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일본 아오야마가쿠인(靑山學院)대 교수에게는 ‘미스터 엔’이라는 별명이 따라 붙는다. 일본 대장성(현재의 재무성) 관료로 재직하던 시절 엔화 환율을 좌지우지하면서 국제 금융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전력 덕분이다. 그의 영향력은 아시아 외환위기 때인 1997년 외환정책을 총괄하는 재무관(차관급)으로 재직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한국경제TV와 한경미디어그룹이 지난 3월 9~10일 개최한 ‘2011 세계 경제·금융 컨퍼런스’ 참석차 방한했던 사카키바라 교수를 이봉구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이 만났다.

그는 아시아 통합화폐의 가능성에 대해 “이미 경제적인 통합이 빠르게 이뤄지는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지역 통합화폐의 필요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중국의 위안화 절상에 대해선 “과거 엔화의 급속한 평가절상으로 일본이 고통을 받았다”며 “점진적인 평가절상은 그 국가에도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Special Interview] “미국 경제는 몰락하는 중…아시아의 시대 도래할 것”
지난해 세계 경제가 조만간 1870년대의 대공황과 비슷한 국면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지요.

“미국과 유럽 경제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미국의 금융시스템은 2008년 붕괴되면서 후유증이 큽니다. 불량 채권이 늘어났고 주택 가격은 떨어졌습니다. 경기 회복에 최선을 다하겠지만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유럽의 경우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이 경제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1870년대의 경제공황이 다시 왔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중장기적으로 미국과 유럽 경기는 후퇴할 것입니다.”

세계 경제의 침체를 막기 위해 각국 정부와 기업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세계 경제는 구조적 전환기에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 대신 중국, 인도 등 신흥국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에선 한국과 일본이 경제적 통합을 이루고 있는데 매우 바람직한 움직임입니다. 정부와 기업이 경기 회복에 대한 대책 마련과 재정을 어떻게 메우느냐가 중요합니다. 미국과 유럽은 금융재정의 재건을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유럽발 재정위기로 유럽연합(EU)과 유로화의 미래를 어둡게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과거 60년 동안 유럽은 통합의 시대를 이끌었습니다. 프랑스와 독일이 앞서 통합해 나갔습니다. 현재 EU가 27개국이고 유로존(유로화 사용)은 17개국인데 해체 위기에 있습니다. 이런 경향이 표면화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럽의 장래에 대해서는 상당한 위기라고 봅니다.”

중동 지역의 분쟁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유가 급등에 글로벌 금융시장도 출렁이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에 어느 정도 파장을 줄까요.

“심각한 상황입니다. 문제는 중동의 이슬람화입니다. 중동 지역은 전통적으로 미국과 유럽의 영향이 큰 곳입니다. 그러나 현재 이곳에서 이슬람화가 완만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석유 가격은 150달러까지 오를 수 있습니다.

또 보리, 설탕 등 식량 가격도 급등해 세계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들의 엄청난 수요도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상당히 어려운 시점에 있다고 봅니다.”

“세금 인상 없이 복지 확대 부분만 얘기하면 포퓰리즘이 됩니다.”
“세금 인상 없이 복지 확대 부분만 얘기하면 포퓰리즘이 됩니다.”
많은 국가들이 인플레이션의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인플레와 함께 경기침체 속 고물가가 유지되는 스태그플레이션 얘기도 나옵니다. 어떻게 생각하나요.

“최근 원자재와 식량 가격이 급등하면서 인플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선진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인플레는 중국, 인도 등 신흥국들의 걱정거리였습니다. 상대적으로 선진국은 인플레에 대한 걱정이 적었습니다.

그러나 선진국도 인플레를 걱정하게 됐습니다. 유럽과 미국 등에서의 물가 상승이 그 예입니다. 예컨대 유럽에선 최근 3개월 동안 연속으로 소비자물가지수가 2% 상승했습니다.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다음 달 금리 인상을 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선진국도 금리 인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달러화의 일극체제가 무너지고 다극체제 혹은 무극체제가 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 세계 경제 추이를 보면 유럽은 번성했다가 쇠퇴하는 경향이 있고 미국이 그런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보나요.

“지난해 중국 국내총생산(GDP)이 일본을 넘어섰습니다. 아마도 지금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2025년 중국이 GDP 면에서 세계 1위가 될 것입니다. 인도의 성장률도 상당히 빠릅니다. 아시아의 시대가 새롭게 왔다는 얘기보다도 지난 19세기 초 중국과 인도가 세계의 중심이었던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는 느낌입니다.”

중국과 일본의 GDP 규모가 역전돼 중국이 앞서는 단계까지 왔습니다. 중국은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중국의 경제발전과 위안화의 위력 확대가 세계 경제 특히 동아시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요.

“중국이 GDP 면에서 일본을 앞질렀으나 1인당 GDP는 매우 적습니다. 1인당 GDP는 일본의 10분의 1 수준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중국이 아직 개발도상국에 있다고 봅니다. 또 금융 부분에서도 정부의 규제가 상당히 엄격합니다.

환율의 자유로운 거래도 할 수 없습니다. 중국의 위안화가 아시아의 통화로서 기능을 발휘할지 의문입니다. 아시아 국가들마다 미국과의 관계가 복잡해 아시아 통화시장에서 어느 나라의 통화가 중심이 될지는 확신하기 이릅니다.”
사카키바라 교수는 위안화가 아시아의 기축통화가 될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고 강조했다.
사카키바라 교수는 위안화가 아시아의 기축통화가 될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고 강조했다.
미국도 일본처럼 잃어버린 10년 시대를 맞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많습니다.

“지금의 미국 상황은 1990년대 일본과 매우 흡사합니다. 금융 버블이 터졌고 불량 채권이 다량으로 쌓여있으며 소비자구매력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장기적인 침체에 놓여있습니다. 미국 내 주정부의 재정도 파탄 지경에 있습니다. 돈이 없어 도로 보수를 제대로 못하고 교사의 수를 감축하고 있습니다. 저는 미국이 중장기적으로 몰락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경제가 어려운 것과 관련해 정치인들의 약한 리더십이 문제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일본 총리가 1년마다 바뀌고 있습니다. 이는 재정 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 경제는 성장의 단계가 아닌 성숙의 단계에 있습니다. 일본이 매년 4~5% 성장을 할 수는 없습니다. 일본 기업이 동남아시아로 눈을 돌리는 이유입니다. 스스로 성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성숙된 시장의 좋은 점을 잘 활용, 생활의 질을 올려야 한다고 봅니다.”

일본의 민주당이 내세웠던 무상복지로 인해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무상복지와 관련해 논란이 많습니다. 포퓰리즘에 입각하는 측면이 있다고 보나요. 정부는 꼭 약속을 지켜야 합니까.

“일본 민주당 정권이 고속도로 무료화, 고교 무상수업료 등을 약속했습니다. 복지를 확대하려면 세금 인상은 당연합니다. 프랑스 공립학교의 경우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무상교육을 합니다. 일본이 유럽식으로 하려면 소비세를 20% 인상해야 합니다.

세금도 올리고 복지도 확대하는 것이 적절한 방법이지만 복지 확대만 외치면 포퓰리즘이 됩니다. 민주당의 문제점은 재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세금을 올려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정책은 결국 파탄 나게 됩니다.”

정리=장성호·김희경 한국경제신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