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SPI Issue

개인 투자자들이 지난해까지 ELW 시장에서 입은 손실이 1조 원을 넘어섰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최근 ‘ELW 시장 건전화 대책’을 내놓았다.

주식워런트증권(ELW)은 국내 파생상품 시장의‘히트 상품’이다. 2005년 말 도입 이후 거래대금으로 일평균 2조 원 수준으로 급성장, 세계 1위인 홍콩 ELW 시장을 바짝 쫓고 있다. 국내외 증권사가 개최하는 ELW 투자설명회에는 개미들의 참여 열기가 뜨겁다.

투자자들은 계약당 1000원 안팎의 소액으로 높은 레버리지를 노릴 수 있는 데다 거래가 편리하다는 점을 ELW의 매력으로 꼽는다. 하지만 그게 ‘양날의 칼’이기도 했다. 너도 나도 대박 꿈을 꾸며 ELW 투자를 시작했다가 큰 손실을 보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증권사와 초단타 매매자(스캘퍼·일명 슈퍼메뚜기)가 펼치는 수익률 게임에서 개인들은 번번이 소외되는 불균형이 지적됐다. ELW 시장 구조상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금융당국도 제도 개선에 나서면서 ELW는 하반기 시장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스캘퍼와 LP들 사이 개인들만 새우등 터져

ELW는‘Equity-Linked Warrant’를 줄인 단어다. 주가지수 또는 특정 종목을 미리 정한 조건에 따라 미래에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증서다. 살 수 있는 권리는 ‘콜워런트’, 팔 수 있는 권리는 ‘풋워런트’라고 한다. 즉 옵션과 비슷하지만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돼 거래된다는 점이 다르다.
2005년 말 도입된 ELW 시장은 5년 만에 하루 평균 거래대금이 2조 원에 육박할 만큼 급성장했다.
2005년 말 도입된 ELW 시장은 5년 만에 하루 평균 거래대금이 2조 원에 육박할 만큼 급성장했다.
따라서 주식거래 계좌만 갖고 편리하게 ELW를 거래할 수 있다. 주식을 직접 살 때보다 현금 지출이 적고, 지수나 주식의 예상 방향을 맞췄을 때 더 높은 수익을 얻는 게 매력이다. 증권사들이 유동성 공급자(LP)로 나서서 호가를 이어주기 때문에 유동성도 높다. 물론 레버리지가 높은 만큼 투자원금 전액을 잃는 위험이 따른다.

주식투자와 달리 배당이나 이자소득이 없고 거래 손익만 존재한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그럼에도 개인들은 고수익과 편리함이라는 ELW의 매력을 우선시했고, ELW는 주식투자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증권사들도 경쟁적으로 발행사와 LP로 진출, 상장 종목은 지난 10월 8000개를 넘어섰다.
잘나가던 ELW 시장에 과열 우려가 제기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상품 위험도에 비해 진입장벽이 너무 낮아 투기장으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대박을 노린 개인들이 골탕만 먹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지난 8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ELW 시장의 과열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고 보고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는 ELW 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의 누적 손실 규모가 작년까지 1조 원을 넘어섰다는 집계가 발표돼 투자자들을 술렁이게 했다. 국내 정무위원회 소속 조문환 의원(한나라당)에 따르면 지난해 ELW 시장에서 개인들은 4143억 원의 손실을 냈다.

개인 손실 규모는 2006년 1476억 원에서 2007년 369억 원으로 줄었다가 2008년 3881억 원으로 급증, 4년간 누적 손실은 9869억 원에 이르렀다. 수십 명에 불과한 큰손, 즉 스캘퍼들은 지난해 1043억 원의 이익을 냈다. LP를 맡은 증권사들도 같은 기간 1789억 원 이익을 본 것으로 드러나 성적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LP의 호가 독점 등 시장 구조에 논란

이런 불균형이 ELW 시장에서 왜 발생한 것일까. 개미투자자들이 쓴맛을 보는 일은 주식시장에서도 비일비재하다. 기관이나 외국인의 자본력과 정보력에서 밀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상품 구조가 더 복잡한 ELW 시장에서 개미들이 손실을 쌓는 것은 당연한 현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ELW 시장의 근본 구조가 문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충분히 대비한 개인들도 지금의 거래 구조에서는 물먹기 쉽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ELW의 호가 제도가 대표적이다. LP를 맡은 증권사는 투자자의 거래 편의를 위해 주기적으로 매도나 매수 주문을 내 환금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처음 ELW가 상장되면 LP가 모든 물량을 보유하고 있다가 투자자들에게 판다.

