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가 성태훈은 ‘닭’을 모티브로 작품을 하는 중견 화가다. 그의 작품은 동양화에 토대를 두고 있지만 닭이나 전투기 등은 극사실기법으로 그려 ‘실험적 동양화’라는 평을 받고 있다. 삶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로 나날이 새로워지는 우리 시대의 작가, 성태훈을 만났다.
, 2010년, 한지에 수묵담채, 53×10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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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태훈 작가를 만난 곳은 위스키 브랜드 조니워커에서 매년 주최하는 ‘조니워커 킵워킹펀드’의 전시회장이었다. ‘조니워커 킵워킹펀드’는 세상에 도전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꿈을 선정하는 일종의 꿈 공모전. 내부 심사와 네티즌 투표, 외부 심사위원 면접 등을 통해 5명의 도전자를 선정해 2년간 각 1억 원씩을 지원한다.

성 작가의 부스는 전시회 가장 안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벽면을 가득 채운 ‘날아라 닭’ 그림에서 그곳이 그의 부스임을 알 수 있었다. 부스에서 만난 성 작가는 ‘킵워킹펀드’에 지원한 것을 계기로 자신의 꿈과 이상을 돌아보게 됐다고 한다.
, 2009년, 한지에 수묵담채, 104×7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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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교통사고와 이어진 어머니의 죽음

초등학교 때 고흐의 삶과 작품에 매료된 후 그의 꿈은 줄곧 화가였다. 중학교 미술반과 광주예술고교를 다니며 화가의 꿈을 이어갔고, 홍익대 동양화과에 들어가 작가로서의 나래를 펼쳤다. 학창 시절 아버지의 작고와 지독한 가난에도 그는 꿈을 접지 않았다.

그러다 대학교 2학년이던 1988년, 대형 교통사고를 당한 그는 인생의 갈림길에 섰다. 택시로 경인고속도로를 달리다 기사가 졸음운전을 하는 바람에 트럭과 충돌한 것이다. 불행은 도미노처럼 이어졌다. 시골집 지붕에서 고추를 널던 어머니가 막내아들의 사고 소식에 충격을 받고 지붕에서 떨어져 결국엔 세상을 떠났다.
닭의 화가 성태훈
닭의 화가 성태훈
“치료가 거의 끝나갈 때쯤 검진을 받았는데 폐결핵이라고 하더군요. 나중에 오진으로 판명됐지만 한동안 독방을 쓰고 외출할 때는 마스크를 쓰고 다녔습니다. 자살을 하려고 양화대교를 찾기도 했고요. 그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죽기 전에 아껴주신 분께 인사라도 드리려고, 홍익대 은사이신 한진만 교수님을 찾았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나오면서 유서를 남겨뒀는데, 지금도 선생님께서 그걸 보관하고 계시다고 하더군요.”

투병생활을 하던 중환자실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공간이었다. 어제까지 가깝게 지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시체가 돼 실려 나갔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는 어떤 것이 의미 있는 삶인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고민의 끝에서 그는 생이 허락한다면 작가로서 ‘인간의 정신과 삶을 다룬 그림을 그리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사고 후 저를 처음 발견한 경찰과 의사, 수많은 간호사들의 도움을 받았잖아요. 그 전에도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거든요. 학비를 대준 선배님들, 제 처지를 위로하고 작가로서 능력을 아껴주신 선생님들…. 그분들을 생각해서라도 좋은 작가가 돼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동양화에 극사실기법을 도입해 탄생한 ‘실험적 동양화’

투병생활을 끝낸 그는 새로운 마음으로 붓을 잡았다.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대학원을 졸업했고, ‘예술은 철학이다’라는 소신에 따라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동양철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작품 활동에도 열과 성을 다했다. 1999년 이후 한 해도 빠짐없이 개인전을 열었다. 1~3회까지는 역사의 현장을 화폭에 담았다. ‘역사현장 실경’,‘유배지 역사현장 기행전’,‘역사현장-공존’ 등이 그 시절에 속한다.

