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기획사 ‘매지스텔라’ 문미호 대표

[Interview] 200만 마일리지를 쌓으며 따낸 ‘쾌거’
2005년 5월 영국 런던 빅토리아 팰리스 극장(Victoria Palace Theatre)에서의 초연 후 2000여 회의 공연에 누적 관객 420만 명을 동원한 ‘메가 히트급’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가 한국 관객을 찾는다. 이번 내한공연은 세계에서 네 번째, 아시아에서는 최초라 한국 관객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다.

영국 외에서의 공연 중 호주와 미국 공연은 ‘빌리 엘리어트’의 제작사인 영국의 ‘워킹 타이틀’이 직접 제작했던 터라 라이선스에 의한 해외 공연은 사실상 이번이 최초인 셈.

전 세계 다른 기획사들의 수많은 ‘러브콜’을 따돌리고 메가급 히트 뮤지컬의 한국 공연 판권을 따낸 문미호 매지스텔라 대표를 만났다. 점심시간을 갓 넘긴 오후 2시, 그의 사무실에는 햇살이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Interview] 200만 마일리지를 쌓으며 따낸 ‘쾌거’
10년 전 영화로 첫선을 보였던 <빌리 엘리어트>가 한국에서 뮤지컬로 공연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지난 4월 27일 1차 공연 티켓 판매에서부터 화제를 모았다.

예매 시작 30분 만에 6298석을 판매해 인터넷 최대 티켓 예매 사이트인 ‘인터파크’에서 예매율 1위에 등극한 것. 이번 공연은 세계에서 네 번째로, 작업기간만 5년이 걸렸다.

판권을 따낸 ‘큰손’의 수소문에 들어갔다. 공연기획사 ‘매지스텔라’ 문미호 대표가 바로 그 주인공. 그런데 저돌적인 이미지일 것이라 생각했던 주인공은 예상을 깨고 차분한 어투로 소감을 전했다.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진정성과 신용이에요. 그런 마음이 통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담담하게 소감을 전했지만, 사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모 항공사 마일리지를 200만 마일 넘게 쌓을 정도로 숱한 출장을 다닌 그가 ‘목숨 걸고’ 따낸 작품이다.

패션, 미술, 영화 꿈을 좇은 20대

감각적인 사무실 인테리어만큼 문 대표의 스타일도 센스가 넘친다. 그는 중학교 재학 중에 외국 유학길에 올라 런던,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대학시절에는 패션 디자인과 미술사를 전공했다. 졸업 후 2년간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미술 기획 전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큐레이터로 변신했다.

“제가 좋아하고 흥미를 가지는 분야에만 집중하는 편이에요. 특별히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죠.(웃음) 20대의 저는 뭐랄까. 호기심이 많은 편이었죠. 한번은 대기업에서 일하는 분들과 식사를 하는데 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박물관(Smith Sonian Museum)에서 한국의 100년 전 가구 전시를 한다는 얘길 전해 들었어요.

그 얘길 듣자마자 1박 2일 일정으로 급하게 워싱턴으로 날아갔어요. 워낙 가구에 관심이 많기도 했지만, 한번 꽂히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거든요. 쉽진 않았는데, 그곳 관계자분들에게 사정사정해 결국 창고에 있는 가구까지 전부 보고야 말았죠.”

그렇게 20대의 젊은 문미호는 하나에 꽂히면 반드시 끝을 보고 마는 타입이었다. 1997년,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외국의 우수한 공연을 국내에 선보이겠다는 야심 찬 각오를 세우고 귀국 후 곧바로 기획사를 설립했다. 당시 한국은 ‘프로모터(promotor)’라는 직업 자체가 생소했던 때다. 그는 프로모터 분야에서 ‘프론티어’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20대 후반의 그에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야심 찬 각오로 문을 연 기획사는 속된 말로 ‘쫄딱’ 망했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씁쓸했던 것. 하지만 쓰라린 경험은 그가 공연을 올리는 데 있어 타이밍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닫는 계기가 됐다.

