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 전망

작년 가을 이후 글로벌 경기가 회복되면서 세계 미술시장의 전체적인 흐름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중국 현대 화단의 대표 작가 치바이스(齊白石·1864~1957)의 1946년 작품인 가로 100cm, 세로 266cm 크기의 수묵화 <송백고립도>(松柏高立圖)가 지난 5월 20일 베이징에서 열린 경매에서 4억2550만 위안(약 718억 원)에 낙찰, 중국 현대회화 작품 사상 신기록을 수립했다.

앞서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회사 크리스티가 5월 12일 실시한 현대미술 뉴욕 경매에서는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자화상>(1963~64년 작·101.6×81.3cm)이 3844만 달러에 낙찰됐다. 1963년 미국 디트로이트의 미술품 애호가 플로렌스 배런이 1600달러에 사들인 이 작품은 50여 년 사이에 무려 2만3000배나 뛰었다.

‘뭉칫돈’ 몰리는 글로벌 미술시장

작년 가을 이후 글로벌 경기가 회복되면서 세계 미술시장의 전체적인 흐름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조너선 스톤 크리스티 국제아시아미술부 회장은 “미국, 유럽, 중국 등에서 신규 컬렉터가 늘고 있기 때문에 국제 미술시장은 당분간 추가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며 “지난 5월 크리스티 뉴욕 경매의 경우 평균 90%의 낙찰률을 보이면서 5억5700만 달러어치가 판매됐고, 홍콩 경매에도 6100만 달러의 자금이 몰렸다”고 말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2% 정도 증가한 것이다. 특히 전후 현대미술 경매 부문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미술시장 지표는 다른 경기지표에 비해 훨씬 좋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올해 세계 미술시장을 희망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미국 경기가 서서히 회복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비롯한 주요 전망기관들은 미국 경제 성장률이 하반기부터 3%대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미술품 가격지수인 메이-모제스 지수(Mei & Moses Art Index)도 작년 1분기(0.65) 바닥을 치고 4분기에는 0.77로 상승 곡선을 그리는 등 해외 시장이 확연히 좋아지고 있다. 작년 미술품 경매에서 거래된 현대미술품의 평균 수익률은 31.7%로 치솟았다.

하반기 미술시장에 희망을 걸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미국의 현대미술품 가격이 탄력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 미술시장의 리딩 작가인 앤디 워홀의 작품 같은 경우 2008~2009년 경매 낙찰 가격은 전년 대비 절반까지 내려갔다.

하지만 2009년 11월 뉴욕 소더비에서 <200개의 1달러>가 추정가의 3배인 3900만 달러에 낙찰된 것을 시작으로 작년 11월 소더비 경매에서도 <코카콜라>가 3150만 달러, 지난 5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자화상>이 3844만 달러의 고가에 팔렸다. 또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오, 올라잇>(3800만 달러), <무제>(1016만 달러)도 고가에 낙찰되면서 미국 팝아트 시장의 힘을 다시 한 번 과시했다.
[Asset Special] 국제 미술시장 빠른 회복세 국내 시장도 바닥 탈출 기대
중국 미술시장 열기 고조

중국 미술시장의 열기도 세계 미술시장 회복에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해 중국 예술시장(고서화·도자기·현대미술·민속품·우표 포함)에 9조7000억 위안(경매 6조4000억 원)의 ‘뭉칫돈’이 몰렸다.

지난 3월 중국 베이징 경매회사 자더(嘉德)는 도자기, 서화, 고미술 등 6000여 점 가운데 4900여 점이 팔려 낙찰률 82.4%, 낙찰총액 6억4176만 위안(약 1090억 원)을 기록했다. 중국 대표 바오리(保利·폴리 인터내셔널) 경매는 5년 동안 18배나 증가한 91억5000만 위안(1조50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중화권 ‘큰손’들이 몰리면서 작가 치바이스를 비롯해 천이페이, 자오우키, 쩡판즈, 장샤오강 등 중국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 값과 고미술품 값도 치솟고 있다. 작년 베이징에서 열린 바오리 경매에서는 북송(北宋)대의 시인이자 서예가인 황팅젠(黃庭堅·1045~1105)의 글씨 <지주명>(砥柱銘·770억 원) 등이 아시아 미술품 경매 최고가를 경신했다.

