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쌍의 조각이 돋보이는 스가벨로
한 쌍의 조각이 돋보이는 스가벨로
중국으로부터 도입된 인쇄술이 도착하자 소수 귀족들이나 성직자의 전유물이었던 지식이 대중들에게 확산되고 정보 교류도 신속해졌다.

뿐만 아니라 화약이 전쟁 방식을 바꾸어놓으면서 요새의 개념이 고급 저택의 신축으로 전환된다. 또한 나침반으로 인해 세계관이 완전히 바뀐다.

이슬람으로부터도 문화적 유산을 접촉하고 아라베스크 같은 문양을 도입하거나 마욜리카(maiolica)와 같은 도자기,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고전들이 중세를 거치면서 영향을 미친다.

새로운 산업의 기회가 유럽을 뒤흔들고 있을 15세기 즈음 이탈리아는 그 중심에 선다. 중세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을 풍미했던 저급한 스타일, 고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르네상스는 발달한다. 그리고 르네상스 스타일은 알프스를 넘어 프랑스, 독일 등지에서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고딕 양식을 일순간에 구닥다리로 밀어냈다.
일종의 카사판가로 수도원의 전통과 상통하는 디자인이다.
일종의 카사판가로 수도원의 전통과 상통하는 디자인이다.
건축 분야에서 15세기 르네상스의 불을 당긴 것은 피렌체의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1377~1446)다. 브루넬레스키는 로마로 가서 고대 건축을 연구하고 합리성, 명쾌성, 간소함 속에 질서정연한 균형을 지키고 있는 고대 건축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피렌체의 ‘꽃의 대성당’에 돔을 무시하고 획기적인 기획 설계도를 출품, 입선했다. 이는 르네상스의 큰 물결 속에 하나의 전환점으로 기록된다.

백여 년 전 야코프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1818~97)가 쓴 가장 유명한 문화사 <이탈리아에서의 르네상스 문화>라는 책이 16세기 이탈리아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기 때문에 이때부터 비로소 이탈리아와 르네상스 시대의 역사는 문명사 전반에 토론의 주제가 되고 인류사상 가장 정열적인 연구 대상의 시대로 부각된다.

그러나 사실은 12세기를 르네상스로 보는 견해가 등장하고 고전을 온존해온 수도원이 유럽 도처에서 대학으로 발전할 수 있는 지식 창고 역할을 수행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1927년 <12세기의 르네상스>(The renaissance of the 12th century)라는 책은 부르크하르트의 피렌체를 중심으로 하는 르네상스의 시각을 바로잡고 있다.
문장이 조각돼 있는 날렵한 디자인의 스가벨로
문장이 조각돼 있는 날렵한 디자인의 스가벨로
이탈리아 반도는 도시 단위로 독립적인 공국(公國)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었다.

이는 일견 분열돼 있어서 약체로 볼 수도 있지만 도시국가의 운영 체계는 경제와 예술을 발전시키는 전기로 작용하게 된다.

피렌체, 베네치아, 피사, 로마, 밀라노, 토리노, 제노바, 시칠리아, 나폴리 등의 나라들이 동서 무역과 도시의 발달을 주도하면서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을 실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의 문화유산이 이탈리아 전역을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천재들이 살았던 그 시대는 그리스와 로마 문화의 새로운 복원을 의미하게 된다.
4. 고전 양식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르네상스의 스가벨로 5. 프랑수아 1세의 가게투아루
4. 고전 양식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르네상스의 스가벨로 5. 프랑수아 1세의 가게투아루
이 무렵에는 서랍이 달린 찬장, 구획된 상자, 다양한 종류의 책상 등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가구가 제작되기 시작했으며 디자인에서도 많은 발전이 있었다.

그러나 가구가 적었기 때문에 손님이 자기의 침대나 그밖에 필요한 것을 직접 가지고 다녔다. 따라서 가구는 옮기기 편한 조립식 테이블이나 침대, 접을 수 있는 의자 등이 주종을 이루었다.

프랑스어에서 가구가 움직인다는 뜻의 ‘뫼블레(meuble)’가 된 것 역시 이탈리아어 ‘모빌리(mobili)’와 무관하지 않다.
침대는 이집트 침대를 연상시키듯 머리 부분이 높은 대각선 표면으로 된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시대의 가구들은 시대사조와의 결합을 통해 형성돼 로마와 같은 구성 수법이 그대로 사용되는 형식미(形式美)가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고대 로마 기법은 교회의 내부보다는 주택이나 별장의 실내에 적당했으나 당시 저택의 규모가 로마의 건축물보다 훨씬 커서 3, 4층까지도 있으며 리빙룸은 2층에 두었다.

