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 삼성생명 무등지역단 수창지점 FC
삼성생명은 4만여 FC(Financial Consultant) 가운데 ‘영업 달인의 경지’에 오른 FC에게 ‘명인’이라는 호칭을 부여한다.전체 FC 가운데 명인 호칭을 받은 이는 겨우 3%. ‘명인’이라는 자리는 단순히 보험계약을 많이 체결해서는 절대 오를 수 없는 자리이기에 ‘명인’이라고 불리는 것만으로도 큰 자랑거리가 된다.
김경 FC(44)는 광주지역에서 ‘명인’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며, ‘보험영업’이 무엇인지 표본을 보여주는 FC다.
일하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다
16년 동안 삼성생명에서 보험 한 우물을 파고 있는 김경 FC에게 보험 입문은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평소 왕래하던 남편 친구의 부인이 있었다. 그녀가 삼성생명 FC라는 사실만으로 만날 때마다 ‘보험 하나 가입해 달라고 하면 어쩌나’ 하는 부담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김 FC의 이런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FC는 보험 얘기는 전혀 꺼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돌을 넘길 때쯤 그 FC가 자아실현과 가계를 위해서 FC 일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넌지시 권유했다. 때마침 동네 미장원에서 봤던 잡지에서 연금상품에 대한 기사를 읽고 연금가입 생각이 있었던 터라 FC 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단지 상품 설명이나 들을까 하고 집으로 그녀를 초대했다.
집에 들어서는 그녀를 보고 김 FC는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평상복 차림이 아닌 정장을 차려입은 그녀의 모습이 ‘신선함과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자신도 한때 직장인이었지만 결혼과 출산, 육아를 거치면서 어느새 자신에게 소홀해지고 있었다. ‘트레이닝복’ 차림의 자신과 ‘프로 냄새가 나는 재무설계 전문가’는 천양지차였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그녀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파트 분양을 받고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들은 FC의 비전은 ‘나도 해내고 싶다’는 욕심을 부추겼다. 무엇보다 김 FC를 감동시켰던 것은 ‘일하는 모습이 저런 것이구나’ 하고 보여 주었던 FC의 자세였다.
두려움은 머릿속에 있을 때 가장 커진다
하지만 김 FC는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FC를 하겠다는 결심을 남편에게 꺼내는 것조차 어려웠다. 남편은 ‘영업=고생’이라는 공식을 들먹이며 그녀를 만류했다. 하지만 쉽게 물러날 그녀가 아니었다. 창업을 하려 해도 자본금이 1억~2억 원이 필요하고, 그것도 잠자는 시간까지 일에 매달려야 겨우 성공의 최소 조건을 갖출 수 있다.
반면 FC는 자본금 한 푼 없이 시간을 조절해가며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1인 창업’ 모델임을 강조했다. 급기야는 한 달 만 해보겠다고 매달렸다. 결국 그녀는 남편의 동의가 아닌 묵인 아래 FC를 시작했다.
삼성생명의 FC 교육은 체계적이었고, 상품이나 실제 영업활동에 대한 내용도 전업주부를 FC로 탈바꿈시키기에 충분했다. 교육 과정에서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선배 FC와 함께 고객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계약을 체결하는 모습도 멋있었지만, 거절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오히려 그녀를 더 자극했다.
그 모습을 보며 김 FC는 ‘내 자세에 따라 잡상인이 될 수도, 재무설계 전문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기업이나 단체를 직접 방문하며 소위 말하는 ‘개척’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교육을 통해 떨쳐낼 수 있었다. 두려움은 생각 속에 있을 때 무서운 것이지 밖으로 끄집어내는 순간 증발해 버렸다.
준비된 FC에게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FC 활동을 시작한 지 이튿날 조그만 회사를 방문했는데, 업무를 보던 아가씨가 “왜 이제 왔냐”고 애교 섞인 타박까지 하며 그녀를 반겼다. 지금까지 방문했던 곳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그녀는 어리둥절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고객은 작은아버지가 간암으로 투병하시는 것을 보며 보험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보험에 대한 생각이 없을 때는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던 보험설계사들이 막상 가입하려고 하니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때 마침 김 FC가 회사를 방문한 것이었다.
김 FC는 교육받은 대로 꼼꼼히 보험내용을 설명했고, 몇 차례 질문이 오간 뒤 그 자리에서 계약이 이루어졌다. 계약 체결 후 김 FC는 제일 먼저 공중전화 부스를 찾았다. 휴대전화는 고사하고 삐삐도 귀하던 시절, 남편에게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은 공중전화뿐이었다. 쉽게 포기할 줄 알았던 아내가 당당히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에 남편도 마치 자기 일처럼 진심으로 기뻐하고 축하해 주었다.
