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Jim Rogers

[창간 5주년 특별인터뷰] 달러를 팔고 위안화를 사라
짐 로저스(Jim Rogers)는 세계 금융계의 ‘인디아나 존스’로 불린다. 고대 유물을 찾아 목숨을 건 탐험에 나선 존스 교수처럼 그 역시 세계 150여 개국을 돌아다니며 ‘모험적인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저스는 한때 조지 소로스(George Soros)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헤지펀드의 대가다.

그러나 ‘월가의 살아 있는 전설’인 그가 지금 주목하고 있는 시장은 헤지펀드도 미국 주식시장도 아니다. 바로 중국과 상품 시장이다.

그는 1998년 직접 원자재지수를 개발해 농산물, 금속, 원유 등 상품에 투자를 해오고 있다. 또 비슷한 시기부터 중국 주식을 사 모아 꽤 높은 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창간 5주년 특별인터뷰] 달러를 팔고 위안화를 사라
짐 로저스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투자자들에게 “미래 재테크 시장은 상품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또 “질주하는 중국에 올라타는 것이 최고의 재테크가 될 것”이라며 “달러화를 팔고 위안화를 사라”고 말하고 있다.

로저스는 지난 2007년에는 아예 거주지를 미국에서 싱가포르로 옮겼다. 그의 자녀에게 최고의 선물이 중국어를 가르치는 것이라는 소신 때문이다.

퀀텀펀드 공동 창업

로저스는 1942년 앨러배마에서 다섯 형제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5세 때 야구장에서 병을 줍는 일로 처음 돈을 벌었다. 어렸을 때부터 자본주의를 몸으로 익혔던 그는 예일대와 옥스퍼드대에서 정치, 철학, 경제를 공부했다.

그는 두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학업 성적이 뛰어났고 조정 선수로도 활동했다. 옥스퍼드대와 캠브리지대 간의 유명한 정기전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가 세계 투자 업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것은 1969년 27세의 젊은 나이에 조지 소로스와 함께 퀀텀펀드를 창업하면서부터다. 퀀텀펀드는 그가 몸담은 12년 동안 누적수익률 3365%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지수의 상승률이 50%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런 수익률은 기적에 가까운 수치였다.

최고의 애널리스트로서 명성을 날리던 1980년 로저스는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37세의 젊은 나이였다. 은퇴 당시 그는 1400만 달러의 재산을 보유했고 펀드로부터 매년 수십만 달러의 배당금을 챙기는 갑부가 돼 있었다.

그는 컬럼비아대 비즈니스스쿨에서 금융론을 가르치고 금융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1990년 2년 동안 오토바이를 타고 세계 일주에 나서 22개월간 52개국, 10만4000km를 여행했다.

또 1999∼2001년에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아 3년간 116개국, 24만3000km를 자동차로 돌아다녔다. 그가 최근 유망 투자처로 북한과 아프리카의 보츠나와를 꼽을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이런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원자재·중국 주식 투자로 유명
[창간 5주년 특별인터뷰] 달러를 팔고 위안화를 사라
사실 퀀텀펀드 이후 로저스의 투자 성적표는 공개된 것이 없다. 그는 로저스홀딩스라는 회사를 세워 개인 자산을 주로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가 1990년대 후반부터 상품 투자와 중국 주식 투자에 열을 올렸고 때때로 자산의 투자 행위를 공개했기 때문에 이를 통해 추정할 수 있을 따름이다.

로저스는 1998년 자신의 이름을 딴 로저스인터내셔널상품지수(RICI)를 만들어 시장에 보급했다. RICI는 원유, 천연가스, 밀, 구리, 금 등 35개의 원자재 상품으로 구성돼 있다.

국내에도 이 지수를 추종하는 원자재펀드가 있을 정도로 꽤 유명한 지수다. 이 지수는 1998년 7월 31일 기준가 1000포인트로 출발했는데 지난 5월 13일 현재 3113.47포인트를 기록했다.

단순 수익률은 200%가 넘는다. 같은 기간 다우지수의 상승률인 78%에 비하면 3배 가까운 수익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그는 중국 증시에도 상해종합지수가 1100포인트대에서 머물던 1998년 후반부터 투자를 시작했다. 현재 상해종합지수는 2696포인트로 145% 올랐다.

그러나 이런 단순 수치로 그의 투자 성적표가 주식시장을 능가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는 상품시세가 급등해 거품 논란이 있던 2008년 7월에 “유가는 200달러까지 상승할 것이고 상품 시장의 강세는 최소 10년 이상 계속된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RICI지수는 2008년 7월 5772를 고점으로 그 해 말에는 2593으로 반 토막이 났다.

