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썽정

김썽정은 서른셋의 젊은 작가다. 2008년 기획전 ‘정물에 반하다’로 대중의 주목을 받은 그는 현재 화단에서 스타급 화가로 인정받고 있다. 색색의 점으로 묘사한 그의 회화는 깊이가 있으면서 동시에 동화적인 발랄함을 선사한다.
[Aritist] 그림을 통해 편안함과 밝음, 행복을 전파하다
김썽정 작가는 최근 화단에서 인기를 끄는 주목받는 작가다. 고향이 울산인 그는 울산대 서양화과 대학원을 졸업한 후 현재 서울 신림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그의 오피스텔을 찾은 날은 매서운 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1월 하순이었다.

겨울바람을 뚫고 찾아간 그의 오피스텔은 좁았지만 잘 정돈된 느낌을 주었다.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과 달리 나긋나긋한 말투로 인사를 건넨 김 작가가 커피를 내오며 말문을 열었다.

“많은 분들이 그림만 보고는 제가 여자인 줄 알더라고요. 작업이 섬세하고 색깔이 화사하니까 그런 선입견을 갖는 것 같아요. 외모는 그렇지 않지만 실제 여성적인 면이 많아요. 제가 울산예고를 나왔는데, 여학생이 대부분이었거든요. 50명 중에 40명 이상이 여자였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취향이 여성적으로 변한 것 같아요.”
[Aritist] 그림을 통해 편안함과 밝음, 행복을 전파하다
유치원 때부터 그림으로 주변의 관심 끌어

그가 미술에 취미를 붙인 것도 어쩌면 그런 여성적인 면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유치원 때부터 그림이 좋았던 그는 조용히 혼자 그림 그리기를 즐겼다. 부끄럼이 많아 잘 나서지 못했지만 그림으로 친구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때는 그게 마냥 좋았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다. 미술교사였던 담임이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화가의 길을 추천했다. 그해 마침 울산에 예술고등학교가 생겨 그는 자연스레 화가를 꿈꾸게 됐다.
[Aritist] 그림을 통해 편안함과 밝음, 행복을 전파하다
울산예고를 졸업한 그는 당연한 듯 미대에 진학했고 대학원에 들어갔다. 대학원에서는 2년 내내 볼펜으로만 작업했다. 누구나 쓰는 물감이 아닌 색다른 소재로 신선함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볼펜은 자체로 표현에 한계가 있고 보존성에도 문제가 있었다. 대학원 졸업을 앞둔 즈음의 일이었다.

고민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진로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고민이 머리를 들었다. 유학을 떠날지, 학교에 남을지 쉽게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 ‘대학원도 졸업했으니 이제 돈을 벌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아버지의 말도 마음을 흔들었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청주행을 택했다. 2006년부터 작업을 도왔던 최울가 선생의 작업실이 청주에 있었다.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아버지에게 1년 만 시간을 달라는 말을 남기고 그는 청주로 떠났다.

“대학원까지 나왔는데 제 작품이라고 사람들에게 보여줄 만한 게 없었어요. 1년 만이라도 작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자고 작심을 했죠. 청주 작업실은 외부로부터 단절돼 있어서 그런 고민을 하기에 적당했어요. 그곳에서 최 선생님께 작가의 마인드, 관람객과 소통하는 법 등을 배웠어요.”
[Aritist] 그림을 통해 편안함과 밝음, 행복을 전파하다
작가로서 새로운 전기가 된 충주에서의 생활

지금의 작품 경향도 충주 작업실에서 시작됐다. 첫 번째 작업의 소재는 의자였다. 작업을 시작하며 그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익숙한 물건을 오브제로 설정했다. 재료는 아크릴릭을 선택했다. 아크릴릭은 화려하면서도 색감이 마음에 들었다. 발색은 강하지만 점으로 서로 어우러지면 지나치게 화려하지도 않았다.

표현은 고전적인 점묘법을 차용했다. 점을 선택한 것은 ‘표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뭘까’라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하나하나의 점은 큰 의미가 없지만, 다양한 점들이 모여 이루는 조화가 좋았다.

대학에서는 물감으로, 대학원에서는 볼펜으로 작업을 했다. 면에서 선으로, 선에서 다시 점으로 귀결된 것이다. 회화가 갖는 평면성은 어쩔 수 없지만 붓으로 마티에르를 주는 그림은 흔했다. 그는 거기서 벗어난 새로운 작업을 원했다. 이를 위해 점을 선택했다. 큐빅이 박힌 듯 평면에 무수한 점을 찍었다. 거기에 와 닿은 빛의 느낌이 김 작가는 마음에 들었다.

