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희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장 VS 하타 조지 일본 DC형 연금교육협회 전무

하타 조지(秦 穰治) 일본 DC형 연금교육협회 전무는 30여 년간 후지은행에서 근무한 뒤 자동차 부품회사 (주)산덴으로 자리를 옮겨 연금 전문가로 변신했다. 일본 퇴직연금 분야 최고 전문가로 알려진 그가 금융투자협회 퇴직연금 강연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강창희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장이 그를 맞아 퇴직연금과 은퇴 설계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Special Interview] “기업이나 근로자 입장에서 DC형 퇴직연금 가입이 유리”
강창희 소장(이하 강 소장): 오랜만에 뵙습니다. 여러 번 한국을 찾아오셨는데요, 이번 방한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타 조지 전무(이하 하타 전무)
: 금융투자협회 퇴직연금 전문가 과정에 강의를 하기 위해 방문했습니다. 거기서 일본의 퇴직연금에 대해 강의를 할 예정입니다.

강 소장: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강의하실 생각이십니까.

하타 전무: 일본인들이 어떻게 노후자금을 마련하는지에 대해 설명할 생각입니다. 일본과 한국은 여러 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현재 한국이 고민하는 저출산, 고령화를 일본은 이전에 경험했습니다. 일본의 경험이 한국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공적연금에 대해서도 언급할 생각입니다. 일본은 지난 20여 년간 경제성장이 더뎠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적연금의 운영 상황이 많이 악화됐습니다. 사정이 안 좋기는 퇴직연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강 소장: 말씀하신 것처럼 현재의 한국은 미래의 일본이라고 할 정도로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한국이 퇴직연금을 도입한 것은 2005년입니다. 일본은 이보다 훨씬 앞서 퇴직연금을 도입했습니다.

하타 전무
: 맞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많은 부분에서 닮았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한국은 이제 퇴직연금의 시작 단계고, 일본은 퇴직연금을 개시한 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점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일본의 공적연금이나 퇴직연금은 모두 그리 성공적으로 운영되지 못했습니다. 퇴직연금 도입 초기인 한국은 이런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Special Interview] “기업이나 근로자 입장에서 DC형 퇴직연금 가입이 유리”
강 소장: 일본이 공적연금과 퇴직연금 모두 문제에 봉착했다고 하셨는데, 운용을 잘못 해서 그런 건가요.

하타 전무: 그렇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합니다. 퇴직연금의 경우 확정급여형(DB형), 확정기여형(DC형) 모두 상황이 안 좋습니다. 운용 성적이 나쁜 게 가장 큰 문제죠.

일본은 0% 금리에 최근에는 주식시장도 좋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엔고까지 겹쳐 해외 투자도 여의치 않습니다. 해외에서 아무리 수익을 올려도 엔화의 가치가 높아 실제로는 큰 수익을 거두기가 어려웠던 겁니다.

연금은 본래가 장기 적립이 기본입니다. 연금이 제대로 쌓이고 운영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이 토대가 돼야 합니다. 경제성장이 둔화되면 적립금을 쌓기 어려워 연금 운용도 악화되는 게 일반적입니다.

강 소장: 하타 전무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퇴직연금 전문가입니다. 현재 재직 중인 일본 DC형 연금교육협회는 어떤 단체인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하타 전무: 일본의 퇴직연금은 초기에 DB형을 도입했고, 뒤늦게 DC형을 도입했습니다. 일본이 퇴직연금은 도입한 해는 1966년인데, DC형은 2001년에 도입했습니다. 올해로 도입 10주년이 됩니다. 일본 DC형 연금교육협회는 DC형 퇴직연금 도입을 계기로 2002년 설립됐습니다.

그런데 미국 등 서구인들과 달리 일본인들은 투자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투자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DC형 퇴직연금을 도입하면 위험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DC형 퇴직연금 도입을 계기로 일본 전체의 투자 지식을 높이기 위해 탄생한 조직입니다.

