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exander Calder

<사봇>(Wooden Shoe), 1963년, 금속, 볼트와 페인트, 142×132.5×77.5인치, 스톰 킹 아트센터, 뉴저지
<사봇>(Wooden Shoe), 1963년, 금속, 볼트와 페인트, 142×132.5×77.5인치, 스톰 킹 아트센터, 뉴저지
(Wooden Shoe), 1963년, 금속, 볼트와 페인트, 142×132.5×77.5인치, 스톰 킹 아트센터, 뉴저지">
색이 가볍게 흔들린다. 빙글빙글 천천히 돈다. 하늘이 춤을 춘다. 아이의 눈동자 그 색을 따라가다 그만 잠이 든다. 엄마가 머리맡에 달아놓은 색 조각, 빨강·파랑·노랑…. 아이는 지금 처음으로 세상의 색 공부를 하고 있다. 움직이는 조각, 모빌(mobil)이다. 모빌을 처음 만든 사람은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1898~1976)다.

예술가의 출발점
1957년, 록스버리 작업실에서 모빌 <무제>를 작업하는 칼더, 나이 60이 다 돼가는 예술가의 구력이 두툼하고 거친 손과 진지한 표정에서 잘 묻어난다.
1957년, 록스버리 작업실에서 모빌 <무제>를 작업하는 칼더, 나이 60이 다 돼가는 예술가의 구력이 두툼하고 거친 손과 진지한 표정에서 잘 묻어난다.
를 작업하는 칼더, 나이 60이 다 돼가는 예술가의 구력이 두툼하고 거친 손과 진지한 표정에서 잘 묻어난다.">칼더는 1898년 7월 22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칼더는 엔지니어가 되고자 뉴저지 호보켄으로 이주해 스티븐스 인스티튜트 오브 테크놀로지(Stevens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1919년 학위를 받았다.

이때의 공부는 훗날 그가 모빌의 대가가 되는데 훌륭한 밑거름이 됐다. 모빌의 운동역학이나 균형감, 무게중심 같은 것들의 기초가 모두 공학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졸업 후 칼더는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1923년 뉴욕 맨해튼 57가에 자리한 아트 스튜던트 리그(Art Students League) 미술학교에 입학했다. 조각가였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자질을 이어받은 그에게 새로운 출발은 전혀 새롭지 않았다.

아트 스튜던트 리그는 당시 아메리칸 리얼리즘의 정점에서 수많은 대가를 배출한 명문으로, 칼더의 드로잉과 회화 실력은 날로 향상됐고, 무엇보다도 대상을 관찰해 전체적인 움직임을 빨리 그려내는 이른바 ‘제스처 드로잉’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그는 틈이 나면 뉴욕 시내에서 공연하는 서커스를 관람했고, 드로잉했다. 곰이 재주를 넘고, 원숭이가 풍선을 불고, 서커스 소녀가 줄을 타고, 곡예사들이 곡예를 하는 서커스 곡마단의 풍경은 칼더 예술의 출발점이었다.

1925년, 칼더는 처음으로 지방 신문에 서커스 공연과 동물 삽화를 기고하게 됐다. 빠르고 능숙하게 그려낸 그의 삽화는 서커스의 분위기를 잘 살려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러다가 1926년, 칼더는 당시 세계 미술의 중심지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본격적인 예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칼더의 <서커스>

파리에서 칼더는 조각을 하면서, 취미 삼아 나무와 철사를 이용해 장난감 같은 동물들을 만들기 시작한다. 철사를 구부리거나 휘어서 서커스 인물을 만들어내고, 헝겊과 폐품을 활용한 움직이는 동물들로 소형 서커스를 개발했다.

수년간의 실험을 거쳐 칼더의 <서커스>(Circus)는 사이즈의 정교함을 더하게 됐고, 작은 인물들과 원숭이, 말, 사자 같은 동물들로 이루어진 그의 소형 서커스 공연은 파리의 주요 예술가들과 문필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칼더’라고 쓰인 커다란 가방에서 서커스 소품과 도구들이 펼쳐지고, 나팔 소리와 함께 호루라기를 불며 등장하는 칼더는 영락없이 1930년대 시골 장터의 서커스 단장이었다. 말이 달리고, 원숭이가 풍선을 불고, 사자가 수레를 타고, 소녀가 외줄건너기를 하는 모습이 재현됐다.

