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규 삼성자산운용 ETF본부장

한국 증시에 ETF라는 상품을 처음 소개한 배재규 본부장은 현재 순자산 4조 원이 넘는 ETF를 운용하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그는 특히 ETF도 일반 펀드와 마찬가지로 장기투자에 적합한 상품이라고 강조하며 매달 적립식으로 분할매수하는 전략을 추천했다.
[MARKET LEADER] 배재규 “블루칩 담은 ETF 분할매수가 최적의 투자전략”
“ 인덱스(지수) 투자는 요행에 기대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투자 방법입니다.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상장지수펀드(ETF) 투자가 늘어나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배재규 삼성자산운용 ETF본부장(상무)은 오늘날 ‘ETF 전성시대’를 연 주인공이다. 2002년 국내에 처음 ETF를 소개한 뒤 삼성 ‘KODEX’ 브랜드를 통해 시장을 주도했다. 도입 10년도 안 돼 국내 ETF시장은 다양한 기초자산과 저렴한 거래비용을 무기로 상장종목 수가 89개(4월 12일 기준)까지 늘어났다.

종목 수로는 아시아 ETF시장 1위인 일본(90개)을 넘어서는 것도 시간 문제다. 그가 이끄는 KODEX ETF는 상장종목 수 20개, 순자산 4조300억 원으로 업계 점유율 1위를 지켜오고 있다.

배 본부장으로부터 ETF 투자전략과 시장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자신도 ETF를 핵심 재테크 전략으로 활용한다는 배 본부장은 기자에게도 “당장 월급의 5분의 1을 지수ETF에 매달 투자하라”는 조언을 덧붙였다. 특히 ETF의 저렴한 거래수수료를 감안하면 10년, 20년 장기투자를 할수록 눈덩이처럼 복리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올 들어 콩과 구리, 회사채와 미국 달러인버스 등 다양한 ETF를 선보이고 있다. 투자자들 관심이 그만큼 뜨거워졌다.

“ETF는 코스피200 같은 지수나 특정 자산 가격과 수익률이 연동되도록 설계된 펀드다. 거래소에 상장돼 거래가 편리하다는 게 강점이다. 환매수수료 같은 부대비용이 없고 보수도 일반 주식형 펀드보다 저렴하다.

하지만 ETF의 최대 강점은 개별 종목보다 ‘안정적’이라는 것이다. 종목은 업황이나 실적 이외의 다른 변수로 출렁이기 쉽지만 종목을 모은 업종이나 전체 시장은 위험이 분산된다.

자동차 섹터가 잘나갈 것 같다면 현대차보다 자동차업종 ETF를 사두는 게 상식적인 선택이다. 요행을 찾아다니는 것보다 ‘어떤 업종이나 시장이 잘 될 것’이라는 합리적 이유에 기대는 것이 성공 확률이 높다.”

안정성이 높은 게 강점이라면 수익률은 어떠한가.

“국내 주식형 펀드 가운데 연초 이후 수익률 상위 5개 중 4개를 ETF가 휩쓸었다. KODEX자동차ETF는 연초 대비 수익률이 27.51%, KODEX에너지화학ETF는 25.42%(4월 13일 기준)에 이른다. 일반 액티브 펀드는 시장 평균의 초과 수익을 추구하는 반면 ETF는 시장을 따라가는 게 목표다.

출렁임이 적고 예측이 가능하다. 장기적으로는 국내 경제 성장의 과실을 나누는 적합한 방법이기도 하다. 따라서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ETF 투자도 늘어나는 경향을 띤다. 국내는 아직 그 초입에 있다.”

인플레이션 변수가 부각되면서 원자재 ETF가 화제를 끌었는데.

“신흥국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원자재 가격이 크게 뛰었다. 원유나 금, 비철금속 등 원자재를 기초자산으로 한 ETF를 사놓으면 손쉽게 인플레 헤지가 가능하다. 유가가 급등하면서 원유 ETF의 수익률은 연초 대비 1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해외에서 누리는 인기에 비교하면 국내에선 아직 실물자산 ETF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편이다. 원유 ETF도 기초자산 상승의 수혜를 완전히 누리기엔 좀 늦게 출발한 감이 있어 아쉽다.

기존 지수나 섹터 ETF에 투자하면서 원자재 ETF로 포트폴리오를 분산하는 것이 좋다. 국내 원자재 ETF는 현물이 아닌 선물을 주로 추종하기 때문에 가격과 수익률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 환 헤지를 하는지 여부도 수익률에 영향을 미친다.”
"ETF는 일반 펀드보다 거래 비용이 저렴하므로 장기투자 할 수록 수익률에서 큰 차이가 난다."
"ETF는 일반 펀드보다 거래 비용이 저렴하므로 장기투자 할 수록 수익률에서 큰 차이가 난다."
레버리지 ETF와 인버스 ETF는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거래량 상위 종목으로 등극했다.

“레버리지 ETF는 지수 수익률 두 배로 움직이고, 인버스 ETF는 시장 방향과 반대로 움직인다. 활용법에 따라 시장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ETF를 활용한 헤지 전략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종목을 많이 사놨는데 주가가 당분간 안 좋을 것 같다면 인버스 ETF를 사놓는다.