강 소장: 일본 DC형 연금교육협회는 비영리법인(NPO)입니다. NPO인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하타 전무
: 협회 성격상 이익을 내는 단체가 아닙니다. 이 때문에 NPO라는 형태가 설립 취지에 맞는다고 판단해 NPO로 설립됐습니다.

강 소장: 하타 전무께서도 오랫동안 투자 교육을 해왔지만, 저 또한 벌써 10년 가까이 투자 교육을 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전체 인생 설계에서 투자가 어떤 위치를 점하는지를 인식하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타 전무께서는 투자 교육을 하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Special Interview] “기업이나 근로자 입장에서 DC형 퇴직연금 가입이 유리”
하타 전무: 강 소장님 생각에 100% 동의합니다. 투자에 대해 강의를 하면 그때는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지나면 모두 잊어버립니다. 그걸 보면서 구체적인 투자 철학이 중요한 게 아니라, 투자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게 선행돼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강 소장: 하타 전무께서는 오랫동안 은행에서 근무하셨죠.

하타 전무
: 맞습니다. 후지은행에서 30년간 은행원으로 일했습니다. 뉴욕에서 근무하는 등 주로 국제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당시에 한국 기업과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거래한 대표적인 기업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입니다.

이들 회사가 리스로 비행기를 도입하는 일에 관여했습니다. 당시는 한국 기업이 해외 자금을 조달하는 일이 쉽지 않을 때였는데, 저희가 그 일을 담당한 거죠.

강 소장: 은행을 나와서 일반 회사에 들어가셨죠. 그 뒤 퇴직연금 전문가로 변신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하타 전무
: 은행을 나와서 산덴이라는 회사에 인사부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산덴은 GM이나 르노 같은 자동차업체에 부품을 대는 글로벌 기업입니다. 글로벌 기업이다 보니 투명성이 요구됐어요.

자동차 부품은 일반적으로 장기 계약이 많은데, 그렇기 때문에 클라이언트에게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DB형 퇴직연금은 회계상 채무로 잡혀 투명성 제고에 걸림돌이 됐어요. 그래서 DC형을 도입하자고 회사에 제안을 했어요.

그랬더니 저더러 그 일을 맡아서 하라고 하더군요. 당시만 해도 DB형이 100%였는데, 제가 연금을 담당하면서 DC형을 60%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일본에서는 DC형의 상한이 최대 60%입니다. 산덴은 일본 기업 중 가장 초기에 DC형을 도입했고 비율도 가장 높습니다. 일본 대기업의 DC형 가입 비율이 평균 25~30%에 불과합니다.
[Special Interview] “기업이나 근로자 입장에서 DC형 퇴직연금 가입이 유리”
강 소장: 변환 이후 가입자들의 만족도는 어느 정도인가요.

하타 전무: 높은 편입니다. 산덴이 DB형 연금을 DC형으로 바꾸었을 때가 운 좋게도 닛케이지수가 많이 떨어졌을 때였습니다. 이후 주가가 많이 올랐기 때문에 적립금이 많이 쌓였죠. 시기가 적절했다고 봅니다.

강 소장: 한국도 많은 기업의 퇴직연금 담당자들이 주어진 일만 하지 말고 하타 전무처럼 퇴직연금 전문가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타 전무처럼 전문가가 되려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하타 전무
: 제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하면, 산덴에서 연금 업무를 처음 담당하게 됐는데, 그전에 금융기관에서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연금도 다른 금융상품처럼 현금흐름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금융기관에서의 경험이 없는 다른 인사 담당자에 비해 제가 연금 업무를 빨리 파악할 수 있었던 거죠. 또 다른 인사 담당자들은 금융기관의 생리를 몰라 그들이 추천하는 대로 따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 경우는 금융을 알았기 때문에 그들의 추천을 바탕으로 스스로 판단할 수 있었던 거죠.

강 소장: 뉴욕에서 근무한 것도 큰 도움이 됐을 듯합니다. 영어에 불편함이 없기 때문에 외국 사례를 보다 빨리 연구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요.