한 상품에 대해 여러 매도자가 가격 경쟁을 하는 일반적인 시장원리와 다르다. 하나의 LP가 매도 호가를 내기 때문에 사는 입장에서는 불리함을 무릅쓰게 된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이 지난 3월부터 3개월간 거래량 상위인 ELW 13개 종목을 분 단위로 세분화해 동일한 조건의 옵션과 비교한 결과 옵션보다 평균 24% 비싼 것으로 분석됐다. 물론 ELW 가격에는 발행과 헤지(위험 회피) 비용이 포함되기 때문에 옵션보다는 비싼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가격 책정이 증권사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에 고평가 논란이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 증권사 파생담당 연구원은 “LP가 호가를 독점하는 현 구조에서는 가격에 대한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며 “한 상품에 여러 LP가 호가를 제시하는 방안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시장을 교란하는 스캘퍼의 존재도 골치거리다. 이성남 의원(민주당)에 따르면 지난 8월 하루 평균 100억 원 이상 거래한 ELW 계좌 수는 76개(0.16%)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거래대금은 전체의 76.8%를 차지했다.

이들 고액투자자들은 LP의 호가 제시 원리를 꿰고 초고속 시스템 트레이딩을 이용해 큰 이익을 가져간다. 이들은 전산과 투자 전문가, 자금담당 등 팀 단위로 움직이며 거액의 자금을 한꺼번에 이동,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주기도 한다. 잘 모르는 개인들이 왜곡된 시장 정보만 믿고 뛰어들었다가 골탕 먹기 쉽다.

초보 투자자는 공부하고 들어와야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최근 ‘ELW 시장 건전화 대책’을 내놓았다. 초점은 투자자 진입 절차를 강화하는 데 맞췄다. 내년 2월부터 신규 투자자는 ‘ELW 거래신청서’를 별도로 쓰고 금융투자협회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ELW 투자 교육을 의무적으로 들어야 한다.

기존 ELW 투자자 중에서도 투자 성향이 ELW 투자에 적정하지 않다고 분류된 투자자들은 교육을 이수해야 거래가 가능하다. ELW 의무 교육은 기본 개념 위주로 1~2시간 진행될 예정이다.
ELW 시장에서는 일반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입는 반면 스캘퍼와 증권사들은 큰 이익을 내고 있다.
ELW 시장에서는 일반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입는 반면 스캘퍼와 증권사들은 큰 이익을 내고 있다.
개인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불공정거래 대책도 마련했다. LP들의 개별 주식 ELW 호가 제출 의무기간을 기존 ‘만기 1개월 전’에서 ‘최종 5거래일 전’으로 늘렸다. LP의 호가 의무가 없는 만기 1개월 미만의 저가 ELW에 대해 시세조종이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스캘퍼에 대한 불공정거래 감시도 강화될 예정이다. 증권사들이 거액투자자인 스캘퍼들을 유치하기 위해 전산 시스템을 빌려주는 등 우대 경쟁을 벌인다는 소문이 많았다. 당국은 이 같은 불공정 영업방식이 적발될 경우 엄중하게 조치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초보 투자자의 진입을 막기 위해 별도 전용계좌를 개설하도록 의무화하거나, 기본 예탁금을 도입하는 등 ‘강수’도 논의됐지만 최종안에서는 빠졌다.‘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업계의 반발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 ELW 투자자들도 ‘고수익 고위험’ 특성을 이해한 후 신중한 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지은 맥쿼리증권 상무는 “여유자금의 일부를 ELW에 투자해 기존 주식투자의 수익률을 보완하는 데 의의를 두는 것이 좋다”며 “ELW를 잘 활용해 주식시장의 위험을 회피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라고 조언했다.

윤혜경 도이치증권 이사는 “어떤 시장이든 전략 없이 막연하게 들어가면 손실 가능성이 높다”며 “ELW는 기초자산의 방향성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투자하는 게 승산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김유미 한국경제신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