이러한 구조에는 2층으로 오르내리는 계단이 중요해지고 실내 요소로써 취급될 수밖에 없었다. 바닥 마감은 석조 타일 등이 사용되고 벽면은 석재와 프레스코, 벽난로가 장식됐으며 천장은 목조, 회반죽의 평천장(flat ceiling), 우물천장, 볼트, 돔에 몰딩 장식을 했다.
바센 바르톨로뮤스의 그림으로 르네상스 연회장의 인테리어가 표현됐다.
바센 바르톨로뮤스의 그림으로 르네상스 연회장의 인테리어가 표현됐다.
이 시대부터 벽난로에 디자인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해 건축가들에게 주목을 받게된다. 로마 시대에는 비교적 발달된 난방 구조를 유지했으나 로마가 무너지면서 난방 문화도 낙후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유럽 문화의 중요한 위치에 놓인 벽난로가 르네상스 시대에 주거 문화의 일부로 디자인 개념이 도입되고 석재와 벽돌 등의 소재를 이용해 리빙룸의 중앙을 장식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발전한 벽난로는 서구인들에게 하트 오브 홈, 즉 가정의 심장이라는 데까지 이른다.

벽난로가 발전하면서 가옥 구조의 체계가 리빙룸과 다이닝룸, 그리고 침실 등으로 구획되고 이에 필요한 가구들과 홈 퍼니싱이 출현하게 된다. 그리고 서재가 리빙룸 옆에 별도로 배치되고 부엌이 만들어진다.

가족은 이제 여가 시간을 말 그대로 리빙룸에서 보내게 된다.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할 수도 있고 저녁 시간에 난로 앞에 모여 담소와 게임을 즐길 수도 있고 가족 간의 모임을 즐길 수도 있는 즐거운 장소가 된 것이다.

이탈리아의 피렌체와 로마, 베네치아에서 발달하기 시작한 르네상스의 열풍은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온 유럽으로 보급되고 그들은 나름대로 독자적인 르네상스 문화를 만들어가게 된다.
영국 대영미술관에 소장된 1460년 이탈리아의 카손느
영국 대영미술관에 소장된 1460년 이탈리아의 카손느
15세기 르네상스의 본고장인 이탈리아는 로마네스크 시대와 같은 건축 형식과 장식적 요소들을 축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초기 가구의 구조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표면 장식에 종교적 내용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여러 색채와 도금된 석고를 사용하기도 했다.

후기에는 로마 양식의 조각상이 크게 유행했다. 가구를 대칭으로 배치했는데 이는 사회적 지위와 관련한 권위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의 표현이었다. 낮은 받침대와 전면으로 돌출한 다리 위에 규모가 큰 가구를 앉혔는데 이는 가구를 장중하게 보이게 하기 위함이었다.

상자나 함 위에 등받이와 팔걸이를 부착해 사용하는 카사판가(cassapanca)라는 가구가 있었다. 또한 스가벨로(sgabello)라는 의자는 식탁용으로 가벼운 목재를 사용해 만들었으며 세 개의 판각 다리와 팔각형의 좌판 직선 등받이로 구성됐다.

그 외에는 혼례용으로 가장 많이 사용한 카손느(cassone)라는 함과 크레덴자(cradenza)라는 식기 보관함, S자형의 굽어진 나무 조각을 조합해 만든 사보나롤라(savonarola)라는 의자는 로마 시대 전부터 있었던 X자형 다리에 낮은 등받이와 팔걸이를 부착했다.

이를 단테(dante)형이라고 한다. 탁자들은 주로 솔리드로 상판을 하고 다리는 도리아(doria)식의 원주 기둥 형태로 됐으며 상판에는 주조로 만든 장식으로 테두리를 마무리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실내장식과 가구의 면모를 보여주는 프레스코화로, ‘Birth of the Virgin Padua’
르네상스 시대의 실내장식과 가구의 면모를 보여주는 프레스코화로, ‘Birth of the Virgin Padua’
르네상스 가구들은 요즘 시각으로 보면 조각이 많고 인물상들이 응용되고 있어 가구라기보다는 장식품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조금은 부자연스럽고 고전적인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르네상스 가구와 홈 퍼니싱 디자인들은 서구의 실내장식과 홈 퍼니싱 디자인에 오래도록 영향을 남기고 있다.

프랑수아 1세 때 르네상스는 프랑스에 도입된다. 그러나 중세의 고딕 양식은 프랑스에 르네상스가 전해진 후에도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가구에는 고딕식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르네상스의 영향으로 의자와 캐비닛 등을 만들게 된다.

르네상스 초기의 프랑스는 샤를 8세, 루이 12세, 프랑수아 1세 때로 연결된다. 17세기 전반 루이 13세 시대에는 아름다운 프랑스풍의 살롱 장식과 가구들이 만들어졌으며 이를 후에 루이 13세 양식이라고 불렀다. 다시금 빅토리안 시대에는 르네상스 리바이벌이 등장한다. 그리고 앤티크 시장에서는 종종 이러한 리바이벌이 등장한다. 오리진 앤티크는 귀하다.

김재규

헤리티지 소사이어티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 아카데미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기행>, <유럽도자기> 저자.
영국 엡버시 스쿨, 옥스퍼드 튜토리얼 서비스 칼리지 오브 런던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