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제도는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제도다. 2008년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덮쳤을 때도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하락폭이 적었고, 금융기관의 부실 또한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 중 하나로 전세제도를 꼽는다.

미국 같은 국가에서는 주택을 구입할 경우 대부분 집값의 약 70~ 90%를 대출금에 의존한다. 따라서 집값이 10% 이상 하락하면 금융기관의 부실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전세제도를 활용해 주택을 구입하기 때문에 금융기관에서 받은 대출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전세제도는 한국 부동산 시장을 지탱하며 오랜 기간 유지돼왔다. 그렇지만 이 같은 전세제도가 앞으로 오래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부동산 시장 전문가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전문가들은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든다. 첫째, 초기 목돈 마련의 어려움이다. 과거에는 신혼부부들이 결혼해 집을 마련할 때 금액의 차이는 있지만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의 전세금을 부모에게 지원받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분위기가 바뀔 가능성이 높다. 새롭게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20대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녀다. 기나긴 노후를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베이비부머들을 생각하면 안타깝게도 그들이 부모로부터 전세금을 지원받기는 어려워 보인다.

둘째, 주거환경의 변화다. 신혼살림을 앞둔 젊은이들은 부모세대인 베이비부머들과 달리 대부분 아파트에서 자랐다.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아본 경험이 별로 없는 것이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반지하방에서도 신혼살림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현재 자녀세대는 반지하 다세대나 다가구 주택에 거주하기가 쉽지 않다.

자금이 부족한 반면 많은 신혼부부들은 자신들이 살던 거주지의 수준을 유지하고자 할 것이 뻔하다. 따라서 일부 자금은 전세로 나머지 자금은 월세를 지불하는 반전세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집을 소유하고 있는 투자자의 입장에서도 전세제도는 그 매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처럼 주택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던 시기에는 5억 원짜리 아파트를 전세금으로 2억 원을 받고 3억 원 투자자의 자금을 투자하고 나면 몇 년 후에 8억 원이 됐으니 투자수익이 상당했다. 대출이 어렵던 시기 전세금은 금융기관을 대신해 레버리지를 일으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향후 주택가격의 상승이 기대되지 않는 상황에서 투자자의 자금 3억 원을 투자해 아무런 수익을 얻을 수 없다면 어느 투자자가 주택에 투자하겠는가. 결국 집주인들이 전세를 반전세나 월세로 전환해 더 높은 수익을 창출하고자 할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목동의 3억8000만 원 하는 주택의 경우 월세로는 1억 원에 약 150만 원 정도이고, 강북에 2억7000만 원 정도 하는 전세 아파트의 경우 1억 원에 110만 원 정도다. 수익률로 보면 약 6%에 이른다.

주택 월세에 대한 과세가 쉽지 않은 현실을 고려하면 금융자산보다 매력적인 게 주거용 부동산을 활용한 임대 사업이다. 또한 정부의 정책도 향후 고령화 사회, 핵가족 사회가 심화됨에 따라 도시형 생활주택을 권장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향후 전세제도가 지금처럼 주택임차가 대세가 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살아본 경험에 비추어 보면 미국의 부모들이 한국 부모들보다 자녀를 덜 사랑해 자녀 결혼 시점에 주택 마련자금을 지원해주지 않는 것이 아니다. 미국 부모들도 지원해주고 싶지만 자신들의 은퇴 후 생활을 포기하고 자녀들을 돕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녀들을 돕는 것이 아님을 이미 인식한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이러한 주택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향후 주택에 투자하기를 원하는 투자자에게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REALTY COLUMN] 전세제도의 미래와 부동산 시장
박인섭


교보생명 부장
광화문 재무설계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