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의 앤티크 살롱

빅토리안 시대에 제작된 치펀데일 의자의 변형
빅토리안 시대에 제작된 치펀데일 의자의 변형
인류가 그리스 문명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들은 아름다움을 사랑하지만 결코 사치에 흐르지 않는다’고 외친 그들로 인해 ‘인간은 모두 자유롭고 또 존경받아야 할 존재’라는 새로운 정신이 발아했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의 군주들이 그러하듯 페르시아, 이집트, 바빌로니아 등의 문명화된 나라들은 모두 절대군주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을 인간의 도리로 여겼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은 달랐다. 그들 자신이 모두 자신의 주인이었다. 자유주의적인 그리스인들은 예술을 참으로 사랑했지만 그것 때문에 나약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거의 2000여 년이 지난 후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영국에 있었다. 그가 곧 가구 디자이너인 토머스 치펀데일이다. 18세기의 그리스인이었던 것이다.
영국 전통 가구로 자리 잡은 체스트 오브 드로
영국 전통 가구로 자리 잡은 체스트 오브 드로
앤티크 세계에서 회자되는 이름 중에 치펀데일만한 인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오늘날 그의 이름은 딜러와 수집가들 사이에서 수없이 인용되고 있다. 그 이유는 그가 남긴 몇 점의 가구 때문만은 아니다.

18세기, 절대군주의 통치 아래 복종하던 유럽 대륙의 다른 나라와는 달리 영국은 입헌군주국으로서 비교적 자유로운 개인의 삶이 전개되고 있었다.

영국의 중산층인 젠틀맨 그룹은 경쟁적으로 기업을 일으켜 세계로 나아갔으며 이들은 벤처 정신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서가 반영돼 훗날 산업혁명을 이끌었으며 가구 분야 역시 프랑스나 대륙의 절대왕정 사회처럼 과장됨을 버리고 실제 삶을 풍요케 하는 모양으로 제작된다.

치펀데일 이전까지는 누구도 가구에 이름을 남긴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처음으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스스로를 예술가로 믿었던 인물이다.

그래서 수세기가 지난 지금도 우리는 그를 존경하고 그의 정신에 감동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처음으로 그의 작품 구상을 책으로 펴서 많은 사람이 공유하도록 했다. 1850~1875년에 유행한 이 양식은 영국에서 왕의 이름이 아니라 가구 제작자의 이름을 따서 붙인 최초의 양식명(style)이며, 가구 제작 기술이 절정에 달했던 때를 가리키는 영국 가구 역사상 가장 유명한 양식이 됐을 뿐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꼽힐만하다.
3. 디자인 책의 드로잉 4. 미국의 하이보이 5. 체스트 온 북 캐비닛
3. 디자인 책의 드로잉 4. 미국의 하이보이 5. 체스트 온 북 캐비닛
치펀데일은 요크셔 출신으로 목수인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다. 30세에 결혼해 런던에서 세 개의 가구점을 운영했는데, 이때 이미 가구업자로서 좋은 평판을 얻고 있었다. 1754년에 그는 150여 가지의 가구 디자인을 담은 를 발간하면서 일약 유명 인사가 됐다.

그의 책은 도처에서 열광적으로 구독됐으며 치펀데일 디자인을 기초로 한 가구가 영국, 유럽 대륙, 식민지에서 만들어졌다. 당시 미국의 부유한 일부 상류층들은 영국 양식을 그대로 베껴 사용했으며 약 10년 정도 늦게 따라갔던 것 같다. 이를 페더럴 스타일(federal style)로 부른다. 그러나 치펀데일의 책이 발간된 후 치펀데일 양식이 미국의 상류층에서 크게 유행하면서 가구 르네상스를 일구어 냈으며 영국의 치펀데일보다 오히려 미국에서 더 많이 제작된 듯한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디자인 문화융합(culture convergence)의 산물

치펀데일 디자인을 변형한 윙 체어
치펀데일 디자인을 변형한 윙 체어
치펀데일의 작품은 견고성과 우아함을 기조로 하고 있다. 이는 18세기 프랑스를 풍미하던 로코코 양식(rococo style)과 중국의 영향, 영국의 전통을 반영한 결과다.

