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쎄라 까르띠에 코리아 지사장

16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적 명품 까르띠에(Cartier)가 한국에 상륙한 지 26년. 1980년대의 까르띠에는 가죽 백으로 대표됐고, 1990년대는 명품 예물시계의 ‘대명사’였다.

애초 에이전트 영업으로 출발했던 브랜드 까르띠에는 국내 명품 시장의 급성장과 함께 ‘까르띠에 코리아’로 성장 발전했고, 올해는 매출 1800억 원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까르띠에 최초의 비(非) 프랑스인이자, 최초의 아시아인, 최초의 여성 지사장으로서 까르띠에 코리아를 이끌고 있는 김쎄라 지사장을 만났다. 그의 저돌적 영업과 경영 노하우는 단아한 외모를 무색하게 했다.
[CEO Interview] “하이 주얼리의 ‘지존’ 그 자부심으로 내년에도 약진”
5개월도 더 된 일로 기억된다. 까르띠에 최초로 남성만을 위한 시계인 ‘칼리버 드 까르띠에(Calibre de Cartier)’의 한국 론칭 파티 참석차 서울 청담동 까르띠에 메종(masion)을 찾았을 때다.

프레스 관계자, 글로벌 기업 지·상사 관계인, 외국 대사관 관계자, 셀러브리티 등 파티를 찾은 수많은 게스트 사이를 누비며(?) 열심히 인사를 나누는 한 여성이 눈에 띄었다.

명품 브랜드라면, 으레 외국인 남성 지사장들이 익숙한 터라 아담한 체구에 다소곳한 외모의 ‘그’가 리치몬트 코리아 그룹(반 클리프 아펠, IWC, 바세론 콘스탄틴 등 10여개의 브랜드 보유)의 일원인 까르띠에 코리아 지사장(Managing Director)이라는 얘기를 듣고 사뭇 놀랬었다.

똑 떨어지는 아웃피트의 투피스 정장 대신 롱스커트에, 한 가닥으로 뒤로 묶어 연출한 헤어스타일이, 당시로서는 지사장이라기보다는 편안한 큰언니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업부장에서 지사장으로 4년 만의 ‘고속 승진’

“다들 부드러워 보인다고 하는데, 사실은 직원들한테 드라이브를 많이 거는 편이에요. 외모는 여성스러운 편이지만 성향은 오히려 남성적인 쪽에 가깝고, 일할 땐 한 마디로 ‘돌진형’입니다. 목표를 향해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죠.

여자 친구들을 만나면 저더러 얘기가 잘 안 통한다고 하더라고요. 실컷 무슨 얘기를 해놓고 ‘넌 잘 모르지?’ 할 때가 많거든요.(웃음) 업무에 있어서 예전엔 수치로 나타나는 결과만을 중요시했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과정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직원들을 위한 동기 부여를 더욱 많이 고민하게 됐죠.”

김쎄라 까르띠에 코리아 지사장과 마주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꼬박 4개월. 국내외 일정이 워낙 빠듯했던 탓이다. 그런데 인터뷰를 위해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 반 남짓. 처음으로 대면한 명품 브랜드의 한국인 여성 지사장과 새털처럼 많은 질문들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걱정이 앞섰으나, 고맙게도 그는 달변이었다.

까르띠에 최초로 비(非) 프랑스인으로서, 최초의 동양인으로서, 최초의 여성으로서 지사장에 발탁된 그는 사실, 트리플로 ‘최초’를 달기 전에도 여러 가지 기록을 세운 바 있다. 부산에서 여고를 졸업한 뒤 미국 뉴욕주립대 부설 패션전문학교인 FIT에서 학사를 마치고 뉴욕 소재 패션기업에서 스포츠웨어 어시스턴트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도나카란’과 ‘DKNY’에서 바이어, 머천다이저(MD)로 활약하다 1999년 귀국, 드레스셔츠를 취급하는 ‘보텍’이라는 회사에서 브랜드 매니저로 ‘랑방’을 국내에 론칭했다. 이후 LVMH그룹에서 펜디 코리아의 영업부장 및 브랜드 매니저로 펜디의 한국 시장 진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까르띠에 코리아로 적을 옮긴 것은 2006년 2월. 입사 당시 그의 직함은 영업부장이었다. 백화점과 면세점 네트워크를 빠르게 발전시키며 영업이사로 승진한 데 이어 지난해 11월 지사장으로 임명됐다.

4여 년 전 910억 원대였던 까르띠에 코리아의 매출은 연평균 120%의 성장률을 유지, 올해는 1800억 원을 무난히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초’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만한, 저돌적인 영업력을 눈치챌 수 있는 대목이다.
[CEO Interview] “하이 주얼리의 ‘지존’ 그 자부심으로 내년에도 약진”
“지사장 면접이라고 해서 별 다른 것은 없었고 그저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자연스러운 대화를 했던 것 같아요. 저로 결정됐다는 통보를 받았을 땐 그저 ‘멍’했다가 이내 날아갈 듯이 기뻤죠.(웃음) 펜디 이후 이곳으로 오기 전까지의 시간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펜디 론칭은 아이 한 명을 출산하는 것과 같았거든요. 그만큼 열정을 쏟아 붓기도 했지만 힘도 들었어요. 펜디 이후에 명품 시장에 대해 스스로 Q&A를 하면서 사실은 일반 소비재 분야에 관심이 갔어요.

