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의 개혁 문제가 본격적으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모기지 사태와 유럽 재정 위기 등에 따른 거듭된 금융위기를 사전에 경고하지 못한 책임론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후에 문제가 된 국가의 신용 등급을 몇 단계씩 한꺼번에 떨어뜨려 금융 불안을 더 키웠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이미 관련된 국제기구와 각국 정부는 국제신용평가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규제 방안을 다양한 각도에서 마련해 왔다. 이제 거의 확정된 미국의 ‘금융개혁법’에서도 모든 금융사에 대한 평가와 감독 과정에서 신용평가사에 대한 의존도를 점차 줄여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일부에서는 이 같은 방침이 기존 국제 신용평가사와 별도로 정부 차원에서 독립적인 평가사를 신설해 나가는 사전 작업이라고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3대 신용평가사 위주의 독과점 구조가 가장 큰 문제

이번 사태 이전부터 최근과 같은 문제가 자주 발생해 온 것은 3대 평가사들에 집중된 독과점적인 시장 구조가 가장 큰 요인이다. 3대 신용평가사들의 미국 시장점유율은 95% 정도이며 유로 지역에서도 상당한 점유율을 차지한다.

미국 신용평가 시장에서 과점도를 나타내는 HHI(herfindahl-hirschman index·허핀달-허쉬만지수)가 모든 부문에서 독과점 시장 여부의 판단 기준인 1800를 초과할 뿐만 아니라 그 정도가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

이처럼 ‘독과점’으로 비유되는 신용평가 시장에서 3대 평가사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만큼 그동안 많은 문제점이 지적돼 왔으나, 그 문제점을 지적하는 자체가 불이익을 당할 것으로 예상해 실질적으로 개혁 요구나 개혁이 이뤄지지 않아 왔다. 특히 이 점은 신용평가사를 많이 이용하는 고객일수록 불만이 많았던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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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현행처럼 신용평가를 받는 피평가자가 수수료를 전부 부담하는 체계에서는 평가사와 피평가자 간의 이해상충 문제가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

1960년대까지는 채권 투자자가 수수료를 지급(investor-pays model)했으나 무임승차 문제가 나타남에 따라 1970년대 이후 지금과 같이 발행자가 수수료를 지급하는 체계(issuer-pays model)로 전환됐다.

이 때문에 수수료를 부담하는 피평가자(신용평가사 입장에서는 주요 고객)들의 등급쇼핑(rating shopping)을 의식해 평가 기준을 관대하게 적용하는 경향이 문제로 지적돼 왔다.

피평가자는 자신에게 가장 양호한 등급을 부여하는 기관을 선택하기 위해 사전에 기관별 신용등급을 비교하는 경향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3대 신용평가사들의 평가에 따라 생존이 좌우되는 피평가자의 경우 등급쇼핑을 하기 위해 평가사 옆에 아예 전담하는 현지법인을 설치하는 회사들이 많았다.

결과적으로 이런 독과점 시장에서 구조화 증권 시장의 급성장으로 신용평가사의 수익이 크게 확대되자 이와 관련된 평가 업무에 모기지 사태 이전 수년 전부터 집중해 왔고 전반적으로 우호적으로 평가하는 악순환이 반복돼 왔다.

대표적으로 미국 무디스사의 경우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가 급증한 시기에 구조화 증권과 관련된 평가 업무의 매출과 수익 비중이 크게 확대됐다.

일부에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 발행기관인 대형 투자은행(IB)들이 일반 채권보다 수수료율이 높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의 투자 자금을 원활히 유치하기 위해 신용등급 설정 과정에 개입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미 증권관리위원회(SEC)는 신용평가사 직원들이 수수료 협상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시장점유율 제고를 위해 평가 방법을 재검토한 사례도 여러 차례에 걸쳐 적발한 적이 있다.

이 같은 행위들은 신용평가의 가장 기본이 되고 철저하게 지켜야 할 ‘평가사와 피평가자 간의 분리 원칙’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발생시켜 결과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모기지 사태와 같은 대형 금융위기를 낳았고 이제는 해당 금융사들도 이 문제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통상적으로 구조화 관련 상품은 일반 채권과 성격이 크게 다른 증권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채권과 같은 방법으로 신용등급을 표시하고 있어 투자자들에게 혼란을 초래한다.

구조화 상품의 신용등급은 기초자산 간 상관관계, 부도율 등과 같은 평가모형의 전제조건 변화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작은 오차에도 등급이 큰 폭으로 변동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등 관련 기관에 따르면 최고 등급인 ‘트리플 A’였던 부채담보부증권(CDO)의 신용등급이 기초자산 간 부도상관계수나 부도율 상승 시 4단계 이상 급락하는 경우도 발생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뿐만 아니라 구조화 증권 시장의 역사가 짧아 시계열 자료가 부족한 것도 개발된 신용평가모형의 신뢰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특히 모기지 관련 상품의 경우 주택 가격 상승을 전제로 모형이 설정돼 있어 주택 가격 하락 시에는 예측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 때문에 2007년 7월 피치는 지난 50년 동안 미국의 주택 가격이 상승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지나치게 큰 비중을 두어 신용평가모형을 구축했는데, 주택 가격 하락 시에는 이 모형이 완전히 쓸모없게 될 수 있음을 인정한 적이 있었다.

