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주 펀드 대부 이상진 신영자산운용 대표

[Market Leader] 은행·건설 업종 구조조정‘청신호’ 3년 내 수익달성 종목만 투자
신영마라톤펀드는 그 이름처럼 기초 체력이 튼튼하면서도 저평가된 기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국내 대표 가치주 펀드다. 지난 2002년 4월 처음 설정된 신영마라톤펀드는 펀드운용액이 8073억 원, 지난 5년간 누적수익률이 128.72%(2010년 5월 24일 기준)에 달한다.

설정 후 5년 이상 된 펀드 중 신영마라톤펀드보다 수익률이 높은 펀드는 여러 개가 있지만 이들 대부분은 대형 증권사 계열의 자산운용사다.

신영마라톤펀드는 중소형 자산운용사의 상품 중에서 가장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는 장기 펀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같은 실적이 가능한 것은 현장 경험이 풍부한 신영자산운용 이상진 사장의 공로가 컸다는 게 관련 업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지난 1987년 신영증권 입사한 뒤 1996년부터 신영자산운용에서 근무한 이 사장은 말단 펀드매니저로 출발해 대표이사 자리까지 올라 펀드매니저들 사이에서 교과서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펀드매니저 외길 인생을 살아온 그는 “정보기술(IT)·자동차 산업이 유망 업종인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라면서 “시장 기대치보다 실적이 낮을 경우 주가는 내려갈 공산이 큰데 내가 IT와 자동차 업종을 보는 시각도 이와 비슷하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오히려 남들에게 외면받는 업종을 역발상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남유럽으로 대표되는 국가재정 악화(소버린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너무 과민반응이지 않나 싶다. 지금 주식시장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움직이는 것 같다. 유로화라는 강력한 통화를 보유하고 있는 데다 미국 투자은행(IB)들이 유럽에 투자한 금액만 1조 달러가 넘는다.

오히려 일부에서는 이번 경제위기가 유럽의 정치통합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어찌됐건 지금은 분명 심리적인 요인에 주가가 너무 민감한 게 아닌가 싶다.”

중국마저 긴축이 예상되고 있어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기업들에는 험난한 미래가 예고돼 있는 것 아닌가.


“중국 정부의 긴축은 경제적인 측면도 있지만 부동산 가격 상승이 몰고 올 중국 국민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측면도 있다고 본다. 중국 지방 정부들은 지금도 국내총생산(GDP)이 15%씩 성장한다.

물론 지방 정부들의 재정 악화가 우려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현재로선 연착륙에 무게를 두고 싶다.”

그렇다면 하반기 우리 주식시장을 낙관적으로 보는가.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지금 시장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려 있다. 아무리 뭐라고 해도 주가는 금리와 반비례한다. 유동성이 이처럼 풍부한 상황에서 과거처럼 900포인트대까지 주가가 내려가기란 절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대응 전략이 상당히 세밀하고 빨라졌다. 특히 제조업들의 현금가동률은 상상 이상이다. 이런 가운데 환율도 내려가다 달러화 강세를 틈타 다시 오르는 모습이다.

오히려 지금은 우리 기업들에 최고의 상황이다. 미국, 일본에 뒤떨어지지 않은 기술력에 환 혜택까지 더하면서 우리 수출기업들의 경쟁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더군다나 중국이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

예전 중국은 임가공 시장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내수시장 확대로 대중국 수출액이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모습이다. 중국 정부 목표처럼 GDP가 2020년까지 1만 달러로 늘어난다면 중국 수입액의 20%는 우리 기업들 몫일 것이다.”

[Market Leader] 은행·건설 업종 구조조정‘청신호’ 3년 내 수익달성 종목만 투자
하한가를 어느 정도 선에서 예상하는가.


“2년 전 금융위기 때 코스피의 주가수익비율(PER)이 6.5~7.0배였다. 지금 주식시장이 그때처럼 급락하지 않는다면 PER의 8배가 적당하다. 지수로 환산하면 1500포인트다. 그 이하로 주가가 내려가기란 쉽지 않다. 반대로 연내 상한가는 1900포인트다.

당초 지난해 정도 실적만 나온다면 2000포인트 돌파도 전혀 불가능하진 않다. 그러나 올해는 우리 기업들의 성장세가 작년만 못하다. 연초 1680포인트에서 시작했는데 그보다 10~15% 정도 상승한 1900포인트 선이 가장 무난하다.

다만 남유럽 리스크가 빠르게 마무리되고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3.2%를 달성하는 등 세계 경제가 회복되면 연내 코스피지수가 2000포인트대로 치솟는 것은 전혀 무리가 아니다.”

하반기 어떤 업종이 유망 한가.

“좋은 기업과 좋은 주식은 다르다. 물론 하반기에도 IT와 자동차 주식이 강세를 보이겠지만 주식으로서의 가치는 떨어질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 시장의 자금 편중이 너무 심하다. 이런 상황에선 고수익이 힘들다. 오히려 은행, 건설, 유틸리티 업종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건설주와 은행주는 구조조정이 오히려 호재로 작용할 것 같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도 전적으로 지방 제2금융권에 국한된 얘기다. 현재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PF 자금들은 대부분 우량 채권이다. 미국으로 치면 프라임급 상품에 해당한다.

은행들의 순이자마진(NIM)이 낮은 상황에서 지방 제2금융권에 대한 구조조정은 시장의 투명성을 높여줄 호재로 작용할 것 같다. 유틸리티 업종의 최대 장점은 역시 독과점 내지는 경쟁자가 많지 않다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코스닥 시장은 당분간 침체가 불가피하다.”

