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인다.”

인문학 베스트셀러의 효시가 됐던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한 말이다.
[Thoughts on] 숨은 것을 보는 안목
전혀 다른 듯 보이는 이 두 가지 말은 서로 통하는 바가 있다. 문화유산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누구나 똑같이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화유산에 대해 아는 게 없다면 문화유적을 찾아가도 제대로 본 것은 없고 그저 밥만 먹고 올 뿐이다.

나중에 “나도 거기 가본 적 있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 외에 아무런 소득도 없다. 또한 여우의 말은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장미와 똑같은 장미들이 많은 것을 보고 실망하는 어린 왕자에게 하는 이야기다.

여우는 수많은 장미들과 어린 왕자가 직접 시간과 공을 들여 가꾼 한 송이의 장미가 겉모습은 똑같아 보여도 실상 얼마나 다른지를 말해준다. 유홍준의 말과 여우의 말이 통하는 접점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 철학의 주요한 분야인 구조주의 인식론과도 통한다.

정확히 말하면 유홍준과 여우가 강조하는 안목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이 아니다. 아예 안 보인다기보다는 오히려 너무 잘 보여서 주목을 받지 못하고 넘어가는, 즉 당연시되는 것을 인식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보자. 회식을 끝내고 직원들이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른다. 한 사람씩 번갈아 마이크를 잡는다. 그런데 듣는 사람들은 모두 노래만을 들을 뿐이다. 노래방 기계에서 나오는 반주를 듣는 사람은 없다. 이때 반주는 없는 게 아니라 당연시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누구의 귀에나 들리지만 아무의 귀에도 들리지 않는다. 반주는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마치 침묵 속에 잠겨 있는 듯하다. 반주는 숨어 있다.

그렇다면 이 숨은 반주는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내보일까. 그것은 노래방 기계의 스위치를 꺼보면 안다. 고장이 나거나 단전이 되면 반주가 사라진다. 사람들은 새삼스럽게 반주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반주의 부재(absence)는 곧 반주의 현존(presence)이다. 이렇게 반주는 부재증명, 즉 알리바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피아노로 ‘고요한 밤’이라는 노래를 친다고 해보자. 오른손으로는 솔, 라, 솔, 미로 진행되는 멜로디를 치고 왼손으로는 도·미·솔, 시·레·솔로 진행되는 화음을 친다. 여섯 살짜리 아이가 거실에서 ‘고요한 밤’을 칠 때 아이의 왼손에 주목하는 가족은 거의 없다. 누구나 솔, 라, 솔, 미를 들으며 박수를 친다.

이때 왼손의 화음은 침묵 속에 잠겨 있다. 물론 노래방의 예처럼 이 경우에도 아이가 왼손을 빼고 오른손으로 멜로디만 치면 즉각 거실 안의 모든 가족은 아무리 아이의 서툰 연주라 해도 ‘고요한 밤’의 연주가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노래방 기계의 반주와 아이의 왼손이 치는 화음은 묘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있으면 있다는 게 인식되지 않고 없어야만 비로소 없다는 게 인식되는 존재 방식이다. 언제나 드러나 있지만 마치 숨어 있는 듯하다. 이 드러난 것을 꿰뚫고 숨어 있는 것을 포착하는 능력이 바로 구조주의 인식이다.

물론 노래방에 갈 때 노래를 들으러 가지 반주를 들으러 가느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아이에게 그동안 배운 피아노 솜씨가 어떤지 보자고 한다면, ‘고요한 밤’이라는 멜로디를 원하는 것이지 도·미·솔 화음을 들으려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노래방에 가지 않고 그냥 노래를 부르거나 ‘고요한 밤’을 피아노로 치는 대신 입으로 흥얼거리는 것과 뭐가 다를까. 반주 없는 노래와 화음 없는 연주는 ‘완성된 형태’가 아니다. 음악적으로 심화된 형태는 반주가 있는 노래이고 화음이 딸린 피아노 연주다. 이렇게 부재는 존재를 완성시킨다.

이런 일상생활의 사례가 아니라 전문적인 부문에서도 숨은 것이 드러난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점은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영화를 볼 때 영화 전문가가 아닌 대다수 관객들은 배우들의 연기나 기본 스토리를 좇아간다.

멜로 영화라면 주인공 남녀가 결혼에 골인할 것인지, 결국 헤어질 것인지에만 집중하며, 스릴러물이라면 연쇄 살인범이 누구이고 주인공 형사가 어떻게 그를 알아내고 잡아낼지에만 전념한다. 줄거리와 배우들의 연기는 영화의 드러난 요소다. 그러나 영화감독과 영화 전문가가 더 신경을 쓰는 것은 숨은 요소다. 예를 들면 배경이나 소품 같은 것들이다.

