칠레 등의 와이너리를 여행했다. 한국에서 로스앤젤레스(LA)까지 11시간, 그곳에서 다시 9시간이 걸려 도착한 칠레. 칠레에서는 몬테스 알파와 1865가 생산되는 산페드로 지역이 인상적이었다.

“칠레의 와이너리들은 프랑스 와인을 따라잡기 위해 와인에 스토리를 입히려고 합니다. 스토리텔링 마케팅을 하는 거죠. 프랑스 사람들에게 와인에 대해 물으면 ‘나야 나, 내가 만든 거야’라고 말합니다. 오만에 가까울 만큼의 자부심이 있어요. 거기에 대항하기 위해 칠레 사람들이 선택한 게 스토리를 만드는 거예요. 대표적인 곳이 몬테스 알파죠.”

몬테스 알파는 가장 큰 고객이 중국, 일본, 한국 등이다. 와이너리 방문객 사진을 보면 대부분이 동양인이다. 와이너리는 규모도 크지만 모양도 특이하다. 몬테스 알파 와이너리는 인공 호수 한가운데 조성한 인공 섬에 있다. 와인을 숙성시키는 공간은 은은한 조명 아래 선음악을 틀어놓는다. 그러면서 ‘와인이 익어가는 건 지혜가 익어가는 것이다’라는 말로 포장한다. 그게 칠레의 와인 메이커들이다.

그에 비해 호주 와인은 걸음마를 시작한 지 20년이 채 안 된다. 전 세계적으로 와인 품질이 고르게 좋아진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호주 와인은 조잡한 수준이었다. 지역별로 와인 생산을 관리한 것도 1970년대 이후다. 1990년 이후 와인의 고급화를 위해 노력한 덕에 와인 품질이 무척 좋아졌다.

와인 컬렉터 이원복 교수 “내가 경험한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
이 교수는 와이너리를 여행하고, 와인을 공부하며 점점 와인 마니아가 됐다. 그런 그가 좋아하는 와인은 이탈리아 바롤로 피에몬테 지역의 와인이다. 이탈리아 피에몬테는 프랑스로 치면 부르고뉴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여기서 사용하는 포도 품종인 네비올로는 프랑스의 피노 누아와 비슷하다.

“프랑스 와인도 좋아합니다. 그런데 가격 대비 만족도를 생각해야죠. 10만 원짜리 바롤로 와인이 30만~40만 원짜리 프랑스 와인보다 못하지 않거든요.”

이 교수는 와인으로 사치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수준에서 가장 좋은 와인은 100달러를 넘지 않아야 한다. 와인에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있다. ‘비싼 와인은 맛있다’는 거다. 단, 거기에 단서가 붙는다. ‘그럴 만큼 비쌀 이유는 없다’는 거다.

“로마네 콩티, 정말 비싸잖아요. 누군가는 ‘와인 뚜껑을 여는 순간 장미꽃 향기가 방 안 가득 퍼졌다’는 식으로 묘사를 했던데, 그거 순 거짓말이에요. 저는 그만큼 비싼 이유를 아직 찾지 못했어요.”

그에게 와인을 안다고 함은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서 와이너리와 빈티지를 맞히는 게 아니라, 10유로를 주고 100유로의 가치가 있는 와인을 고를 줄 아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합리적 와인 마니아인 셈이다. 그가 추천할 다음 와인이 기다려진다.

와인 만화를 그리게 된 건 와인 문화 사대주의를 경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실 한국의 와인 문화는 왜곡된 부분이 많아요.

글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