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익 한국창의투자 리서치&마케팅 관리부문 대표

김영익 한국창의투자 리서치&마케팅 관리부문 대표는 대신경제연구소 대표, 하나대투증권 부사장 등을 지낸 국내 최고의 애널리스트 중 하나다. 한국창의투자는 그가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리서치본부장을 지낸 서재형 대표와 함께 설립한 투자자문사로 설립 한 달 만에 1조4000억 원을 모아 증권가의 화제를 모았다. ‘농부형 인간’, ‘공부벌레 증권맨’ 등 다양한 수식어를 가진 그를 고수기행의 첫 만찬에 초대했다.
[Dinner with Master] ‘족집게 애널리스트’의 이유 있는 독립
한국창의투자는 설립 초부터 우수한 인재들을 많이 확보해서 증권가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증권사를 떠나 창업을 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증권사에 22년 몸담았다 투자자문사로 독립을 한 거죠. 저는 앞으로 2~3년이 한국 증권사에 다시 오기 힘든 좋은 시장이 될 거라고 봅니다. 그런 시장에서 애널리스트보다는 자문회사를 해보고 싶었거든요.”

서재형 대표께서 같이 하자고 제안을 하신 건가요.

“서 대표가 먼저 준비를 하고, 뒤에 저한테 제안을 한 거죠. 서 대표와는 오래전부터 가깝게 지내 사석에선 저를 ‘형님’이라고 부릅니다. 공통점도 많습니다. 둘 다 시골 출신에 전 농고를 다녔고, 서 대표는 상고를 나왔거든요. 무엇보다 장기투자에 대한 철학이 같습니다.”

의기투합을 하시면서 다짐하신 것도 있을 듯한데요.

“개인이 주식으로 돈을 못 버는 이유는 단기투자를 하기 때문입니다. 매일 종목을 고르다 끝나는 게 개인 투자자들이거든요. 그걸 장기투자로 바꿔보자는 게 저희 생각입니다. 투자자문사로 돈을 많이 벌면 기부를 많이 하자는 데 뜻을 모았죠. 함께 하기로 합의한 날 그랬어요. 둘 중에 누가 먼저 죽으면 상대방 묘지에 가서 고마웠노라고 술 한 잔 따라주자고요. 제가 10년 정도 위니까 먼저 죽겠지만요.(웃음)”

[Dinner with Master] ‘족집게 애널리스트’의 이유 있는 독립
농고를 졸업하셔서 ‘농부형 인간’이란 별명이 생긴 건가요.

“집이 무척이나 가난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중학교는 진학을 못했어요. 그 후 검정고시로 농업고등학교에 들어갔지만 1년 6개월 정도 다니다 그만뒀습니다.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실습이 많았거든요.

농고에 다니면서 많은 경험을 했어요. 박에 수박을 접붙여 보기도 하고 돼지 거세도 해보고요.(웃음) 주식투자는 농사와 비슷한 점이 있어요. 농사처럼 열매 맺을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하거든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다리질 못해요.

돈 많은 사람들은 기다릴 줄 알기 때문에 큰 위기에서도 금방 회복할 수 있는 거죠. 2007년 펀드에 가입한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분들이 주가가 떨어지니까 너도나도 환매를 했어요. 2010년에만 28조 원이 펀드에서 빠져나갔습니다. 그걸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인 은행이나 우체국 정기예금에 넣은 거죠. 주식시장에 그대로 있었다면 돈을 좀 벌었을 텐데 말이죠.”

돈 많이 벌어서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했는데, 김영익 대표께서 어렵게 공부를 하셔서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하신 듯합니다.

