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6년 현대캐피탈은 성장가도를 달렸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성장이었다. 현대캐피탈의 이 같은 성장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차별화된 마케팅과 기업문화, 조직, 인사 등등. 현대캐피탈의 성장을 이끈 정태영 사장에게서 그 비밀을 찾아본다.

“5~6년 전에는 별로 자랑할 것이 없는 우리였습니다. 불과 몇 년 후인 지금은 세상이 우리를 배우려 합니다.”
[Management] 열정과 냉정 사이를 넘나드는 정태영 사장의 ‘불과 얼음의 경영’
얼마 전 정태영 현대캐피탈 사장은 직접 작성하는 ‘직원들께 드리는 보고서’에서 이렇게 썼다. 실제로 정 사장이 처음 현대캐피탈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만 해도 회사는 적자와 부채투성이었다.

하지만 이제 현대캐피탈은 남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 회사가 됐다. 심지어 합작 파트너인 제너럴 일렉트릭(GE)도 현대캐피탈에서 벤치마킹 포인트를 찾고 있다.

현대캐피탈이 그동안 거둔 성과에 대해 한편에서는 너무나 공격적인 마케팅을 염려했고, 한편에서는 성장 위주의 경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현대캐피탈은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며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왔다.

자유로운 기업문화로 유명한 현대캐피탈은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척 보수적이다. 직관과 영감에 의지할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치밀한 시장조사와 마케팅 전략 등이 자리하고 있다. 현대캐피탈의 성공 뒤에는 이처럼 ‘불’과 ‘얼음’이 조합된 경영이 있다.

아르망 트루소가 “최악의 과학자는 예술가가 아닌 과학자이며, 최악의 예술가는 과학자가 아닌 예술가다”라고 갈파했듯이 상호 모순된 듯한 특질을 동시에 갖춘 것이다. 현대캐피탈은 디자인과 과학, 성장과 안정, 진취성과 보수성 등 서로 다른 면들이 균형을 이루면서 성장했다. 또한 현대캐피탈은 키워야 할 때와 지켜야 할 때를 알았다.

지금까지 누적된 값진 경험은 현대캐피탈 고유의 기업문화로 정착해 다른 기업들이 모방하기 어려운 지속 성장의 바탕이 되고 있다.

‘불의 경영’

‘불의 경영’은 순발력과 앞선 기획력, 빠른 의사결정 등에 요체다. 이는 거침없이 타오르는 불과 같은 열정과 추진력이 뒷받침되기에 가능한 일이다. 현대캐피탈의 불의 경영이 불과 다른 점이라면 쉬이 꺼지지 않는다는 점.

경쟁사들이 현대캐피탈의 상품과 서비스를 벤치마킹하고 주요 경쟁 대상으로 삼지만, 그럴수록 현대캐피탈은 더욱 차별화해 다른 업체와 격차를 벌이고 있다.

대출 서비스는 차별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대출 서비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대출 서비스가 높은 이자를 받는 ‘돈 놀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현대캐피탈은 대출 서비스의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는 것이 필요했다. 회사에 대한, 그리고 서비스에 대한 고객들의 신뢰감을 쌓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Management] 열정과 냉정 사이를 넘나드는 정태영 사장의 ‘불과 얼음의 경영’
신뢰를 위해 먼저 서비스명을 차별화했다. 회사에 대한 신뢰는 명칭에서 시작한다. 이름을 보고 사람을 믿고, 회사명을 보고 그 회사를 신뢰한다.

현대캐피탈의 대출 서비스이자 브랜드인 ‘오토플랜(Auto Plan)’, ‘클래스오토(KlassAuto)’ 등은 이렇게 탄생했다. 자동차 할부와 리스가 이처럼 브랜드화되면서 고객과의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

물론 명칭만 생긴다고 고객이 쌓이는 것은 아니다. 현대캐피탈은 여기서 진일보했다. 플러스 멤버십을 통해 자동차 사고 위로금, 할부금 상환 면제 등의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했고, ‘인비테이셔널(Invitational) 시리즈’라는 문화·스포츠 마케팅을 통해 고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다. 빌려주고 갚기만을 기다리고 회사가 아닌 서비스를 통해 고객과의 신뢰를 쌓은 것이다.

