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액 작은 자투리펀드 속빈 강정인가?
금액 작은 자투리펀드 속빈 강정인가?


‘국내 펀드 수 세계 1위, 펀드당 자산규모는 세계 평균 11분의 1.’ 이러다 보니 펀드매니저 한 사람이 담당하는 펀드 수는 8개(공·사모 합계)를 훌쩍 넘는다. 바로 자투리펀드(소규모펀드) 때문이다.

운용사들이 시장 유행에 따라 우후죽순 펀드를 찍어내다 보니 펀드 설정액(투자원본)이 100억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펀드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 펀드 환매는 지속되는 반면 신규 가입이 저조해지며 자투리펀드는 더욱 늘어나는 추세다.

자투리펀드는 펀드의 분산 투자 효과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고 자산운용사들이 펀드 운용을 소홀히 하는 도덕적 해이의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과 금융투자협회는 지난해부터 자투리펀드 청산을 주요 골자로 하는 ‘펀드 규모 적정화 방안’을 추진했으며 이번 달부터 시행령 개정을 통해 자투리펀드 정리에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어서 주목된다.

10개 중 6개는 자투리펀드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전체 펀드 수는 9108개로, 이 중 64.7%인 5889개가 설정액 100억 원 미만의 자투리펀드다. 현재 나온 공·사모펀드를 합쳐 10개 중 6개는 자투리펀드인 셈이다. 지난해 말 5800개에서 89개나 증가했다. 올 들어 주식형 펀드에서 7조 원이나 자금이 빠져나가는 등 환매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50명 이상 일반 투자자들의 추가 납입이 가능한 공모·추가형 펀드만 추려도 100억 원 미만 펀드는 총 2313개로 전체 펀드의 25%를 넘는다.

지난해 이후 신규 출시된 펀드의 규모는 더욱 초라하다. 지난해 새롭게 나온 428개 펀드 중 86.21%인 369개가 설정액 100억 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 중에는 50억 원 미만의 펀드도 336개(78.5%)나 됐다. 올해는 상황이 더욱 심각해져 3개월간 신규 설정된 펀드 86개 중 단 4개를 제외하면 모두 100억 원 미만에 머물렀다. 설정액이 1억 원도 안 되는 초미니 펀드도 49개로 절반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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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매니저 수는 늘지 않는데 펀드 수만 불어나면서 펀드매니저 1인당 펀드 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협회에 등록된 국내 펀드매니저 수는 3월 말 1109명으로 사상 처음으로 1100명을 돌파했다. 국내 펀드매니저는 2005년 말 658명에 머물다 2006년 말 739명, 2007년 말 789명, 2009년 말 954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펀드매니저 수가 양산되는 펀드를 따라가지 못하며 펀드매니저 한 사람당 운용펀드 수는 공·사모 합쳐 8개를 넘고 있다. 공모펀드만도 3개 이상을 운용한다. 일부 운용사는 펀드매니저 한 사람이 수십 개의 공모펀드를 운용하기도 한다.

아이투신운용은 펀드매니저 1인당 43개의 공모펀드를 운용 중이며 플러스자산운용(34개), 메리츠자산운용(20개), 교보악사자산운용(16개), 동부자산운용·하나UBS자산운용·하이자산운용(각 15개) 등도 한 펀드매니저가 10여 개 이상의 펀드를 운용한다.

자투리펀드는 찬밥

자투리펀드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노출한다. 우선 적정 규모에 미달해 펀드 운용과정에서 다양한 자산에 투자함으로써 누릴 수 있는 분산 투자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대학 기금운용의 전설’로 불리는 데이비드 스웬슨 예일대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높은 수익을 안정적으로 내기 위한 최우선의 원칙으로 ‘분산 투자’를 강조한다.

하지만 100억 원 미만으론 현실적으로 분산 투자 자체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자칫 ‘모든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아야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높은 위험에 노출된 채 운용해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자투리펀드의 경우 운용사들이 상대적으로 운용 과정에서 관리를 소홀히 할 가능성도 높다. 운용사는 투자자들의 이목이 집중된 각 사의 대표 펀드에 보다 높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자투리펀드는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단 얘기다.

