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넘버원’ 프랜차이즈 꿈꾸는 김진학 (주)이원 회장

[Success Story] 한·중·일 서민 음식 꼬치구이로 세계 시장 도약 승부수
김진학 (주)이원 대표이사 회장은 꼬치 하나로 중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사나이다. 대한민국 대표 프랜차이즈인 투다리, 칸은 어느새 중국 서민층이 가장 사랑하는 꼬치구이 전문점이 됐다.

새로운 음식 한류에 도전하는 김 회장의 바람은 한·중·일을 음식 문화 하나로 엮는 데 있다. 가장 한국적인 맛이 세계적인 맛이라는 생각에 그는 오늘도 새 메뉴 개발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 중화요리 집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자장면은 일본의 자자멘(じゃじゃメン)과 매우 비슷하다. 일설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먹는 자장면의 기원이 일본 나가사키(長崎) 중화촌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청나라 시대 일본 나가사키로 건너간 중국 화교들이 우리나라 인천에 뿌리를 내리면서 만든 음식이 지금의 자장면이라는 것이다.

중국에 가면 ‘자장면이 없다’는 게 통설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옛말이다. 최근 중국의 도시화가 가속화되면서 문화혁명 이전인 중국 청조 시대 음식에 대한 복원사업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자장멘(炸醬麵)도 다시 부활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중국의 츠판(吃飯)이나 일본의 잔폰(ちゃんぽん)은 우리나라 ‘짬뽕’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처럼 한·중·일은 음식 문화로 한데 묶여있다. 꼬치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 중국, 일본 3개국에서 꼬치구이는 가장 보편적인 서민 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중국인들의 꼬치구이 사랑은 대단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 투다리의 중국 브랜드 ‘투다리(土大力)’가 자리 잡고 있다.

중국 창업 전문지 ‘연쇄(체인점)와 특허’에 따르면 지난 2006년 말 기준 투다리는 규모 면에서 중국 내 프랜차이즈 8위에 랭크됐다. 일본 음식 전문점 원록회전초밥이 1위에 올랐고 2~4위가 피자헛, KFC, 맥도날드였으며 5위는 일본식 덮밥 요리전문점 요시노야, 6·7위는 우리 기업 바비큐 보스치킨과 파리바게트가 차지했다. 이 조사는 중국 전역의 프랜차이즈를 조사해 5년마다 발표되고 있다.

김 회장이 중국 시장 진출을 감행한 것은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토대력(투다리의 중국식 표기)은 가격이 저렴하면서 맛은 뛰어난 대표적 한식 레스토랑이다.
중국 토대력(투다리의 중국식 표기)은 가격이 저렴하면서 맛은 뛰어난 대표적 한식 레스토랑이다.
“한·중 수교가 체결된 후 중국을 찾았는데 길거리에서 꼬치구이를 파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어요. 쓰촨식 닭날개볶음 꼬치구이를 먹는 순간 ‘이거 되겠다’ 싶었죠.

우리나라와 기후 조건도 비슷하고 한국 기업이 비교적 많이 진출해 있는 칭다오(靑島)를 첫 공략지로 정한 것도 최대한 한국적인 스타일로 접근하자는 뜻에서 였어요.”

산둥성 칭다오에 처음 문을 연 투다리는 15년이 지난 지금 130개(직영점 40개 포함) 점포로 늘어났다. 올 6월 말 현재 한국 내 투다리 점포수와 비교해 보면 턱없이 작지만 대규모 점포 운영 등을 감안하면 상당히 선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투다리, 칸을 운영하고 있는 (주)이원에 따르면 중국 내 점포의 평균 월 매출액은 30만 위안이다. 지난해 (주)이원이 중국에서 벌어들인 매출만 3억 위안(500억 원)에 달한다. 프랜차이즈 업종치고는 대단한 성공이다.

현재 이원은 베이징(北京), 톈진(天津), 칭다오에 각각 별도의 회사(유한공사)를 설립했으며 중국 전역 15개 곳에 지사를 두고, 운영하고 있다.

15개 지사 모두 중국 현지인을 지사장으로 구성해 직영점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것도 다른 프랜차이즈와 다른 점이다. 그만큼 책임감을 갖고 운영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투다리의 어떤 점에 중국인들이 매료된 것일까. 관련 업계에서는 현지인들의 식습관을 정확히 파악한 현지화 전략에서 해답을 찾는다.

초창기 김 회장은 중국 현지인들의 객관적인 평가를 듣기 위해 200여 명으로 구성된 꼬치메뉴 시식회를 자주 열었다. 그 결과 중국과 한국 간 입맛은 점차 간격을 좁히기 시작했다.

