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spect of Gold Price_금값 전망

파죽지세다. 떨어질 듯 떨어질듯 하던 금값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다. 큰 폭의 조정이 닥칠 것이란 전망을 무색케 하는 이른바 ‘황금 랠리’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온다.

올 초만 해도 온스당 1100달러 안팎에 그쳤던 금값은 10월 중순 심리적 고점으로 여겨져 온 1380달러를 돌파한 데 이어 1500달러를 넘볼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일부는 2000달러 선도 무난히 깰 것이란 ‘대세 상승론’까지 내놓는다. 하지만 산이 깊으면 골도 깊다는 게 대다수 투자자들의 경험칙이다. ‘진작에 사뒀어야 했다’는 후회만큼이나 ‘상투를 잡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게 요즘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추가 상승’과 ‘거품 붕괴’ 등의 목소리가 뒤엉켜 나온다. 금, 과연 어디까지 오를까.
[Golden Era of Gold] 전문가들 온스당 1450~2000달러까지 예상
‘금의 재발견’

금값은 올 들어서만 20%를 훌쩍 넘기는 급등세를 연출했다. 10년 전에 비해서는 5배나 오른 가격이다. 상승 폭이 너무 크다는 분석이 나올 만한 시점이다. 하지만 비관론은 긍정론에 묻히는 분위기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경험한 투자자들은 학습효과를 얻었다. 언제든 폭락할 수 있는 주식, 채권, 파생금리 상품 등 이른바 ‘종이 자산(paper assets)’에 대한 불신감이 안전자산인 ‘하드 애셋(hard assets)’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기폭제가 됐다.

금은 대다수의 나라에서 현지 화폐로 당장 바꿔 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체 통화다. 그런 점에서 ‘절대 통화’ 역할을 한다는 주장도 있다. 금은 더구나 사치재라는 귀금속 성격 외에도 반도체 제조 등에 쓰이는 필수 산업용 소재다. ‘묻어두면 언젠가는 쓸 수 있는’ 실물 자산의 성격을 띤다는 얘기다.

돈의 흐름이 금으로 쏠리는 배경이다. 여기에 불을 붙인 것이 미국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경기 침체를 타개하기 위해선 수출을 늘려야만 정치적으로 생존할 수 있다고 본다. 수출에는 달러가치가 낮을수록 유리하다.

이를 위해 택한 것이 달러를 찍어내 유동성을 늘리는 이른바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조치다. 최근 달러가치가 하락하고 금리까지 떨어진 배경이다. 대체투자 상품으로서 금의 매력이 커지는 셈이다.

데니스 가트만 미국 투자자문 전문가는 “불확실성이 커지자 이를 헤지하기 위해 금을 선택하는 수요가 늘고 있다”며 “금은 이제 달러와 유로에 이은 세 번째 기축통화가 돼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을 모두 헤지할 ‘양수겸장’ 수단으로 금의 가치는 한층 더 커졌다는 지적도 많다.

어느 방향으로든 결국 자금흐름은 안전자산으로 수렴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금의 재발견’인 셈이다. 세계적인 상품 투자가 짐 로저스는 “세계 경제가 좋아져도, 나빠져도 상품 시장에서는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성적인 공급 부족
[Golden Era of Gold] 전문가들 온스당 1450~2000달러까지 예상
금값은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수요-공급 간 대결의 결과다. 지난 10년간의 금값 상승은 수요는 늘었지만, 공급은 쫓아가지 못하는 불균형적 수급 구조와 맞닿아 있다. 미국 귀금속 시장조사 업체인 CPM그룹에 따르면 지난 2000∼2009년 금 생산량은 18% 감소했다.

금 공급이 줄어든 배경은 복합적이다. 우선 시간이 갈수록 채굴 비용이 커진다. 그동안 노천광산 등 손쉽게 파먹을 곳은 대부분 채굴작업이 완료된 상태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나마 남은 곳은 접근이 어려운 오지나 정정이 불안한 제3국가의 미개발 지역이다. 자연스럽게 탐사 비용과 채굴, 정련, 운반비 등의 증가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금 원가에 직결되는 요소들이다. 광부 33명이 매몰됐다 69일 만에 전원 구조된 칠레 산호세의 광산 붕괴 사고는 그런 점에서 상징성을 띤다. 칠레는 미국 맨해튼 크기의 노천 광산이 있을 만큼 천혜의 자원부국이다. 하지만 이제는 수직으로 700m를 뚫고 들어가 원광석을 캐낼 만큼 지표면 자원은 고갈돼가는 상황이다.

