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 사케>의 저자

[For Sake Lovers] 김정한이 풀어놓은 사케, 제대로 즐기는 법
피규어 제작자인 김정한 씨는 10년 전 출장길에 들른 일본의 한 온천에서 처음 접한 사케의 맛을 잊지 못해 현지 양조장들을 찾는 순례를 시작했다. <知, 사케>는 그동안의 노고가 고스란히 담긴, 흔하지 않은 사케 책이다. 10년 내공의 사케 고수와 사케를 앞에 놓고 마주 앉았다.

처음 김정한 씨를 소개한 출판사 사장은 저녁에 만나 사케를 한 잔 하자고 했지만 인터뷰는 낮에 이루어졌다. 술자리가 부담스러워 점심시간을 택했기 때문이다. 인터뷰 자리인 일식 전문점에서 김씨를 만났을 때, 기자는 술자리를 피할 수 없음을 알았다. 점심 반주로 좋다며 그가 사케 병을 들어보였기 때문이다.

김씨가 내민 사케 병에는 레이잔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가 책에서 ‘아소산의 신령한 기운’이라고 소개한 사케였다. 그는 레이잔을 “가장 구마모토(熊本)다운 술이면서도 가장 구마모토답지 않은 술”이라고 소개했다.

레이잔은 향토 음식과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는 점에서는 구마모토 술임에 틀림없지만, 묵직하면서도 투박한 맛이 특징인 기존의 구마모토 술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구마모토답지 않은 술이기도 하다.

레이잔을 잔에 채우며 시작된 그의 사케 이야기는 두 시간 동안 이어졌다. 주량이 소주 3병 정도의 애주가인 그는 사케를 알기 전에는 맥주와 막걸리를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막걸리를 좋아했다. 막걸리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한참을 막걸리의 발효 과정과 다양한 맛, 그리고 사케와의 차이점 등을 말했다. 막걸리에 대한 설명이 끝난 후에야 사케와의 인연을 들을 수 있었다.

그의 본업은 피규어 제작자다. 자신도 일본에서 열리는 피규어 전시회에 참가하고, 국내 제작자들에게 전시 참가에서 계약에 이르는 업무를 진행해주기도 한다. 덕분에 일본 출장이 잦았다. 그러다 사케의 매력에 빠졌다.

“2000년 겨울이었습니다. 도야마현(富山縣)의 작은 온천 여관의 주인이 내놓은 사케를 마셨는데, 맛이 그만인 거예요. 가치코마라는 술이었어요. 몇 잔을 거푸 마시고는 여관 주인에게 ‘어떻게 이런 맛을 낼 수 있느냐’고 채근했죠.

제 물음에 여관 주인은 조용히 왼쪽 가슴에 손을 얹으며 ‘이 술은 가슴으로 만든 술입니다. 술 빚는 이가 이 고장에서 나는 재료를 가지고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든 술이지요’라고 하더군요.”

그날 이후 김씨는 사케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1년에 대여섯 차례 일본을 드나드는 직업 덕에 그는 많은 일본 사케를 맛보고, 그 장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선 양조장과 양조장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김씨는 단순히 즐기는 것을 넘어 사케 장인인 사카쇼(酒匠) 자격을 얻으려 한다. 사카쇼는 일본 소주와 사케에 관한 최고 전문가로 전 세계적으로 150여 명 정도가 있다.

이 모두가 사케의 매력 때문이다. 그는 사케의 가장 큰 매력을 동양 음식과의 궁합에서 찾는다. 육류 요리 중심의 서양과 달리 동양인들은 곡물이 주식이다. 곡물로 만든 음식에는 곡물로 빚은 술이 가장 잘 맞는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그중에서도 쌀로 빚은 술이 최고라고 말한다.

최근 유행하는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와인과 사케는 다르다고 했다. 와인은 품종에 따라 와인의 맛도 다르지만, 쌀은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거기에 따라 사케 맛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쌀의 종류보다는 장인의 손길에 따라 사케의 맛이 달라진다. 물론 닮은 점도 있다. 와인 메이커들처럼 사케 장인들도 소명의식을 갖고, 당장 수익이 없더라도 좋은 사케를 만드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점이다.

“최근 한국에도 사케 애호가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하지만 좋은 사케를 마실 기회가 적다는 게 늘 아쉬웠습니다. 잘못된 정보도 많습니다. 한국에서 좋은 사케로 평가받고 비싸게 팔리는 사케 중에 일본에서는 중간 정도 밖에 미치지 못하는 사케도 많습니다.”
[For Sake Lovers] 김정한이 풀어놓은 사케, 제대로 즐기는 법
김씨는 <知, 사케>에서 일본에서 유명한 사케 32종을 소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사케를 꼽으라고 하자, 한참을 망설인 후 주욘다이를 추천했다. 그가 책에서 ‘프리미엄 지자케의 새로운 정점’이라고 극찬한 술이다.

주욘다이는 일본에서도 최고의 사케로 통한다. 주욘다이는 도호쿠(東北) 지방의 야마가타현(山形縣), 다카키슈조에서 만들었는데, 다카키슈조는 1615년 문을 연 4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양조장이다.

쥬욘다이 중에서 가장 저렴하면서도 인기가 있는 높은 술이 혼죠조슈다. 혼죠조슈의 가격은 2205엔이지만 정가에 술을 구입하기란 어렵다. 인터넷을 통하면 1만4000엔대,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1만6000엔대에 판매되고 있다. 주욘다이가 만드는 대부분의 술이 혼죠조슈처럼 정가보다 6~7배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가모시비토 구헤지도 최근 일본 애호가들이 가장 알아주는 술이다. 한국말로는 ‘술 빚는 구헤지’ 정도로 해석된다. 이 술은 양조장 주인인 구헤지가 ‘일본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이 많듯이, 서양 요리와 어울리는 사케도 있다’는 자존심으로 만든 사케다.

여러 양조기술을 종합해 1997년 나온 가모시비토 구헤지는 일본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2004년부터 미슐랭 스리 스타에 빛나는 프렌치 레스토랑 귀 사부를 비롯해 스푼, 호텔 리츠의 와인 리스트에 올랐다.

“좋은 사케는 물처럼 부드럽게 넘어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케는 지역마다 추구하는 맛이 다르기 때문에 ‘이것만이 좋은 사케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장인이 혼신의 힘을 다해 빚은 사케는 아무래도 맛이 다르겠죠. 좋은 사케에서는 장인의 그런 자부심과 혼을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글 신규섭·사진 이승재 기자 wa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