실제 자투리펀드는 운용의 효율성을 막아 수익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펀드 평가업체인 에프앤가이드가 국내 주식형 펀드의 순자산별 평균수익률 현황을 조사한 결과, 100억 원 미만의 펀드는 최근 1년부터 2년, 3년, 5년 등 전 구간에 걸쳐 수익률이 가장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100억 원 미만 펀드의 3년과 5년 수익률은 각각 20.44%, 79.19%로 가장 높은 수익을 내고 있는 1조 원 이상 펀드(3년 33.60%, 5년 116.88%)보다 3년은 13%포인트, 5년은 37%포인트나 낮았다. 최근 2년은 100억~1000억 원 펀드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와, 최소 100억 원 이상은 돼야 운용이 용이한 것으로 분석됐다.

우재룡 동양종금증권 자산컨설팅연구소장은 “운용이 제대로 이뤄지도록 자투리펀드 정리를 통해 운용 규모를 키우고 펀드당 매니저 수를 늘려가는 것이 펀드 수익률 제고를 위해서는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금액 작은 자투리펀드 속빈 강정인가?
설정액 50억 원 미만, 임의해지 가능

감독당국과 협회는 지난해부터 ‘펀드 규모 적정화’ 방안을 준비해 왔다. 협회는 지난해 초 업계 의견 수렴과정을 거쳐 정순섭 서울대 교수가 참여하는 외부 기관에 연구 용역을 의뢰했다. 지난해 9월 협회는 업계 세미나를 열고 제도 개선방안 연구 용역 보고서를 발표한 후 10월 말 감독당국에 최종보고서를 제출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권혁세 부위원장이 간담회를 통해 자투리펀드 관련 제도 정비를 공식화하고 지난 8일 관련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금융위원회 입법 예고안에 따르면 펀드 등록 유지제도가 도입되고 자투리펀드 간 합병 절차는 간소화된다. 감독당국은 펀드 등록 이후 1년이 지났는데도 설정액이 50억 원 미만일 경우 운용사가 해당 펀드를 자동 해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강행 규정으로 할 경우 다양한 펀드 상품의 출시 제한 등의 문제점을 방지하기 위해 임의 규정 형식으로 도입했다.

자투리펀드와 투자 목적이나 전략 등이 유사한 펀드 간 합병은 수익자 총회를 면제해 간소화했다. 특히 펀드 합병에 반대하는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반대수익자매수청구권’ 제도를 준용, 이들에게는 환매해 원리금을 지급해 줄 예정이다. 펀드 전환 제도도 마련했다. 자투리펀드에 속한 자산을 새로운 펀드에 그대로 이전하면서 투자자는 새 펀드의 수익증권을 취득하는 방식으로 모자형 펀드 전환을 허용했다.

자투리펀드의 투자자에 대한 공시도 강화된다. 수시 공시나 수익률, 비용 등의 비교 공시를 강화해 투자자의 합리적인 선택을 유도해 나간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협회는 설정일로부터 1년이 경과한 설정원본 50억 원 미만인 공모·추가형 자투리펀드에 대해 회사별·유형별 수익률을 협회 공시 사이트에 월별 비교, 공시할 예정이다.

또한 신규 설정된 지 1년이 경과한 시점에서 설정원본 50억 원 미만인 경우 관련 법령에 따라 임의해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투자자에게 수시 공시키로 했다.

김철배 금융투자협회 집합투자서비스본부장은 “기존의 투자신탁 임의해지 등을 통한 자투리펀드 정리 방법은 투자자와의 분쟁 발생 소지 등 업계의 부담이 커 현실적인 활용이 어려웠다”며 “제도개선 방안을 법제화하고 공시방안을 수립함으로써 자투리펀드 해소 및 펀드 규모 적정화가 용이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펀드 운용 전반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투자자 보호도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했다.

서정환 한국경제신문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