“독립을 결심하고 김승유 하나금융그룹 회장님께 인사를 드리러 가서 그렇게 말했어요.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하나고등학교에 장학금 많이 내놓겠다’고.(웃음) 돈을 많이 벌면 장학금을 내놓고 더 많이 벌면 학교를 세울 생각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프로로 산다는 것>하고 <반드시 돈이 되는 저평가주를 짚어주마>라는 책 두 권을 썼는데, 그 인세를 모두 기부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두 권 다 1만 권 이상은 나가서 출판사에 폐는 안 끼쳤습니다. 다만 <반드시 돈이 되는 저평가주를 짚어주마>는 지금도 책 제목 보면 민망해요. 출판사에서 지은 거거든요.”

제가 출판사 편집자라도 그런 제목을 썼을 것 같습니다. 그럼 ‘2011년 반드시 돈이 되는 저평가주’ 몇 개를 찍어주시죠.

“지수는 맞힐 때도 있고, 못 맞힐 때도 있습니다. 2010년에는 못 오를 줄 알았는데 유동성 덕에 많이 올랐어요. 올해 코스피지수는 2400까지 갈 것으로 예상합니다. 좋은 유동성에 경기도 좋거든요. 탄력을 받으면 더 큰 상승도 기대해볼 수 있어요. 따라서 그 이상으로 올라갈 경우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겠죠. 1분기가 경기의 저점일 수 있어요.”

자료를 보니까 종목은 정보기술(IT)주와 금융주를 추천하셨던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IT라고 다 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2011년은 업종보다는 종목으로 접근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종목은 삼성전자나 삼성SDI, KB금융, 현대중공업, 신한금융, OCI, LG화학 등이 관심 종목입니다.”

직접 투자를 하시는 걸로 압니다. 성공 사례, 한두 가지만 이야기해 주십시오.

“투자자문사를 설립하면서 2년 이상 보유한 현대모비스 주식을 팔았습니다. 6만 원대에 사서 2년 이상 보유했는데, 17만 원대에 처분했습니다. 지금 현대모비스 주식이 30만 원대 하죠.”

아쉽지 않으세요. 갖고 있었다면 5배는 이익을 볼 수 있었을 텐데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현대모비스보다 저희 회사 가치가 더 많이 올랐거든요. 설립 한 달 만에 1조4000억 원이 모였으니까요.”

설립 초에 이런 말씀드리기가 뭣 합니다만, 언제쯤 엑시트를 생각하십니까.

“설립 초에 모든 투자자가 5년간 주식을 팔지 않기로 서류상 약속을 했어요. 우리 회사는 지분구조가 좀 독특합니다. 서 대표가 35%, 직원이 35%, 5대 금융지주가 30%거든요. 그만큼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가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지분이 한 사람에게 편중되면 독단을 피하기 어렵고, 너무 분산되면 의사결정이 느릴 수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지배구조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봅니다.”

5대 금융지주사가 투자한 곳은 한국창의투자가 유일하다고 들었습니다.

“저희를 믿어주셔서 고마운 거죠. 저도 2003~2007년까지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뽑혔고, 서 대표는 미래에셋에서 6년 동안 매년 1조 원 이상을 운용하며 20% 이상 수익을 냈거든요. 국내와 아시아에서 10조 원 가까운 자금을 운용해본 사람입니다.

그런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가 모였다니까 많은 증권사에서 지분 참여를 제안했어요. 하지만 우리의 설립 취지를 살리기 위해 자금은 5대 금융지주사로 한정을 지었습니다.”

투자자들의 기대가 큰 만큼 두렵기도 할 거 같은데요.

“사실 그렇기도 합니다. 시장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투자자들에게 실망을 줄 수 있으니까요. 다행스러운 것은 많은 고객들이 장기성장형에 투자를 해주셨다는 거죠. 개인투자자들에게는 3년 이상 투자를 유도하고 있는데 대부분 수긍을 하세요. 저희를 찾는 대부분의 고객이 장기투자의 장점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들이니까요.”

직접 투자를 할 때도 장기로 하시죠. 실제 투자 사례를 더 듣고 싶은데요.