중국 투다리의 장점은 90여 점에 달하는 다양한 메뉴에 있다. 다품종 메뉴 전략은 한국 투다리와 비슷하지만 품목만 놓고 보면 두 배 이상 많다. 중국인의 입맛에 맞춘 꼬치구이 맛은 어떨까 궁금했다.

“맛은 우리나라 투다리 메뉴와 별반 다르지 않아요. 저는 가장 한국적인 맛이 세계적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매운 우리 음식은 중국인들도 굉장히 좋아해요. 중국 투다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가 뭔지 아세요.

닭산적과 팽이버섯말이, 명란말이예요. 돌솥비빔밥과 된장찌개는 또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양 꼬치구이 등을 제외하면 상당수가 우리나라 음식으로 메뉴가 구성돼 있는데, 한국·중국 음식 비율은 대략 8 대 2 정도 되죠.”

대신 운영 방식은 철저히 중국 스타일을 고집했다. 창업 비용을 최소화시켜 누구나 부담 없이 점포를 열게 한 전략은 중국에서도 통했다.

“한국 음식은 비싸다”는 통념을 깨고 중저가 서민 음식으로 접근한 것도 마찬가지다. 술, 음식, 노래 등이 한자리에서 다 이뤄지는 중국인들의 성향을 점포 운영에 적극 반영한 것도 대성공으로 이어졌다.

새로운 시도는 계속됐다. 2003년 문을 연 샹강주루(香港中路) 점은 꼬치구이 전문점 형태로 운영되던 것을 한식 레스토랑으로 바꾼 첫 사업이었다. 샹강주루는 칭다오의 대표적인 오피스 밀집 지역으로 평일에는 직장인, 주말에는 가족 단위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그러나 이전까지만 해도 상당수 음식점들의 점심과 저녁 매출이 고르지 않아 점포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사정은 투다리도 마찬가지였다.

김 회장은 샹강주루점을 중국 시장 진출의 제2도약기로 정했다. 당시 그가 내세운 전략은 ‘비싸지 않은 한국 음식점’이다. 그래서 놀이방까지 갖춰 가족 단위 고객을 주로 공략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샹강주루점의 일일 최대 매출은 4만 위안(700만 원)이며 월 평균 매출은 60만 위안(1억 원)이다. 하루 팔려나가는 돌솥비빔밥만 240인 분이다. 한식 세트메뉴는 300인 분 이상이 매일 판매되고 있다. 칭다오 시청점은 돌솥비빔밥과 김치볶음밥이 전체 매출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인터뷰 내내 김 회장은 자신의 성공은 ‘정도 경영’에서 비롯됐다고 강조했다.

“사업을 하면서 늘 생각하는 것이 ‘나는 죄인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평생 피땀 흘려가며 번 점주들의 전 재산이 저 때문에 한순간에 날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지금도 어깨가 무거워요. 그러니 당연히 법을 준수하고 투명하게 회사를 운영할 수밖에요.”

산둥성 지난(濟南)점은 김 회장의 신뢰 경영이 밑거름이 돼 탄생한 점포다. 공동으로 점포를 운영한 경험밖에 없는 한 중국인에게 중국 투다리 본사는 입지 선택부터 홍보, 관리 노하우까지 모두 전수해줘 새롭게 문을 열게 해줬다.

이렇게 탄생한 곳이 바로 투다리 지난점이다. 그 중국인은 이후 세 개의 점포를 추가로 열 정도 놀라운 수완을 발휘했으며 지금은 투다리의 중국 지사장까지 맡고 있다.

중국에서 빠른 시일 내 뿌리 내리기 위해 특별지휘본부 격인 중국 본사를 발 빠르게 설립한 것도 김 회장의 생각이다. 청도토대력쾌착유한공사는 이렇게 탄생했다.

칭다오 자오저우(膠州)만 신산업단지 내 2500만 위안(41억 원)을 투자해 대지 2만3140㎡(7000평), 건평 5289㎡(1600평) 규모로 들어선 청도토대력쾌찬유한공사는 중국 시장 공략의 첨병이자 중심에 서 있다. 중국 내 투다리에서 사용되는 각종 소스와 제품이 이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인터뷰 도중 김 회장이 갑자기 기자에게 물었다.