가구재로는 마호가니를 주로 사용했으며 테이블이나 의자는 발톱 모양의 클로 앤드 볼(claw and ball)과 캐브리올(cabriole)을 응용했다. 단순하면서 목재의 질감을 살린 그의 작품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인기를 더해 가고 있으며 그가 살았던 시대를 후대는 치펀데일 시대로 부른다.

전통으로부터 온 고딕 양식(gothic style)의 변용은 매우 우아한 디자인으로 완전히 새로운 해석을 낳았다. 전통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당시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유행하던 로코코 양식의 근대 디자인을 전통 고딕과의 대비로 등장시켰다.

고딕식 치펀데일은 뾰족한 아치와 S자형 반곡선을 의자 등받이에 결합시켰는데 유리창살(유리를 지탱하도록 한 트레이서리)과 크고 묵직한 책장의 페디먼트(삼각형 박공벽)에 결합시킨 것이 더 성공적이었다.

너무 무겁고 웅장해 영국에서는 환영받지 못한 가구 디자이너, 1748년에 이미 세상을 떠난 윌리엄 켄트가 유형화한 묵직하고 형식에 치우친 바로크 가구 양식을 영국식 안목으로 재해석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원래 프랑스에서 생겨난 로코코 양식 가구 디자인의 일부를 영국 시장에 맞도록 덜 화려하게 변형시켰으며 루이 16세 시대의 양식을 바탕으로 한 프랑스 의자가 이에 속한다.

가장 잘 알려진 치펀데일 디자인은 좌대가 넓은 리본 모양의 등받이 의자인데 이것은 등받이 가로대가 큐피드 화살 모양으로 돼 있고 누각된 등판이 뒤얽힌 리본같이 조각돼 있다. 정교한 로코코식 디자인은 조각한 다음 도금 처리를 한 것으로 거울의 틀과 지란돌(가지 달린 장식촛대), 콘솔 탁자에 이용됐다.
7. 미국의 치펀데일 사례를 보여주는 의자 8. 중국의 영향을 받은 클로 앤 볼의 발과 등받이 장식의 사이드 체어9. 목리(木理)를 활용해 무늬감을 살린 사이드 테이블
7. 미국의 치펀데일 사례를 보여주는 의자 8. 중국의 영향을 받은 클로 앤 볼의 발과 등받이 장식의 사이드 체어9. 목리(木理)를 활용해 무늬감을 살린 사이드 테이블
중국풍 치펀데일 가구

당시 유럽은 중국의 고급문화에 열광했으며 무분별할 정도로 중국 예찬에 몰두해 있었다. 이를 중국 열풍, 즉 시누아즈리(chinoiserie)로 부른다. 가장 영국적인 퀸 앤 양식(queen ann style)에도 부드러움이 담긴 선(shape)이 등장하는데 이는 중국 가구로부터의 영향이다.

이를 융합해 만들어진 중국식 치펀데일 디자인은 도려내기 세공으로 제작된 유리창살과 탑 모양의 페디먼트를 갖춘 식기 캐비닛이나 선반에 이용됐고, 차 탁자의 가장자리 골이나 의자의 뒷면과 다리에도 활용됐다.
중국의 격자문양을 응용한 카드 테이블
중국의 격자문양을 응용한 카드 테이블
흔히 중국식으로 장식된 방에 놓이는 중국풍의 치펀데일 가구는 시누아즈리와 일본풍(japonique) 경향을 함께 활용해 옻칠(漆) 등이 입혀져 장식되기도 했다.

치펀데일 디자인은 크게 고딕 양식과 로코코 양식(책에서는 근대 양식이라고 명칭), 그리고 중국 양식으로 나누어진다.

치펀데일은 이처럼 본질적으로 다른 양식의 요소들을 가지고 탁월하게 조화와 통일을 이루어 우아하고 생명력을 지닌 디자인을 만들어 냈으며 비할 바 없는 기술과 감식력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공로가 인정돼 1759년 예술협회의 회원으로 선출됐다.

김재규

헤리티지 소사이어티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 아카데미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기행>, <유럽도자기> 저자.
영국 엡버시 스쿨, 옥스퍼드 튜토리얼 서비스 칼리지 오브 런던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