“대신증권에 있던 2004년에 퇴직금을 중간정산 받았어요. 그 돈을 현대미포조선에 투자했죠. 그때 제가 대표적인 낙관론자였거든요. 그랬더니 ‘퇴직금으로 주식하는 놈이 어디 있느냐’는 분위기였어요.

당시에 제가 리서치센터장을 맡고 있었는데 애널리스트들한테 종목을 추천해보라고 했더니 아무도 추천을 못하는 거예요. 그때 한 명이 ‘현대미포조선’을 추천하더라고요.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4만 원대에 샀다가 20만 원대에 팔았던 것 같습니다.

그 종목은 어쩔 수 없이 오래 가지고 있어서 기억에 남는 종목이기도 합니다. 리서치센터에 있으면 우리가 보고서를 내는 종목은 매매를 못해요. 주가가 올라서 팔려고 하면 담당 애널리스트가 리포트를 내고, 또 내고 해서 2006년 말에야 팔 수 있었습니다.”

대신증권에 근무할 때는 사주의 총애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돌아가신 양회문 회장님이 절 좀 아끼셨어요. 2005년에 영국 옥스퍼드대 최고경영자과정을 보내주기도 하셨죠. 6주 과정이었는데 하루 수업료가 100만 원 꼴인 아주 비싼 과정이었습니다. 수업도 수업이지만 매일 저녁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와인과 음식을 주더군요.”

고(故) 양 회장님 이후에 취임한 이어룡 회장님도 아끼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제가 쉰 살이 넘어서 골프를 시작한 게 이 회장님 덕입니다. 양 회장님이 돌아가시고 이 회장님이 절 찾으시더니 선대 회장님이 쓰시던 골프채를 주시는 거예요. 선대 회장님이 쓰시던 유품이니 보전해야 한다고 했더니, 골프채 사라고 금일봉을 주셨어요.”

그렇게 총애를 받았는데, 왜 나오셨어요.

“주변에서 견제하는 세력도 있었고, 이런저런 이유로 그만뒀죠. 때마침 당시 하나대투증권 대표이던 현 김정태 하나은행장께서 저를 부르셨어요.”

어떤 제안을 받고 옮길 생각을 하셨습니까.

“리서치센터에 100억 원을 주시면서 잘 키워보라고,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셨죠. 당시 리서치센터 직원이 72명이었는데 그해 말 전원 일본 여행을 보내주실 정도였습니다. 그땐 회사 출근하는 게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김 사장님이 자리를 옮기시면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어요. 직장생활 하며 여러 가지 일을 겪지만, 김 사장님을 모셨던 건 행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적이시던가요.

“회사를 그만두는 마지막까지 멋진 분이셨어요. 마지막 날 손수 와인과 잔을 가져와서 여의도공원을 바라보며 ‘정말 고마웠다’며 건배를 하셨어요. 와인 잔을 부딪치고는 ‘에밀레 종소리 같지 않냐’며 들어보라고 하셨어요. 그리고는 비서들을 데리고 노래방에 가셔서 노래 한 곡을 부르고 떠나셨죠. 얼마나 근사합니까.”

김 대표의 증권 인생을 보면 항상 잘나갔던 것 같습니다. 비결이 어디에 있다고 보세요.

“사실 전 내일 무엇이 될 거라는 생각이 없습니다. 헬렌 켈러의 책에 ‘오늘 최선을 다하면 더 나은 내일이 기다린다’란 문구가 있습니다. 그 문구처럼 최선을 다하며 살았습니다. 하늘에 있는 구름 한 조각, 냇가에 조약돌 하나도 다 자기 역할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능력을 주셨고, 그 능력을 다하는 게 프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Dinner with Master] ‘족집게 애널리스트’의 이유 있는 독립
표정을 봐도 즐겁게 일을 하시는 분 같습니다. 내일이 기다려지시겠어요.

“그렇게 보이나요.(웃음) ‘고인물’이라고 공부하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제 닉네임이 ‘내일’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떤 좋은 일, 어떤 좋은 분을 또 만날까 기다려지거든요.”