까르띠에에서 연락이 왔을 땐 갈등이 있긴 했지만 패션이라는 분야에서 변화를 추구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 새로운 분야에서 제가 얼마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까르띠에 코리아의 수장(首長)으로 결정된 뒤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은 조직 구조의 정비와 직원들을 위한 동기 부여, 다시 말해 과감한 인센티브 시스템의 도입이었다. 적절한 동기 부여가 직원들의 성장을 이끌어내면, 그것이 곧 회사의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란 청사진이 있었기 때문. 한 가지를 더 꼽자면 명품 브랜드 기업에 맞는 ‘명품급’ 직원 교육에 공을 들였다는 점이다.

“하이 주얼리 마케팅 강화로 2011년 2000억 원 목표”

“5캐럿, 10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판매하는 세일즈 스태프는 그만큼의 ‘내공’이 필요합니다. 세일즈맨의 자질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한마디로 고객만족의 기술이에요.

세일즈 스태프는 100만 원짜리 반지에서 10억 원짜리 하이 주얼리까지 어떤 제품이든 고객이 제품 구매를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을 진심으로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최고가 상품을 핸들링하는 사람에게 인내심은 필수예요.

협상 능력과 함께 고객과의 기(氣) 싸움에도 지지 않아야 하고요.(웃음) 고객에게 휘둘리지 않으면서 우아하게 협상을 성사시키려면 포커페이스도 필요합니다. 한마디로 내공이 요구되는 일이죠.

다른 브랜드에서 옮겨온 세일즈 스태프들은 ‘까르띠에 스타일’을 익히는 데 1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하지만, 한 번 저희 스태프가 되고 나면 그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업계에서는 ‘까르띠에에 가서 배워오라’고 할 정도로 정평이 나 있으니까요.(웃음)”
김 대표는 내년 마케팅의 초점을 ‘하이 주얼리로서의 브랜드 이미지 강화’로 꼽았다.
김 대표는 내년 마케팅의 초점을 ‘하이 주얼리로서의 브랜드 이미지 강화’로 꼽았다.
현재 10개의 직영 부티크와 9개의 면세 부티크에 근무 중인 150여 명의 세일즈 스태프에 대한 김 지사장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보석의 왕’이라 불리는 까르띠에 제품을 판매하는 사람들의 자질 역시 그에 준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는 지사장 부임 후 인센티브도 파격적으로 제시했다고 전했다.

그는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 시장의 명품 바잉 수준은 아시아 그 어느 국가보다 세련된 것으로 평가받았고, 2000년 이후로는 이탈리아 밀라노, 프랑스 파리에 버금갈 수준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앞서가는 시장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일부 패션 브랜드에서 경험하고 있듯, 명품 브랜드 그 자체가 캐시카우의 역할을 하는 시기는 지났다는 것. 그는 라이프스타일에 접근하는 마케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까르띠에는 사실 태생이 보석 브랜드입니다. 한국에서는 가죽 잡화 제품들이 맨 처음 선보였던 덕에 ‘까르띠에 하면 백’으로 인식되다가 차차 시계로 옮겨가면서 ‘예물 시계하면 까르띠에’로 통했죠. 하지만 내년부터는 하이 주얼리 브랜드로서의 이미지 구축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유럽에서는 지금도 귀족·상류사회에서 까르띠에는 하이 주얼리 메이커로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우리나라 상류층 고객들도 이젠 충분히 하이 주얼리를 향유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봐요. 중요한 건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점인데, 그 ‘환경’이 조성되는 시작점을 공략할 예정입니다.”

그는 향후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내년도 매출액 2000억 원 돌파”라고 말했다. 일 말고 개인적인 목표는 없느냐는 ‘딴지’ 섞인 질문에 오랜 시간 고민한 듯한 대답을 이었다.

“지사장 자리를 꼭 한국 사람에게 물려주고 싶어요. 그렇다고 까르띠에 코리아를 한국 회사로 만들겠다는 뜻은 아니고, 본사에서 과감한 결정을 했던 만큼 후회하지 않도록 ‘전통’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개인적인 목표라면 다른 사람들보다 한 10년은 젊게 살아야 한다는 거예요. 딸아이가 이제 겨우 22개월 배기거든요.(웃음)”

빠듯한 일정 탓에 마구 달렸던 인터뷰에 마침표를 찍자 그는 언제 시간이 나면 맛있는 커피 마시러 메종(테크니션이 상주한 AS센터, 오피스가 한데 어우러진 부티크)에 꼭 한 번 들러 달라며 따뜻한 악수를 건넸다.

2008년 남산만한 배의 임신부로 내·외관 인테리어 디자인을 진두지휘하며 건립한 아시아 최초의 까르띠에 메종에서 또 어떤 ‘최초’라는 꼬리표가 달린 기록을 만들어 갈지, 실례가 안 된다면 메종에 자주 들러 확인해 볼 참이다.


김쎄라

까르띠에 코리아 지사장
미국 뉴욕주립대 FIT BFA
패트릭 A(PATRICK A. INC) 디자이너
도나카란 & DKNY 바이어 & 머천다이저
보텍(Beautec) 브랜드 매니저
LVMH그룹 영업부장 & 브랜드 매니저

글 장헌주 기자 chj@hankyung.com·사진 제공 까르띠에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