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박물관에서 금관을 비롯한 황금 예술을 감상할 수 있듯이 파리 루브르박물관, 런던 대영박물관 등의 유산들 가운데서도 유달리 황금 유물은 빛을 발한다. 금은 언제나 그 시대 최고 권력자의 왕관이나 왕좌, 장신구들을 만드는 소재가 됐다.

왕실에서 즐겨 사용하는 물건들의 상당수가 금으로 제작됐고, 죽을 때는 부장품으로 매장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대 최고의 장인들이 금으로 된 많은 장식품을 만들었다. 금은 언제든 녹여서 다른 디자인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원형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프랑수아 1세는 로열 컬렉션을 지정해 후대가 함부로 변형하거나 전매하지 못하도록 조례를 제정했다. 이후 유럽의 왕가들은 로열 컬렉션을 보존하게 된다. 이로써 황금의 예술적 가치가 살아 있게 됐다.

신화로부터 시작된 황금의 전설
1. 프랑스 앙리 2세와 카트린느 메디치의 딸로서 스페인 펠리페 2세의 왕비인 이사벨 엘리자베스. 금장식 진주로 성숙미를 강조했다.
1. 프랑스 앙리 2세와 카트린느 메디치의 딸로서 스페인 펠리페 2세의 왕비인 이사벨 엘리자베스. 금장식 진주로 성숙미를 강조했다.
그리스 황금양모(Golden Fleece)의 전설은 사금 채취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한다. 옛날에는 사금 채취를 위해 양가죽을 개울 바닥에 깔아놓았다가 털 속에 박힌 사금 조각들을 털어냈다고 한다.

여기서 유래한 ‘황금양모 기사단’은 최고위 귀족을 상징한다. 황금은 그리스뿐 아니라 중앙아시아에서 지중해, 아시아와 남미 인더스 산맥의 나라들까지 널리 사용됐다.

고대 인류는 태양이 지상으로 떠오르기 전 땅에 스며들어 황금이 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특별한 권력자만이 황금을 소유할 수 있었으며 황금은 곧 태양의 조각이자 신이었다.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에 황금을 둘러싼 많은 신화가 탄생하기도 했다.

고대 이집트 파라오들의 관을 비롯해 모든 장신구들이 금으로 만들어진 것은 이러한 의미가 내포된 것일 수 있다. 금의 불변성 또한 금의 가치를 상승시켰다. 세월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영원불멸의 빛을 발하는 황금은 인간의 소유욕을 자극했다.

금의 어원은 서정적이며 예술적이다. 원소기호 AU는 ‘빛나는 새벽’이라는 뜻의 라틴어 아우로라(aurora)에서 나왔다. aurum은 빛나는 돌, 금이라는 뜻이다.
2. 20세기 가시나무 형태의 황금과 다이아몬드의 펜던트
2. 20세기 가시나무 형태의 황금과 다이아몬드의 펜던트
에오스(Eo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새벽의 여신으로, 로마 신화의 아우로라에 해당한다.

가끔은 아침 이슬을 만드는 여신의 속성을 말해주기 위해 양손에 주전자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라틴 작품들에서 아우로라라는 말은 베르길리우스 등에 의해 동쪽을 나타내는 데에도 쓰였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서정시인 핀다로스(Pindaros)는 “금은 제우스의 자식이다. 나방도 녹도 그것을 집어삼키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은 이 최고의 소유물에게 먹혀버린다”고 금을 묘사했다. 이 문장 하나에 역사를 통해 인간이 금과 맺은 관계가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닛과 에나멜로 만든 고대 그리스 헬레니즘 시대의 아름다운 금 장신구는 헤라클레스의 매듭이다.
4. 미케네의 마스크 중 가장 아름다운 아가멤논의 마스크다. 기원전 16세기에 살았던 미케네 왕의 것으로 세밀하게 교차되는 선이 인상적이다.
4. 미케네의 마스크 중 가장 아름다운 아가멤논의 마스크다. 기원전 16세기에 살았던 미케네 왕의 것으로 세밀하게 교차되는 선이 인상적이다.
금 밴드를 꼬아 만든 다이어뎀은 기원전 3세기 작품으로 중앙을 장식한 게 눈길을 끈다. 헤라클레스 매듭은 그리스 시대에 가장 널리 채택되던 모티브로 다이어뎀, 목걸이, 팔찌, 반지 등에서 정중앙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헤라클레스가 아니면 끊을 수 없을 만큼 튼튼해 보인다.

이러한 매듭은 일찍이 이집트에서 시작됐고 그리스를 거쳐 로마 시대에도 유행했다고 한다. 그리스의 스파르타에서는 처녀들의 은밀한 부분을 ‘헤라클레스의 매듭’이라 불리는 모직 띠로 두르고 묶었다가 신혼 첫날밤에 신랑이 풀도록 했다고 전해진다.