배경이나 소품은 영화의 본질과 거리가 있는 하찮은 요소다. 그런 것들에 주목하는 관객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것들은 영화의 기본 줄거리와 거의 무관해 보여도 실은 영화를 완성해주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 버스 전용차선이 나온다거나 배우들이 휴대전화로 통화한다면 곤란한 일이다. 만약 그런 장면이 등장한다면 영화의 문외한이라 해도 즉각 오류를 포착할 수 있다. 영화감독이 관객의 눈에 띄지 않는 사소한 부분에 집착하는 이유, 만화가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배경까지 공들여 그리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평소에 드러난 것을 보는 데 익숙할 뿐 숨은 것을 보는 데 서툴다는 점이다. 드러난 것, 화려한 것, 큰 것은 누구나 볼 줄 알고 평가할 수 있다. 반면에 숨은 것, 사소한 것, 섬세한 것을 보는 안목을 가진 사람은 드물다. 숨은 것은 드러난 것의 본질을 정의하고 완성하지만, 주로 드러난 것에 가려 은폐되고 무시되고 때로 구박당한다.

숨은 것은 심층이고 드러난 것은 표층이다. 구조주의 언어학자인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는 두 가지의 관계를 랑그(langue)와 파롤(parole)로 규정한다. 랑그는 불변의 문법구조이고 파롤은 발화 행위다.

일상적인 예로 설명하자면 랑그는 표준어, 파롤은 사투리에 비유할 수 있다. 모든 파롤은 랑그를 전제로 한다. 랑그가 없거나 랑그를 모른다면 파롤은 불가능하거나 방향을 잃게 된다.

일제 강점기에 지하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함경도 투사와 경상도 투사가 만났다. 두 사람은 전에 만난 적도 없으며, 표준어를 모르고 자기 지방의 사투리만 알고 있다. 함경도 투사가 밀봉한 편지를 건네주자 경상도 투사가 말한다. “이게 뭐꼬?” 그러자 함경도 사람이 반문한다. “뭐꼬가 무시기?” “무시기가 뭐꼬?” “뭐꼬가 무시기?” 이렇게 두 사람은 한나절을 서로 묻고만 있었다고 한다.

웃자고 한 이야기지만, 여기서 뭐꼬와 무시기는 둘 다 파롤에 해당한다. 알다시피 뭐꼬와 무시기는 둘 다 ‘무엇’이라는 표준어를 뜻한다. 두 사람 중 한 명이라도 뭐꼬와 무시기라는 파롤의 심층에 ‘무엇’이라는 랑그가 있음을 알았다면 소통의 난점은 금세 해결됐을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말할 때 문법구조를 일일이 따져가며 말하는 사람은 없다. 문법은 이미 말하는 사람의 무의식에 내장돼 있어 누구나 입을 열면 자동적으로 문법을 운용한다. 발화의 내용은 드러난 것이지만 문법은 그 아래 숨어 있다. 하지만 발화의 내용을 결정하고 규정하는 것은 바로 그 숨은 문법이다.

현대사회는 철저히 드러난 것만을 앞세운다. 모두들 본질은 팽개치고 현상에만 주목한다. 실증주의, 성과주의, 결과론, 심지어 외모지상주의가 다 거기서 나온 사고방식이다. 생텍쥐페리는 이미 어린 시절에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그림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른들에게 실망했다.

“그럴 때면 나는 보아뱀이니, 원시림이니, 별이니 하는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그 대신 어른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브리지니, 골프니, 정치니, 넥타이니 하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 어른들은 아주 똑똑한 사람을 알게 됐다며 만족했다.”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지만 그릇을 쓸모 있게 만드는 것은 그릇 속의 빈 공간이다.” <도덕경>의 이 구절은 현대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건축관과 통한다. “르네상스 이래 건축가들은 건물의 외관을 장식하는 데만 신경 썼을 뿐 정작 건물의 본질인 실내 공간을 어떻게 조성할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유홍준, 생텍쥐페리, 노자, 라이트는 모두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성, 구조적 인식을 말하고 있다. 문화유산의 참된 가치나 자신이 가꾼 장미의 소중함을 모르는 정도에 그친다면 그래도 괜찮다. 하지만 국가의 경영자나 기업의 CEO가 구조적 인식을 놓친다면 그 국가와 기업의 운명은 뻔하다.

남경태 인문학 저술가 및 번역가 dimeol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