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태 (주)온전한 커뮤니케이션 고문

얼마 전 재계와 언론계에서 ‘(주)온전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회사의 출범이 화제가 됐다. 삼성, 현대차, LG, SK 등 4대 그룹의 전직 홍보임원들이 의기투합해 홍보전문 미디어업체를 세운 것.

이 회사 설립을 주도한 김광태 고문은 삼성그룹에서 꼬박 30년을 홍보맨으로 활약했고 현재 삼성전자 자문역(전무)을 맡고 있는 홍보계의 달인이다.
[The Collector] 영혼을 느낄 수 있는 음악으로의 초대
홍보 외길을 달려온 그에게 또 하나의 관심사는 음악이다. 그가 은퇴 후를 대비해 세컨드 하우스로 마련한 양평 한옥에는 1만여 장의 LP와 마니아들 사이에 명품으로 통하는 축음기, 그리고 다양한 음향기기들이 빼곡하다. 음악 중에도 특히 가요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김 고문을 만나기 위해 경기도 양평을 찾았다.

벽장을 메운 1만여 장의 옛 음반
[The Collector] 영혼을 느낄 수 있는 음악으로의 초대
장맛비를 뚫고 찾아간 김 고문의 양평 한옥에 들어서자 각종 음향기기들과 벽장을 가득 메운 LP가 눈에 들어왔다. 김 고문은 곧장 기자를 대형 축음기 앞으로 이끌었다. 미국 빅트롤라(Victrola)사가 1926년에 만든 크레덴자 축음기였다.

축음기의 덮개를 연 김 고문은 지금은 구하기도 힘든 SP를 걸었다. 수동 축음기라는 설명과 함께 그는 태엽을 감았고 곧이어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는 1903년에 제작된 빅트롤라 축음기도 갖고 있지만 이 제품을 더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제품을 구하느라 들인 공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애착이 더 크다는 것이다.

미국에는 오디오 마니아들이 많아서 지역별로 빈티지 전시회가 열린다. 전시회에는 축음기뿐 아니라 SP 등 다양한 제품이 선을 보인다. 그는 전시회를 통해 빅트롤라 축음기를 만났고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친구의 도움으로 어렵게 손에 넣었다고 했다. 국내에 들여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무게만 100kg에 이르는 제품을 들여오느라 애를 먹었다.

축음기에 맞는 SP는 그 뒤 본격적으로 컬렉션하게 됐다. 팝송이나 클래식 SP는 미국 등지에서 어렵지 않게 구했지만, 가요 SP는 남은 게 많지 않아 컬렉션에 한계가 있었다. 보관 상태가 괜찮은 것도 많지 않아서 그는 안타깝다고 했다.

김 고문은 컬렉션을 소개하기 전에 마니아들이 CD 플레이어가 아닌 축음기를, CD가 아닌 LP나 SP를 듣는 이유를 먼저 설명했다. 핵심을 정리하자면, 원음을 재생하는 데는 CD플레이어보다 축음기가 났고, CD보다 LP가 훨씬 따뜻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CD는 인간의 가청주파수인 16~20킬로헤르츠 범위 내에서, 디지털 방식의 끊어진 음을 연결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 가청주파수가 평균 이상일수도, 혹은 이하일 경우도 있다. LP나 SP는 CD보다 주파수의 범위가 넓으며 음도 이어진다.

“마니아들도 처음에는 CD를 듣습니다. 그러다 LP를 찾고 축음기를 찾게 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CD로 음악을 자주 듣다 보면 싫증이 나거든요. 그만큼 청각이 발달해 예민해지는 거죠. 자연히 LP를 찾게 되죠.

흔히 우리끼리는 LP가 영혼이 있는 음, 그림자가 있는 살아 있는 음악이라고 합니다. 물론 LP가 CD와 다른 것처럼, SP는 LP와 또 다른 느낌을 줍니다. 축음기에서 진공관으로 넘어가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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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시절 쓰던 릴 레코더와 아내와의 추억이 서린 햄(HAM)기기


설명에 이어 그는 거실과 서재, 컬렉션 룸 등에 진열된 각양각색의 음향기기와 LP들을 보여주었다. 그중에는 고등학교와 대학시절에 모은 것도 적지 않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라디오를 즐겨 들으며, LP를 모았다. 마음에 드는 음악을 소장하기 위해 당시로는 귀하던 릴 레코더를 구입하기도 했다.

힘들게 구입한 릴 레코더에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음악부터 친구들의 노래까지 다양한 소리를 담았는데, 가끔 고교 친구들에게 당시 녹음한 노래를 들려주면 무척이나 겸연쩍어한다고. “선친의 노래도 릴 녹음기에 저장해뒀는데, 몇 해 전 어머님 생신에 ‘돌아가신 아버님 축하 메시지’라고 들려드렸더니 가족들이 모두 좋아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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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들어가서는 8mm 영사기로 주변 사람들의 모습도 담고, 한때는 햄(HAM·아마추어 무선통신)을 하기도 했어요. 아내와 연애를 할 땐데, 둘 다 자격증을 따서 햄으로 연애를 하기도 했습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한동안은 음악도, 비디오 촬영도 모두 중단했다고 한다.

