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광고업계의 ‘거인’이자 선두주자인 영국 WPP그룹은 2008년도 이익과 매출이 전년 대비 증가하는 실적을 올렸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곧이어 1000여 명의 사원 해고와 함께 단계적인 감원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는 세계적인 경기 침체의 여파를 방증하는 일이었다.

물론 어려울수록 마케팅 비용을 공격적으로 운영하거나 전년 수준으로 유지하는 기업들도 있지만, 마케팅 비용의 일부 또는 대부분이 광고 커뮤니케이션과 연결됐다는 현실을 생각해볼 때, 경기 침체는 분명 광고회사로서는 어려운 장애물임에 틀림없다.

경기 침체 시기에는 소비자의 기억 속에 뚜렷이 남는 인상적인 광고 캠페인이 많이 등장한다. 불경기 속에서도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려는 의도에서다. 세계적인 광고대행사 TBWA 런던의 기획자 톰 모턴은 불경기에는 브랜드들이 순수하게 가치나 가격에 집중하기보다는, 소비 패턴에 변화를 주거나 소비자들에게 광고를 맞춰야 하므로 크리에이티브적으로는 좋은 환경 요소라고 말하기도 했다.

2008년 전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경기 침체에서 영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때 몇몇 유명한 캠페인이 탄생했는데, 지금도 많은 영국인들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캠페인들을 잠깐 살펴 보자.

‘내가 상상하면 현실이 된다.’ 고객의 잠재 욕망을 일깨우는 버진(Virgin)그룹의 광고 캠페인이다. 버진그룹의 광고 커뮤니케이션은 불경기이건 아니건 고객의 잠재 욕망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브랜드 활동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버진그룹은 1970년에 창립돼 현재 ‘버진’이라는 브랜드를 우산으로 해 음료, 항공, 여행, 게임, 금융, 서비스, 영화, 인터넷, 케이블 TV, 음악, 라디오, 출판, 화장품, 보석, 주방기기, 소매업, 모바일 사업을 독립 계열사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이 중 영국에서 가장 왕성한 광고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두 가지 브랜드가 있는데, 항공 및 여행업을 하는 ‘버진 아틀란틱’과 무선통신업을 하는 ‘버진 모바일’이다.

버진그룹과 싱가포르 에어라인(Singapore Airlines)이 각각 51%, 49%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버진 아틀란틱은 자사의 비행기에 공격적인 마케팅 슬로건을 직접 노출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Still Red Hot’ 캠페인은 2009년 TV 방송을 통해 대대적으로 전개됐는데, 레오나르도 디캐프리오 주연의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명장면 중 하나인 스튜어디스들과의 단체 워킹을 패러디했다.

1984년 처녀비행을 한 이래 25년간 버진 아틀란틱이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차별적인 ‘펀(fun)’을, 재미없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다른 항공사에 빗대어 못생긴 항공사 승무원들이 질시의 눈으로 쳐다보는 장면을 유머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버진 아틀란틱은 데일리메일(Daily Mail)이 2008년 집계한 ‘영국의 최고 인기 브랜드 20’ 가운데 12위로 당당히 이름을 올려 새로움을 갈망하는 영국인들의 성향에 부응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2009년 선보인 버진 모바일의 ‘Fantastic Journey’란 TV 광고의 경우도 제품 속성이나 가격, 프로모션으로 얼룩진 전통적인 불경기 광고들과 달리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 입장에서 제품을 통해 얻게 되는 혜택(end benefit)을 현실과 환상의 절묘한 조합으로 구성했다. 마치 잘 만들어진 몇 편의 영화를 한꺼번에 보는 듯한 착각과 영화 속에 한번쯤 빠져보고 싶은 갈망을 자극하고 있다.

지난해 영국의 애드맵이란 광고 전문 잡지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불경기일수록 소비자들은 허리끈 졸라매기를 시도하는 반면, 동시에 매우 긍정적이고 창의적인 브랜드에 더 호감을 보인다고 한다.

어쩌면 소비자들은 소비 패턴의 변화를 주는 광고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경기 침체 속에서도 소비생활을 지속시키는 것이 불경기를 극복하는 방법일 것이다. 따라서 힘있는 광고 크리에이티브는 불경기 속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지 모른다.


[CEO칼럼] 영국은 생각한다. 그리고 소비한다 We shall have to think!
이오진


광고대행사 굿마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