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영 송산특수엘리베이터 & 베르아델 승마클럽 대표
클래식 승마를 통해 지·덕·체를 함양하고, 자기경영 능력과 더불어 리더십을 설파하는 사람. 송산특수엘리베이터와 베르아델 승마클럽의 김운영 대표는 말 위에 오르면 삶이 달라진다고 한다. 1년에 300회 이상은 마상에서 사업 구상을 하며 삶의 여유를 즐긴다는 그를 찾았다. 말 사업, 특수 엘리베이터 두 분야의 발명가로 불리기까지그리스 신화 속 태양의 신 헬리오스가 몰았다는 태양마차는 미켈란젤로, 루벤스 등 많은 화가들의 화폭을 장식한 단골 소재다. 이 태양마차를 이끄는 네 마리 말은 천장 높은 마구간에서 불로초를 먹고 가슴에 불길을 간직하다 숨을 쉴 때마다 불길을 토해낸다고 묘사된다.
김 대표의 ‘말 사랑’은 태양마차의 고삐를 한번 잡아보길 원했던 헬리오스의 아들 파에톤에 비견이 될까. 거침없이 쏟아내는 ‘승마 리더십’에 대한 신념은 태양마차의 천마가 뿜어내는 불길의 기운에 못지않았다.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송산특수엘리베이터 김 대표의 집무실은 여느 기업체의 사장실과는 사뭇 다르다. 통유리로 마감된 방이라 안팎에서 직원들이 훤히 들여다보는 불편함을 감수한 것 말고도 방 이곳저곳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말’이다.
무지갯빛으로 곱게 물들인 말굽이 늘어트려져 있는가 하면 기마 조각상이 여기저기 보인다. 그중에서도 떠오르는 바닷가 일출을 배경으로 사람을 태운 채 두 앞발을 힘차게 구르고 있는 말 사진이 눈에 띈다. 사진 속 주인공은 바로 김 대표다.
“승마 용어로 르바드(levade) 자세라고 합니다. 말의 앞발 두 개를 모두 올린 상태로 꿈과 희망, 승리, 성공을 뜻하는 자세입니다.” 몇 해 전 새해 첫날 일간지의 한 면을 장식한 이 사진은 한눈에 보기에도 떠오르는 태양을 뒤로 힘찬 역동의 기운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말이 뒤로 1도만 더 넘어가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그야말로 말과 혼연일체가 돼야만 가능한 자세다.
김 대표의 이러한 인마일체의 삶은 단순히 ‘승마를 취미로 하는 경영인’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경희대 체육대학원에서 클래식 승마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클래식승마 글로벌리더과정’과 학부생을 가르치는 국내의 몇 안 되는 승마 전문가다.
현재 김 대표는 최고경영자(CEO)들을 위한 승마과정은 물론 꿈나무 승마단을 창단해 육성할 정도로 말에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다. 2003년에는 안산시 단원구 대부남동에 베르아델 승마클럽을 설립하고 세계 최초로 승마 전용 복합구조 돔을 건설해 특허를 얻었다. 무엇이 이토록 김 대표를 말에 ‘미치게’ 했을까. CEO의 자기경영 능력, 승마로 키우다
특수(비규격) 엘리베이터에 관한 수십 개의 특허를 갖고 있는 송산엘리베이터 김 대표의 마상경영은 3D 입체 영화 속 한 장면을 방불케 한다. 책상에 앉아 컴퓨터 속 도면을 붙잡고 있어도 떠오르지 않다가 말 위에서는 도면 서너 장을 동시에 머릿속에 떠올리고 3D로 구현할 정도라고 한다. 이미 고등학교 학창 시절 ‘수직교통’이라고도 불리는 엘리베이터에 관심을 갖고 훗날 직업으로 삼겠노라 결심했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후 다국적 기업 OTIS에 입사해 30세의 이른 나이에 연구·개발(R&D) 이사 자리까지 올랐다. 이때 1970년대 당시 유럽 및 전 세계 상류층들과의 교류를 통해 클래식 승마가 이 세계의 ‘사교언어’임을 깨달았다.