사람들은 열광했고, 많은 아티스트들은 <서커스>의 미학적 측면을 높이 평가했으며, 칼더의 서커스 공연을 보기 위해 명사들이 그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이들 가운데는 장 아르프(Jean Arp), 페르낭 레제(Fernand Leger), 만 레이(Man Ray) 같은 유명한 예술가들이 있었고, 특히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호안 미로(JoanMiro·1893~1983)와 네덜란드 데 스틸의 창시자인 피엣 몬드리안(Piet Mondrian·1872~1944)과의 만남은 칼더에게 하늘이 준 기회였다. <서커스> 작업에서 나아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었기 때문이다.
<서커스>(Circus), 1926년, 휘트니 뮤지엄(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뉴욕
<서커스>(Circus), 1926년, 휘트니 뮤지엄(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뉴욕
(Circus), 1926년, 휘트니 뮤지엄(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뉴욕">
칼더는 1930년 가을, 몬드리안의 스튜디오를 방문했던 사실에 대한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모던’이라는 단어를 전에 들어 보기는 했으나, ‘추상’이라는 용어를 내 머릿속에 이해하거나 피부로 느끼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나이 서른두 살이 돼서, 비로소 추상적인 그림을 그리고 작품을 만들려고 한다.” 칼더가 몬드리안을 만나지 못했더라도 그의 추상작업은 피할 수 없는 시류였을지도 모르지만, 몬드리안의 스튜디오 방문을 계기로 그가 미로의 작품에 대한 이해와 존경이 더해져, 자신의 작업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했던 계기가 됐던 것은 확실하다.

미로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 바르셀로나 출신의 화가이자 조각가로 에스파냐인 특유의 강렬한 꿈과 시정이 감도는 작업과 초현실주의 특유의 어두운 느낌이나 심리 묘사는 순수한 상징 기호로 바꾸어 가는 매력이 있다.

몬드리안은 신조형주의(neo-plasticism)라고 부른 비구상적인 형태를 발전시켰는데, 가로와 세로의 검은 선의 격자(grid)와 빨강, 파랑, 노랑의 삼원색을 사용한 추상 회화는 칼더에게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즉, 미로와 몬드리안의 추상적인 2차원적인 색, 면을 3차원적인 공간으로 바꾸어 움직이는 조각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예술은 모방이다. 부모의 사랑으로 아이가 태어나듯, 모방과 창조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최고의 창조는 최고의 모방에서부터 시작한다. 칼더와 몬드리안의 관계는 피카소와 세잔의 관계와 같고, 현대미술과 원시미술의 뿌리가 맞닿은 것과 같은 이치다.

모빌의 탄생

1931년 겨울, 칼더는 마침내 여러 가지 기하학적인 모형들로 이루어져 동력으로 움직이는 조각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은 이 조각들에 ‘모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조각은 각 부분들이 움직이면서 서로의 관계가 변하기 때문에 그 구조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 다음해에 칼더가 이와 비슷하지만 바닥에 고정되고 움직이지 않는 작품들을 발표하자 장 아르프는 이것들을 ‘스테빌(stabile)’이라고 불렀으며, 이후 칼더도 모빌과 스테빌 용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1932년부터는 대부분의 모빌이 공기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도록 만들어졌다.

칼더의 작품이 처음 주목받게 된 것은 1937년 파리 세계박람회에서였는데, 그는 그곳 스페인 분관을 장식할 수은 분수를 만들었다. 이 조각은 회전 막대에 붙어 있는 판에 와 닿는 수은의 흐름으로 움직였다. 이때부터 칼더의 명성은 유럽과 미국에서 해마다 열리는 전시회들을 통해 계속 높아졌으며, 1943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전시회로 절정에 이르렀다.

1970년대에 칼더는 프랑스에서 투르 근처의 사셰에 작업실을 차렸으며, 그곳에서 그의 주요 스테빌들을 설계하고 자유로운 형태의 평면회화와 채색화들을 실험했다. 대형 작품들을 만들 때는 흔히 작은 모형을 만든 뒤 투르에 있는 주물공장에서 확대했다.

그의 프랑스 작업은 이후 프랑스 곳곳에 공공조형물로서 가치를 빛냈다. 니스 부근의 아름다운 전원도시인 생폴 드 방스 입구에 세워진 커다란 스테빌도 칼더의 열정을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바꾸어 놓은 좋은 사례다.
<모빌>(Mobil), 1955년, 철판과 철선, 페인트, 개인 소장(좌), <별자리 모빌>(Constellation Mobil), 1943년, 철사와 나무, 페인트, 개인 소장(우)
<모빌>(Mobil), 1955년, 철판과 철선, 페인트, 개인 소장(좌), <별자리 모빌>(Constellation Mobil), 1943년, 철사와 나무, 페인트, 개인 소장(우)
(Mobil), 1955년, 철판과 철선, 페인트, 개인 소장(좌), <별자리 모빌>(Constellation Mobil), 1943년, 철사와 나무, 페인트, 개인 소장(우)">
스테빌, 새로운 전환점

칼더는 조각의 재료에 대해 큰 관심을 가졌다. 청동이나 대리석의 무게와 단단함 대신 철사와 나무 같은 다루기 쉽고 유연한 재료를 선택하고, 물체를 허공에서 ‘균형 잡기’와 ‘고정 하기’ 등의 새로운 시도를 했다.

조각에 실재적 또는 암시적 움직임의 도입은 조각 오브제에 관습적인 3차원적 방식을 제거했으며, 또한 선적이고 열린, 평면적이면서도 입체적인 성격을 부여했다.

