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
[김재규의 앤티크 살롱] Age of Pearl
진주의 시대(Age of Pearl)를 상징하는 인물은 진주(眞珠)로 치장한 초상화로 친숙한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다. 다양한 그의 의상들은 모두 진주로 장식한 당대 최고의 패션이었다.

너무나도 진주를 사랑한 그는 3000벌이 넘는 의상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아끼는 컬렉션을 관리하는 시종만 13명이었다고 한다. 진주는 광물인 여타의 보석과 달리 생물적인 특성을 갖고 있어 외부 환경에 민감하다. 이런 섬세한 특성으로 인해 보다 특별한 관리가 필요했고, 이 때문에 많은 관리 시종을 두었던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에는 여왕의 진주 수집을 충당할 만한 천연 진주는 사실상 구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모조 보석의 유행으로 천연 진주를 구하기가 더욱더 어려워졌다.

당시 베네치아는 천연 진주로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있었는데, 모조 진주가 유행하자 이를 단속하기 위해 모조 진주를 만드는 자는 오른손을 자르고 10년간 다른 지방으로 추방할 정도로 혹독한 벌을 내렸다.

엘리자베스 1세는 처녀이면서 격동의 시대를 훌륭하게 헤쳐나간 여왕이었다. 그런 그에게도 무언가 여성적인 취향의 즐길 거리가 필요했다. 그게 바로 진주 컬렉션이었다. 당시에는 남성들도 귀고리를 즐겨 착용했다.

그런 이유로 여왕은 진주가 달린 아름다운 귀고리를 드레이크 제독에게 하사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충복에게 격려의 징표로 자신의 주얼리를 훈장처럼 하사했다. 여성 군주만이 할 수 있는, 취향이 느껴지는 용인술이 아닐까. 이렇게 엘리자베스 시대의 진주는 최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김재규의 앤티크 살롱] Age of Pearl

1. 진주로 장식한 검은 직물의 드레스를 입고 하얀 얼굴 분장이 돋보이는 엘리자베스 1세.
2. 로코코 시대의 절제된 진주 머리장식을 한 나탈리아 키릴로브나 나리시카나 러시아 황후.
3. 매너리즘 시대의 회화로서 진주로 장식한 헤어스타일의 소녀
4. 베르메르의 명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5. 아르마다(armada)의 초상화로 세계를 호령한 여제답게 지구 위를 손 안에 넣고 있다.진주로 장식한 화려한 패션이 인상적이다.
6. 바로크 시대인 메리 2세 여왕의 초상화에서도 진주 장식이 엿보인다.


바로크를 상징하는 명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반구형의 진주를 다이아몬드와 함께 장식한 팔찌로서 빅토리안 시대의 것이다.
반구형의 진주를 다이아몬드와 함께 장식한 팔찌로서 빅토리안 시대의 것이다.
네덜란드 화가를 주인공으로 한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역사 소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는 일상의 아름다움을 사랑한 빛의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삶과 예술 세계를 입체적으로 다룬 책이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영화의 흥행과 함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의 선명하고도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을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소설의 배경이 된 17세기는 네덜란드가 ‘황금의 시대’를 구가하던 시기다. 동인도회사를 내세운 세계 무역의 활성화에 힘입어 예술 또한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그 중심에 미술의 거장 렘브란트, 할스, 그리고 베르메르가 있었다. 이들 중 유독 베르메르는 오랫동안 후세 사람들에게 베일에 싸인 화가로 남아 있었다. 그는 200여 년간 거의 잊혔고, 재발견된 후에도 그의 작품 진위 여부를 둘러싸고 수많은 논쟁이 벌어져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 신비의 화가 베르메르의 몇 안 되는 작품들 가운데서 가장 신비롭고 매력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것이 ‘북구의 모나리자’라는 별칭을 가진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다.

살짝 입을 벌리고 고개를 돌린 채 관객을 응시하는 소녀상은 여러 해석을 가능케 하는 미적 모호성의 극치로서 소녀의 빛나는 두 눈은 순수한 듯하면서도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벌어진 입은 놀란 듯도 하고 무슨 말을 건네려는 듯도 하다. 머리에 두른 천은 이국적이고 갈색 옷은 커다란 진주 귀고리와 어울리지 않게 수수하다.

도대체 이 소녀는 누구인가. 어떻게 그림의 모델이 됐는가. 커다란 두 눈과 보일 듯 말 듯한 미소와 어째서 소녀의 귀에 진주 귀고리가 달려 있는지 의문을 풀어내고자 소설은 시작된다.

