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야구 해설위원 허구연

공자(孔子)는 <논어> 위정 편에서 자신의 학문 인생을 이렇게 정리했다.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志學), 서른 살에 섰으며(而立), 마흔 살에 미혹되지 않았고(不惑), 쉰 살에 천명을 알았으며(知天命), 예순 살에 귀가 순했고(耳順), 일흔 살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랐다(從心).” 안방 야구의 절대자, 야구 해설위원 허구연. 지학부터 이순까지 그의 야구 인생을 돌아본다.
‘배나구’많았던 야구 인생 “허구연 야구장 건립이 꿈”
서울 용문동 그의 사무실에서 만난 허구연 MBC 야구 해설위원의 첫인상은 ‘크다’였다. 작은 TV 화면 속에서 웅크리고 중계 화면을 보고 있는 해설자의 모습만을 떠올리던 터였다. 생각보다 큰 덩치와 악수할 때 느껴진 두툼한 손은 그가 국가대표 야구 선수 출신이란 사실을 새삼 상기시켰다.

인터뷰 시작과 함께 나오는 그의 트레이드마크, 진한 경남 사투리. 인터넷에서는 루엔진(류현진), 배나구(변화구) 같은 이른바 ‘허구연 어록’이 돌 정도로 해설가치고는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그다.

“사투리는 고치질 못하겠더라고요. 그래도 많이 좋아진 건데. 사실 천천히 발음하면 되긴 해요. 현, 대. 김, 현, 수. 이렇게. 그런데 안타치고 급한 순간에 갑자기 김, 현, 수 또박또박 발음하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이제는 사람들이 으레 저러려니 하죠.”

듣고 보니 허 위원의 사투리가 그리 불편하지는 않다. 정보 전달에 문제가 있는 정도도 아닐뿐더러 왠지 모를 친근함까지 더해준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과 베이징 올림픽을 떠올려 보면 한국 타자의 ‘딱’ 하는 방망이 소리와 허 위원의 “대쓰요(됐어요)”를 온 국민이 오매불망 기다리지 않았던가.

志學, 야구에 뜻을 두다

허 위원은 사투리가 증명해주듯 ‘야구 도시’ 부산 출신이다. 지금은 누구보다 뜨거운 야구 사랑을 가진 그지만 야구 인생 시작은 아이러니하게도 우연에 가까웠다.

“열두 살 때였어요.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가 야구 명문이었는데 선수 선발을 한다고 반에서 한 명씩 나오라는 거예요. 제가 덩치가 커서 대표로 테스트를 받았는데 눈에 띄었나 봐요.”

방망이를 처음 잡은 그 해 그는 4번 타자로 팀의 부산시 초등학교 야구대회 우승을 만들어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야구를 계속할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학교 야구부에서까지 러브콜이 들어왔다.

“긴 가족회의 끝에 야구를 계속하게 됐습니다. 이 얘기 저 얘기 많이 했지만 결국 공부와 병행하는 선에서 좋아하는 야구를 하기로 한 거죠.”

경남중·고를 거쳐 고려대에 진학했다. 대학 시절에는 고려대 야구부 중심타선으로 활동하며 한국대학선발팀에 선발됨은 물론 각종 대회의 MVP를 수상하고 스포츠 10걸에도 선정됐다. 대학 졸업 후에는 김응용 감독과 당시 국가대표의 대부분이 포진했던 최강팀 한일은행에 스카우트 됐다.

而立, 선수 은퇴와 홀로서기
‘배나구’많았던 야구 인생 “허구연 야구장 건립이 꿈”
한일은행에 입단한 지 2년째인 1976년. 예기치 못한 부상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한국과 일본의 올스타전에서 일본 선수와 충돌해 정강이뼈가 부러진 것이다. 네 차례의 수술 후 그라운드에 복귀했지만, 재활이란 의료기술이 자리 잡기 전이라 타격까지는 가능했으나 주루 플레이는 힘들었다.

억지로 쩔뚝거리면서 뛰자 설상가상으로 허리에도 무리가 왔다. 은퇴를 선택해야만 했다.

“김응용 감독께 은퇴하겠다고 하니까 ‘야구 선수 그만두면 은행에서도 나가라’고 하셨어요. 물론 아쉬운 마음과 홧김에 하신 소리죠. 그런데 전 또 진짜 관뒀어요. 사실 은행에 뜻이 없기도 했고요. 그래서 지금도 김응용 감독님이 절 만나면 미안해하세요. 나중에 제가 해설한다고 하니까 큰일 났다면서 긴장하셨다는 소문도 들리더라고요.(웃음)”

은퇴 후 허 위원은 고려대 법학 대학원에 진학했다. 야구 때문에 접어두었던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1982년 프로 야구 출범과 함께 MBC에서 야구 해설 제의가 오면서 그는 다시 야구계와 인연을 맺게 된다. 당시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그는 대학교수의 길을 포기하고 좋아하는 야구를 하자는 생각으로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해설의 길로 접어들었다. 부상으로 끝난 줄 알았던 그의 야구 인생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不惑, 흔들리지 않는 해설 외길

젊고 새로운 패턴의 허구연식 야구 해설은 당시 해설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고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해설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1985년, 그는 돌연 청보 핀토스 감독으로 변신했다.

