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독일, 베트남의 공통적인 특징은 뭘까. 지금 젊은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겠지만 냉전이 한창이던 1960~70년대에는 누구나 그 답을 알았다. 세 나라의 공통점은 국토가 양단된 분단국가라는 점이다. 하지만 그것도 옛말, 1975년 베트남이 통일을 이루었고 1989년에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독일도 분단국가의 라벨을 떼어냈다. 이제 전 세계의 유일한 분단국가는 한국 하나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정부에는 전 세계 어느 정부에서도 볼 수 없는 부서가 있다. 그것은 바로 통일부다. 1969년 3월 1일 3·1운동 50주년에 맞춰 발족한 국토통일원이 1998년 통일부로 승격됐으니, 냉전시대에 생겨난 부서가 냉전이 끝난 이후 오히려 강화된 희한한 경우다.

그 점은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우리보다 더 앞선 1961년에 우리의 통일부에 해당하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설치했다(초대 위원장은 소설 <임꺽정>의 저자인 홍명희였다).

분단국가인 만큼 통일을 주요 업무로 삼는 정부 기구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싶겠지만, 사실 긴 호흡의 역사로 보면 통일부는 해괴하기 짝이 없다. 역사 전체를 통틀어 국가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분할과 분열, 통합과 통일을 무상이 반복한 유동적인 실체였기 때문이다.
일러스트·추덕영
일러스트·추덕영
10년쯤 전에 초등학교 3학년이던 내 아이가 학교에서 얄궂은 숙제를 가져온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가 통일을 이루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초등학생이 답할 수준의 문제가 아니니 부모의 견해를 물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단 학교 숙제라는 중압감에 나는 어떤 부모라도 말해줄 수 있는 지극히 상식적인 답을 아이에게 받아 적게 했다.

첫째, 우리 민족은 한 핏줄이다. 둘째, 언어와 문화, 풍습이 같다. 셋째, 오랫동안 단일한 국가를 이루어 살아왔다. 대충 이런 식의 답을 말해준 것 같다. 하지만 아이의 숙제를 마치자 나는 깊은 회의에 사로잡혔다. 내가 말한 요소들이 과연 통일의 필연성을 말해주는 걸까.

세계 역사를 보면 같은 민족이 여러 나라를 이루거나, 여러 민족이 한 나라를 이루는 경우가 다반사다. 언어와 문화가 같고 오랫동안 동질적인 역사를 가져온 민족이나 국가도 시대에 따라 여럿으로 나뉘는가 하면, 반대로 여러 언어, 이질적인 문화를 가진 다민족이 시대에 따라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기도 한다.

15세기에 에스파냐는 여러 왕국이 합쳐져 탄생했고, 20세기 말에 유고슬라비아는 한 나라였다가 여러 나라로 쪼개졌다. 앞으로도 세계 역사에서 그런 일은 비일비재할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나라의 수는 꾸준히 늘었다.

따지고 보면 통일이란 순전히 정치적인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즉, 통일은 두 국가가 정치적으로 합친다는 의미일 뿐이다. 경제, 문화, 생활은 본래 정치적 국경과 무관하게 소통되므로 통일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정치적 국경이 넘을 수 없는 장벽처럼 기능하면서 모든 것을 차단하는 특수한 경우가 바로 한반도다. 문제는 이 특수한 상황을 일반적인 것처럼 여기는 우리 사회의 태도다.

한 지역에서 아주 오래 살아온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이 지나친 탓인지 우리는 세계가 무척 다양하다는 사실을 잊고 우리 밖의 세계도 막연하게 우리와 비슷하겠거니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 작가는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어릴 때 나는 스위스를 무척 좋아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내게도 스위스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달력 때문이었다. 달력에 나오는 스위스의 풍경, 그림 같은 산등성이마다 신록이 우거진 푸른 여름, 산타클로스가 맨 먼저 들를 듯한 새하얀 겨울, 그리고 마치 자연의 일부인 듯, 연극의 소품인 듯 보이는 아름다운 집들.

