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uizawa & Kusatsu Golf Tour

“해외여행으로 가진 돈을 모두 써버렸어요. 가방 하나만 들고 가도 절 받아 주실 건가요.” 수화기를 든 미치코(美智子)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평민 며느리를 들일 수 없다는 일본 황족의 거센 반발과 미치코 부모님의 반대에도 변함없이 기다려준 황태자 아키히토(明仁)의 청혼에 대한 감사의 화답이었다.

그들의 만남은 1957년 8월 가루이자와(輕井澤) 테니스시합장에서 시작됐다. 하얀 피부에 짧은 테니스 치마를 입고 옷소매를 살짝 걷어 올린 세련된 그녀, 송골송골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이리저리 코트를 누비는 그녀의 당찬 모습은 그가 황태자라도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Golf Resort] 황실 피서지에서 즐기는 골프, 온천, 그리고 자유
그렇게 시작된 황태자와 평민 미치코의 사랑은 테니스장과 가루이자와의 찬란한 숲길을 걸으며 더욱 커져갔다. 1959년 4월 10일 화려한 웨딩 마차에 몸을 싣고 손을 흔드는 미치코는 가루이자와의 신데렐라가 됐다.

황실과 황태자가 피서를 즐기는 곳, 정·재계 거물들의 별장지이자 화려한 사교장이 바로 가루이자와다. 황태자의 러브스토리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그러나 서민들에게 가루이자와는 언감생심의 대상.
전나무 숲 사이로 입산 5번 홀
전나무 숲 사이로 입산 5번 홀
도쿄에서 신칸센을 타고 1시간 10분 남짓이면 나가노 현 가루이자와역에 도착한다. 해발 950m의 고원지대인 가루이자와는 울창한 원시림과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도쿄의 기온이 영상 35도를 넘나드는 한여름에도 가루이자와는 영상 25도를 넘지 않는다. 그래서 여름이면 도심의 폭염을 피해 가루이자와 녹음을 찾아가 휴가를 보내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가루이자와에는 처음 이곳에 자리를 잡았던 선교사 알렉산더 쇼가 지은 교회와 오래된 호텔, 별장, 이국적인 건축물, 작은 미술관, 유명 리조트 등 볼거리가 많다. 하지만 그중 단연 으뜸은 가루이자와 프린스호텔리조트다.

세이부 그룹이 140만 평의 대지에 만들어 놓은 리조트로 400개의 통나무집과 각기 다른 콘셉트로 지어진 더 프린스호텔, 아사마프린스호텔, 웨스트호텔, 이스트호텔이 고요하고 아늑한 숲속에 자리하고 있어 새들 소리에 아침잠을 깬다.

108홀 규모의 골프장과 스키장, 테니스장, 볼링장, 온천 & 스파, 그리고 일본 최대 명품 아울렛까지 골프에서 쇼핑까지 원스톱으로 가능하게 해주어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내기에는 최적의 장소다. 주말이면 각지에서 온 쇼핑객들의 차량으로 주변 도로가 정체를 빚을 정도다.

불가리, 버버리, 구찌, 샤넬, 쇼메, 펜디, 지방시, 나이키 등 하이엔드 브랜드 200여 개가 입점해 있어서 연 방문객이 800만 명이 넘는다. 쉬지 않고 걷는 데만도 50여 분이 걸릴 정도로 규모가 대단하다.

가격대는 도쿄 매장에 비해 저렴하고 매 시즌마다 추가 세일 기간이 있어 20~80%까지 싸게 살 수 있다. 또한 쇼핑센터 안에는 아기자기한 먹자골목과 스파게티 집, 줄서서 먹는 아이스크림 가게 등 맛집들도 많다.