2007년 한 해를 오롯이 그 작업에 매달렸다. 한 해가 저물 무렵이 되자 1호부터 50호까지 다양한 크기의 작품 20여 점이 남았다. 작품이 모이면서 전시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운 좋게도 화랑 미술제에 그림을 거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는 “그림을 벽에 거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다행히 관객들의 반응이 좋았다. 이듬해인 2008년 초 인사갤러리에서 열린 ‘정물에 반하다’ 기획전에도 초대됐다.

지금 생각해도 꿈같은 일이었다. 서울의 화랑에 자신의 그림이 걸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건 그에게는 로망에 가까운 일이었다. 대학에 다닐 때 서울에서 열리는 아트페어를 구경하며 ‘언제 저런 데 그림을 걸 수 있을까’ 하고 동경하던 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더구나 최울가 선생과 같이 전시회에 참가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건 전시회 결과였다. 당시 그는 20호, 30호, 100호 등 세 개의 작품을 걸었는데 그게 모두 팔렸다. 지금보다 그림 값은 훨씬 쌌지만 자신의 그림이 팔렸다는 사실이 고맙기만 했다. 가슴이 벅찼고, 더 열심히 해서 발전된 그림을 보여줘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제가 꼼꼼하면서 우직한 면이 있거든요. 작가에 따라 다르지만 감으로 단번에 나오는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꾸준하게 매달려서 그 작가만의 느낌이 나는 것을 좋아해요.”
(좌) , 2010년, 캔버스에 아크릴릭, 53×45㎝(우) , 2009년, 캔버스에 아크릴릭, 60×45㎝
(좌) , 2010년, 캔버스에 아크릴릭, 53×45㎝(우) , 2009년, 캔버스에 아크릴릭, 60×45㎝
, 2010년, 캔버스에 아크릴릭, 53×45㎝(우) <사랑에 빠진 호랭이>, 2009년, 캔버스에 아크릴릭, 60×45㎝">
이중적이면서 중성적인 이미지의 탄생

그런 이유로 그의 작품은 완성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김 작가가 가진 작품이 얼마 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업은 캔버스를 사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캔버스를 사와서 직접 천을 씌운다. 천을 씌우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림은 어떤 것일까’,‘무엇을 그릴까’를 고민한다.

그 다음 이미지 콘셉트를 잡는다. 그는 눈에 익으면서 다양한 이미지를 한 데 버무린다. 마치 변신 로봇처럼 얼굴과 다리, 몸통은 제각각이지만 하나로 어우러졌을 때 조화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

“제 이름이 특이하다고 생각하셨죠. 본명은 김성정이에요. 조금만 변화를 줘도 느낌이 크게 달라지죠. 그림에서 추구하는 것을 이름으로도 표현하기 위해서 김썽정이라 쓰는 거예요. 이름만 보면 중국인 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하지만 실제는 한국인이죠. 또 김썽정이라면 엉뚱해 보이고 재밌지 않나요. 그 느낌이 그림과 매치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설명을 돕기 위해 그는 작업 중인 그림을 들고 나왔다. 마무리 단계에 있는 작품에는 한 쪽 눈은 해바라기이고 다른 쪽 눈은 달이다. 특이한 모양의 몸통을 타고 아래로 내려오면 오른발에는 군화를, 왼발에는 하이힐을 신고 있다.

이런 식으로 이중적이면서, 한편으로는 중성적인 이미지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미지 콘셉트를 잡으면 바로 캔버스에 밑작업을 한다. 그런 다음 다양한 색의 점을 찍는다. 색은 5가지를 기본으로 다양한 색을 만들어 사용한다.

그는 한 가지 색에 치우치는 게 싫다고 했다. 마지막 단계는 작품의 사진 촬영이다. 사진 촬영이 끝나면 작품은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난다고 생각한다. 전시장에 걸리면 그때부터는 보는 사람들의 몫. 그래야 다른 작업에 몰두할 수 있다.

“제가 그림으로 전달하고 싶은 건 편안함과 밝음, 행복 같은 것들이에요. 누구나 세상살이는 힘들잖아요. 그림을 통해 그런 이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싶어요. 작가로 최고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과 편하게 어울리면서 열심히 작업하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그는 좋은 얘기든, 나쁜 얘기든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면, 라면만 먹고도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밝고 경쾌한 그림에 비해 바람은 너무나 소박했다.

글 신규섭·사진 이승재 기자 wa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