진주의 시대는 르네상스 후기부터 바로크를 거쳐 로코코 초기까지를 아우르는 시기다. 주얼리 역사에서 진주의 시대는 다이아몬드 커팅의 역사와 반비례한다. 17세기 브릴리언트 커팅이 발명되자 진주의 가치는 그 최고의 자리를 내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 화가의 시대를 우리는 바로크 시대라고 일컫는다. ‘바로크(Baroque)’라는 말은 당시 최고의 패션이었던 부정형한 진주를 뜻하는 포르투갈어에서 기원했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는 바로 이 시대를 대표하는 유산인 것이다.
1. 진주 장식이 간명하게 보이는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로서 오일패널화다. 2.칸닝 자작의 칸닝 주얼리로 불리는 팬던트다. 바로크 진주가 특징. 3. 메디치 코시모 1세와 혼인한 스페인 귀족가문의 엘레아노라 톨레도. 당시 유행하던 진주장식 의상을 보여준다.
1. 진주 장식이 간명하게 보이는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로서 오일패널화다. 2.칸닝 자작의 칸닝 주얼리로 불리는 팬던트다. 바로크 진주가 특징. 3. 메디치 코시모 1세와 혼인한 스페인 귀족가문의 엘레아노라 톨레도. 당시 유행하던 진주장식 의상을 보여준다.
진주, 그 아름다운 이야기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1486년 캔버스 위에 템페라 기법으로 제작됐다. 그림 왼쪽에는 서풍의 신 제프로스와 그의 연인이 비너스를 해안으로 인도하고, 오른쪽에는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난 비너스에게 계절의 여신 호라이가 겉옷을 바치고 있다.

비너스가 탄생하는 정경은 진주가 조개로부터 현신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비너스의 탄생>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과정의 이해는 유럽에서 일찍이 진주를 표현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진주는 이른 새벽 영롱한 이슬을 머금고 잉태하는 것이라 믿었으며 그것은 곧 이슬의 결정체와 같다는 것이다. 떠오르는 아침 햇빛은 풀잎에 달려있는 이슬방울을 비추고 그 찬란한 이슬방울이 진주인 것이다.

슬플 때는 눈물방울이 되기도 하는 진주의 매혹적인 모양(shape)은 아무리 정교한 장인의 손에서도 탄생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진주만의 영롱한 색상은 더욱 매혹적이었기에 진주는 비너스와 다름없었던 것이다.

진주조개를 진주의 어머니(Mother of Pearl)로 부르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클레오파트라는 진주를 식초에 녹여서 마시곤 자신의 미를 과시할 수 있었으리라.

진주의 어원은 라틴어의 피루나(piruna), 피룰라(pirula)에서 온 것이다. 중국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珍珠’로 표시됐고, 한국에서는 ‘眞珠’로 통용되고 있다. 연체동물에 의해 만들어지는 연체동물의 껍질과 같은 물질로 구성된 결핵체로서 6월의 탄생석이다.

반투명성 광택 및 오리엔트(orient)로 불리는 표면색의 미묘한 변채(變彩)가 특징이며 형태(구형 또는 방울 모양)가 완전할수록, 또 광택이 짙을수록 진주의 가치는 높아진다. 껍질이 조개로 덮여 있는 연체동물(예를 들면 해수 굴과 담수 대합조개의 특별한 종들)에 의해 만들어진 진주만이 실제로 훌륭한 진주다.

다른 연체동물에 의해 만들어진 진주는 적색 또는 백색을 띠며, 자기질(磁器質)이거나 진주 광택이 없다. 보석 상인들은 보통 해수성 진주를 동양진주라고 하며, 담수성 연체동물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담수진주라고 한다.

가장 정교한 동양진주는 해수성 연체동물 핑크타다 마르텐시이(Pinctada martensii) 종의 변종인 모하르(mohar)에 의해 만들어진다. 페르시아 만에서 발견되며 오만 반도로부터 카타르 반도를 잇는 페르시아 만의 큰 만곡부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데 수심 8~20패덤(fathom: 1패덤=약 1.83m)에서 채집된다.

다른 유명한 진주 산지로는 남인도와 스리랑카 사이의 머나 만, 인도네시아의 셀레베스 해역, 남태평양의 여러 섬들이 있다. 또 미국의 캘리포니아 만, 멕시코 만, 멕시코 태평양 연안의 바다는 높은 품질의 백색 진주뿐만 아니라 금속광택을 띠는 어두운 색조의 진주를 생산한다.

북반구의 온대기후 지역에서 산출되는 담수성 홍합은 가치가 높은 진주를 만드는데, 그 좋은 예로 미국 미시시피 강에서 만들어지는 진주를 꼽을 수 있다. 진주 채집은 중부 유럽에서 신중하게 육성되는 산업이며, 특히 바이에른의 삼림 하천은 상등품 진주의 공급지다.

중국에서 담수진주의 채집은 기원전 1000년 이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진주 양식이 널리 보급되면서 진주조개 채취장에서의 생산량은 크게 감소 중이다.

김재규


헤리티지 소사이어티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 아카데미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기행>, <유럽도자기> 저자. 영국 엡버시 스쿨, 옥스퍼드 튜토리얼 서비스 칼리지 오브 런던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