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로‘점토 위에 덧붙인 점토’ 라는 의미의 파트 쉬르 파트는 다양한 앤티크 제품 중 단연 돋보이는 도자기다. 파트 쉬르 파트를 중심으로 앤티크 자기의 아름다움에 취해 본다.
[김재규의 앤티크 살롱] 도예(陶藝) 테크닉의 정점, 파트 쉬르 파트
불후의 아티스트 마르크 루이 솔롱
[김재규의 앤티크 살롱] 도예(陶藝) 테크닉의 정점, 파트 쉬르 파트
영국 런던의 V&A(Victoria and Albert Museum)는 가구, 도자기, 유리, 주얼리 등 세계 최대의 크래프트 컬렉션을 갖춘 위대한 뮤지엄이다.

V&A에는 위대한 파트 쉬르 파트(pate-sur-pate) 작품도 많은데, 주로 민턴 뮤지엄(Minton Museum)에서 옮겨온 것들이다. 이 중에는 ‘M. L. S.’라는 이니셜이 새겨진 작품이 있는데, 이는 솔롱이라는 아티스트의 작품이다.

지난해 여름 국내의 컬렉터로부터 의뢰를 받아 19세기 후반 영국의 콜포트(Caolport)에서 제작한, 살굿빛의 길트(gilt) 테두리가 장식된 아름다운 파트 쉬르 파트 플레이트(plate)를 경매에서 낙찰받았다.

사진이나 전시공간에서만 접하다 막상 진품을 마주하게 되자 그 우아한 기품에 매료돼 한동안 넋을 놓고 봤던 기억이 난다.

파트 쉬르 파트는 다양한 시대, 폭넓은 미술품들이 존재하고 거래되는 이 시대에도 단연 돋보이는 도자기다. 도자기가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의 정점에 있는 파트 쉬르 파트 기법은 ‘마르크 루이 솔롱(Marc Louis Solon)’이라는 프랑스 아티스트의 노력의 산물이자 그의 능력을 보여주는 혁신적인 결과물이다.

그래서일까. 파트 쉬르 파트를 이야기할 때는 그의 이름이 꼭 등장한다. 1835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솔롱은 아버지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면서 성장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예술적 재능이 탁월해서 일찌감치 프랑스 국립 자기공장 세브르 요의 감독직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솔롱이 활동을 본격화할 즈음 통일 독일의 주역인 비스마르크에 의해 1870년 보불전쟁(Franco-Prussian War)이 터진다. 이에 그는 전쟁의 화염을 피해 영국 도요지의 중심인 스토크 온 트렌트(Stoke-on-Trent)로 가서 민턴(Miton)에 적을 둔다.

민턴은 1878년 아트디렉터 레옹 아르누(Leon Arnoux)와 조각가를 비롯한 프랑스 아티스트를 고용한 바 있어서 솔롱이 접근하기가 쉬웠다. 프랑스 혁명기를 거치면서 많은 장인들과 디자이너들이 다른 나라로 뿔뿔이 흩어졌는데, 그들이 터를 잡은 곳 중 하나가 민턴이다. 이를 통해 영국은 자연스럽게 파트 쉬르 파트의 중심으로 부상하게 된다.
그리스 고전의 소재인 여신과 큐피트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디테일이 뛰어난 작품으로 초콜릿 브라운색을 바탕으로 함으로써 부드러운 느낌을 전해준다. 민턴 소장으로 솔롱의 사인이 있다.
그리스 고전의 소재인 여신과 큐피트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디테일이 뛰어난 작품으로 초콜릿 브라운색을 바탕으로 함으로써 부드러운 느낌을 전해준다. 민턴 소장으로 솔롱의 사인이 있다.
역사적으로 솔롱은 도자기의 변혁기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19세기에는 지난 시대의 양식을 재현하는 것이 유행했는데, 이 때문에 절충의 시대(Eclectic Period)로 불린다. 창조적인 작업보다는 이미 존재한 것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찾아낸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절충의 시대 아티스트들은 과거의 예술 사조를 모방하기도 했지만, 이를 통해 시대간 융합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파트 쉬르 파트 기법은 19세기 초 처음 중국에서 개발해 유럽에 전파됐다. 세브르 요는 파트 쉬르 파트 기법의 미학적인 우수성과 새로움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 기법은 또한 꾸준한 사랑을 받은 네오클래식의 열풍과도 잘 맞았다.

이 시대는 웨지우드의 드라마틱한 재스퍼 웨어(Jasper Ware)가 인기를 얻고 있었고, 카메오 글라스도 빅토리안 시대의 리바이벌과 함께 열광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파트 쉬르 파트(pate-sur-pate)란 프랑스어로 ‘점토 위에 덧붙인 점토’라는 의미로서 불에 굽지 않고 유약도 바르지 않은 몸체에 부조(浮彫) 디자인을 나타내는 자기 장식 기법이다. 백색의 이장(泥漿: 점토액)을 겹겹이 입힘으로써 돋을새김의 느낌을 표현하고 있으나 백색을 소재로 사용하기에 환상적인 순수미를 발산시켜 준다.