가루이자와 프린스호텔리조트의 백미는 108홀 푸른 초원 위에 펼쳐진 가루이자와72 골프장에서 즐기는 환상적인 라운드다. 올해로 개장 40주년을 맞은 골프장은 전나무와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전통과 품격을 중시하는 일본 골프장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전통에만 얽매이진 않았다. 라운드 시스템을 다채롭게 도입, 골퍼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는 유연함도 함께 발휘하고 있다.
동 코스 입산 9번 홀과 나무 사이로 클럽하우스
동 코스 입산 9번 홀과 나무 사이로 클럽하우스
1964년 도쿄올림픽 때 경마 경기장으로 사용됐었던 이곳은 빼어난 자연 위에 웅장하게 펼쳐진 동 36홀, 서 36홀, 남 18홀, 북 18홀 등 6개 코스로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리뉴얼을 하고 있지만 전통의 멋은 그대로 살아있다.

코스에 들어서면 산기슭을 타고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한 홀 한 홀 보이는 앵글이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고 하늘을 찌를 듯 서있는 전나무 숲은 말 그대로 장관이다. 그래서 저명인사들의 사교장으로도 널리 애용되고 있다.

페어웨이와 그린은 모두 양 잔디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고 한 발 한 발 디딜 때마다 잔디의 부드러움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그린은 대체적으로 중앙이 높은 솥뚜껑 형태여서 백스핀이 없으면 흘러내리고 만다. 하지만 티샷은 런이 많고 거기다 높은 고도로 인해 평소보다 조금 더 보너스 거리가 생긴다.

코스별 특징을 보면 2014년 아마추어 골프 선발대회가 예정돼 있는 동 코스는 산기슭 아래 조성돼 있어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캐디 없이 자동카트 플레이가 가능하고 거리는 위성위치정보시스템(GPS) 내비게이션을 도입해 핀의 위치와 정확한 거리를 알 수 있다.

북 코스는 매년 여름 일본 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NEC 가루이자와72 골프 토너먼트’가 열리는 곳으로 평평한 지형에 만들어져 있지만 거리가 길고 곳곳에 해저드가 있어 장타력과 정확성이 동시에 요구되는 코스다.

클럽하우스 1층에는 지난해 우승한 이지희 선수의 기념품이 전시돼 있고 2층 레스토랑 창 밖으로 내려다보이는 1번 홀은 전나무와 어우러져 럭셔리한 모습을 자아낸다. 유일하게 캐디 동반 플레이를 해야 하는 곳으로 휴대용 거리 측정기가 비치돼 있다.
하이엔드 브랜드 200여 개가 입점해 있는 명품 아울렛
하이엔드 브랜드 200여 개가 입점해 있는 명품 아울렛
앞선 코스의 플레이가 너무 정적으로 느껴진다면 다이내믹한 남 코스를 추천한다. 캐디 없이 페어웨이에 직접 카트가 들어갈 수 있어서 스피디하고 박진감이 넘치는 코스다. GPS 내비게이션으로 거리 측정이 가능해 거리에 감이 떨어지는 골퍼들은 볼 바로 옆에 카트를 세운다면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한 거리를 알 수 있다.

서 코스는 페어웨이가 넓어 비기너나 시니어 골퍼에게 잘 맞는 코스다. 라운드 전 몸을 풀 수 있도록 12개의 야외 연습 타석이 만들어져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가루이자와 프린스호텔리조트의 또 하나 핫 플레이스는 아사마프린스호텔과 아사마GC다. 가장 프라이빗한 장소로 두 사람만의 은밀한(?) 여행, 혹은 두 사람만의 아름다운 추억을 꿈꾼다면 이곳을 선택해야 한다.

이곳은 오직 두 사람만 들어갈 수 있고 두 사람만 라운드할 수 있다. 왜일까.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기를 원하는 이들에 대한 배려 때문이다. 라운드가 끝나면 일식, 양식, 뷔페 등 다양한 메뉴를 레스토랑에서 즐길 수 있다.

