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와인을 사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 답은 홍콩이다. 홍콩 와인 경매는 뉴욕과 런던을 압도하고 있다. 중국 부자들은 서양 부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최고급 와인을 차지하기 위해 경매장을 제집 드나들 듯 한다.

고급 와인을 사기 위해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와인 애호가들은 런던으로 갔다. 미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강해지고, 와인 경매에 대한 규제가 자유화된 1990년대 들어서는 뉴욕이 런던의 아성을 빼앗았다. 이후 뉴욕이 왕좌에 앉아 즐거워한 최근까지가 돌이켜보니 그의 전성기인 셈이다. 뉴욕은 더 이상 고급 와인의 메카가 아니다. 홍콩에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크리스티 와인경매 사업부의 수장 데이비드 엘스우드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2005년에 글로벌 와인 경매 낙찰의 7%에 불과했던 홍콩은 2009년 61%를 차지하고 있다.

홍콩의 낙찰자들은 거의 대부분 중국, 대만, 홍콩인들”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티의 영원한 라이벌 소더비의 와인 총괄책임자 세레나 서클리프는 “홍콩이 처음 2008년 세금을 전면 면제했던 그때부터 가장 중요한 지역이라고 하며, 중요성으로 볼 때 이미 뉴욕과 런던의 실적을 상회하고 있다”고 했다.

세계 경매 시장 현황
샹그릴라에서 진행되는 애커 와인 경매, 애커 사장 존 카폰이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샹그릴라에서 진행되는 애커 와인 경매, 애커 사장 존 카폰이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와인 스펙테이터’에 따르면 글로벌 경매 시장의 낙찰 실적은 2007년의 3억100만 달러, 2008년 2억7600만 달러, 2009년 2억3300만 달러로 점점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이는 경기침체를 그대로 반영하는 결과다.

하지만 이런 침체 국면 속에서도 개별 회사의 명운은 달랐다.

2008년 홍콩 경매를 최초로 성공한 본햄스는 그 기록에만 만족해야 했지만, 재키스는 2009년에 유일하게 소폭의 실적 향상을 이룩했다.

이는 미국에서 허약한 상황을 그대로 노출시켰지만, 홍콩에서 2008년 대비 무려 261%의 낙찰 금액 증가를 이룩한 2009년의 실적 덕분이다. 애커 역시 전체 매출은 줄었으나 홍콩에서만큼은 수위를 놓치지 않았다. 2009년 애커의 홍콩 낙찰액은 2000만 달러를 상회해 홍콩 1위를 계속 유지했으며, 전년보다 42% 성장하는 성과를 보였다.

홍콩에서 수위를 달리는 애커 경매에 입찰하기 위해 고객의 부름을 받고 홍콩에 간 것은 2009년 봄이다. 애커의 경매는 샹그릴라호텔 연회장에서 진행됐고 지금도 그렇다. 경매 전날에는 출품 와인 중에서 엄선한 와인을 시음한다. 여기는 초대장을 쥔 사람들만 입장이 가능하다.

시음 와인에는 보르도 1등급 와인은 물론이고 부르고뉴의 그랑 크뤼, 나파밸리 컬트, 크리스털, 크룩 등 최고급 와인 수십 가지를 맛볼 수 있다. 시음회에 제공되지 않는 와인으로는 로마네 콩티가 유일하다. 경매 날에는 샴페인을 샌드위치와 함께 무한정 무료로 제공한다. 경매장은 거의 중국인이고 발 디딜 틈 없이 꽉 찬다. 줄잡아 200명 이상이 경매장에 입장한다.

어떤 와인에 투자하나


중국인들은 어떤 와인을 사는가. 투자 등급 와인은 이런 특성이 있다. 우선 숙성력이 좋아야 한다. 오래 묵힐 수 있어야 투자 대상으로서 가치가 있다. 보르도 레드 와인이 좋은 예다.

둘째는 희소성. 수량이 적다면 희소성의 원칙에 따라 가격이 상승한다.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들이 이런 조건에 해당된다. 포도밭의 규모가 규정에 의거해 이미 확정된 터라 생산량을 늘리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이웃을 설득해서 그들의 포도밭을 사는 것이다.

셋째로 지명도가 중요하다. 와인 마케팅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의 유명세를 갖춘 와인은 누구나 소장하게 마련이다. 이름 자체가 하나의 럭셔리 브랜드로 변모한 와인을 말한다.