증권사에서만 22년을 계셨으니까 실패한 적도 있었을 텐데요.

“하나대투증권에서 근무하던 2007년에 회사에서 제 이름으로 상품을 만든 적이 있습니다. 원래 이름은 ‘리서치 랩’이었는데, TV나 신문에는 ‘김영익 랩’으로 광고를 한 거죠. 그전까지 주가를 잘 맞췄으니까요. 2개월 만에 2300억 원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아시겠지만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주가가 급락했잖아요. 그때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증권사에 계시는 분들 얘기 들으면 따라다니며 항의하는 분들도 있다고 하던데요.

“그럼요. ‘너 믿고 맡겼는데 이게 뭐냐’고 항의하는 분들이 있었죠. 그중에 85억 원을 투자하셨다 20억 원 손해를 보신 분이 계세요. 저한테 손해를 배상하라는데, 참 난감했죠. 그때 ‘돈은 바닷물과 같아서 마실수록 목이 탄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이 떠오르더군요.”

그게 애널리스트로서는 적절하지 않은 말 같은데요.

“ ‘돈이 모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돈이 많은 것은 좋다’라는 버나드 쇼의 말이 더 적절하겠네요.(웃음) 나이가 들수록 돈이 좋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가끔 두렵기도 합니다. 주가란 언제 떨어질지 모르니까요.

그래서 가까운 분들이 돈을 맡기겠다고 하면 오히려 안 받습니다. 미래는 불확실한 거니까요. 오늘 인터뷰 전에도 가까운 분이 10억을 맡기셨어요. 안 받겠다고 했더니 ‘돈 벌고 안 벌고는 내 운이니까 최선만 다해 달라’고 하셔서 어쩔 수없이 받았습니다.”

책을 많이 읽으시나 봐요. 헬렌 켈러에 쇼펜하우어, 버나드 쇼까지.

“원래 소설가가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대학도 영문학과를 가려고 했는데 매형이 거기 나오면 밥 굶는다고 해서 경제학과를 가게 된 거고요. 몇 년 전까지도 꿈을 버리지 못하고 신춘문예에 응시를 했습니다.”

소설로요.

“아니, 시로요. 시를 쓴 계기가 있습니다. 제가 29세에 늦게 군대를 갔습니다. 창원 39사단에서 근무했는데 사단에서 향토수호탑을 세우면서 사병들한테 시를 써서 내라는 겁니다. 그때 제 시가 뽑혀서 향토수호탑에 새겨졌어요.

일주일 휴가도 받고요. 그전까지는 시 쓰는 게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그러고 나니까 시도 별 거 아니다 싶더라고요.(웃음) 그 뒤로 보초 서면서 시를 썼습니다. 그걸로 시집을 내기도 했고요.”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할 시간인 듯합니다. 오랫동안 주식시장에 있으면서 깨달은 점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주식시장은 통계도 중요하지만 통찰이 필요한 곳입니다. 대신증권에 있던 2000년에 고 양재봉 회장님이 전망을 묻기에 오를 거란 예상에 사야 한다고 그랬죠. 그랬더니 회장님이 ‘그건 자네 통계고, 내 경험은 떨어질 거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뒤로 진짜 주가가 떨어졌어요. 그걸 보고 경험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죠.”

마지막으로 주식투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말 쉽습니다. 좋은 주식 사서, 최소한 3년 이상 갖고 있으면 됩니다. 여기서 좋은 주식이란 현재의 숫자가 아니라 미래가 좋은 주식, 달리 말해 꿈이 있는 주식을 말합니다. 주식투자도 상상력과 창의력이 필요하거든요. 저희가 사명에 ‘창의’라는 말을 넣은 이유도 이 때문이고요. 그러면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 직원보다 삼성전자 주식을 4만 원대에 산 투자자들이 더 많은 돈을 벌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Dinner with Master] ‘족집게 애널리스트’의 이유 있는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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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신규섭·사진 김기남 기자 wa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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