칼더가 모빌을 처음 시작하면서 여러 모양으로 만든 나무와 동물의 뼈, 생물학적 형태, 그리고 빨간색을 칠한 새로운 플라스틱의 재료인 플랙시글라스를 혼합해 모빌을 만들었다.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내내 칼더는 지표면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오브제인 새로운 종류의 천장에 매어 다는 모빌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그와 동시대의 아티스트들인 장 아르프, 호안 미로, 마르셀 뒤샹 등이 이끌었던 초현실주의 영향으로 모빌에 시각적 형태를 부여한 것도 그의 새로운 도전에 한몫했다.

이렇게 완성된 모빌이 처음 전시됐을 때, 칼더는 제목을 <부피, 궤도 그리고 밀도>라고 명명했다. 후에 칼더는 이 오브제를 <우주> (Universe)라고 부르기도 했다. “내 작품에서 형태의 가장 중요한 점은 그것이 우주적 시스템을 닮았다는 사실이다.

마치 우주에서 떠다니는 독립적인 동체처럼.” 칼더의 언급대로 그의 작품은 철사로 허공에 걸려있어 마치 무한한 우주를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움직이는 조각 그의 모빌이 때로는 태양과 달 그리고 궤도상의 다른 행성들을 우주에서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은 이러한 연유에서 기인한다.
<플라밍고>(Flamingo), 1973년, 뉴욕
<플라밍고>(Flamingo), 1973년, 뉴욕
(Flamingo), 1973년, 뉴욕">1950년대 이후 칼더는 모빌과 함께 스테빌을 점점 크게 만들었다. 도시의 기능 향상과 공공예술품의 요구에 부흥해 만들어진 거대한 스테빌은 칼더의 새로운 전환점이다.

뉴욕 허드슨 강변에 있는 거대한 조각공원 스톰 킹 아트센터(Storm King Art Center) 야외 조각전시장에 칼더의 스테빌 작품이 숲속 나무 사이에 여기저기 설치돼 있다. 그 가운데 <사봇>(Sabot)이라고 명명된 거대한 스테빌이 눈에 띈다.

‘나무 신발’이라는 의미의 이 작품은 철판과 그가 즐겨 사용했던 빨간색이 유월의 초록색 숲을 배경으로 당당하게 서 있다. 자연숲의 경이로움과 빛의 아름다움이 신의 작품이라면 스테빌의 인공미와 바라보는 즐거움은 칼더의 소산이다. 그 아래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은 축복이다.

대가의 겸손

20세기 미술사에서 칼더의 위상은 분명하다. 조각을 안정된 3차원의 형태로 만들거나, 이어붙이고 세우는 것에서 공간에 매어달고 움직이게 해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전 세계 1백여 개 도시에 세워진 아름다운 스테빌과 공공기관, 개인이 소장한 수만 개의 모빌들이 모두 칼더 작품이다. 칼더의 스테빌은 야외 조각품의 개념들을 새롭게 했고, 모빌은 비일상적인 사소한 오브제를 일상적인 예술품으로 만들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었다.

그의 독창적인 상상력과 미감, 색상, 리듬, 움직임의 미학은 새로운 미술의 역사가 됐다. 칼더의 레드 칼라는 철사와 철판이 주는 날카로움과 둔탁함을 오래된 나무처럼 부드럽게 바꾸었다. MOMA의 층과 층을 오르내리는 천장 높은 공간에 설치된 <게잡이 어망과 물고기 꼬리>를 보면, 그의 작품이 얼마나 평화스러운지 마치 물고기가 헤엄치듯 부드럽다.
<게잡이 어망과 물고기 꼬리>(Lobster Trap and Fish Tail), 1939년, 철판과 철선, 페인트, 뉴욕현대미술관, 뉴욕
<게잡이 어망과 물고기 꼬리>(Lobster Trap and Fish Tail), 1939년, 철판과 철선, 페인트, 뉴욕현대미술관, 뉴욕
(Lobster Trap and Fish Tail), 1939년, 철판과 철선, 페인트, 뉴욕현대미술관, 뉴욕">
노년의 칼더가 만든 모빌은 조용하고 평면적이고, 명상적이다. 그것은 생태계 움직임의 재현으로 볼 수도 있고, 순수한 선과 색 그리고 운동의 추상적인 형태로 볼 수도 있다. 그의 모빌은 분명 앞선 예술의 새로운 디자인과 공학적 감각의 총화다.

그의 작품은 우아하고 정교하며 자연스럽고, 공간 조각의 시적 추상이다. “모빌을 바라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모빌은 움직이는 평면적 오브제 이상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에게 그것은 시(詩)가 되기도 한다.”

한평생 모빌을 만들어 세상을 놀라게 하고, 미술사에서 처음으로 조각을 지상에서 허공으로 올려놓은 알렉산더 칼더의 이 말은 지극히 평범한, 그러나 거슬리지 않는, 대가의 겸손이다.

[최선호의 아트 오딧세이] 공간조각의 詩的 추상
글·사진 최선호(화가)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 동 대학원, 뉴욕대 대학원 졸업.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시카고 스마트뮤지움, 버밍햄 뮤지움 등 작품소장. 현재 전업화가.
저서 <한국의 미 산책>(해냄)
111w11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