고품격 정통일식을 원한다면 웨스트호텔에 있는 일식집 가라마쓰에 가야 한다. 살살 녹는 환상적인 스시를 동반한 가이세키(會席) 요리에 차가운 사케 한 잔을 곁들인다면 금상첨화다. 식재료에 대해 묻자 원산지가 꼭 확인된 것만 사용한다고 귀띔해준다.
숲속에 자리한 통나무집
숲속에 자리한 통나무집
가루이자와는 여행에 관심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곳이다. 그래서인지 쇼핑센터와 골프장에서 한국 사람들을 가끔 만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찾아오는 사람이 있는 반면 대개는 골프투어 상품을 이용해 오는 사람들이다.

일본 투어 전문 세양여행사의 이성구 대표는 “중국이나 동남아와 비교해 비싸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천혜의 자연과 편리한 시설, 그리고 음식 등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현재 가루이자와 골프투어 상품은 3박 4일(골프 54홀) 기준으로 185만 원부터다.

가루이자와에서 황태자의 러브스토리처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일본의 3대 명천 중 하나인 구사쓰(草津) 유황온천과 하늘 아래 첫 번째 골프장에서 즐기는 라운드는 어떨까.

구사쓰 온천은 가루이자와에서 북동쪽으로 1시간 거리인 군마 현에 위치해 있다. 구사쓰 입구에 들어서자 짙은 유황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며 온 마을을 감싸고 있다. 해발 1000m 이상의 고지대로 일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유황온천이다. 한여름에도 영상 22~24도 정도로 늘 서늘한 기후를 보여 온천과 골프를 즐기려는 피서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430년 역사를 가진 보운(望雲) 료칸의 리뉴얼한 대욕장, 그리고 아직 보존돼 있는 일본식 거리, 거기다 길거리 음식까지 구사쓰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하고 있지만 전통을 이어가려는 것과 사람들의 친절은 여전하다.
430년 역사를 가진 보운(望雲) 료칸의 리뉴얼한 대욕장, 그리고 아직 보존돼 있는 일본식 거리, 거기다 길거리 음식까지 구사쓰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하고 있지만 전통을 이어가려는 것과 사람들의 친절은 여전하다.
구사쓰 온천은 하루 용출량이 4000만 리터에 달한다. 그러다 보니 아까운 온천수의 절반은 그대로 하천으로 흘려보내고 만다. 마을 중앙에는 강한 유황과 온천 연기가 피어오르는 ‘유바다케(湯畑)’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원래 유바다케는 최대의 원천지로 노천 온천으로 사용됐던 것을 오카모도 타로라는 일본의 예술가가 목조로 된 수로 조형물을 만들어 구사쓰의 명물이 됐다. 유바다케와 주위 정통 일본식 여관들의 어우러진 모습은 조금 낯설긴 하지만 아름다운 조형미를 자랑하고 있다.

구사쓰 온천수는 산성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 타월로 피부를 문지르면 피부가 상할 정도다. 15cm 대못을 온천수에 넣고 12일 정도 지나면 바늘 크기로 녹아 버린다. 이처럼 강한 산성도는 살균력이 뛰어나 피부질환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유바다케를 지나 마을 아랫길로 조금 내려가면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일본식 거리를 볼 수 있고, 조금 더 위쪽으로 올라가면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와 토산품, 수제로 만든 가방가게 등 상점들이 길 옆 양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갑자기 어디선가 떠들썩한 소리가 들린다.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만두를 시식해 보라고 외치는 소리다.
나라야 료칸과 가이세키 요리 중 스시
나라야 료칸과 가이세키 요리 중 스시
하나 집어 들면 어김없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다. 꼭 한국의 여느 재래시장을 연상케 한다. 길을 따라 좀 더 올라가면 사이노카와라(西の河原) 국립공원이 나온다. 산골을 타고 흘러내리는 온천수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린다.

그저 양말을 벗고 발을 담그면 온천 족욕이 되는 셈이다. 공원 입구를 지나 좀 더 올라가면 대형 노천탕이 나온다. 사진을 한 장 찍을 요량으로 카메라를 꺼내들자 벌거벗은 사람들의 눈초리가 온천수보다 더 뜨겁다.