기업문화도 일신했다. 기업 성장에 불을 지피는 핵심은 ‘기업문화’다. 다년간의 노력을 통해 현대캐피탈은 어떤 위기에서도 기회를 만들고 한계에 도전하는 창조와 성장의 DNA를 얻게 됐다.

오늘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변화하려는 기업문화는 현대캐피탈의 끊임없는 기업 성장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현대캐피탈의 기업문화는 기업과 정부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고, 내적으로는 지속가능 경영을 위한 성장 엔진이 되고 있다.

“‘현대캐피탈은 어떻게 계속해서 경영 스타일과 기업문화를 바꿔가면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계속 평가하며, 변신하는가’ 하는 것이 우리가 들어야 할 최고의 칭찬”이라고 정 사장은 말한다.

그렇다면 이런 성장의 불꽃인 문화는 누가 만들어가는 것일까.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회사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주주와 고객, 직원 등이 필요하다. 정 사장은 이 중 직원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왜냐하면 직원은 회사에 인생을 투자하고 회사의 문화를 실현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대캐피탈은 사람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정 사장은 “직원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은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커리어마켓’은 말 그대로 인력 시장이다. 인력이 필요한 팀이 온라인 게시판에 모집 공고를 하면 원하는 직원이 자신을 ‘매물’로 내놓고 ‘마케팅’을 해 팀을 옮길 수 있다.

유례를 찾기 힘든 이 같은 인사제도는 중앙집권형 인사제도가 아닌 시장원리에 입각한 역동적이고 자유로운 인사 시스템이다.

현대캐피탈은 2007년 커리어마켓을 도입했고, 지금까지 인사의 70%가 이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졌다. 커리어마켓은 서울시가 이 제도를 본떠 내부 드래프트제도를 발표할 정도로 효율적인 인사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마켓 플레이스(Market Place) 또한 현대캐피탈 기업문화에 적잖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현대캐피탈에는 한 달에 한 번 장이 선다. 일반 장터와 다른 점은 물건이 아니라 생각과 정보, 감정이 오간다는 점이다.

마켓 플레이스는 현대캐피탈만의 새로운 회의 형태다. 2009년 도입된 마켓 플레이스는 매월 1회 50여 명의 임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회사 안팎의 정보와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하는 지식 장터다.

마켓 플레이스는 ‘오픈 커뮤니케이션(open communication)’을 대표하는 현대캐피탈의 독특한 문화로 이를 통해 임직원들은 ‘아날로그적 감성’을 키우고 있다.

이뿐 아니라 직원에 대한 배려는 회사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현대캐피탈의 직원 복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현대캐피탈 임직원은 세탁소가 열고 닫는 시간에 맞춰 허둥거릴 필요가 없고, 운동을 하러 여기저기 오갈 필요도 없다. 2009년 8월 본사 사옥 안에 문을 연 ‘서비스 존(Service Zone)’이 있기 때문이다.
[Management] 열정과 냉정 사이를 넘나드는 정태영 사장의 ‘불과 얼음의 경영’
현대캐피탈은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 메일 박스와 프린트 서비스, 직원 건강을 위한 피트니스와 골프, 사우나 등을 갖췄다. 또한 세탁과 구두 수선 등의 생활 서비스에서 미술 작품 감상의 문화 서비스까지 사옥 안에서 원스톱으로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또한 2010년 1월에는 두바이 7성급 호텔 버즈알아랍의 차석 주방장 출신의 실력파 요리사를 채용했다. 2010년에는 2관 로비에 맥주를 즐길 수 있는 스포츠 바를 오픈하고 신개념 휴식 문화공간을 확장할 계획이다.

현대캐피탈의 경쟁력은 이 같은 변화된 시스템과 처우 개선 등에 힘입은 바 크다. 특히 신속한 의사결정 구조는 현대캐피탈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현대캐피탈의 평사원이 올린 결재서류가 정 사장의 결재를 거치는 데 소요되는 평균 시간은 비근무 시간을 포함, 10시간을 넘지 않는다. 실제로 그는 임직원들의 이메일에 신속한 답변 메일을 보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정사장은 1~2 개월에 한차례씩 ‘직원들께 드리는 보고서’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전 임직원에게 발송한다. 보고서의 개념이 부하 직원이 상사에게 올리는 것만이 아니라는 정 사장의 철학을 바탕으로 현재 회사의 중점 과제, 미래의 전략과 비전 등을 직원에게 알리고 있다.