인버스 ETF는 주가가 떨어지면 수익이 나기 때문에 하락장이 끝날 때까지 수익률을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다. 굳이 종목을 처분하지 않아도 위험을 피할 수 있다. 레버리지 ETF는 상승장이 분명해 보일 때 사들여 전체 수익률을 보완할 수 있다. 지난 3월 일본 대지진 여파로 증시가 조정받았을 때 앞선 투자자들은 레버리지 ETF를 집중적으로 사들였고 그만큼 높은 수익을 올렸다.”

올해는 어떤 ETF가 유망한가.

“삼성자산운용의 KODEX 홈페이지(www.kodex.com)에서 모델 포트폴리오를 제안하고 있다. ETF가 보유한 개별주식에 대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분석 자료를 기초로 기대수익률을 산출하고 투자 비중을 결정한다. 코스피200지수를 따라가는 ETF를 기본으로 하고 KODEX차이나 등 해외 ETF, 은행과 에너지화학 등 업종 ETF에 분산투자하는 ‘종합형’ 포트폴리오의 경우 2009년 1월부터 4월 12일까지 87.74%의 수익률을 올렸다.

유망 업종에 분산투자 하는 ‘섹터분산형’ 포트폴리오는 같은 기간 수익률이 144.01%에 이르렀다. 하반기 턴어라운드가 기대되는 반도체와 실적 모멘텀이 뛰어난 에너지화학, 철강, 자동차 등을 주로 제시한다. 이달 들어서는 기대수익률이 높아진 증권과 소비재·자동차 ETF의 투자 비중을 늘렸다.”

ETF 종목은 다양한데 어떤 매매전략을 써야 할지 막연할 때가 많다.

“투자자들은 ETF 거래비용이 저렴하니까 단기 매매가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장기전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 ETF 투자다. 보유 기간이 길어도 ETF 수익률과 기초자산 흐름 간 괴리가 크지 않다. 10년, 20년 이상 장기투자를 하는 데도 적절하다.”

장기투자는 어떤 식으로 하나.

“목돈이 필요한 시점까지 ETF 분할매수 전략을 추천한다. 특정 섹터는 업황에 따라 변화가 많기 때문에 안정적인 상품을 골라야 한다. 코스피200지수를 추종하는 ETF나 삼성그룹주 등 블루칩을 담은 ETF를 매달 꾸준히 매수하는 것이 좋다.

일반 펀드 적립식 투자와 메커니즘이 같아서 시장이 단기적으로 출렁여도 위험을 적절히 분산시켜 준다. ETF는 일반 적립식 펀드보다 거래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에 이렇게 절감한 수수료를 복리로 계산하면 장기적으로 수익률에서 큰 차이가 난다.

때마다 매수하는 게 번거롭다면 은행의 ETF신탁도 대안이 된다. 고객이 정해준 ETF를 자동으로 이체하는 식으로 적립식 인덱스펀드와 같이 운용해준다.”

같은 기초자산이라도 운용사에 따라 수익률이 다른 것을 보게 된다. 상품을 고를 때 유의할 점은.

“ETF는 운용사의 정밀한 운용능력이 필요하다. 투자자들 중에는 유동성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기도 하는데 그렇게 결정적인 부분은 아니다. ETF 상품의 유동성과 기초자산 바스켓의 유동성이 있는데 후자에 비하면 전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단순히 거래량이 많은 ETF가 더 유리하다는 생각은 맞지 않다. 마켓메이커가 있기 때문에 호가 간격도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

ETF시장의 향후 성장세는 어떻게 보나.

“퇴직연금 등 새로운 시장에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선진국과 같이 자산시장에서 ETF의 위상은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다. 거래량이나 수익률에서 이미 일반 액티브 펀드와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했다.

펀드가 다루는 모든 상품을 ETF가 다루는 시점이 올 것이다. 삼성자산운용에서는 농산물 등 실물자산 ETF 라인업을 늘리는 게 올해 목표 중 하나다. ETF로 모든 투자가 가능한 ‘ETF 마켓플레이스’를 만드는 게 앞으로의 꿈이다.”

그때까지 풀어가야 할 숙제가 있다면.

“ETF의 수수료가 저렴하다 보니 증권사들이 고객과 상담할 때 매수 추천에서 제외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스스로 ETF를 요구하면서 점차 시장이 바뀌고 있다. 업계의 이익이 아니라 고객의 수익률을 위한 상품 선택이 이뤄진다면 ETF의 인기는 지금 수준을 훨씬 뛰어넘게 될 것이다. 해외 관련 ETF에 부과되는 배당소득세(15.4%)도 투자에 걸림돌이다. 투자자들이 ETF로 손해를 봐도 고스란히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불편한 면이 많다.”

배재규

현 삼성자산운용 ETF본부장
연세대 경제학과
한국종합금융 주식운용
SK증권 운용총괄
삼성투신 ETF운용팀장


글 김유미 한국경제신문 기자·사진 이승재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