구사쓰에서 가장 좋은 여관은 나라야 료칸(奈良屋 旅館)이다. 나라야 료칸은 134년 전에 지어진 일본식 목조 건물로 6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총 35개의 다다미방과 대욕장, 노천탕이 있으며 가족이 함께 들어갈 수 있는 가시키리(전세탕)도 있다.
마을 중앙에 있는 유바다케 짙은 유황 냄새와 온천 연기가 피어오른다.
마을 중앙에 있는 유바다케 짙은 유황 냄새와 온천 연기가 피어오른다.
구사쓰에는 모두 26개의 원천이 있고 140개에 달하는 료칸은 각기 다른 원천에서 원수를 공급받는다. 나라야 료칸은 구사쓰에서 제일 좋다는 시라바타 온천수를 사용하고 있다. 나라야 료칸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유카타를 입고 즐기는 정통 가이세키 만찬이다.

준비된 음식 하나하나에 정갈함이 배어난다. 간장에 살짝 찍은 스시 한 점은 혀끝을 조롱하고 달콤한 블루베리 와인, 뼈 없는 갈치 버터구이, 쇠고기, 시원한 소바까지 입이 호강하는 시간이다.

식재료는 산에서 직접 재배해 사용하고 수산물은 동해 쪽에서 잡힌 것을 사용한단다. 1일 숙박료는 조식과 석식을 포함해 1인당 3만 엔 정도면 가장 좋은 방에서 기거할 수 있으며 호텔을 원한다면 구사쓰 나우 리조트로 가면 된다.
하늘 아래 제일 높은 구사쓰고겐 골프장 1번 홀
하늘 아래 제일 높은 구사쓰고겐 골프장 1번 홀
이제 온천을 즐겼다면 일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골프장에서 몸도 마음도 가볍게 굿 샷을 외치는 일이 구사쓰고겐 골프장 두 곳이 있다. 구사쓰 골프장은 유바다케에서 차로 10여 분 아래쪽으로 내려가 있다.

45만 평 울창한 숲속에 만들어진 18홀 파72 골프장이다. 해발 1050m로 드라이버 티샷이 평소보다 15야드는 더 멀리 나가 갑자기 장타자로 변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한여름 폭염에도 영상 25도를 넘는 일이 드물어 최고의 라운드를 즐길 수 있다.

거기다 살랑살랑 바람까지 불어오면 체감온도는 더 서늘하다. 페어웨이가 넓어 마음이 편하고 전동카트를 이용한 셀프 플레이와 캐디 플레이가 모두 가능하다. 내장객이 많지 않아 소위 ‘황제 골프’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전통이 있는 구사쓰 골프장 1번 홀
전통이 있는 구사쓰 골프장 1번 홀
구사쓰고겐 골프장은 유바다케에서 5분 정도 위쪽으로 올라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 18홀에 파72, 전장 6795야드로 자작나무와 낙엽송으로 각 홀이 분리돼 있다. 페어웨이가 넓어 비기너부터 싱글골퍼까지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해발 1200m(6번 홀은 1300m)에 위치하고 있어 구사쓰 골프장보다 비거리가 조금 더 나온다. 장타자들은 300야드가 넘는 파4 홀에서 나무를 넘겨 숏 컷으로 공략한다면 원 온이 가능한 홀이 몇 개 있다.

일본 최초로 국립공원 안에 만들어진 코스여서 어느 골프장보다도 자연친화적이다. 페어웨이 너머로 보이는 시라네 산꼭대기를 향해 날리는 드라이버는 답답했던 가슴을 뻥 뚫어준다. 캐디 없이 전동카트 라운드가 가능하고 거리는 거리 목을 보고 샷을 해야 한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구사쓰에서 즐기는 골프는 스코어에 연연하기보다 지쳐있는 몸과 마음을 리프레시하고 여행이 주는 자유를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환상적인 곳이다.

가루이자와·구사쓰=글·사진 이승재 기자 fotoleesj@hankyung.com
협찬 일본관광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