최근의 펀드 자금 유출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솔직히 지금 거의 바닥에 근접했다고 생각한다. 지난 2006년 10월부터 2007년 5월 사이 코스피지수가 1200~1400에서 박스권을 형성한 적이 있었다. 이때 펀드 환매액이 30~40%에 달했는데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순유출은 그다지 심한 것은 아니다.

이유는 펀드 상품 대세가 거치식에서 적립식으로 바뀌었고 장기투자에 대한 투자자들의 인식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1700포인트에서 설정된 국내 주식형 펀드로 들어온 자금이 대략 36조 원이다.

해외주식형 펀드 36조 원까지 포함하면 총 72조 원 정도가 유입됐는데 2009년 4월부터 2010년 3월까지 환매액은 42조 원이었다.

아마 여기에는 1700 선에 펀드 투자를 결정한 자금들 중 상당수가 포함돼 있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같은 기간 유입된 금액은 28조 원에 달한다. 앞으로 유출 금액은 빠르게 줄 것이다.”

대형주에 대한 펀드 쏠림현상은 여전하다.

“사실 강연을 다니다 보면서 느낀 것이 확실히 투자자들이 펀드를 대할 때 노후 대비용으로 접근한다는 사실이다. 그 때문에 적립식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 하지만 특정 펀드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다.

10년 전 바이코리아 때를 연상시킨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펀드에도 분산투자가 중요하듯 운용사에 대한 분산투자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운용사별 펀드 운용 철학을 보며 펀드에 가입하는 것이 좋은 예다.

우리같이 가치투자를 신봉하는 운용사도 있다면 성장형 주식 투자를 선호하는 운용사도 분명 있다. 또 한 가지 지적한다면 펀드매니저 교체 여부는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담당 매니저와 사장이 2~3년마다 바뀐다면 그 펀드가 과연 제대로 운용되겠는가. 펀드 운용은 시스템이 하는 것이 아니다. 확실히 말하지만 펀드 운용의 묘미는 사람 손맛에서 결정된다. 운용사가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느냐가 관건이다.”
[Market Leader] 은행·건설 업종 구조조정‘청신호’ 3년 내 수익달성 종목만 투자
가치주를 접근하는 방식이 다른 운용사와 다른가.

“우리는 철저하게 가치투자를 신봉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3년 내 투자한 회사에 수익이 나오는지가 관심사다. 다른 회사들이 투자회사들의 미래 성장 가치에 관심을 갖는다면 우리는 해당 기업의 현재 가치를 더 중요시한다는 점이 다르다.

미래 성장 가치는 가치투자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예측하기 힘들다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우리의 투자는 해당 기업의 현재 가치에서 출발한다. 영업권과 자산, 브랜드 가치 모두가 포함돼 있다.”

기업 가치를 잘 분석하기로 유명하다. 남다른 비결이 있는가.

“특별히 다른 게 있다면 다른 운용사에 비해 기업 현장 방문이 많다. 최소 3개월에 1회씩 기업을 탐방한다. 그리고 투자 여부는 탐방 후 결정한다. 특정 기업의 주가가 한 달 사이 30%나 떨어졌다고 해도 현장 방문 결과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이라고 판단되면 절대로 종목을 교체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원칙이다.”

현장 방문에도 뭔가 특별한 비결이 있지 않나.

“가령 수위가 앉아있는 모습도 참고사항이다. 솔직히 회사 상황이 좋은 기업은 정문을 지키는 수위들의 행동 하나에도 원칙과 절도가 있다.

그리고 공장 환경이 깨끗하게 정리정돈 돼 있다. 봄에 갔을 때와 여름에 갔을 때 회사 비품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뭔가 정리가 돼 있지 않다고 판단된다면 그건 분명 기업에 뭔가 문제가 발생했다고 볼 수도 있다.”

신영마라톤펀드가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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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거창한 구호를 내걸지 않는다. 은행이자 대비 두 배의 수익을 올리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이를 위해선 안정적인 종목 구성이 중요하다.

정말 은퇴용으로 내걸어도 손색이 없는 펀드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까지 연 평균 10% 이상씩 수익을 거둬왔는데 경기 회복 시 은행금리가 5% 선까지 회복돼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최근 종목 구성을 보면 중소형주보다 대형주 비중이 다소 늘어났는데, 운용 방식이 바뀐 것인가.

“아니다. 최근 펀드 유입 자금이 늘면서 대형주가 조금 늘긴 했지만 여전히 동종 펀드보다 훨씬 적다. 중소형 가치주면서 우선주 비중이 높은 것도 우리 펀드의 특징이다.

펀드를 운용하면서 3~4번의 고비가 있었는데, 그때 사실 종목 교체를 많이 했다면 오히려 지금과 같은 수익률을 내지 못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여간해선 종목을 교체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종목교체 비율이 연 50%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수수료도 업계 최저 수준이다.

3년 내 수익을 내는 기업을 찾아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듯 우리 펀드도 최소 3년 이상 기다려야 펀드가 제대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그 때문에 아무래도 단기수익률은 높지 않다. 수익이 낮은 상태에서 고객에게 수수료를 많이 달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웃음) 그래서 수수료도 크게 낮춰서 운용하고 있다.”


이상진

신영자산운용 대표이사 사장
서울대 법학과
베어링증권 이사

글 송창섭·사진 이승재 기자reals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