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가 신선미

신선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곤히 잠에 빠진 아이의 숨소리며 참빗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섬세하고 치밀한 묘사와 채색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 신선미를 만났다.
[Artist] 꿈과 현실의 몽환적 경계를 넘나들다
신선미의 그림은 한복 입은 여자의 초상화다. 생활 속의 여자상이다. 외형적으로는 전통적인 여성 이미지의 전형을 보여준다. 마치 복식을 고증하듯 정교하게 재현한 한복은 이 그림 안 풍경을 과거의 시간대로 몰고 가거나 전통회화의 한 자락을 엿보게 한다.

마치 조선시대 풍속화를 보고 있는 것도 같다. 그런데 그 사이로 현재의 전통화를 나름의 방식으로 전유하고 있고 그 문맥을 은근히 비틀고 있다. 미술평론가인 박영택 경기대 교수는 신선미의 작품을 이렇게 평했다. 그는 신 작가의 작품을 ‘일탈과 유머가 있는 여성 풍속화’라고 명명한다. 박 교수의 말처럼 신 작가의 작품은 전통과 현대, 꿈과 현실이 공존한다.
<오르골 3-1>, 2010년, 장지에 채색, 56ⅹ73cm / <오르골 3-2>, 2010년, 장지에 채색, 56ⅹ73cm
<오르골 3-1>, 2010년, 장지에 채색, 56ⅹ73cm / <오르골 3-2>, 2010년, 장지에 채색, 56ⅹ73cm
, 2010년, 장지에 채색, 56ⅹ73cm / <오르골 3-2>, 2010년, 장지에 채색, 56ⅹ73cm">
세밀한 작업 탓에 작품 수가 많지 않아

1980년생,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신 작가의 이력을 생각하면 완성도가 상당하다. 화단에서 좋은 평을 듣고 있는 그의 작업은 순수닥지를 3장 겹친 삼합지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 위에 1차로 스케치를 한다. 스케치는 구도와 인체 비례까지 고려해야 하기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다음은 채색이다. 신 작가는 가루물감인 분채를 쓴다. 석채는 도드라지는 느낌은 있지만 입자가 굵어 선호하지 않는다. 반면 분채는 염색을 하듯 종이에 스며드는 느낌이 좋다.
1 <도움의 손길 1-2>, 2010년, 장지에 채색, 79ⅹ85cm
1 <도움의 손길 1-2>, 2010년, 장지에 채색, 79ⅹ85cm
, 2010년, 장지에 채색, 79ⅹ85cm">그는 여러 번 반복해 채색을 한다. 짙은 색도 옅은 색을 여러 번 반복한다.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바탕색이 올라와서 선명한 느낌을 준다. 그만큼 섬세한 작업이 채색이다. 머리카락을 그릴 때는 숨도 안 쉬고 작업을 한다.

동양화는 유화처럼 덧칠을 할 수가 없다. 물감이 스며들면 다시 살리기 어렵다. 그의 작품은 특히 여백이 많아 먹물이라도 튀면 작업을 다시 해야 한다. 그는 손때가 묻을까 봐 수건을 깔고 작업을 한다. 세밀한 작업이기에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한 달에 50호 2점 정도밖에 못 그린다. 그나마 손에 익어서 그 정도다. 예전에는 100호 작품을 하나를 하는 데 석 달이 걸린 적도 있다. 보통 작가들이 1년에 2000호 정도를 그리는데, 그는 1000호 조금 넘는 정도다.

그 덕에 컬렉터들로부터 항의 아닌 항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 2007년 두 번째 전시 후 많은 컬렉터들이 그의 작품을 찾았다. 언제 작품이 나오느냐고 전화를 하기도 했고, 어떤 컬렉터는 비슷한 그림을 그려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림에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야 나중에 스스로 떳떳할 것 같았다.
2. <Welcom> 2010년, 장지에 채색, 130ⅹ162cm(오른쪽)·26ⅹ26cm
2. 2010년, 장지에 채색, 130ⅹ162cm(오른쪽)·26ⅹ26cm
2010년, 장지에 채색, 130ⅹ162cm(오른쪽)·26ⅹ26cm">
한복 입은 여인에 스토리를 입히다

“한복 입은 여성을 그리기 시작한 건 대학원에 입학한 직후였어요. 먹의 매력에 빠진 건 대학 때였고요. 대학 때 은사님이 일본에서 그림 공부를 하신 분이었는데, 그분의 영향으로 빨갛고 선명한 색채에 눈을 뜨게 됐어요.