미 SEC 등 관련 기관이 3대 신용평가사 개편 작업에 착수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후 미국, 유럽연합(EU), 국제증권관리위원회(IOSCO) 등이 신용평가와 관련된 다양한 규제 방안을 마련해 왔다.

미 SEC는 2007년 8월부터 3대 국제신용사의 신용평가 과정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고 관련 규정을 개정해 지난해 4월 중순부터 시행해 오고 있다.

지금까지 마련된 개혁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신용평가사의 독과점적 지위에 따른 집중 효과와 이에 따른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정보 공시, 투명성, 책임감 등을 대폭 강화한 점이다.

IOSCO는 각 신용평가사 홈페이지에 신용평가 방법론, 과거 실적 자료 등을 공개하고 신용등급 산정모형에 대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개선방안 마련을 권고했다.

미국과 EU 당국도 이 같은 내용을 대부분 적용한 가운데 애널리스트들의 신용등급에 대한 이의 신청 내용, 구조화 증권 신용등급 부여 시 관련 기록 보관 등을 의무화했다.

특히 EU는 미국 신용평가사에 편중된 과점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유럽 단독으로 신용평가사 설립을 추진해 신용평가 시장에서 미국에 의한 윔블던 효과(wimbledon effect)를 줄여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유럽 재정 위기를 계기로 보다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재정 위기도 미국의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유럽이 금융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과정에서 사후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의 신용등급을 잇달아 떨어뜨려 더 심화시켰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점으로 지적돼 온 이해상충 문제와 관련해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는 신용평가사 관련 이해관계에 대한 공시 확대, 신용평가 업무의 독립성 확보 등과 같은 이해상충 방지 장치를 마련했다.

IOSCO는 등급쇼핑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신용평가사의 의견을 공개하는 한편 신용평가사 연 수익의 10% 이상의 수수료를 지급하는 개별 채권 발행자(big customer)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도록 권고했다.

또 신용평가 서비스에 대해 명확한 보상체계를 확립하고 신용평가할 구조화 관련 증권 설정에 대한 자문 서비스를 금지할 것을 제안했다.

미 SEC와 EU 집행위원회도 이 같은 IOSCO의 권고를 대부분 수용하거나 강화해 적용하거나 적용해 나갈 방침이다. 미 SEC는 신용평가사의 애널리스트가 신용평가 대상기관 등으로부터 25달러 이상의 선물과 향응을 받는 것을 금지했다.

EU 집행위원회도 신용평가사 연 수익의 5% 이상을 차지하는 채권발행자 등에 대한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는 한편 이사회에 3인 이상 사외이사를 임명토록 하는 규정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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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등급의 신뢰성·정확성 제고해 ‘투자자 안내’ 역할 강화에 주력

신용평가사의 생명인 신용등급의 신뢰성과 정확성을 제고하기 위해 평가모형과 방법론에 대한 정보공시 확대, 구조화 관련 증권의 신용등급 표시방법 개선, 평가직원 순환 근무 등의 방안을 마련했다. 미 SEC, EU 집행위원회, IOSCO는 신용등급 평가에 활용된 모형과 평가 방법을 공개토록 규정했다.

또 구조화 관련 증권의 손실 가능성과 미래 현금 흐름 등에 대한 정보를 별도 제공하고 신용등급의 민감도를 표시하는 한편 각 채권별 신용등급 설정 업무에 대한 특성과 한계점을 명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국제결제은행(BIS) 등은 기존 신용등급 뒤에 신용등급 변동성(v), 신뢰도(c), 독립변수의 질적 정보(q) 등을 나타내는 새로운 기호를 추가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최근의 규제 강화에도 불구하고 이해상충 문제의 주요인인 피평가자의 수수료 부담체계, 신용평가모형 개발에 이용될 시계열 자료 부족, 과점적 시장 구조 등의 문제점은 여전히 상존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 금융상품이 복잡해지면서 신용 등급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신종 금융상품에 대한 규제방안도 마련돼야 할 필요가 있다.

주요 국가의 금융 감독당국도 은행의 자기자본 규제, 중앙은행의 적격담보 요건, 투자 대상 증권 기준 등을 정함에 있어 신용평가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자체적인 평가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 모기지 사태와 유럽 재정 위기를 계기로 미국과 유럽 이외의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이런 움직임이 속속 가시화되고 있다.

특히 신용평가사들의 평가가 글로벌 금융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들 기관에 대한 감시·감독과 관련한 국제적 공조를 더욱 강화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IOSCO의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총 21개 조사대상 기관 중 7개 기관만이 IOSCO가 신용평가 기관 운영 지침을 이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는 보다 많은 국가들이 이 지침을 따르도록 노력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번 기회에 아시아 지역뿐만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도 세계 3대 신용평가사들과 견줄 수 있는 독립적인 신용평가사를 설립해 국제적인 기관으로 육성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현재 진행 중인 아시아 지역 내 각종 금융 협력 방안에 이 내용을 최우선 과제로 강력히 추진해 나가야 한다.

우리도 국내 신용평가사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 이런 과제를 달성해야 그 어느 시장보다 심한 신용평가 시장에서 윔블던 효과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동시에 제2의 외환위기를 사전에 방지해 나갈 수 있다.

한상춘 한국경제신문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