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유로화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글로벌 경제와 증시에서도 ‘유로화 붕괴설’이 최대 악재로 급부상 중이다.

1999년 도입 이후 유로화는 비교적 ‘성공작’으로 평가돼 왔다. 출범 당시 11개국이었던 유로랜드 회원국은 16개국으로 늘어났다. 초기에는 한때 유로당 0.80달러 선까지 떨어지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그 후 유로화 가치는 등가 수준인 ‘1유로=1달러’ 이상에서 유지돼 왔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유로화 가치가 급락하는 것은 유럽 재정위기를 계기로 그동안 유럽통합이 갖고 있던 문제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유로랜드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경제 여건이 다른 회원국들이 통화가치, 금리, 물가, 재정적자를 일정 범위 내로 줄여야 하는 이른바 ‘경제수렴조건(economic convergence conditions)’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이것이 초기에는 엄격하게 지켜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느슨해지면서 유럽통합이 갖고 있었던 근본적인 문제가 노출되기 시작했다. 가장 큰 것은 통화정책은 유럽중앙은행(ECB)으로 일원화시켜 놓고 재정정책은 회원국들에 맡겨 놓은 점이다.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이행 조건이 있긴 했지만 재정정책 특성상 잘 지켜지지 않아 지금의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역내 회원국 간 무역불균형도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단일통화 성격상 유로화 가치가 중간 단계에서 형성됨에 따라 그리스와 같은 부실한 국가들(bad apples)은 고평가, 독일과 같은 건전한 국가들(good apples)은 저평가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밖에 전염효과에 취약한 점과 위기 시 비상대책을 마련해 놓지 못했던 것도 문제로 지적돼 왔다.

현 시점에서 유로화 앞날에 대해서는 극단적인 비관론까지 나오고 있다.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까지 번진 신용등급상의 ‘잔물결 효과(riffle effect)’가 나머지 회원국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것이 조지 소로스의 시각이다. 핌코(PIMCO)의 빌 그로스는 이번 기회에 독일, 프랑스와 같은 핵심국이 빠져 유로랜드가 유명무실화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벌써부터 독일, 프랑스 국민 사이에는 유로화보다는 마르크화, 프랑화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경제주권 혹은 통화 국수주의가 일고 있다. 심지어는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가장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그 하나만으로 국민으로부터 지지도가 떨어지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유로화 약세는 불가피해 보인다. 그동안 잘 유지돼 왔던 등가 수준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크다. 1990년대 초 유럽통화 위기를 낳았던 주범인 투기 세력까지 개입할 것이라는 시각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이번 사태가 빠른 시일 안에 해결되지 않으면 유로화 붕괴설과 같은 비관론이 의외로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하지만 유럽통합은 자유사상가들에 의해 ‘하나의 유럽’ 되기 구상이 처음 나온 20세기 초를 기점으로 한다면 100년, 이 구상이 처음으로 구체화된 1957년 로마조약을 기준으로 한다면 50년이 넘는 긴 역사를 갖고 있다. 그 어떤 대외정책 성과보다 유럽 국민의 피와 땀이 맺히면서 어렵게 마련한 것이 바로 유럽통합이다.

그동안 유럽통합은 두 가지 경로(two-track)로 추진돼 왔다. 하나는 회원국 수를 늘리는 확대 단계로 초기 7개국에서 27개국으로 늘어났다. 다른 하나는 통합의 단계를 끌어올리는 심화 단계로 유로화로 상징되는 경제적 통합에 이어 지난해 12월 리스본협약이 발효되면서 정치적 통합에 대한 기대까지 일어났던 상황이었다.

그런 만큼 유럽통합이 쉽게 깨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험난한 일정이 예상되긴 하지만 그동안 합의됐던 지원책을 바탕으로 시간을 벌어가면서 이번 사태에서 노출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수정된 형태로 유럽통합은 계속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앞으로 재테크 시장, 특히 주식 투자에 있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해 3월 초 이후 글로벌 증시가 비교적 좋은 흐름이 전개됐던 것은 체리 피킹, 풍부한 유동성, 기저 효과 등 악재가 발생할 때마다 이것을 완충시켜 줄 수 있는 긍정적인 요인들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Market Insight] ‘유로화 붕괴설’로 찾아든 재테크 혼돈 시대…어떻게 극복하나?
기초 여건에 관계없이 위기 극복 초기에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는 요인이 종료되면 경기는 완만하게 상승하는 것이 증시 입장에서는 오히려 바람직하다.

특히 이번처럼 대형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강력한 비상 대책을 추진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성급한 출구전략 논쟁을 줄이고 위기 재발 방지를 위한 금융 시스템을 구축하는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올 1분기 성장률이 너무 높게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출구전략 논쟁이 거세졌다. 심지어 금리 인상 시기가 늦었다는 시각까지 제시됐다. 이 상황에서 새로운 위기가 발생하면 투자자들에게는 실체 이상으로 위기를 느끼게 된다. 과연 어떤 안전판이 이 위기를 완충시킬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서다.

대부분 예측기관들이 올해 성장률을 올려 잡는 와중에도 유럽 재정위기가 악화되자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가 증폭됐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때 고질적인 비관론이 고개를 들면 이전까지 기대수준이 높았던 투자자들은 영합하게 되고 일부 투자자들은 심리적 공황에 쉽게 빠져든다.

