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K네트웍스가 내놓은 와인이 홍콩 소더비 와인 경매에서 단일 거래로는 최대 규모로 낙찰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체 투자처로 와인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그러나 SK네트웍스의 이번 거래를 바라보는 외국의 시각은 국내와 조금 다른 듯하다.

지난 10월 29일, 홍콩 소더비 와인 경매에서는 ‘1869년산 샤토 라피트 로트칠드(Chateau Lafitte-Roth schild)’ 한 병이 23만 달러(약 2억6000만 원)에 낙찰돼, 종전 1787년 샤토 라피트(16만 달러)가 가지고 있던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소더비 측에 따르면 이번에 출품된 1869년산 샤토 라피트 로트칠드 세 병은 전화로 입찰한 아시아계 인사에게 모두 돌아갔다. 경매장 주변에서는 샤토 라피트 로트칠드를 유달리 좋아하는 중국인이 입찰했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이날 경매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끈 것은 국내 와인수입사 SK네트웍스였다. SK네트웍스는 이날 보르도 와인 630케이스(약 7500병)를 내놓았는데, 경매 시작 1시간 30분 만에 모두 팔렸다. 낙찰가는 7900만 홍콩달러(약 110억 원)로 단일 거래로는 홍콩 소더비 출범 이후 최대 규모였다.
[Wine Story] 고급 와인에서 출처가 갖는 의미
경매 사상 단일 거래 최대 규모 판매 기록 세운 SK네트웍스

경매 직후 SK네트웍스는 ‘글로벌 와인사업 강자 급부상’이라는 보도 자료를 냈다. 보도 자료에는 ‘크리스티 이어 소더비 와인 경매에서도 최고 판매가 신기록 수립’,‘글로벌 와인 시장 내 인지도 급상승, 와인사업 고속성장 기반 마련’ 등의 부제가 붙었다.

SK네트웍스가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주관한 와인 경매에서 잇따라 최고 판매가를 경신한 것은 사실이다. SK네크웍스는 지난 9월 18일 크리스티 와인 경매에서 72억 원(620만 달러)의 판매가를 올리며 크리스티 홍콩 와인 경매 신기록을 수립했고, 이번 소더비 와인 경매에서도 630케이스를 내놓아 1시간 30분 만에 전량을 1000만 달러에 팔아치웠다. 이는 소더비 홍콩 와인 경매 사상 최고 판매가 신기록이다.

SK네트웍스 측은 이처럼 와인 컬렉션이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로‘품질과 마케팅의 차별화’를 들었다. 동일한 라벨과 빈티지를 가진 와인이라 할지라도 보관 이력에 따라 품질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며, 경매에 나오는 대부분의 와인이 오랜 운송기간과 복잡한 보관 이력 탓에 품질이 상대적으로 낮은 미국 보관 와인임에 착안해 출시 이후 프랑스, 영국 현지에서만 보관해 오던 와인을 바로 가져와 출품함으로써 품질을 차별화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기존 와인 경매의 경우 사전 마케팅이 미흡한 점을 간파하고 과거 와인 경매에 참여했던 고객 등 출품 와인에 대해 실질적인 구매가 가능한 프레스티지 고객들을 대상으로 상하이, 서울, 싱가포르, 홍콩을 순회하며 철저한 사전 마케팅을 실시했던 점이 주효했다고 평했다.
[Wine Story] 고급 와인에서 출처가 갖는 의미
외국 온라인 매체의 다른 시각

국내의 많은 언론들이 SK네트웍스의 보도 자료에 기반한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나 외국 언론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와인전문 온라인 매체인 디켄터닷컴(decanter.com)

은 10월 30일자에 ‘홍콩에서의 라피트: 출처의 가격(Lafite in Hong Kong: The price of provenance)’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는 와인의 출처가 가격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디켄터닷컴은 이번 홍콩 경매에 출품된 샤토 라피트를 들었다.

SK네트웍스가 샤토 라피트를 내놓기 전, 옥션 첫날에도 개인 소장의 샤토 라피트가 출품됐다. 문제는 첫날 나온 같은 빈티지의 샤토 라피트가 SK네트웍스가 내놓은 빈티지보다 19~50% 가까이 비싸게 팔렸다는 점이다.

첫날 나온 2006년 빈티지가 1만7642유로에 낙찰된 반면, SK네트웍스가 내놓은 같은 빈티지는 불과 8821유로에 낙찰됐다. 첫날 1만9602유로에 낙찰된 1995년 빈티지는 다음날에는 1만3721유로에 낙찰됐다.

출처에 따라 이처럼 큰 가격 차이를 보이는 것이 와인이다. 오랫동안 와인 경매를 해온 소더비가 이 같은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와인업계에서는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소더비가 SK네트웍스의 경매일을 둘째 날로 잡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중국인이 샤토 라피트에 열광한다는 사실을 아는 소더비가 첫날 샤토 라피트를 놓친 중국인들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둘째 날 SK네트웍스의 와인을 내놨다는 얘기다.

SK네트웍스는 국내 와인업계를 선도하는 업체다. 어느 기업보다 발 빠르게 와인 펀드를 조성했고, 샤토 라피트의 시장성을 일찍 내다본 점 또한 자랑할 만하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적어도 소유주가 한 번 이상 바뀌었다는 점이다.

고급 와인은 그림이나 골동품처럼 출처가 매우 중요하다. 와인도 위작의 위험, 보관 상태 등이 문제가 된다. 와인 애호가들은 고급 와인을 구매할 때 출처를 살피며, 무조건 가격이 싸다고 좋아하지 않는다.

이번에 나온 샤토 라피트처럼 특급 와인의 유통은 일반 와인과는 매우 다르다. 수입사들이 샤토에서 바로 구매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중개상을 통해 구입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중개상들도 회사에 따라 다른 와인 숍, 또는 개인 고객으로부터 재구입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믿을 만한 중개상들과 거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반인들이 구입한 고급 와인이 다시 시장에 나오게 되는 경우는 보통 3D라고 말하는데, 부채(Debt), 사망(Death), 이혼(Divorce)이 그것이다.

중요한 것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고급 와인을 수집하는 고객들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안다. 개인이든 회사든 투자 목적으로 와인을 구매할 경우 출처(provenance)를 가장 먼저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