정조대와 비슷한 것으로 여자들이 순결을 지키게 하기 위한 장치였던 셈이다. 이와 비슷하게 로마에서는 스톨라라는 옷에 신랑만이 풀 수 있는 헤라클레스 매듭이 달린 모직 허리띠를 맸다고 한다.
[김재규의 앤티크 살롱] Art Of Gold… 황금 예술(黃金 藝術)
하인리히 슐리만의 트로이 발굴

산스크리트어로 하리(Hari)는 태양과 금을 뜻한다. 마타하리는 여명의 눈동자다. 태양신이자 지상의 대리인이었던 왕들은 태양처럼 빛났다. 전투에 임할 때 황금 검을 차고 의식용 황금 갑옷을 입었다. 4000년 전 우르의 묘에서는 우아한 가발 형태의 황금 헬멧이 발견되기도 했다.
[김재규의 앤티크 살롱] Art Of Gold… 황금 예술(黃金 藝術)
신화를 믿고 그 신화의 현장을 찾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하인리히 슐리만이 ‘일리야드’의 트로이를 찾아내 발굴을 시도하자 세계의 시선이 주목했다. 호머가 찬양했던 도시 미케네에는 풍성한 황금 보물들이 묻혀있었다.

아름다운 그의 부인은 그 보물들을 직접 장식하고 사진을 찍었다. 전설의 여인, 트로이의 헬렌(Helen of Troy)이 된 것이다. 잎새형 금장식 수천 개를 단 정교한 다이어뎀 두 점은 그중에도 특별히 인상적이다.

섬세한 체인에 작은 잎새형 금장식은 이마에서는 술처럼 늘어지고 양어깨에서는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게끔 구성됐다. 이와 함께 목걸이, 가슴 장식, 팔찌, 귀고리, 작은 반지들은 무려 8000개가 넘게 출토됐다.


에트루리안 그래뉼레이션
[김재규의 앤티크 살롱] Art Of Gold… 황금 예술(黃金 藝術)
보석 세공에서 작은 금 알갱이를 기하학적 무늬 또는 줄무늬로 표면에 붙이거나 장식 부분을 빈틈없이 가득 메우는 기법을 그래뉼레이션(Granulation)이라 한다.

기원전 3000년경에 서아시아와 이집트에서 시작해 고대 그리스인들까지도 이 기법을 사용했는데, 특히 미케네 시대 직후의 그리스인들은 놀라울 만큼 정교한 솜씨로 호화롭게 꾸민 작품을 만들었다.

5세기에 이르러 그리스에서는 그래뉼레이션 대신 필리그리(filigree: 가느다란 선을 넣어 세공하는 것) 기법을 많이 쓰게 됐다. 그래뉼레이션 기법은 기원전 7~6년경 에트루리아에서 절정에 이르렀던 것 같다.

금 알갱이를 정교하게 붙이고 돋을새김한 장식 귀고리, 스핑크스나 사자 모양으로 세공한 어깨걸쇠(망토를 어깨에 고정시키는 장식), 목걸이 등이 에트루리아의 무덤에서 출토됐는데 이것은 그래뉼레이션 기법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 기법은 로마의 정복으로 동양, 특히 인도와 페르시아에 널리 알려졌다.
1. 17세기 스페인 제품으로 골드와 에메랄드의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룬 펜던트2. 1861년 랭스에서 나폴레옹 3세가 대관식에 사용했던 성배로 필리그리와 그래뉼레이션 기법으로 제작됐다.3. 고대 로마의 황금 월계관4.기원전 15세기 미노아 문명의 예술을 보여주는 정교한 자연주의 스타일로 크레타 장인이 만들었다.
1. 17세기 스페인 제품으로 골드와 에메랄드의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룬 펜던트2. 1861년 랭스에서 나폴레옹 3세가 대관식에 사용했던 성배로 필리그리와 그래뉼레이션 기법으로 제작됐다.3. 고대 로마의 황금 월계관4.기원전 15세기 미노아 문명의 예술을 보여주는 정교한 자연주의 스타일로 크레타 장인이 만들었다.
골드스미스

어떤 재료가 예술로 승화되려면 예술가의 안목과 손길이 필요하다. 예술가는 단지 숙달된 손 재주꾼이 아니다. 창조적 안목의 결정체가 아닐까 한다.

골드스미스(Goldsmith·금 세공인)들은 특별한 수호성인이 있다. 성 엘리지오(Sant’ Eligio)는 프랑스 왕조에서 일을 한 많은 성인 중 탁월한 골드스미스 출신이었다. 그는 640년에 서품돼 느와이옹의 주교가 됐다가 투르의 주교로도 활약하고 안티워프 지역에서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다. 금속 세공인, 금 세공인의 수호성인이다.

유럽은 전통적으로 길드(guild)가 있고 거기서 종사하는 조합 형태를 유지한다. 그 가운데서도 금을 다루는 예술가 집단인 골드스미스들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중세를 가로질러 실버스미스와 함께 골드스미스의 역할은 금의 예술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김재규 _ 헤리티지 소사이어티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 아카데미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기행>, <유럽도자기> 저자. 영국 엡버시 스쿨, 옥스퍼드 튜토리얼 서비스 칼리지 오브 런던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