이런 모습을 보고 스위스에 반하지 않을 사람이 있으랴. 그러나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난 이내 스위스가 싫어졌다. 이유는 단 하나, 스위스에는 바다가 없다. 호수는 꽤 있어도 스위스에는 아무 데도 해변이 없다. 답답하기 그지없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 새삼 감사의 마음을 느끼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작가의 애국심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가 스위스를 싫어하게 된 이유는 터무니없다. 물론 스위스에는 해변이 없다. 그렇다고 스위스 사람들이 답답해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해변이 없는 충청북도 사람들이 답답해하지 않는 것과 같다.

스위스의 청소년들은 중학생 시절의 그 작가처럼 마음껏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그들은 자전거만 타고서도 유럽의 거의 모든 해변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비자나 여권 따위는 필요도 없다. 정작 답답한 나라는 스위스가 아니라 육로로는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우리나라다.

이처럼 국경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태도에서 왜곡된 통일의 관념이 나온다. 이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남북 이산가족의 사고방식이다. 오랜만에 남북 이산가족들이 서로 만나 눈물을 흘린다.

그 감격스런 만남의 장에서 남북의 노인들이 나눈 대화는 우리 국민들이 통일에 관해 얼마나 큰 환상과 그릇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노부부는 이런 대화를 나눈다. “우리 또 언제 만나지?” “빨리 통일이 돼야죠.” “그래, 통일이 될 때까지 살아 있어야 해.”

얼핏 보면 아주 자연스러운 대화다. 그러나 이 짧은 대화에는 커다란 오해가 숨어 있다. 통일이 돼야만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정치적 구분에 불과한 분단이 사람들의 본능적이고 근본적인 소통과 교류를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을 국민이 이미 용인하는 것이다. ‘정치적’ 통일을 이루어야만 가족이 만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상식처럼 여기는 나라가 세상에 또 있을까.

국가를 유기체처럼 여기고 개인 위에 군림하는 것으로 받드는 생각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견해다. 우리 역사에서는 늘 정치, 즉 나라의 경영이 모든 것보다 우선했고 일찍부터 관이 민을 지배하는 체제가 자리 잡았다(박정희 집권 당시에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이라는 국민교육헌장의 논리가 먹힌 것은 그 때문이다). 공화국 전통 60년이 넘은 지금도 우리는 아직 그런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국가의 녹을 먹으며 국가의 부림을 받는 일을 가장 명예롭게 여긴다(조선시대의 과거 급제는 오늘날 ‘고시 패스’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조선시대 상민들에게 사또가 부름이 가장 두려운 일이었듯이 지금도 경찰을 보면 왠지 가슴이 뜨끔해진다(그래서 청와대를 사칭하거나 경찰관복을 입고 저지르는 범죄가 늘 통한다).

우리 역사의 특수성에서 벗어나 일반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국가의 구분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국가라는 정치적 구분이 민간의 소통과 교류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경우는 없다.

그렇다면 답이 나온다. 남한과 북한은 서로 통일을 지향할 게 아니라 비적대적인 관계를 해소하고 소통과 교류를 지향해야 한다. 위정자만이 아니라 국민에게도 그런 인식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남한의 통일부와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해체돼야 한다. 그리고 휴전선을 ‘국경선’으로 만들어야 한다. 남한과 북한은 ‘통일해야 할 분단국가’가 아니라 ‘두 개의 다른 국가’로 병립해야 한다.

휴전선을 국경선으로 만든다면 하나의 민족이 두 개의 국가를 이룬다는 이야기다. 얼핏 거부감이 들지 모른다. 반통일론이라고 매도하고 싶은 기분도 들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휴전선은 형식적으로는 국경선에 비해 분단을 고착화시킨다는 느낌을 주지만, 실은 국경선보다 통일을 저해하고 있다. 휴전선은 적대적이고 국경선은 비적대적이기 때문이다. 어느 것이 소통과 교류에 더 도움이 되는지는 명백하다.

‘우리 민족은 개국 이래 수천 년 동안 하나의 나라를 이루어 살다가 1948년부터 이념이 다른 두 개의 나라로 갈라졌다.’ 후대의 역사 교과서에 기록될 이런 문구는 전혀 수치스러워할 일이 아니다. 정작 수치스러운 대목은 ‘그 뒤 수십 년간 남북한 양측은 서로 반목과 적대로 일관하면서 교류와 왕래조차 하지 않았다’는 구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