하타 전무
: 그런 점도 없지 않습니다. 초기에는 저항도 적지 않았습니다. DB형을 DC형으로 바꾸는 데는 저항도 만만치 않습니다. 퇴직연금은 후생노동성 관할인데, DC형으로 바꾸면서 그들을 먼저 설득해야 했습니다. 관할 국장과 격론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후생노동성과 관계도 좋아졌고, 퇴직연금에 대한 그들의 의식을 바꾸는 데도 도움이 됐습니다.

강 소장: 한국은 퇴직연금에서 DB형의 비율이 70%에 이릅니다. 하타 전무 같은 분이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일본도 여전히 DB형의 비율이 높죠.

하타 전무
: 일본의 경우 적립금 기준으로는 DC형과 DB형의 비율이 1 대 10입니다. 가입자 수는 DC형과 DB형이 1 대 2 정돕니다. 적립금이 많은 것은 과거 적립금이 있어 DB형이 많은 것입니다. 올 들어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데 국제회계기준(IFRS)의 도입으로 DC형의 비율이 상승하는 추세입니다.

강 소장: 미국은 DC형의 비율이 60%에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도 DC형 가입이 늘고 있는데, 근로자 입장에서 DC형으로 바꾸는 게 실제로 유리하다고 보십니까.

하타 전무
: 기업의 입장에서는 확실히 유리합니다. 근로자 입장에서 투자 교육이 우선시 돼야 합니다. 일본은 학교에서 금융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따라서 기업 입장에서 투자에 익숙하지 않은 근로자에게 DC형을 강요하기는 어렵습니다.

인사부에서 DC형 가입을 꺼리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변화의 조짐이 보입니다. 미국은 DC형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렇게 되기까지 약 30년이 걸렸습니다.

일본도 장기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도 DC형의 비율이 높아지는 데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다만 한국에는 글로벌 기업이 많기 때문에 투명성에 대한 요구가 높습니다.

이 때문에 짧은 기간에 DC형의 비율이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근로자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계좌를 바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투자에 따르는 자기책임 의식, 투자 철학 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강 소장: 근로자에게 투자 교육을 시켜서 DC형에 가입시키는 게 가장 이상적일 수 있겠습니다.

하타 전무: 근로자 입장에서 DC형이 바람직한 이유가 네 가집니다. 첫째, 이직이 잦은 현실에서 장기적인 자산운용이 가능해집니다. 이직을 하더라도 자기 계좌에 넣었다 입사 후 이직한 회사에서 다시 연금을 운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기업은 생리상 단기간 흑자를 내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퇴직연금 적립에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투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DC형에 가입하면 기업의 상황과 무관하게 장기투자가 가능해집니다.

셋째, 투자 철학입니다. 자기 적립금이 얼마인지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에 스스로 자금을 관리할 능력이 생기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안정적인 퇴직금 수령입니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회사 사정에 따라 퇴직금 삭감이 가능합니다. DC형은 근로자 계좌에 돈을 넣어주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퇴직금을 받을 수 있게 돼죠.

강 소장: 개인적인 질문입니다만, 하타 전무는 65세라는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타 전무
: 개인적으로 어디든 저를 필요로 하는 데가 있으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퇴직연금 분야는 금융도 알고, 인사도 알아야 하는데 그런 전문가가 많지 않은 듯합니다. 지금도 왕성하게 일을 할 수 있는 비결이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강 소장: 남들도 할 수 있지만, 하려고 하지 않는 일을 먼저 하는 게 성공의 비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런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평생 현역으로 남기 위해서도 그런 자세가 필요할 듯합니다.

하타 전무: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어떤 분야에서든 정년 후에도 계속 일을 하기 위해서는 젊은 세대가 할 수 없는 일이거나 할 수 있다고 해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을 맡아야 합니다.

정리 신규섭·사진 이승재 기자 wa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