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e Manners
레드 와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볍고 차갑게 먹는 화이트 와인과 스파클링 와인은 그야말로 여름을 위한 근사한 음료다. 화이트 와인은 레드 와인만큼 품종이 다양하다.그렇다고 그 많은 품종을 다 외울 필요는 없다. 대표적인 품종 세 가지와 그 특징, 그리고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몇 가지 팁을 소개한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화이트 와인의 품종은 세 가지 정도다. 그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품종은 샤르도네(Chardonnay)일 것이다. 영어 발음으로는 샤도네이다.
한국에서는 두 가지를 혼용하고 있지만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풍의 미네랄감을 살린 스타일은 샤르도네라고 부르고, 오크 향을 살린 미국식 스타일은 샤도네이라고 부르는 게 센스 있는 표현이다.
샤르도네는 화이트 와인 품종 중에서 무게감이 있는 편이다. 맛의 범위가 매우 넓고 양조법과 숙성 과정 등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을 낸다. 변화무쌍한 이런 장점 덕에 많은 이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다.
대체적으로 푸른 사과, 서양배, 감귤류, 메론, 파인애플, 복숭아 등 과일 향이 강하며, 오크 숙성시킬 경우 너트류와 버터, 바닐라 등의 향도 느낄 수 있다.
샤르도네와 샤도네이의 차이
샤르도네의 원산지는 프랑스 부르고뉴(Bourgogne: 영어로는 버건디) 지방이다. 부르고뉴 지방에서는 100% 샤르도네로 화이트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피노 누아 100%로 만들어진 부르고뉴 레드 와인처럼 매우 높은 퀄리티를 인정받는 고급 와인이다.
‘샤블리’, ‘푸이 휘세’ 등은 샤르도네 100%로 만든 고급 부르고뉴 화이트 와인 생산지들이다. 광천수와 부싯돌 향으로 주로 표현되는 부르고뉴산 샤르도네 와인은 미네랄감이 강하고 섬세하며 우아한 것이 특징이다. 신대륙인 뉴질랜드나 호주, 미국, 칠레 등 신세계에서는 또 다른 스타일의 화이트 와인이 생산된다. 미국 캘리포니아, 칠레 등 더운 지역에서는 알코올감과 과일 향 등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양조한 후 오크 숙성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완성된 샤도네이는 다른 화이트 와인보다 묵직한 알코올감과 무게감, 그리고 풍부한 향에 더해지는 오크 터치까지 자못 화려하다. 이것은 아마도 철저히 미국인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진 모습이지 싶다.
하나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자면 이런 화려한 스타일의 샤도네이를 지금도 가장 사랑하는 미국인들이 몇 년 전부터 샤도네이를 거부하고 나섰다.
이를 ‘Anything But Chardonnay’의 앞 글자를 따서 ABC 운동이라고 한다. 묵직하고 화려하기만 한 샤도네이가 재미없다는 것이다. 덕분에 리슬링, 소비뇽 블랑 등 다른 화이트 와인 품종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
어찌됐든 청초하고 우아한 부르고뉴 스타일도, 화려한 치장의 미국 스타일도 모두 소화해 낼 수 있는 것은 샤르도네(샤도네이)가 가진 내공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화이트 와인을 좋아하는 애호가들 사이에 샤르도네의 인기는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샤르도네 와인은 섬세한 요리에 적합해 굴과 조개요리, 크림소스가 들어간 해산물요리나 파스타, 특히 기름에 튀긴 대구요리에 레몬이 가미된 것이 어울린다. 바닷가에서 먹는 해산물요리와도 궁합이 좋다. 특히 부르고뉴의 샤르도네 와인은 생굴과 근사한 조합을 이루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갓 벤 풀 향의 소비뇽 블랑과 석유 향이 강한 리슬링 두 번째로 유명한 화이트 와인의 포도 품종은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이다. 주산지는 프랑스 르와르(Loire)와 보르도(Bordeaux) 지방인데, 이 역시 전 세계적으로 재배되고 있다.
소비뇽 블랑의 가장 특징적인 아로마를 꼽으라면 갓 벤 풀 향을 들 수 있다. 청초한 풀 냄새가 소비뇽 블랑의 특징이다. 거기에 구스베리(Gooseberry·서양까치밥나무열매), 고양이 오줌, 깍지콩(Green Beans)이나 아스파라거스 등의 향이 난다. 샤르도네가 과일 향이 많이 난다면 소비뇽 블랑은 풀 향기가 많이 난다.