‘얼음’의 경영

“위기관리가 기업문화로 자리 잡아 임직원 모두 알아서 보수적 운영을 하고 채권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공식적인 경제 전망은 빠른 회복으로 보고 있지만 아직 몇 가지 위험 변수가 있어 다소 보수적인 ‘완만한 회복’으로 잡았으며 각 사업실은 이에 근거한 사업을 운영하셔야 합니다.”

“한국의 가계대출은 너무 과열입니다. TV에서 쏟아져 나오는 현금대출 광고를 보면 외국인들은 정말 놀랍니다. 이런 과열은 언젠가 위기를 부릅니다.

그렇다고 두려워만 할 수도 없는 처지여서 우리도 운영을 하나 경쟁사보다는 보수적이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보는 리스크 정책, 주기적인 스트레스 테스트 등으로 계속 다져야 합니다.”

혁신, 변화 등의 단어만큼 정 사장이 자주 쓰는 단어는 ‘안정’과 ‘보수’다. 아이디어, 디자인, 추진력 등 불같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강조하는 현대캐피탈은 동시에 얼음처럼 냉정한 시각으로 현재와 미래를 보고 치밀하게 성장과 안정을 동시에 이루며 기업을 경영하고 있다.
위기관리가 기업문화가 된 현대캐피탈. 현대캐피탈은 지난해 업계 최고 수준의 자산건전성을 확보했다.
위기관리가 기업문화가 된 현대캐피탈. 현대캐피탈은 지난해 업계 최고 수준의 자산건전성을 확보했다.
창의와 혁신을 기업의 모토로 하는 현대캐피탈, 그러나 리스크 관리에서는 어떤 금융사보다 보수적이다.

현대캐피탈은 장기 차입 중심의 차입선 다양화, 자산부채관리(ALM), 위험률 최소화를 위한 이중삼중의 안전장치와 덤핑 없는 정도 영업을 바탕으로 한 과학적인 리스크 관리를 해왔다.

지난 2년 동안 신용 경색으로 경쟁사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에도 현대캐피탈은 과학적인 ALM으로 유동성 위험을 최소화해 안정적인 실적을 거두었다.

우수한 신용등급과 남다른 리스크 관리 아래 지역별, 상품별, 만기 측면에서 최적의 차입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자산유동화증권(ABS) 비중 20%, 기업어음(CP) 비중 10% 내외 수준을 유지하고, 장기차입금 비중도 약 60% 수준을 지키고 있다.

국내 금융기관 최고 수준의 비상계획(contingency plan)은 안정적인 리스크 관리를 위한 방안이었다. 현재 현대캐피탈이 크레디트 라인(credit line)으로 확보해 놓은 자금은 1조3666억 원이다.

현대캐피탈은 GE캐피탈에서 도입한 업계 최대 규모의 사기 방지(anti-fraud) 팀을 운영하며 업계 최저 수준의 연체율을 지켜냈다. 또한 자본적정성을 강화해 금융감독원이 요구하는 적립액 대비 비율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현대캐피탈은 업계 최고 수준의 자산건전성을 확보하고, 업계 최저 연체율과 높은 대손충당금 적립비율(NPL Coverage)을 달성했다.

또 현대캐피탈은 레버리지(leverage) 비율을 보수적으로 관리하고, 조정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면서 자본적정성을 강화해 왔다. 충분한 충당금을 확충해 효율적인 유동성 관리체계를 완성한 것도 재무안정성을 높이고 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현대캐피탈은 2009년 BBB등급의 국내 민간 기업 최초로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채권(144A) 양키본드 발행에 성공했다. 한국 여신전문 금융기관 최초로 양키본드 발행에 성공한 현대캐피탈의 사례는 다른 한국기관들이 채권을 발행하는 데 있어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