“기자 양반, 근데 이 인터뷰 제목을 뭐라고 달 겁니까. 성공 뭐 이런 단어는 쓰지 말아주세요. (잠시 생각하더니) 아, 이건 어떨까 싶네. ‘여전히 두려운 기업인 김진학.’ (웃음)”

이처럼 그는 인터뷰 내내 자신의 몸을 한없이 낮췄다. 지금까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한사코 고사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지난 1987년 인천 제물포역 근처에 8.3㎡(2.5평) 규모로 가게를 연 이후 어느덧 1900여 개에 달하는 국내 최대, 최장수 프랜차이즈 회사 대표가 됐지만 회사 규모가 커질수록 마음을 짓누르는 부담감도 그만큼 커진다고 말한다.
[Success Story] 한·중·일 서민 음식 꼬치구이로 세계 시장 도약 승부수
김 회장에게는 공업고등학교 졸업장이 학력의 전부다. 삼양사, 포항제철 등에서 근무한 그에게는 가난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때문에 늘 그는 투잡족으로 살아야 했다.

퇴근 후 가구를 만들어 배달하거나 66㎡(20평)짜리 슈퍼마켓 딸린 방에서 장사하며 독학으로 7급 공무원에 합격한 것도 ‘내 세대에서 가난을 끊어보자’는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한 달 월급이 2만 원이었던 시절, 2부 이자로 거금 35만 원을 빌려 시작한 가구 사업은 이자에 원금까지 갚는 데만 7년 이상 걸릴 정도로 그에게 큰 상처를 줬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마음 한편에 ‘돈을 벌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했다. 공무원으로 편안한 생활이 보장된 그가 아들 셋을 포함해 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편안한 노후를 위해 창업전선으로 뛰어든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다들 그래요. 왜 편안한 직장 놔두고 사업을 시작했느냐고. 지금 샐러리맨들의 가장 큰 걱정이 ‘은퇴 이후의 삶’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저도 그랬어요. 아이들에 아내까지 가족 넷을 책임져야 하는데 월급쟁이로는 도저히 자신이 없었어요.”

6개월 만에 공무원 생활을 마친 김 회장이 입사한 곳은 인천도시가스였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일본 출장길에 올랐던 그의 눈에 일본식 꼬치구이 야끼도리가 들어왔다.

1987년에 시작된 한국형 꼬치구이 전문점 투다리는 이렇게 탄생했다. 투다리는 창업 초기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7㎡(6평) 남짓의 초소형이어서 창업비용이 적게 들며, 2~3명의 인원으로 점포를 운영할 수 있는 가족형 창업 아이템이라는 것이 예비 창업자들의 마음을 뒤흔든 것이다. 1988년 (주)이원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사업에 도전해 이듬해에는 점포수가 100개로 늘었다.

이후 성공가도는 계속돼 1993년 1000호 점, 1998년에는 2000호 점을 돌파했다. 지금(2010년 6월 말 기준)은 다소 줄어든 1909점이다. 1991년에는 레스토랑 칸(Khan), 2006년에는 일본식 이자카야인 라쿠엔을 선보였으며 한모둠 설렁탕, 한모둠 순대국, 남가네 설악추어탕 등도 라인업에 추가시켰다.

김 회장은 ‘최대’보다 ‘최장’ 프랜차이즈라는 걸 더 자랑스럽게 여긴다.

“23년간 외형보다 내실 위주로 회사를 운영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가령 우리는 점포별 연 매출을 꼼꼼히 파악해 하위 10%에 있는 점포는 재창업에 가까운 사후관리(AS)를 실시하고 있어요.”

(주)이원은 인천, 서산, 대구, 광주에 물류센터를 구축하고 32개의 지역 네트워크를 통해 신선한 식자재를 납품하고 있다.

지난 1998년에는 충남 서산시 고북면에 4000㎡ 규모로 공장을 짓고 신선한 채소 공급을 위해 직영으로 미라지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2006년에는 서산에 제2공장을 증설하고 대구 이현동에 1000㎡ 규모로 제3공장도 건립했다.

“저는 꼬치구이야말로 국경을 초월해 전 세계 글로벌 음식이 될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봐요. 서양의 바비큐 요리도 따지고 보면 돼지를 나무 막대에 꽂아 구워먹는 거잖아요.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에게 충분히 통할 수 있습니다.”

김 회장은 지난 6월 초 인도네시아에 첫 직영점을 세우고 돌아온 뒤 이 같은 확신이 더 강해졌다고 말했다. 점포의 85%가 중국 북방에 몰려 있는 것을 남방으로 확대하는 것과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 다른 국가 진출은 그 다음 목표다.

“한·중·일 밑바탕의 음식 원류는 똑같아요. 일본도 요즘 소금에 절인 백김치가 대유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세계 시장의 성공은 이제가 시작입니다.”

글 송창섭·사진 이승재 기자 reals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