아찔한 사업 실패 후에 그는 ‘직장인’으로 방향을 틀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는 국내 대형 뮤지컬 제작사인 ‘설앤컴퍼니’의 협력 프로듀서로 ‘델라 구아다’, ‘캣츠’ 등 대형 라이선스 작품의 해외 업무를 담당했다.

뮤지컬 시장보다 더 큰 시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 2004년에는 잠시 영화 시장으로 눈을 돌려 2007년에는 영화사 ‘쇼이스트’의 총괄 이사로 일하면서 영화 투자부문을 담당했다.

‘빌리 엘리어트’의 판권을 따낸 배경에는 ‘워킹 타이틀’사가 그의 ‘쇼이스트’에서의 커리어를 인정한 부분도 있었다. 영화와 뮤지컬 양자를 아우르는 문 대표의 경험에 큰 점수를 줬던 것이다.

마이크로 매니지먼트, 여성이 강점
[Interview] 200만 마일리지를 쌓으며 따낸 ‘쾌거’
“공연의 마케팅 비용은 총 예산의 15%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해요. 해외 공연과 국내 공연의 가장 큰 차이점은 국내 공연의 경우, 많은 제작비를 투자해 제작한 후 할인 정책을 펼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해외 제작사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해요. ‘빌리 엘리어트’의 경우 할인 정책이 없는데, 대신 작품의 질을 최상으로 유지해 관객 만족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문 대표는 ‘빌리 엘리어트’ 총 제작비 135억 원 중 무대 제작비에만 25억 원을 쏟아부었다. 영국 탄광촌의 사실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해 영국에서 소품을 직접 공수해올 만큼 세트 구석구석에 신경을 썼다.
[Interview] 200만 마일리지를 쌓으며 따낸 ‘쾌거’
관객이 바로 ‘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들의 입장에서 마케팅 전략을 짜는 그의 ‘셀프 브랜딩 마케팅’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신용이 철칙이죠. 관객은 속일 수 있는 대상도 아니고, 또한 그들은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노력한 만큼 보여질 것이고, 그런 믿음과 확신이 있기 때문에 죽을 힘을 다해 달릴 겁니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경우 철저히 감성 마케팅에 초점을 맞췄다. 여성 CEO인 그에게 ‘감성 마케팅’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뮤지컬은 그야말로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디테일한 감성에 초점을 맞추는 매니지먼트) 사업인데, 여성이기에 그 점을 잘 활용할 수 있어요. 그런 마음이 없었다면 1년 이상 빌리들을 트레이닝시킬 수 없었을 겁니다.”

4차까지 진행된 엄격한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4명의 주인공 ‘빌리’는 하루에 5시간 이상의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 발레, 아크로바틱, 스트리트 댄스 등 그 종류도 다양한데, 세계 어느 ‘빌리’에게도 뒤지지 않는 한국의 ‘빌리’ 탄생이 문 대표의 가장 큰 바람이다.

‘나는 지독한 워커홀릭이다’

“여가시간이란 걸 못 가진 지 벌써 3년이네요. 얼마 전에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기도 했지만 결국 포기했죠. 하루 일과는 주로 메일 확인으로 시작해요. 이른 새벽부터 엄청난 양의 메일을 처리하는데, 가장 행복할 때가 주말에 그 많은 메일을 처리했을 때인 걸 보면 정말 워커홀릭인가 봐요.(웃음)”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대구 공연을 올릴 즈음이면 시계는 어느덧 2011년의 어느 날을 가리키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 대표의 시계는 ‘빌리 엘리어트’의 차기작을 준비하는 등 훨씬 앞서 있었다. 영화로 히트를 친 작품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연극 공연을 이미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바람은 즐거운 공연을 통해 관객을 즐겁게 해주고, 그 역시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더불어 뮤지컬 프로듀서를 꿈꾸는 수많은 여성 후배들의 목표가 되고 싶다. 환하게 웃고 있는 주인공 ‘빌리’들 사이로 보이는 그의 미소가 더욱 환하게 다가왔다.


문미호

공연기획사 ‘매지스텔라’대표
쇼이스트 이사
설앤컴퍼니 이사
태인 프로덕션 대표, 프로모터

글 박진아·사진 서범세 기자 pj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