소비뇽 블랑 역시 샤르도네처럼 얼굴이 다양하고 변화의 폭이 큰 변신의 여왕이다. 프랑스 한 나라 안에서만도 지역에 따라 전혀 다른 와인이 된다.
예를 들어 르와르 지방에서는 단독으로 사용돼 상세르, 푸이 퓌메 등의 청초하고도 스모키한 향과 풍부한 산미를 가진 개성이 강한 드라이 화이트 와인이 된다. 보르도(Bordeaux)에서는 세미용(Semillon)이라는 품종과 즐겨 블렌딩하고, 그라브(Graves) 지구에서는 신맛, 소테른(Sauternes) 지역에서는 단맛이 나는 귀부와인이 된다.
최근에는 뉴질랜드에서 생산된 100% 소비뇽 블랑 와인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90년대 뉴질랜드에서 만들어진 ‘클라우디 베이 소비뇽 블랑’이 세계 시장에 소개돼 영국 와인 잡지 디켄터 등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그 후 상대적으로 저렴한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 와인은 특히 말보로 지역에서 많이 나오는데 클라우디 베이 외에도 ‘포레스트 소비뇽 블랑’, ‘베비치 말보로 소비뇽 블랑’ 등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함께 먹기 좋은 요리로는 바질소스나 해산물을 재료로 사용한 파스타, 생굴요리, 전복요리 등이 어울린다. 특히 생굴을 레몬소스에 찍어 먹으면서 소비뇽 블랑을 마시면 가히 상큼함의 극치를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100% 소비뇽 블랑으로 만들어진 청초한 스타일의 화이트 와인을 더운 여름 낮 그늘에 앉아 마셔 볼 것을 권한다. 신선한 풀냄새가 푸릇푸릇하게 입 안을 자극하는 동안 차가운 와인의 온도가 몸을 식힌다. 그야말로 여름 낮의 열기를 식혀주는 최고의 음료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리슬링(Riesling) 품종을 들 수 있다. 리슬링은 본래 프랑스 알자스 지방 등 상대적으로 서늘한 기후에서 주로 생산되는 품종이다. 오늘날에는 신대륙인 미국, 호주, 칠레, 뉴질랜드 등 다양한 지역에서 재배된다.
신선한 과일 향과 흰 꽃 냄새, 그리고 벌꿀 향 등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리슬링을 구별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석유 향(Petrol)이다.
리슬링이라고 하면 달다, 혹은 달콤한 와인을 만드는 품종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그건 편견이다. 독일 등지에서 아이스 와인이나 귀부와인을 만드는 원료로 사용해 그렇게 알려진 것이다.
리슬링은 와인을 만들면 향은 다양하고, 맛은 산미부터 농후한 단맛까지 폭넓은 와인이 된다. 때문에 소비뇽 블랑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스타일의 와인 재료로 사용되는데, 원산지인 알자스에서는 도리어 드라이(화이트 와인에서 드라이는 쓴맛이 아니라 신맛이 강할 때 쓰는 표현)한 화이트 와인을 주로 만든다.
물론 알자스에서도 ‘셀렉시옹 드 그랑 노블(Selection de Grains Nobles)’, ‘방당주 타르디브(Vindanges Tardives; Late Harvest)’ 등 달콤한 와인을 만들기도 한다. 드라이하게 만든 리슬링 와인은 후추 양념의 훈제 고등어나 민물고기요리, 삶은 닭가슴요리, 중국요리 등에 잘 어울린다. 달콤한 아이스 와인이나 귀부와인이라면 초콜릿, 과일, 케이크 등 단맛이 나는 후식과 근사한 매칭을 이룬다. 간단한 선택이라면 치즈와도 좋다.
화이트 와인은 레드 와인보단 조금 더 차갑게 해서 마시는 것이 좋다. 보통은 영상 8~10도 정도가 좋다. 샤도네이처럼 오크 숙성을 한 화이트의 경우에는 영상 10도 정도가 그리고 소비뇽 블랑이나 리슬링 등 오크 숙성을 하지 않는 와인은 그보다 1~2도 떨어뜨린 온도가 좋다. 달거나 탄산이 가미됐다면 온도가 더 내려가도 좋다.
이철형 국내 최대 와인 전문 유통 기업 ㈜와인나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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