어떻게 홍콩이 와인 허브가 됐을까. 간단하다. 와인에 대한 세금을 면제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와인과세 정책은 종량세다. 와인 한 병에 대해 일정한 세금을 부과한다. 가격이 비쌀수록 세금의 비중은 미미하므로 일본 소비자들은 유럽 소비자와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와인을 구매한다.

하지만 우리는 상황이 다르다. 세금이 68%에 달한다. 황당할 정도로 비싸게 와인을 마신다. 종량세가 아니라 종가세 방식이라 값이 비쌀수록 세금이 비례적으로 더 붙는다. 그러니 10만 원짜리 와인을 20만 원에 마시는 식이다.

홍콩의 와인 경매는 그곳의 금융 경쟁력을 떠올리게 한다. 규제를 과감히 푼 홍콩이 아시아 금융의 허브 역할을 하듯이, 와인에 관한 모든 세금을 없앤 홍콩은 앞으로 아시아 와인 시장의 허브가 될 것이다.
시음용으로 나온 프랑스 최고급 와인 라 타슈 2004
시음용으로 나온 프랑스 최고급 와인 라 타슈 2004
홍콩 정부는 왜 세금을 포기했을까. 한 푼의 세금이 아쉽지 않았을까. 홍콩 당국은 세수를 포기하는 대신 더 큰 걸 노렸다. 시장이 생기면 주변이 덩달아 발달하는 이치다. 그럼으로써 와인 관련 여러 부가가치를 챙길 목적이다. 셈이 완벽한 중국인이지 않은가.

경매 참가를 위해 와인애호가들은 여행객이 되길 마다하지 않는다. 선뜻 홍콩으로 입국해 여러 날 머물며 음식과 와인을 즐길 것이다.

출품용 와인을 보관할 공간도 필요하니 와인보관업도 번창할 것이다. 당장 쓰일 게 아니라면 낙찰 와인을 굳이 홍콩 바깥으로 옮길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 애호가들이 낙찰받았다면 그 와인을 당장 국내로 운송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기회를 봐서 재판매할 수도 있고, 꼭 필요한 수량만 반입하면 된다. 그러니 상당 기간 와인을 홍콩에 그대로 둘 것이다.

와인 경매에 참가하는 방법

경매는 누구나 다 참가할 수 있다. 경매는 일 년에 여러 차례 있다. 날짜는 홈페이지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크리스티(www.christies.com), 소더비(www. sothebys.com), 애커(www.ackerwines. com), 재키스(www.zachys.com)에 들어가면 손쉽게 알 수 있다. 경매는 경쟁으로 인해 오히려 가격이 비싸지진 않을까 의구심이 들지도 모르지만, 잘만 이용하면 시중보다 훨씬 싼 값에 와인을 얻을 수 있다.
경매 전날 초대되는 고객들은 다양한 고급 와인을 맛볼 수 있다. 소믈리에가 초대된 고객에게 한 병에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라 타슈’를 따르고 있다.
경매 전날 초대되는 고객들은 다양한 고급 와인을 맛볼 수 있다. 소믈리에가 초대된 고객에게 한 병에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라 타슈’를 따르고 있다.
경매 와인 정보는 미리 발행되는 책자 혹은 인터넷으로 확인한다. 출품 와인을 잘 살펴서 본인이 부담할 최대한의 가격을 미리 책정해야 한다.

경매가 긴박하게 진행되고 경쟁 또한 치열해서 자신도 모르게 동조하게 돼 나중에 후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접 마시기 위해서 구입하는 것이라면 여러 와인이 섞인 채 출품되는 ‘Mixed Lot’을 노리는 것이 좋다. 여러 샤토의 여러 빈티지 와인이 다양하게 묶여 있어 좋다.

우리나라의 경매는 세금이 높아 가격 메리트가 적다. 그러니 경매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어 요즘 대부분의 애호가는 홍콩으로 직접 날아간다, 물론 컨설턴트와.

우리나라 경매가 아직 본격화됐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필자는 홍콩 경매를 컨설팅한다. 입찰하고 낙찰받고, 국내에 반입하는 모든 절차를 대행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글·사진 조정용 와인투자컨설턴트, <올댓와인 1, 2> 저자 ilikewin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