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t Issue] 1석 4조의 장점 ‘역외 펀드’ 선택 폭 넓고 통화 분산 효과도
지난해 말 국내에서 설정된 해외 펀드에 대한 비과세 제도가 폐지되면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역외 펀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역외 펀드란 한국 이외의 국가에서 만들어지고 운용되는 펀드를 일컫는다.

해외 펀드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져 전 세계를 대상으로 투자하는 ‘국산’ 펀드라면, 역외 펀드는 투자 지역은 같으나 외국에서 만들어지고 운용되는 ‘수입’ 펀드다. 특정 국가의 투자자가 아닌 전 세계에서 투자 자금을 받아 운용하기 때문에 한국 투자자들이 역외 펀드에 가입하게 되면 세계 각국에 있는 투자자들과 동일한 펀드에 가입하게 되는 셈이다.

역외 펀드는 해외 투자 펀드 초창기 시장을 휩쓸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06년 말 역외 펀드 판매 잔액은 12조8913억 원으로 국내에 설정된 해외 펀드(9조6782억 원)보다 30% 이상 많았다.

하지만 해외 펀드에 대한 비과세 조치 이후 해외 펀드가 주류로 부상했다. 해외 주식 매매차익에 대해 15.4%(주민세 포함)의 세금을 물지 않아도 되자 세후 수익률에서 확연히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역외 펀드는 2007년 말 8조9266억 원으로 감소한 데 이어 2008년 말 1조9400억 원 수준까지 급감했으며 작년 말에는 1조7214억 원까지 쪼그라들었다. 반면 해외 펀드는 2007년 해외 펀드 열풍 속에 그해 말 59조2140억 원까지 급증했다.

하지만 그동안 불리하게 작용했던 매매차익 과세에 대한 부분이 해외 펀드와 동일해짐에 따라 역외 펀드가 지닌 여러 장점과 다양한 상품들로 투자 수요를 견인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Market Issue] 1석 4조의 장점 ‘역외 펀드’ 선택 폭 넓고 통화 분산 효과도
지난 2월 말 기준으로 국내에 역외 펀드 운용자산을 가지고 있는 운용사는 10개 사다. 1000억 원 이상 운용 잔액을 가진 회사는 피델리티자산운용, 블랙록자산운용, 슈로더투신운용 등 3개 사에 불과하다.

특히 피델리티는 7819억 원으로 전체 역외 펀드 운용자산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판매사 기준으로는 외환, 신한, 한국씨티 등 은행권의 판매 비중이 85%에 이르며 나머지는 증권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역외 펀드는 기준통화가 달러화나 유로화 등 외화이며 환 헤지, 결산, 환매 기준일 등에도 해외 펀드와 차이가 있다. 특히 연결산이 없어 매년 1회 결산으로 세금을 떼고 재투자되는 해외 펀드에 비해 재투자되는 규모가 커 증시가 똑같이 올라도 수익이 높아질 수 있다(표 참조).

국내에서 만들어진 해외 펀드와 비교할 때 역외 펀드의 장점은 크게 네 가지다. 우선 장기적인 운용기록이다. 해외 펀드는 대부분 2007년 이후에 출시돼 운용기록(트랙레코드·track record)이 3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대부분의 역외 펀드들은 20년에 가까운 운용기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투자자들이 적합한 펀드를 선택할 수 있는 기준이 명확하다는 이점이 있다.

펀드 운용 규모도 큰 편이다. 펀드가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일정 크기 이상의 펀드 규모가 필수적이다. 해외 펀드의 경우 전체의 절반 이상이 100억 원 미만인데 비해 역외 펀드는 대부분의 펀드가 1000억 원 이상의 운용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투자 대상이 다양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역외 펀드는 세계 각국의 투자자들의 선호를 만족시키기 위해 투자 자산과 지역, 섹터에 따라 다양한 상품이 있다. 반면 해외 펀드는 중복 상품이 많고 국내 투자자에게 인기가 없는 펀드는 출시조차 안 되고 있다.