특히 ‘역사현장-공존’의 모티브는 미국 9.11테러였다. 당시 세 살이던 딸이 TV를 통해 테러 장면을 마치 게임처럼 반복적으로 지켜보는 것을 보고 착안했다. 전쟁으로 무너진 폐허를 배경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는 폐허를 통해 사람의 황폐화된 마음을 표현했다. 당시 오광수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작품을 보고 ‘실험적인 한국화’라고 평하며 화단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그는 2~3년에 한 번 그림에 변화를 준다.‘역사현장’시리즈 이후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것이 2006년 독일 베를린 주독 한국대사관 문화갤러리에서 열린 ‘길을 묻는다’전이다. 당시 작품은 난이나 고목 위에 극사실기법으로 작은 전투기를 그려 넣었다.

전투기는 멀리서 보면 마치 모기처럼 보이는데, 실제로 그는 화장실에 들어온 모기를 보고 전투기를 떠올렸다. 한여름 밤 느닷없이 나타난 모기는 마음을 불안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는 그 마음을 전투기를 통해 화폭에 담았다.

“전투기처럼 강조하고 싶은 주제는 극사실로 표현했습니다. 전투기를 극사실로 묘사하면 모기의 느낌이 살더라고요. 여기에 난이나 매화같이 전투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을 그렸죠.

일종의 비주얼 스캔들(두 개의 이질적인 이미지를 결합해 충격이나 즐거움을 주는 시각표현법)이라고 볼 수도 있죠. 이런 기법은 현대미술뿐 아니라 민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걸 현대적 감각으로 되살린 거죠.”
, 2011년, 캔버스에 혼합 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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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새의 멸종이 일깨워준 작가 정신

그는 동양화와 서양화, 과거와 현재의 만남에서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낸다. 작가 성태훈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날아라 닭’ 시리즈는 2009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날아라 닭’ 시리즈는 경기도 남양주에서 부화했다.

그즈음 성 작가는 서울에서 집을 구하지 못해 남양주 송촌리에 터를 잡았다. 심심풀이로 옆집에서 키우던 닭 2마리를 얻어 키웠는데, 그놈들이 자주 나무며 지붕 위로 날아다녔다. 그 모습을 보며 자신도 날고 싶었다. 날지 못하는 닭이 하늘을 날듯이 자신도 무명 작가의 설움을 벗고 날고 싶었다.

닭은 여러 의미로 풀이된다. 예전에는 왕의 침소 주변에 액운을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로 수탉을 두었다. 일반적으로도 닭은 어둠을 물리치고 새벽을 부르는 동물로 인식돼 왔다. 그는 여기에 사군자 중 하나인 매화를 매칭했다. 매화는 봄의 전령이다. 닭이 밝은 기운을 상징하듯 추위를 이기고 봄을 부르는 매화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또 다른 의미도 있습니다. 도도새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오래전 멸종됐는데, 한때 남태평양의 섬에 서식하던 새입니다. 도도새가 살던 섬은 먹이가 풍부하고 천적도 없었답니다. 날 필요가 없으니 자연 날개가 퇴화됐지요.

그런데 400여 년 전 천적이 생긴 겁니다. 섬을 발견한 서양인들이 도도새를 보고 무차별적으로 잡아먹은 거죠. 그 결과 멸종이 된 거죠. 닭도 도도새처럼 날개를 잃어버렸잖아요.”

그는 작가도 현실에 안주하면 도도새처럼 퇴화된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운명적으로 배고픈 직업이다. 작가가 물질적으로 풍족해지고 그 생활에 젖게 되면 작품 활동에 지장을 줄 수 있다. 날지 못하는 닭이 날갯짓을 멈추지 않듯 작가도 부단히 새로워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는 그렇게 믿고, 작업을 해왔다.

인터뷰 이틀 후, 성 작가는 문자 메시지를 통해 ‘킵워킹펀드’ 최종 우승과 함께 인기상을 받았다고 전해왔다. 그의 오랜 날갯짓이 이제야 바람을 가르듯 했다.

글 신규섭·사진 이승재 기자 wa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