주식시장에 대한 로저스의 예언도 빗나간 경우가 적지 않다. 그는 2007년 10월(상해종합지수는 10월 16일 역사상 최고점인 6124포인트를 기록했다)에 “중국 증시는 성장잠재력이 무한하기 때문에 버블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2008년 1월에 9000포인트를 돌파하면 그때 가서 보유주식을 팔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상해종합지수는 이후 1년 만에 1700대까지 주저앉았고 지금도 3000선을 밑돌고 있다(로저스는 1998년 이후 사들인 중국 주식을 지금까지 단 한 주로 팔지 않았다고 한다).

2004년에는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당시 자신이 최대주주로 있는 상품투자 펀드가 선물중개 회사인 레프코에 계좌를 개설했는데 이 회사가 파산한 것이다. 당시 이 펀드의 자금은 무려 3억6000만 달러나 됐다. 결국 로저스는 이로 인해 큰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시장을 꿰뚫은 혜안을 보여준 사례도 많다. 그는 2007년 7월에 “경기 침체로 금융기관의 부실화 가능성이 크다”며 “지금이 미국 금융 서비스 업종에 대해 공매도를 하기 가장 좋은 기회”라고 주장했다. 잘 알려진 대로 이후 금융주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주가가 곤두박질치게 된다.

워런 버핏과 논쟁

로저스만큼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그루도 드물다. 그는 특히 2006년 이후 CNBC 방송,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WSJ) 등 주요 언론에 수시로 등장해 시장에 대한 조언을 하고 있다. 또 각종 심포지엄과 투자 설명회에도 적극 참여한다.

그의 홈페이지(www.jimrogers.com)에 가보면 5월과 7월에 걸쳐 예정돼 있는 네 차례의 강연 일정을 볼 수 있다. 이는 그가 특정 조직에 얽매이지 않은 개인투자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특정 사안이나 시장 전망을 놓고 다른 유명인들과 논쟁에 휘말린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7년 10월 서브프라임 위기 직전에 중국 증시에 대한 전망이었다. 당시 그는 “중국 증시는 버블이 아니며 2008년 초 9000포인트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주장해 워런 버핏의 논조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당시 버핏은 “중국처럼 단기간에 급등한 시장에는 항상 회의적”이라며 “중국 기업 주식의 매입은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버핏은 실제 페트로차이나 지분을 모두 처분하는 등 중국 시장에서 발을 뺐다. 결과는 버핏의 완승이었다.

2009년 7월에는 로저스가 공교롭게도 반대 입장에 섰다. 그는 2008년 말 1800대였던 중국 증시가 7월 말 3400대까지 치솟자 “중국 증시가 지나치게 빨리 상승해 폭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반면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케네스 피셔 피셔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중국의 경기부양책이 효력을 발휘한 것”이라며 “중국 경제는 붐(boom)을 앞두고 있다”고 낙관론을 폈다. 중국 증시는 로저스의 예언대로 8월 초 3400대를 고점으로 하락하기 시작해 한 달 만에 2600대까지 폭락했다.

로저스는 2009년 11월 금 가격을 놓고 대표적인 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 교수와 독설을 주고받았다. 루비니 교수는 로저스를 겨냥해 “금 가격이 온스당 1100달러 선까지는 갈 수 있겠지만 1500달러, 200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란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상품 가격이 많이 오른 만큼 상품 가격은 횡보나 하락세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로저스는 “향후 1∼2년 내에 외환 위기가 올 가능성이 높다”며 “금값은 10년 내에 2000달러까지 갈 수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창간 5주년 특별인터뷰] 달러를 팔고 위안화를 사라
농산물이 가장 유망

요즘 로저스가 투자자에게 권하는 최고의 투자처는 중국 증시도, 원유도, 금도 아니다. 바로 농산물이다. 그는 최근 증시에 대해서는 오히려 조정을 경고하고 있다. 또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유로존에 대해서는 해체가 불가피하다며 독설을 퍼붓고 있다. 파운드화에 대해서는 “내 생애 투자할 일이 없을 것”이라며 달러보다 못한 화폐로 치부하고 있다.

반면 “농산물 재고량이 수십 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어 조만간 농산물과 농지 가격 상승이 일어날 것”이라며 농산물 투자에 관심을 쏟을 것을 권하고 있다. 그는 가격이 상대적으로 부진한 면과 커피가 매력적이고 설탕도 괜찮다고 평가했다.

특히 상품은 인플레이션 헤지 기능이 있는 만큼 향후 수요 증가는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금속 원자재 중에서는 최고가 행진을 하고 있는 금보다는 최고가 대비 절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은이 더 유망하다고 추천했다.

RICI 농산물지수는 지난 5월 13일 현재 895.22로 지난 2004년 11월 30일(1000포인트) 처음 만들어진 이후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래서 그의 이런 예언이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태완 한국경제신문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