학교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그림에 스토리가 별로 없었어요. 단지 한복이 좋아서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교수님이 잘못 그리면 달력 그림 같아질 수 있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 뒤로 그림에 스토리를 입히려고 애를 썼어요. 그렇게 탄생한 게 한복 시리즈였어요.”

단지 한복의 우아함과 단아함만을 표현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옛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장인정신과 솔직함을 기본으로 하되 현대적 이미지를 과하지 않게 더하고자 했다. 여인들의 단아한 복식과 화려한 장신구는 어쩌면 여성적인 솔직함의 상징이다.

신 작가의 여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런 여인들도 가끔은 조금 흐트러지고 싶을 것이다. 한복 입은 여인 시리즈는 그런 여성의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간혹 예상치 못한 복병의 등장으로 무너지는 체통 즉, 해학적인 요소가 어우러져 지켜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실소를 자아내어 체증을 풀어주고 싶은 것이다.
[Artist] 꿈과 현실의 몽환적 경계를 넘나들다
더불어 ‘그림 속 그림 이야기’로 각자 다른 이야기를 그림 속 배경 안에서 하나의 연결고리로 해 구성의 변화를 꾀했다.

<개미요정> 시리즈도 초기 작품이다. <개미요정> 시리즈는 먹다 남은 과자 부스러기를 보고 나타난 개미들이 자기 몫을 챙겨 이내 사라지는 모습에서 착안했다. 개미처럼 우리의 일상에는 방심한 틈을 노리고 나타나는 존재들이 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꿈과 현실의 경계,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조용한 움직임이 포착된다. 우리 자신은 그런 알 듯 모를 듯 스쳐가는 장면을 우연한 착각이나 자신의 실수로 여기며 부정하려 한다.

<개미요정> 시리즈는 점점 커가면서 무언가를 잃어가는 우리들의 어릴 적 순수함을 되찾고 싶고, 주위에서 잠시 스쳐 놓칠 수 있는 또 다른 기적들의 존재를 그림으로 옮겨보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됐다.

임신과 육아 이야기를 담은 <행복한 방>

2009년부터 나온 <행복한 방> 시리즈는 출산과 육아 이야기다. <행복한 방> 첫 작품은 만삭에 그가 그린 작품이다. 상상 속에 있던 아이를 그림으로 옮겼다. 신 작가는 아이를 낳고 보니 그림 속 아이와 너무 닮아서 놀랐다고 했다.

“태교가 영향을 줬나 봐요. 임신해서도 작업을 계속했는데, 그 영향인지 다른 건 몰라도 아기가 연필 잡는 게 남다른 듯해요. 지금 나오는 작품들은 모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생긴 에피소드를 그림으로 옮긴 거예요. 제게는 그림일기와 같은 거죠.”
3.  <Welcom> 2010년, 장지에 채색, 106.5ⅹ194.5cm(왼쪽)·33ⅹ72.7cm
3. 2010년, 장지에 채색, 106.5ⅹ194.5cm(왼쪽)·33ⅹ72.7cm
2010년, 장지에 채색, 106.5ⅹ194.5cm(왼쪽)·33ⅹ72.7cm">

<행복한 방>에도 개미요정이 등장한다. 그는 아이를 키우면서 개미요정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는 듯하다고 했다. 가끔 아이는 허공을 보고 혼자 웃기도 하고, 손짓을 하기도 한다.

마치 어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그곳에 있다는 듯이. 그에게도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했던 시절이 있었다. 분명히 뭔가를 본 듯한데 어른들은 꿈에서 덜 깼거나, 헛것을 봤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는 자라면서 혹시 그게 진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끔 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행복한 방>은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다.

“사실 저는 복이 많은 작가예요. 여성 작가 중에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로 작업을 그만두는 분들이 많거든요. 다행히 저는 시부모님이 인정해주셔서 계속 작업을 할 수 있었어요. 시부모님은 제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세요.

제가 그림을 완성하면 사진을 찍어 보내드려요. 시아버님이 그걸 글로 쓰고 책으로 엮어서 선물을 하신 적도 있고요. 어머님도 취미로 사군자, 서예를 하셔서 동양화를 좋아하시고요. 그분들 덕분에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작가 신선미의 그림 속에 깃든 평화와 행복의 원천이 어디인지 짐작이 갔다.


글 신규섭·사진 이승재 기자 wa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