“갑자기 인기를 얻고 너무 바빴어요. 해설하랴 방송하랴 신문에 글 쓰랴. 이러다 죽겠다 싶은데 감독 제의가 들어왔어요. 다 정리하고 하나만 하자는 생각으로 감독을 시작했는데 너무 젊었고 역량도 부족해서 안 좋은 성적만 남기고 결국 1년 만에 물러나게 됐어요.”

짧은 감독 생활이 끝난 후 그는 롯데 자이언츠와 미국 토론토 블루제이스 코치로 경험을 쌓고,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야구 해설을 시작했다. 그의 나이 41세 되던 해다. 해설가로서 본의 아닌 외유를 한 셈이었지만 얻은 것도 많았다고 한다. 감독 경험으로 현장을 더 깊숙이 알 수 있었고, 미국에서 선진 야구 이론도 배워 왔다.

“감독까지 하고 미국에 갔다 오니 해설이 확실한 제 길임을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는 감독 제의가 들어와도 다 고사했죠. 현대 유니콘스 창단할 때는 구단 쪽 고위 인사가 청와대 사람까지 동원해서 하라고 하는데 끝까지 안 하겠다 고집 부린 적도 있어요. 다 각자의 역할이 있는 거잖아요. 감독 잘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런데 해설이란 것도 굉장히 중요해요. 야구를 보급시키고, 후배들도 이끌어주고 다음 세대도 만들고, 방송하면서 뭐가 필요한지를 팬, 정부, 국회의원한테 심어줘야 하고 할 일이 많죠.”

삼성과 두산의 프로 야구 경기가 있었던 8월 26일 잠실 야구장. 사진 촬영과 추가 인터뷰를 위해 여유 있게 경기 시작 3시간 전에 중계석으로 그를 찾아갔다. 그러나 여유 따위는 큰 오산이었다. 그때부터가 그에겐 가장 바쁜 시간. 그는 운동장과 더그아웃을 돌기 시작했고, 몸을 푸는 선수, 감독을 만나 얘기를 나누며 주요 사항을 체크해 수첩에 적어 나갔다. 허구연 특유의 철저한 현장 정보의 비결이다.
삼성과 두산의 프로 야구 경기가 있었던 8월 26일 잠실 야구장. 사진 촬영과 추가 인터뷰를 위해 여유 있게 경기 시작 3시간 전에 중계석으로 그를 찾아갔다. 그러나 여유 따위는 큰 오산이었다. 그때부터가 그에겐 가장 바쁜 시간. 그는 운동장과 더그아웃을 돌기 시작했고, 몸을 푸는 선수, 감독을 만나 얘기를 나누며 주요 사항을 체크해 수첩에 적어 나갔다. 허구연 특유의 철저한 현장 정보의 비결이다.
知天命, 한국 야구 발전의 사명

인터뷰가 한국 야구 발전에 대한 내용으로 넘어가자 허 위원의 말이 서서히 빨라지기 시작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야구발전실행위원장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먼저 야구 인프라 구축에 대한 얘기를 풀어놓았다. 그가 인프라 구축을 본격적으로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부터다. 하루가 다르게 낡아가는 야구장 시설에 변함없이 무관심과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지방자치단체와 팬들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이 때문에 그는 ‘허프라’라는 새로운 별명까지 얻었다.

“부산, 대전, 광주, 대구를 엄청 공격했어요. 대구시는 너무 욕을 먹어서 저한테 노이로제가 생길 정도였죠. 나중에 새 구장 건설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김범일 대구시장이 ‘이제 허 위원한테 욕 안 먹어서 살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허 위원이 최근 몰두하고 있는 일은 10구단 창단이다. 그는 지난 9구단 창단에도 야구발전실행위원장으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야구 용어 정리, 인프라 구축, 여론 형성과 함께 그가 야구 인생에서 가장 보람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 중 하나다.

“9구단은 한국 스포츠사의 터닝포인트라고 봅니다. 창원시의 경기장 운영 시스템이 새로운 것이거든요. 외국처럼 장기 임대를 주고 그것에 대한 네이밍 라이트, 운영권, 광고권을 줍니다. 그래야 한국 프로 야구의 고질적 문제인 구단의 만성 적자가 해결되는 거예요. 뉴욕 양키스 스타디움이 10달러라는 상징적인 임대료만 받는 것은 이런 시스템과 지자체의 발상의 전환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이제는 10구단까지 가서 이 시스템을 확산시켜야죠.”

耳順,‘귀’만 순해지다
‘배나구’많았던 야구 인생 “허구연 야구장 건립이 꿈”
허 위원의 나이도 어느덧 귀가 순해진다는 60대에 들어섰다. 이제 막 시작하는 이순의 시기에 정말 귀가 순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바람이라면 ‘귀’만 순해졌으면 하는 것이다. 야구팬들은 여전히 그의 거침없는 입담과 명쾌한 해설을 기대할 것이기에. 인터뷰를 마무리 지으며 허 위원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원래 제 목표 중 하나가 국내외에 하나씩 제 이름을 붙인 야구장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얼마 전에 캄보디아에 하나 만들기 시작해서 반은 이룬 셈이죠. 그리고 이게 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꿈은 해설자로 끝나는 거예요. 할 수 있는 날까지 하고 고별 방송하고. 그런 게 하고 싶어요.”

글 함승민 기자 hamquixote@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

허구연

MBC 야구 해설위원
1951년생
1975년 한일은행 선수
1982년~ MBC 야구 해설위원
1986년 청보 핀토스 감독
2002년~ KSN 대표이사
2009년~ KBO 야구발전실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