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지니스 와인 매너] 디너파티에서 호스트와 게스트가 지켜야 할 매너와 룰
지난 컬럼에선 와인 테이스팅을 이야기했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나와 와인 간의 만남에 관한 것이다. 이번에는 함께 마시는 이들 간에 지켜야 할 예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제법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와인 매너가 화제가 된 일이 있다. 김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와인 잔을 들고 함께 건배하던 순간 클로즈업된 손들. 아뿔싸! 우리 측 관계자 상당수가 와인 잔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쥐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에 비해 북한 측 고위관계자들은 우아한 동작으로 스템(와인 잔의 다리 부분)을 쥐고 건배를 제창하고 있었다. 게다가 김 전 대통령은 건배하는 잔을 바라보고 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우리 대통령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비에 싸인 ‘독재자’ 김정일이 ‘미스터’ 김정일로 세련되게 데뷔를 하는 순간이자 능숙한 와인 매너 하나가 사람의 대한 인식을 바꿔놓는 순간이었다.

모든 매너가 그렇겠지만, 비즈니스 모임이나 사교 모임에서 주로 발휘되는 와인 매너는 그 사람의 교양 수준과 이미지, 나아가서는 취향까지 반영한다. 따라서 와인을 아는 것 못지않게 와인 매너를 익히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모임을 주관하는 호스트가 알아두어야 할 매너

와인 모임을 주관할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 와인의 선택과 수량이다. 이 역시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정답은 없다. 때문에 준비하는 이들이 더욱 난감할지도 모른다. 특별히 지정된 와인으로 대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와인의 가격대는 1인당 소요되는 식비보다 조금 높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와인도 요리도 가격이 높아질수록 질이 좋아지기 때문에 비슷한 수준을 맞춘다는 의미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고가의 와인을 접대할 때 그 와인보다 조금 낮은 가격의 식사를 선택할 수는 없는 일이니 이는 예외로 두자.

와인의 수량도 호스트의 고민거리 중 하나다. 식사 자리가 아니라 건배를 위해 와인이 필요한 자리라면 한 병 정도가 적당하다. 와인 파티에는 5인당 한 병 정도를 기준으로 준비하면 무리가 없다. 가벼운 식사자리가 아닌 정찬 모임에서는 코스에 맞춰 와인의 종류를 달리하고 순서에 맞게 서빙해야 한다.

통상 식전주로 셰리나 샴페인을 마시고 전채요리가 나올 때 화이트 와인, 메인요리는 주재료가 해산물이냐 육류냐에 따라 무거운 화이트 와인 혹은 레드 와인이 서빙 되고, 마지막으로 디저트엔 디저트 와인을 마시게 된다.

분위기가 좋아 디저트 와인을 마신 후에도 자리를 파하지 않는다면 그라파(grappa: 마르크, 오루호라고도 불림)나 브랜디 등과 같은 알코올 농도가 높은 증류주를 테이블에 올리는 것이 좋다.

그라파는 와인을 양조하고 남은 포도과육과 껍질, 씨를 발효한 후 증류해 만든 증류주로서 알코올 도수는 약 40% 안팎이다. 반면 브랜디는 와인을 증류해 만든다. 브랜디 중에서 프랑스 코냑 지방에서 나는 것이 코냑이다.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주문하면 소믈리에는 가장 먼저 주문자 즉 호스트의 잔에 와인을 약간 따른다. 자리의 좌장이 첫 잔을 받는 우리 주도와 달라 당황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와인을 대접하는 호스트가 미리 와인의 상태를 점검하는 행동이다.

호스트는 자신의 잔에 따라진 와인의 향과 맛, 온도 등을 점검하고 이상이 없을 경우 소믈리에에게 서빙을 요청한다. 여성에게 먼저 따르고 호스트의 우측부터 돌아가면서 와인을 따른 후 마지막으로 호스트의 잔을 채우게 된다. 보통 건배는 호스트의 몫이다.

만약 와인을 잘 몰라 와인 상태를 점검하는 호스트 테이스팅에 자신이 없다면 동석자 중 와인을 잘 아는 이에게 겸손하게 요청을 해도 흠이 되지 않는다.

[비지니스 와인 매너] 디너파티에서 호스트와 게스트가 지켜야 할 매너와 룰
와인 받기와 잡기, 그리고 건배


소믈리에가 와인을 따를 경우는 괜찮지만, 호스트나 웃어른이 와인을 따를 때 한국인들은 난감함을 느낀다. 웃어른의 술은 두 손으로 받쳐 들던 습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고 섬세한 와인 잔을 두 손으로 받치고 와인을 받는 것은 보기에도 좋지 않고 위험한 일이다. 자칫 와인 잔과 병이 부딪혀 깨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와인 잔은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받는 것이 매너다.정히, 그냥 잔을 받기에 민망하다면, 와인을 받을 때 잔 받침 위에 한 손을 가볍게 얹고 존경과 예의를 표하기 위한 감사의 인사와 미소를 보내는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내 잔이 차더라도 모두의 잔이 다 차기 전에는 와인 잔을 들어 올리지 않아야 하며, 모두의 잔이 찬 후 건배 제의가 온다면 스템을 잡아 손의 온도가 와인에 전달되지 않도록 하고 상대의 눈을 보며 잔을 살짝 기울여서 잔의 가장 넓은 부분끼리 가볍게 부딪히도록 하면 된다. 자리가 넓어서 멀리 있는 사람에게까지 잔을 부딪칠 수 없으면 잔을 들어 올리고눈을 마주치면서 건배하는 것 같은 시늉을 하면 된다.

한국의 주도는 한 잔을 다 마시고 빈 잔일 때 상대방에게 따라주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와인은 빈 잔이 될 때까지 기다리면 실례가 된다. 와인 잔의 3분의 1에서 2분의 1 정도까지 따르는 것을 적정하다고 보는데, 눈으로 이 정도가 가늠이 어렵다면 잔의 가장 넓은 부분까지 와인을 따르면 된다.

샴페인은 4분의 3에서 5분의 4까지다. 와인을 마시다가 상대 잔의 와인이 이 적정선보다 아래에 있다면 와인을 따라 처음 수준으로 채워주는 것이 좋다. 만약 와인을 더 받기 싫다면 첨잔할 때 글라스 입구에 살짝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이는 와인을 더는 마시지 않겠다는 신호다.

와인 잔에 와인을 넣고 돌리는 것(스위릴링·swirling)은 와인과 산소의 접촉을 촉진시켜 와인의 향이 보다 풍부하게 깨어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와인을 더욱 맛있게 마실 수 있는 동작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찬 중에는 원칙적으로 잔을 돌리지 않는 것이 좋다. 정찬은 시음이 목적이 아니라 식사와 와인의 마리아주, 그리고 동석자와의 교류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호스트나 게스트가 특별한 와인을 준비해 개봉했다면 스위릴링이 허용된다. 이는 좋은 와인과 그것을 준비한 이에 대한 찬사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와인에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외엔 정찬 중에 잔을 돌리거나 와인과 함께 공기를 흡입하는 등의 시음 동작은 삼가는 것이 원칙이다.

이철형
국내 최대 와인 전문 유통 기업 ㈜와인나라 대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