김 FC는 그날 첫 계약을 통해 큰 가르침을 얻었다고 한다. ‘차갑게 대하는 고객도 있지만, 보험을 기다리는 고객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 후 그녀는 ‘날 기다리는 고객을 만나러 간다’는 설렘으로 일하게 됐다. 첫 계약 이후 남편의 태도도 달라져 주변 사람들을 그녀에게 소개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아니라 FC로서의 능력을 믿게 된 것이다.
무리하진 않되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한다
보험에 입문한 지 16년째 되는 김 FC는 한 해 동안 최고의 활동을 한 FC에게 주는 연도상을 무려 12차례나 받았다. 단순히 아는 사람들에게 가입을 유도한 것이 아니라 직장이나 기업, 단체 등에서 꾸준히 활동한 결과다. 실제로 계약의 90% 이상이 기존에 알던 사람들이 아니라 ‘개척’을 통해 얻어냈다.
김 FC의 하루는 고등학교 2학년인 자녀를 등교시키고, 회사에 도착한 오전 7시 40분쯤 시작된다. 그때부터 자료를 꼼꼼히 챙기고 오전부터 쉴 새 없이 고객을 방문한다. 이런 부지런함 덕에 그녀는 하루 40~50명의 고객을 만난다.
그렇다고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가정을 돌보는 주부라 늦게까지 일을 할 수는 없다. 대신 그녀는 낮 시간에 집중적으로 일을 한다. 무리하진 않지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김 FC가 하루 40~50명을 만나면서 항상 보험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가벼운 일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진지하게 고객에게 재정설계를 하는 것은 하루 5~6명 수준을 유지한다. 김 FC는 오랫동안 이 원칙을 지켜 왔다. 그리고 빠뜨리지 않는 것은 하루에 반드시 1~2명의 새로운 고객을 만나는 것. 슬럼프에도 꾸준히 만나 왔던 고객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고객은 인생을 함께 할 동반자
김 FC는 주로 광주 지역 백화점, 마트, 아울렛 등 유통업체를 위주로 꾸준히 활동하는 ‘발품족’이다. 하지만 무작정 고객에게 접근하지는 않는다. 그의 접근법은 영리하면서도 아주 세련됐다.
일단 고객의 속성을 파악하는 데 주의를 기울인다. 각 매장의 특성을 파악해서 한가한 시간에, 고객이 자신을 원할 때, 필요한 것을 채워 준다. 편하게 말동무도 돼 주고, 장사에 지쳐 있을 때는 별것 아니지만 간단한 간식거리를 건네며 편하게 다가갔다.
또한 장사의 특성상 다른 손님이 오면 바로 응대해야 하기 때문에 앉아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 설명했다. 그런 그의 ‘편안함’이 고객의 재무설계까지 이어졌다.
김 FC는 자신의 영업 노하우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다만 고객을 많이 만나는 것만이 해답이라고 말한다. 현재 김 FC가 보유하고 있는 고객은 890명, 건수로는 무려 1700건을 넘어선다.
특별한 비결을 묻자 그녀는 “정답은 노후(Know-who)”라고 말했다. 자신이 활동하는 곳을 그야말로 문지방이 닳도록 다닌 것이 지금의 자리를 만들었다. ‘매일 보이는 사람’이 ‘친근한 사람’이 되고, 나중에는 ‘보험을 잘 아는 사람’의 모습이 되니 자연스레 계약으로 이어졌다. 또한 고객에게 손쉽게 접근하기 위해 과감히 용어도 고객의 눈높이에 맞췄다. ‘가입설계서’라는 말도 ‘카탈로그’라고 바꿔 말할 정도다.
김 FC는 자신이 활동하는 곳에 들어올 때면 ‘골프 라운딩’을 한다고 스스로 최면을 건다. 고객과 굳이 시간 약속을 하지 않고, 고객이 부담스럽지 않게 눈앞에서 자신이 항상 근처에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가게에 손님이 많거나 업무가 바쁠 때는 그저 지나가며 눈인사만 할 때도 있다고 한다.
“저에게 고객은 고객이 아니라 인생을 함께 할 동반자입니다. 항상 편하게 옆에 있으며, 고객이 손을 뻗으면 항상 옆에 있는 친구가 될 생각입니다.”
김 FC의 힘찬 다짐이 고객에 대한 ‘무한섬김’을 보여 주는 듯하다.
글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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