중국 현대화가의 그림도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웠다. 치바이스의 <송백고립도>(718억 원), <군룡입해도> (202억 원)를 비롯해 쉬베이훙의 <파인급수도>(293억 원), 장다첸의 <애흔호>(170억 원), 차우키의 추상화 <2.11.59>(57억 원), 장샤오강의 <창세편>(62억 원), 쩡판즈의 <가면>(43억 원) 등도 초고가에 팔리며 올 예술시장 규모는 10조 원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미술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군소 경매회사들도 잇달아 생기고 있다. 베이징, 상하이에는 최근 1년 사이에 50여 곳이 문을 열어 모두 120여 곳이 미술품 판매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술품 애호가도 꾸준히 늘어 지난해 말 80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상하이 민생은행은 지난해 미술관을 설립해 본격적인 미술품 수집에 뛰어들었다. 민생은행은 류샤오동과 쩡판즈의 작품을 수집하는 데 170억 원을 투자했다. 금융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류이쳰·왕웨이 부부는 작년 현대미술품 수집에만 240억 원을 쏟아 부었다. 이들 부부는 쩡판즈의 <가면 시리즈>를 44억 원, 류예의 <12시의 몬데리안>을 23억 원에 사들여 화제를 모았다.

중국 현대미술의 ‘블루칩’ 작가도 확대되는 추세다. 최근 반정부 활동으로 수감된 아이웨이웨이를 비롯해 쩌춘야, 쩡판즈, 웨민준, 류샤오동, 차이궈챵, 구원다, 류젠화, 추이슈원, 양마오위안, 천원지, 탄핑, 중비아오, 천원링, 쩡하오, 류칭허 등 10여 명의 작품 값은 10억 원대를 넘어선다.

왕젠웨이와 왕궁신은 미디어아트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 양푸둥과 룽룽&잉리, 탄핑, 천원지, 쉬빙, 수이젠궈, 양샤오빈, 샤샤오완과 샤오위 등 미디어 아티스트들도 컬렉터의 시선을 받고 있다. 여성 미술가로는 위홍, 이시우전, 츄이슈원 등이 실험과 자유정신을 겸비한 효율적인 예술 실천가로 명성을 쌓고 있다.

국내 미술시장도 ‘바닥’ 탈출?

중국 미술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국내 미술시장도 바닥 탈출에 대한 기대감이 번지고 있다. 미술품 경매회사 K옥션이 지난 5월 8일 실시한 여름 경매에 출품작 161점 중 132점이 팔려 낙찰률 81.7%, 낙찰총액 50억 원을 기록했다.

앞서 지난 3월에도 서울옥션과 K옥션, 아이옥션, 마이아트옥션의 메이저 경매 평균 낙찰률은 전년 동기 대비 5%포인트 오른 76%를 기록했다. 매출액은 20% 이상 늘어난 160억 원에 달했다. 미술애호가들이 비교적 낮은 가격의 고미술품과 근·현대 작품들을 대거 구입했기 때문이다. 특히 박수근, 김환기, 이대원 등 인기 작가들의 작품에 매기가 몰렸다.

노승진 노화랑 대표는 “미술 경기가 어느 정도 바닥을 다진 것 같다”며 “다만 해외 시장만큼 그림값이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미술품 컬렉션의 적정한 타이밍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화가’ 박수근을 비롯해 김환기, 도상봉, 이대원, 유영국, 최영림, 윤중식, 남관, 김흥수, 박고석, 오지호, 임직순 등 유명 화가 작품들이 아트페어나 화랑가에 매물로 쏟아지면서 그림값이 바닥권을 형성하고 있다.

점당 30억~40억 원대를 웃돌던 박수근, 김환기의 유화는 최근 크기에 따라 5억~15억 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최영림의 작품은 1993년의 모래 그림이 호당 200만 원 선까지 떨어졌고 유영국(300만 원), 김흥수(300만 원), 윤중식(200만 원), 임직순(150만 원) 등은 2007년 가격의 절반 수준까지 내려갔다.

추상화 작품의 시중유통 가격은 이우환의 100호(160.2×130cm) 크기 <선으로부터>가 점당 2억~6억 원에 형성돼 있다. 올 초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펼친 박서보의 <묘법> 시리즈는 8000만~1억 원 선이다. 남관(100호 기준·3000만 원), 하종현(4000만 원), 윤형근(5000만 원), 전혁림(3000만 원), 정상화(7000만 원), 서세옥(3000만 원), 정창섭(5000만 원), 김창열(7000만~9000만 원), 김태호(5000만 원), 곽훈(4000만 원), 이두식(2800만 원), 김웅(4000만 원) 등의 작품도 3년 전에 비해 비교적 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