엄밀하게 따져보면 이번에 주가 하락 폭은 예상만큼 크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관론자들은 리먼 사태가 재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와 함께 예측기관들이 올해 성장률을 올려 잡는 와중에도 ‘더블 딥’ 시각까지 제기됐다. 대부분 투자자들이 혼란스러워했던 것도 이 대목이다.

이때 증시와 경기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민간과 투자자들의 자세가 중요하다. 국가에 의해 주도된 위기 극복이 정책적으로 소진될 때 경기와 증시가 계속 회복되기 위해서는 민간이 이어받을 수 있는 선순환 고리가 형성돼야 한다.

경기가 완만하게 회복돼야 바람직하다는 것은, 올 1분기처럼 과열이 우려될 정도로 빠르게 회복되면 이 고리가 형성되고 위기 재발 방지를 위한 금융 시스템이 구축되기 전에 출구전략과 금리인상론이 고개를 들 정도로 정책적으로 비우호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예비기금(rainy day fund)’과 ‘페이 고(pay-go) 원칙’ 등 새로운 해결책이 제시되고 있지만 다른 위기와 달리 유럽 재정위기는 그 성격상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도 위기는 언제든지 발생한다. 이 때문에 1분기 성장률이 높게 나왔다 하더라도 성급하게 출구전략과 금리 인상을 추진하면 1930년대 대공황, 1990년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과 같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유럽 재정위기는 성급한 출구전략 논쟁과 금리인상론을 바로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이미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금리 인상을 내년 이후로 넘기는 등 종전에 추진해 왔던 비상대책을 계속 추진할 뜻을 비쳤다.

올 들어 강력한 긴축정책을 추진해 대내외 증시를 어렵게 했던 중국도 유럽 재정위기를 계기로 경기부양책을 계속 추진하는 쪽으로 정책 기조를 선회했다.

앞으로 남은 금융위기 과제를 완전하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이 멀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위기 극복 3단계론으로 볼 때 지금은 국가가 관장하는 유동성 위기만 끝내고 위기 재발 방지를 위한 새로운 금융 시스템을 마련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이제 막 6부 능선을 넘고 있는 셈이다.

어차피 국민의 희생을 전제로 위기 극복을 위해 비상대책이라는 강경책을 추진한 만큼 이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이전까지는 다소의 후유증이 있더라도 일관된 정책으로 남아있는 위기 극복 과제를 완전히 해결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이번 유럽 재정위기로 모두가 불안에 떨 때 루비니 교수처럼 ‘마치 내가 맞지 않았느냐’는 식으로 또다시 고개를 든 극단적인 비관론은 성급한 출구전략 논쟁과 금리인상론 이상으로 경계돼야 한다.

유럽 재정위기 이후 요즘 기업 경영과 재테크 시장을 ‘카오스(chaos·혼돈)’ 시대라 부른다. 특히 재테크 시장에서 그런 얘기들을 많이 한다. 일부 사람들은 삼중고를 당하고 있다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다.
[Market Insight] ‘유로화 붕괴설’로 찾아든 재테크 혼돈 시대…어떻게 극복하나?
현 시점에서 당장 확실하게 수익을 내주는 확실한 재테크 수단이 별로 없다. 최근 한 달간 주식 관련 상품을 비롯한 각종 금융상품의 수익률은 정체 상태다. 은행의 예·적금은 물가 수준을 감안한다면 마이너스다.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부동산 시장도 위기설이 나돌 만큼 연일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

재테크의 앞날은 더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나라 밖으로 보면 3개월 이상 끌어온 유럽 재정위기는 최근 들어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긴 하지만 ‘통합국의 위기’라는 점에서 쉽게 해결될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 나라 안으로는 악화된 남북관계로 불거진 지정학적 위험이 언제 어떻게 될지 쉽게 점칠 수 없는 상황이다.

대내외 악재가 겹친 속에 예측기관들이 내놓은 우리 경제 전망은 오히려 이전보다 상향 조정되고 있다. 이제 대부분 예측기관들은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5%대로 보고 있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3%대 후반인 점을 감안하면 ‘인플레 갭’이 우려되는 높은 수준이다. 심지어는 6%대 초반까지 바라보는 예측기관도 있다.

확실하게 수익을 내주는 재테크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재테크 생활자들을 더 혼돈에 빠지게 하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우리 경제의 앞날이 밝게 전망된다면 주식, 부동산과 같은 위험자산에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연일 터져 나오는 나라 안팎의 악재와 앞으로 예상되는 불투명한 환경을 생각한다면 채권, 달러, 금과 같은 안전자산을 선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환율, 금리, 주가와 같은 재테크 3대 변수가 하루가 다르게 그것도 비교적 큰 폭으로 등락을 거듭하는 것도 이 이유 때문이다. 뜻하지 않게 터져 나온 악재가 부각되는 날에는 주가가 급락하고 환율이 급등하다가, 이 요인이 누그러지면서 우리 경제의 밝은 기초 여건이 부각되면 곧바로 주가가 회복하고 환율이 하락하는 국면으로 돌변한다.

이럴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인포 데믹’ 혹은 ‘리스크 데믹’ 현상이다. 주변에서 수시로 나오는 정보나 그때그때 발생하는 리스크에 흔들리다 보면 더 ‘카오스’ 국면에 빠질 수 있다. 자신만의 확실한 재테크 목표와 기준을 갖고 지금의 상황을 극복해 나가다 보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한상춘 한국경제신문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