영어로는 페이스트 온 페이스트(paste on paste)라고 하지만 프랑스에서 맨 처음 사용했기에 그 용어는 프랑스어인 파트 쉬르 파트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국제적인 관례다.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 있는 루크우드 공장에서도 이 기법을 사용했다. 드물기는 하지만 경매에서 아주 가끔 솔롱의 작품이 등장하면 컬렉터들은 열광한다.
신화를 그려 넣은 로열블루와 길트의 꽃병. 민턴 소장
신화를 그려 넣은 로열블루와 길트의 꽃병. 민턴 소장
꽃과 황금빛 장식의 꽃병. 민턴 소장
꽃과 황금빛 장식의 꽃병. 민턴 소장
1871년 민턴 솔롱의 장식용 꽃병으로서 고전을 상징하는 여신과 케르빔 천사의 이미지를 백색의 파트 쉬르 파트로 그렸다.
1871년 민턴 솔롱의 장식용 꽃병으로서 고전을 상징하는 여신과 케르빔 천사의 이미지를 백색의 파트 쉬르 파트로 그렸다.
시누아즈리
연어빛 바탕에 백색 파트 쉬르 파트 나무줄기와 푸른 꽃잎 등이 연결돼 있으며 전체 구도를 유지하도록 구성된 우아한 꽃병이다. 민턴 소장
연어빛 바탕에 백색 파트 쉬르 파트 나무줄기와 푸른 꽃잎 등이 연결돼 있으며 전체 구도를 유지하도록 구성된 우아한 꽃병이다. 민턴 소장
시누아즈리(Chinoiserie)도 도자기 컬렉터들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아왔다. 시누아즈리는 고대부터 이어져온 오랜 트렌드다. 이미 로마에서는 개선문을 통과하는 군인들이 중국 실크를 입었으며 귀족들은 토가를 실크로 입었기에 많은 돈이 중국으로 흘러갔다.

이를 비판한 키케로는 결국 로마는 실크 때문에 망하고 말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천 년도 넘은 세월이 흐른 17세기 바로크 시대, 유러피언의 호기심은 전 세계로 확산된다.

바로 이즈음 아시아의 다양한 문화와 예술이 폭발적으로 그들을 매료시키게 되는데, 그 가운데서도 식탁을 풍요롭게 하는 도자기는 차(茶) 문화와 함께 말할 수 없는 기쁨을 공유하는 계기가 된다.

당연하지만 아시아인들이 도자기를 바라보는 시각은 정체돼 있는 반면 유러피언들에게는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다양하게 해석하면서 제조업으로서가 아니라 예술의 한 부분으로 치열한 도전의 장이 된 것이다.

뼈를 섞어서 본차이나를 만들거나 장식성 높은 조각 작품으로서 혹은 그림을 대신하는 벽장식으로서도 그 가치가 주목받게 된다. 경쟁적으로 바로크가 뿜어내는 정열의 시대를 경험하면서 로코코의 관능적인 요소에 질려버린 예술가들은 새로운 것에 갈증하게 된 것이다.

마이센으로부터 출발한 유럽의 도자기 산업은 영국으로 넘어 왔고, 프랑스는 혁명의 기운으로 혼란스러웠기에 영국의 역할은 더 주목받게 된다.
일본 도자기 느낌의 디자인으로 전체를 짙은 바탕에 파트 쉬르 파트로서 한 쌍의 새를 숲속에 그려 넣었다.
일본 도자기 느낌의 디자인으로 전체를 짙은 바탕에 파트 쉬르 파트로서 한 쌍의 새를 숲속에 그려 넣었다.
유럽 스타일의 흰색 위 흰색 기법

이탈리아에서는 비앙코 소프라 비앙코(Bianco Sopra Bianco), 즉 백색 위 백색이라는 도예 기법이 크게 유행했다. 이는 르네상스 시기인 16세기 주석 유약을 입힌 도기 위에 쓰인 장식 기법으로 나타났다. 따뜻한 느낌의 유백색 주석 유약 위에 불투명하고 차가운 느낌을 주는 흰색으로 무늬를 넣는 기법이다.
3. 그린 라피스 라즐리 바탕에 백색으로 케르빔의 형상을 그려 넣은 필그림 플래스크. 민턴 소장 4. 영국 콜포트의 플레이트로 금빛과 살굿빛 장식으로 이루어졌다. 5. 1877년 영국 우스터의 장식용 꽃병으로서 터키남색, 올리브그린 바탕색에 고전적 장식들이 어우러진다.
3. 그린 라피스 라즐리 바탕에 백색으로 케르빔의 형상을 그려 넣은 필그림 플래스크. 민턴 소장 4. 영국 콜포트의 플레이트로 금빛과 살굿빛 장식으로 이루어졌다. 5. 1877년 영국 우스터의 장식용 꽃병으로서 터키남색, 올리브그린 바탕색에 고전적 장식들이 어우러진다.
뢰르스트란드에 있는 스웨덴 요에서 1745년경 이를 재현했는데 이탈리아와는 조금 다르게 이 기법이 회색 바탕 위에 쓰였다. 그로부터 수년 후 네덜란드 델프트, 램버스, 브리스틀에서 이 기법을 모방해, 비앙코 소프라 비앙코에서 인기가 있었던 잎 달린 가지와 꽃의 가장자리 장식을 활용했다.

프랑스에서도 이 기법은 청백색 바탕에 흰색 꽃무늬 장식으로 알려진 느베르와 생타망레조에서 사용됐으며 슈트랄준트와 헤레뵈를 포함한 북유럽 공장에서도 자주 사용되기 시작함으로써 유럽 전역에서 백색 위에 백색을 장식하는 트렌드가 형성됐다.
[김재규의 앤티크 살롱] 도예(陶藝) 테크닉의 정점, 파트 쉬르 파트
이러한 문화적인 배경으로 로만 글라스(Roman Glass)에서 유래한 카메오 글라스가 웨지우드 재스퍼 웨어를 일약 유럽 최고의 도자기회사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모든 전통적인 것을 능가하는 우아한 파트 쉬르 파트 기법은 솔롱의 안목에서 비롯됐다.


김재규


헤리티지 소사이어티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 아카데미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기행>, <유럽도자기> 저자.
영국 엡버시 스쿨, 옥스퍼드 튜토리얼 서비스 칼리지 오브 런던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