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시장으로 떠오른 미술품 경매 시장
금융위기 이후 침체기를 면치 못하던 미술품 시장에 봄이 오는 것일까.

2009년 최악의 상황을 보였던 미술 시장이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하락이 진정되면서 새봄을 기다리고 있다. 미술계 일각에서는 2009년 하반기부터 시장이 살아날 조짐이 보인다며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한다.

그 기대감이 2010년 1분기까지는 현실화되지 못했다. 분위기는 조성됐지만 실제로 거래가 활발해지고, 가격이 상승하는 단계에 이르기에는 이르다. 이 같은 시점에 국내 미술품 경매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K옥션과 서울옥션이 3월, 첫 경매를 열어 많은 이의 관심을 모았다.

한마디로 경매 결과를 재단하기는 이르지만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게 미술계의 중론이다.

블루칩 작가 인기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K옥션 메이저 경매

지난 3월 10일, 미술품 전문 경매 회사 K옥션 신사동 아트타워 사옥에서는 2010년 첫 번째 메이저 경매가 열렸다. 경매 결과는 총 출품작 219점 중 160점이 낙찰돼 73%의 낙찰률을 보였다. 총 낙찰 금액은 48억3000만 원을 기록했다.

경매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은 기대를 모았던 박수근의 <여인들>. 경매 이전부터 컬렉터들의 관심을 모았던 <여인들>은 8억5000만 원에 낙찰됐다. 인기 작가 김환기의 <이른 봄의 소리>가 6억3000만 원에 낙찰돼 뒤를 이었고, 이우환의 <선으로부터 No. 790152>가 9500만 원, 김종학의 <가을풍경>이 7000만 원에 낙찰됐다.

외국 작가로는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붉은색 모자를 쓴 젊은 여인>(Jeune femme au chapeau rouge)이 6억 원에, 야요이 쿠사마의 <펌프킨>(Pumpkin)은 4400만 원의 낙찰가를 보였다.
메이저 시장으로 떠오른 미술품 경매 시장
이번 경매는 한국 근현대 작품에 대한 컬렉터들이 지속적인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환기와 이우환(5점), 김종학(4점), 이대원(3점), 김창렬(2점), 오치균 등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은 예외 없이 강세를 유지했다.

이번 경매는 2009년 하반기부터 서서히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미술 시장의 분위기를 낙찰률과 낙찰 금액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는 자리였다. 낙찰성사 금액은 2009년 3월 경매에 비해 두 배가 넘었다.

또 다른 특징은 블루칩 작가들의 지속적인 강세 현상. 보수적인 시장상황에서도 꾸준한 인기와 함께 강세를 이어온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이 이번 경매에서도 예외 없이 좋은 결과를 보여주었다.

특히 전체 출품작의 50%(108점)에 가까운 비중으로 출품된 근현대 작품들은 고르게 낙찰됐다. 최고가를 기록한 박수근의 <여인들>을 비롯해 김환기의 <이른 봄의 소리>와 김종학, 이우환, 이대원의 작품은 각각 4점, 5점, 3점씩 낙찰돼 시장 회복세에 대한 다양한 전망과 지수들을 확인시켜 주었다.

특히 내년 2월 뉴욕 구겐하임에서 회고전이 열릴 이우환의 작품은 박수근, 김환기 등 주요 작가들과 함께 견인차 역할을 담당, 시장의 활성화와 상승 무드를 이끌었다.

현대미술에 비해 관심의 정도가 줄었지만 여전히 많은 컬렉터를 거느린 고미술도 좋은 성과를 기록했다. 이번에 출품된 고미술 및 한국화 작품은 총 64점으로 이 중 83%가 새로운 주인을 만났다.

이 분야 최고 낙찰가 작품은 표암 강세황의 <선화합벽>으로 5600만 원에 낙찰됐다. 추사 김정희의 <간찰첩>이 2000만 원, 청전 이상범의 <추경산수>가 2200만 원, 운보 김기창의 <청록산수>는 1250만 원에 낙찰됐다. 현대미술과 마찬가지로 고미술·한국화도 인기 있는 작가의 작품에 대한 선호현상이 도드라졌다.

미술품 이외에 순종이 사용했던 바쉐론 콘스탄틴사의 회중시계와 명성황후의 한글 친필서간문도 높은 관심을 모았다. 경매 전부터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이들 작품은 각각 1억2500만 원과 5000만 원에 낙찰됐다.

서울옥션 첫 경매 낙찰률 74.4%, 낙찰 총액 약 56억 원

서울옥션은 지난 3월 11일, 서울 평창동 경매장에서 열린 3월 첫 메이저 경매에서 낙찰률 74.4%, 낙찰 총액 56억1820만 원을 기록했다. 제116회 미술품 경매와 ‘My First Collection’ 기획 경매에 출품된 237점 중 174점이 낙찰됐다.

도널드 저드의 <무제>가 11억6000만 원으로 최고 낙찰가를 기록했다. 300여 명이 참여해 성황을 이룬 이번 경매에서는 고미술인 작자 미상의 <묘작도>가 치열한 경합을 벌여 눈길을 끌었다. 80만 원에 시작한 이 작품은 추정가의 31배인 3100만 원에 낙찰되는 이변을 연출했다.

K옥션 경매에 이어 서울옥션 경매에서도 국내 블루칩 작가들이 인기를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근현대 작품으로 출품된 김환기의 작품은 5점 모두 낙찰돼 높은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특히, 김환기의 점화는 9억 원에 낙찰돼 국내 작품 최고 낙찰가를 기록했다.

이외에도 김환기의 <모란, 고목과 항아리>가 3억7000만 원, 천경자의 <그라나다의 창고지기 하는 여인>이 3억5000만 원, 김창렬의 <물방울>이 2억4000만 원, 장욱진의 <풍경>이 1억7000만 원에 낙찰됐다.
메이저 시장으로 떠오른 미술품 경매 시장
100만 원부터 다양한 가격대와 다양한 작품으로 구성된 이번 ‘2010 My First Collection’ 기획 경매는 출품된 146점 중 111점이 낙찰돼 낙찰률 77%를 기록했다. 강연균의 <정물>은 550만 원으로 애초 추정가의 4.6배에 낙찰됐고, 오승윤의 <수련>도 추정가의 3.2배에 낙찰됐다.

서울옥션 이학준 대표이사는 “미니멀리즘의 대표작가 도널드 저드의 작품이 국내 1분기 최고가인 11억6000만 원에 낙찰되는 등 활발한 미술 시장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며 “경매 시장에 좋은 작품이 출품되면, 미술 애호가들의 수요가 여전히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는 경매였다”고 밝혔다.

올 첫 메이저 경매는 세계 어느 국가보다 앞선 한국의 경제회복 속도가 미술 시장 회복으로 이어지는 듯했다. 여기에 해외에서 들리는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높은 낙찰률과 최고 작품가 갱신 소식이 국내 컬렉터들에게 희소식으로 작용한 듯하다.

옥션의 한 관계자는 이를 두고 “지난 몇 년간 어려웠던 미술 시장에 희소식”이라며 반겼다. 그러나 많은 미술 관계자는 “아직은 미술 시장의 추이를 지켜볼 때”라며 “블루칩 작가와 가능성 있는 작가들의 상대적으로 저렴한 작품에 한해 접근하는 게 현명하다”고 말한다.

2010년 첫 메이저 경매는 블루칩 작가들의 인기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자리였다.

신규섭 기자 wawoo@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