위험도 증가에 따른 인건비 상승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난 2년간 금융위기의 여파로 자금난에 처한 금광개발회사들은 10년 이상 걸리는 장기 금광개발 프로젝트에 쉽사리 뛰어들지 못하는 상태다.

반면 자금을 융통해주는 은행 등 금융회사들은 ‘자본 회수’ 기간이 수십 년 걸리는 금광개발회사에 대한 대출을 꺼리는 게 일반적이다. 자칫 예상 못한 금값 하락으로 채산성이 떨어지면 광산 폐쇄는 물론, 투자된 막대한 자금이 묶인다.

금 생산량이 쉽게 늘어나지 못하는 구조적 배경이다.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금값 상승 폭이 커지면 채산성도 개선되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 러시아 등 주요 금 생산 국가들은 최근 금값이 크게 오르자 그간 폐쇄됐던 금광을 다시 가동하는 등 생산량을 크게 늘리고 있다. 업계에선 이들의 생산량 증가로 오는 2014년까지 매년 금 산출량이 4~6%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추가 상승 vs 거품 경계 공방
[Golden Era of Gold] 전문가들 온스당 1450~2000달러까지 예상
금값은 10년간 쉼 없이 올랐다. 올해의 상승세는 특히 가파르다. 어떤 식으로든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베이럼 딘서 LGT 애널리스트는 “1400달러 근처에서는 차익 실현 매물로 인해 조정 빈도가 잦고 변동 폭도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조정장의 임박을 경고하는 쪽은 특히 시장 과열 여부를 가늠하는 지표 중 하나인 상대강도지수(RSI)를 근거로 든다.

애덤 시민스키 도이체방크 애널리스트는 “지난 2주간 RSI가 70을 나타냈다”며 “조정 국면을 준비하라는 신호”라고 말했다. RSI는 상품 가격이나 주가, 환율 등이 일정한 기간(보통 14일) 내리거나 오른 변동 폭 중에서 상승 폭이 차지한 비율을 말한다.

통상 70 이상이면 과매수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본다. 하지만 조정을 거친다 해도 추가 상승에 무게를 두는 전문가들이 더 많은 편이다. 시민스키 역시 장기적으로는 상승세에 방점을 찍는다.

그는 “금값은 단기 조정을 거친 후 장기 상승 국면에 들어설 것”이라며 “향후 몇 주 내에 나타날 조정은 그동안 금 투자를 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내년 초에는 관망세가 유리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연초 첫 달은 지난 12년간 9번이나 달러 강세를 나타냈던 경험이 있다”며 “이때 금값이 추가로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금값 장기 전망치도 잇따라 상향 조정되는 분위기다. 마켓와치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금값이 향후 12개월 이내에 온스당 1650달러로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또 이탈리아 최대 은행인 유니크레디트의 요헨 히츠펠드 귀금속 애널리스트도 내년 금값을 1500달러로 올려 잡았다. 씨티그룹 역시 중·단기 금값 전망치를 1450달러로 수정했다.

일부에선 인플레이션을 감안해 계산한 사상 최고가(2250달러·1980년 2월)도 넘어설 수 있다는 ‘대세 상승론’까지 흘러나온다. 상품 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는 이런 대세 상승론의 수장 격이다.

그는 “금은 물가 등을 고려할 때 아직 저평가 된 상태”라며 “2000달러까지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처럼 거품 붕괴 시점이 다가온다는 비관론을 주장하는 쪽도 없지 않다.

래리 영 커버넌트트레이딩 대표는 “개미투자자들이 추격 매수할 때를 노리는 트레이더들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경기 불확실성과 마땅한 투자처를 못 찾은 뭉칫돈 때문에 금값이 상승한 만큼, 불확실성이 걷히면 얼마든지 급락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미국의 저명한 금 투자가인 그레이엄 버치는 “택시 운전사들이 금값을 이야기하고, TV에서 금 관련 상품 투자 광고를 시작할 때가 팔아야 할 시점”이라고 경고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