직장에서 받은 첫 월급이 15만 원이었는데, 당시 3분이 조금 넘는 비디오를 촬영하는 데 12만 원이 들었다. 돈도 돈이었지만, 일에 치어 취미를 즐길 여유가 없었다. 다시 LP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10년 전 우연히 술을 마시러 서울 인사동의 한 카페에 갔어요. 그 집에서 LP로 김민기의 ‘친구’를 들려주는데, 무척이나 감동적이었어요. 고등학교 때로 돌아간 듯했습니다. 고향을 찾은 느낌이 그랬을까요. 그 길로 집에 와서 그동안 잊고 있던 LP며 릴 레코더를 찾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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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를 찾아 나섰던 황학동과 인사동 순례

하지만 예전에 있던 걸로는 부족했다. 애정은 항상 결핍감을 동반한다. 그때부터 그는 황학동과 인사동 거리를 찾고,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소장품을 물색했다.

국내에 몇 대 없는 축음기와 릴 레코더, 영사기과 턴테이블, LP와 SP들을 그렇게 모았다. 그중 가장 애착을 갖는 것이 가요 음반이다. 그는 200여 장의 가요 SP를 소장하고 있다.

가요 SP는 남은 것도 많지 않다. 가요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윤심덕의 ‘사의 찬미’ SP는 국내를 통틀어 2장이 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적 가치와 희소성 때문에 지금은 몇천만 원을 줘도 구하기 힘든 음반이 됐다.

LP는 1995년까지 제작됐기에 SP에 비해 그나마 사정이 낫다. 약 1만 장의 가요 LP를 소장하고 있는데 이 또한 아쉬운 것은 중요한 음반은 구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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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음반사들이 LP 생산을 중단한 게 1995년입니다. 그때 일본 컬렉터들이 한국에 와서 신중현 등 음악성이 뛰어난 뮤지션들의 음반을 싹쓸이해 갔어요.

신중현이 만든 김정미의 ‘나우’ 같은 음반은, 보관 상태가 좋은 건 300만 원에 사갔습니다. 국내 마니아들이 LP의 가치에 눈을 뜬 건 그 이후였습니다.”

그는 가지런히 정리된 음반 라이브러리에서 김정미의 ‘나우’ 음반을 꺼냈다. 그가 소장하고 있는 것은 원판이 아니다. 음반의 가치를 뒤늦게 안 한 음반 관계자가 일본의 소장자에게 음반을 빌려 복각한 것이다. 2

003년 3만 원에 판매됐는데, 한정판으로 제작해 지금은 10만 원 이상을 줘야 살 수 있다. 뒤이어 그는 요절한 가수 김광석의 네 번째 음반을 꺼냈다. 김광석이 만든 마지막 LP로, 1994년 6월 8000장 한정으로 만든 음반이었다. 이 음반 또한 절판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10만 원이 넘는다고 그는 설명했다.

한국의 문화사를 간직한 ‘가요박물관’ 건립할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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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밖에도 정말 많은 음반을 소개했다. 이미자, 나훈아 등 트로트에서 김민기를 위시한 70, 80년대 포크송 가수들, 서태지와 아이들의 LP까지. 소장하기까지 음반 하나하나에 담긴 자신만의 숨은 이야기가 음반의 가치를 더한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인사동에서 우연히 발견한 음반. 먼지를 털고 턴테이블에 걸었을 때의 감동을 그는 아직 잊지 못한다고 했다. 재즈 가수 윤희정이 1971년에 낸 음반은 재킷과 LP를 따로따로 얻게 된 경우다.

황학동에서 다른 음반을 사면서 재킷만 있던 것을 주인에게 부탁해 얻었다. 그런데 얼마 후 재킷은 없고 LP만 인터넷 경매에 올라와 짝을 맞춰줬다.

그는 LP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보여주는 실례로 가수들을 들었다. 가수 중에서 자신의 LP를 모두 소장한 사람은 김세환이 거의 유일하다는 것. 노래를 부른 당사자도 갖고 있지 않은 음반을 그가 소장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김민기와 양희은, 김추자, 신중현 등의 앨범은 그가 거의 모두 갖고 있다. 이미자, 나훈아, 남진 등은 발매한 음반이 너무 많아 모두 갖추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미자 음반만도 100여 장에 이를 정도로 그 또한 적지 않은 음반을 소장하고 있다.

본인도 잊고 있던 음반을 보여주면 가수들도 너무 좋아한다. 얼마 전 고등학교 동창인 ‘논두렁 밭두렁’의 윤설희가 양평 집을 찾았다. 그녀에게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논두렁 밭두렁’의 모든 음반을 보여줬더니 무척이나 놀라더란다. 한동안 데뷔 음반의 재킷을 보던 그녀는 눈시울을 붉혔다. 올 초 암으로 세상을 떠난 멤버이자 남편의 데뷔시절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LP의 또 다른 매력은 재킷에 있어요. 윤설희의 얘기를 들어서 알겠지만 재킷은 곧 역사예요. 이미자의 앳된 모습과 한국을 대표하는 포크송 가수들의 젊은 시절을 어디서 볼 수 있겠습니까. 그뿐인가요. <별들의 고향> 같은 영화 OST를 보면 그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하며 그는 해당 LP를 모두 꺼내보였다.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LP들이 쏟아져 나왔다.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컬렉션이었지만 그는 아직 갖출 게 많다고 했다. 지금 당장은 조영남, 최영희 등이 주연한 영화 <푸른사과>의 OST를 구하는 중이라고 했다.

“저는 한국 사람이 팝송을 듣고 ‘너무 좋다’고 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한국 사람이 문화적 동질감을 가장 많이 가질 수 있는 게 가요잖아요.”

앨범 하나하나는 그 시대를 대변한다. 가요사는 곧 한국의 문화사다. 그가 컬렉션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다. 그리고 컬렉션한 음향기기와 음반으로 ‘가요박물관’을 짓는 것이 그의 또 다른 꿈이다.

글 신규섭·사진 이승재 기자 wa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