주말마다 그들과 어울리며 말을 만났고 그때부터 승마에 대한 꿈을 구체적으로 키워왔다. 국내에 승마 문화를 꼭 자신의 손으로 들여오겠다고 생각했고 지금의 베르아델 승마클럽의 돔 디자인 구상을 이미 20년 전부터 머릿속에 그렸다.
그의 오랜 숙원은 2003년 결실을 맺었다. 110개의 마방과 마사시설 일체를 갖춘,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돔형 디자인의 베르아델 승마클럽을 설립한 것. 보통 마방이 30개만 돼도 국제 규모급으로 불리는데 그 규모와 시설 면에서 압도한다.
푸른 초원과 천혜의 자연경관을 둘러 볼 수 있는 외승코스 등 승마의 본가인 유럽에서도 견학을 올 정도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승마 금메달리스트인 라르스 니베르크(Lars Nieberg)도 방문해 규모와 시설, 승용마의 수준을 보고 크게 놀랄 정도였다고 한다.
자연히 태국, 사우디아라비아의 귀족 및 상류층에서 승마를 배우러 이곳을 찾고 매주 대기업 임원 및 CEO들을 대상으로 김 대표가 직접 승마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특히 각 부서의 장이나 사장들에게 클래식 승마를 권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저는 말 위에 있을 때 가장 편하고 활력이 생깁니다. 내 능력 이상의 것을 끌어올려주거나, 사고의 영역 확장을 가능하게 해줘요. 말이 안 통하는 동물과 교감을 수십 년 해오다 보니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인내하는 능력도 자연히 굉장히 커집니다.
멀리서 봐도 아끼는 말이 몸이 어디가 안 좋은지, 건강에 적신호가 오는지 느낌이 올 정도예요. 그만큼 대상에 대한 직관력이 생기고 오랫동안 말과 마음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다 보니 거짓말처럼 삶 전체에 통찰력이 생기더군요.
당연히 사업을 하면서 많은 도움이 되지요. 내가 마상에서 구상해 일궈낸 특허가 30개 이상이라면 말 다한 것 아니겠습니까. 리더들의 가장 중요한 자질인 자기 경영능력. 승마가 길러줍니다.” 1994년 송산특수엘리베이터를 설립한 후 구불구불한 땅굴 엘리베이터, 기계실 없는 엘리베이터, MB의 서울시장 첫 공약사안이었던 서울지하철의 노약자·장애인용 엘리베이터를 모두 만든 이가 김 대표다. 그는 이 모두 ‘말 위에서의 시간’이 만들어준 결과라고 말한다. 기마 민족의 DNA를 믿다
“국가와 인종, 시대를 뛰어넘어 2000년 넘게 인류가 즐기는 트렌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묻는 김 대표는 바로 승마라고 답을 일러준다. 글로벌 시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승마는 이른바 ‘사교언어’로 통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청담초등학교, 송도국제학교, 프랑스국제학교 등의 학생들은 이곳 베르아델 승마클럽으로 승마를 배우러 온다. 경마보다는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레저나 참여 스포츠 문화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승마 발전의 큰 틀이다.
교육으로 접근해 국내에도 클래식 승마문화를 일구고 그 바탕 위에서 지·덕·체를 수련하면 자기 경영에서 발전한 리더십을 갖출 수 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말살된 후 100년간의 공백기를 가진 국내의 승마문화를 다시 되찾아 부활시키고 싶다는 김 대표의 결의에 찬 다짐은 꿈나무 승마단 교육의 이유이기도 하다. 한 기업을 이끌어가는 대표, 그리고 말 위에서도 늘 ‘인벤터(발명가)’로 불리고 싶다는 김 대표. 그가 최근 발명품을 개발했다.
바로 승마 운동 시뮬레이터로 특허를 받은 것. 다리 움직임을 센서가 감지해 말 탄 느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기계로 풍압이나 배경 등을 3D 화면으로 구현해낸다고 한다.
해외 출장에서 극도의 피곤함을 느끼며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곧장 베르아델 승마클럽으로 달려가 말 위에 오른다는 그, 괴짜 발명가의 모습이 오롯이 읽혀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글 이지혜·사진 이승재 기자 wisd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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