역외 펀드는 통화 분산 효과도 있다. 분산 투자는 자산과 투자 지역, 스타일, 투자 시점, 통화 등을 나누는 것이다. 국내 투자자의 경우 다른 분산은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으나 통화 분산에는 취약하다.

해외 펀드는 90% 이상이 펀드 내에서 자동 환 헤지가 돼 통화 분산 효과를 얻을 수 없다. 역외 펀드는 외화에 직접 투자해 통화 분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에 따라 투자국 화폐가 강세를 보일 경우 환차익을 덤으로 얻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원화가 강세를 보이면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이때는 환매 후 당분간 계좌에 외화 상태로 예치해 놨다가 나중에 환전하는 것이 좋다. 아니면 외국 통화가 필요할 경우 인출해 쓸 수도 있다.

이연승 피델리티 마케팅부장은 “역외 펀드는 포트폴리오 분산 차원에서 보다 다양한 해외 투자 상품을 원하는 투자자에게 적합하다”며 “잠재적인 외화 수요자나 외화계정 보유자, 고액자산가, 장기 적립식 투자자들이 가입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Market Issue] 1석 4조의 장점 ‘역외 펀드’ 선택 폭 넓고 통화 분산 효과도
역외 펀드는 오랜 운용 경력을 가진 외국계 운용사들이 주로 국내에 출시하고 있다. 피델리티는 현재 국내에 76개의 역외 펀드를 출시하고 있다. 이 운용사는 경기나 원자재 관련 세계적 기업에 투자하는 ‘피델리티 글로벌 기간산업 펀드’와 ‘피델리티 글로벌 헬스케어 펀드’를 적극 추천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헬스케어 업종은 저성장 국면에서 안정적인 이익과 방어적인 성향을 보이는 데다 현재 주가수준(밸류에이션)도 매력적인 것으로 피델리티는 분석하고 있다.

블랙록도 글로벌 자산배분 펀드, 월드 광업주 펀드 등 52개의 블랙록 글로벌 펀드를 국내에 등록해 팔고 있다.

블랙록은 재정지출 확대가 경기 부양의 주요인이 되고 있는 선진국과는 달리 이머징마켓은 소비 수요가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며 선진국보다 이머징마켓에 대해 낙관적 전망을 갖고 있다. ‘글로벌 자산배분 펀드’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시장 상황에 따라 적절히 자산을 배분해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상품이다.

슈로더는 ‘슈로더 QEP 글로벌액티브밸류 펀드’를 추천하고 있다. 이 펀드는 비교지수(벤치마크)나 스타일, 섹터 등에 구애받지 않고 슈로더 고유의 분석 기법을 활용해 저평가된 글로벌 가치 주식 상위 30%에 적극 투자하는 글로벌 주식형 펀드다.

김지은 슈로더투신 이사는 “저평가된 500개 이상의 가치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 종목이나 섹터, 국가 위험이 분산돼 최근과 같이 시장의 변동성이 심한 시기에 투자 대상으로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프랭클린템플턴도 자산 유형별, 지역별, 통화별로 다양한 역외 상품을 국내 투자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총 41개 역외 펀드가 등록돼 15개 국내 은행 및 증권사를 통해 판매되고 있다.

이 운용사의 대표적인 역외 펀드로는 아시안 그로스 펀드, 이스턴 유럽 펀드, 글로벌 토털리턴 펀드 등이 있다. 서동필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세제상 불리함이 사라지면서 역외 펀드의 투자 매력이 높아질 수 있는 상황”이라며 “외국계 자산운용사들도 역외 펀드 마케팅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국내 운용사인 미래에셋자산운용도 룩셈부르크에 설정한 역외 펀드를 역으로 국내에 도입 출시했다. 중국의 업종대표 주식에 투자하는 ‘차이나 업종대표 펀드’와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태평양 13개국에 투자하는 ‘아시아퍼시픽주식 펀드’ 간 전환형 펀드인 ‘미래에셋 글로벌디스커버리 펀드’를 판매 중이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