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SPI Issue

요즘 증권가에서 국제회계기준(IFRS) 수혜주 찾기 작업이 한창이다. 내년부터 모든 상장사들은 IFRS 기준에 맞게 재무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기업분석의 기초가 되는 회계방식이 바뀔 경우 기업가치 산정에도 일부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IFRS를 적용하면 어떤 기업이 유리해지고 불리해지는지를 미리 분석해 보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IFRS는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가 제정한 단일 글로벌 회계기준이다. 현재 유럽연합(EU)을 비롯해 아시아, 호주 등 전 세계 110여 개 국가가 의무적으로 적용하거나 적용을 허용하고 있다.

캐나다와 일본은 2011년까지 자국의 회계기준과 IFRS의 통합 작업을 완료할 계획이다. 미국은 외국기업에 한해 IFRS를 허용하고 있으며 미 회계기준과 IFRS의 통합작업을 진행 중이다.
한국은 2011년부터 모든 상장사가 IFRS에 맞춰 재무제표를 작성해 공시해야 한다. 원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2009년부터 조기 적용을 허용했다.

KT&G·STX팬오션·풀무원홀딩스 등 유가증권 7개사, 인선이엔티·디스플레이텍 등 코스닥 7개사 등 총 14개사가 지난해 IFRS를 적용했다. 올해에도 LG디스플레이·LG생명과학 등 LG 계열 8개사, 삼성전자·삼성SDI·삼성디지털이미징 등 삼성 계열 3개사 등 23개 기업이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IFRS의 특징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IFRS는 원칙 중심의 회계기준이다. 삼성증권 이성주 연구원은 “기존의 한국기업회계기준(K-GAPP)은 한국의 산업발전에 맞춰 진화된 실무 중심의 회계인 반면 IFRS는 재무제표에 들어갈 내용을 원칙적으로 규정하고 세부방식은 원칙 내에서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재량적 판단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IFRS는 연결재무제표를 주 재무제표로 삼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기말은 물론 반기와 분기 공시 때도 연결재무제표로 공시를 해야 한다. 또 IFRS는 공정가치를 인정한다.

K-GAPP로는 기업이 자산을 취득하면 취득원가로 계상해 취득 이후의 자산가치 변동을 투자자나 채권자 등에게 정확히 전달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IFRS는 투자 목적의 부동산과 무형자산 등을 재무제표에 공정가치로 반영시켜 투자자들이 실질가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

증권업계는 IFRS를 도입하면 한국 기업의 신뢰성이 높아지고 해외 경쟁사와의 비교가 쉬워져 기업가치가 올라가는 효과가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국내 기업의 투명성을 높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란 얘기다.

지난해 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 선진국지수에 포함된 한국 증시는 올해 모건스탠리캐피털인덱스(MSCI) 선진국지수 편입을 노리고 있다. 한국이 MSCI 선진국지수로 승격될 경우 IFRS는 외국인투자자들이 한국 우량주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IFRS의 여러 특징 중 투자자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연결재무제표 의무화와 공정가치 인정에 따른 자산재평가 효과다. IFRS는 지분율 50%를 초과하는 자회사를 연결재무제표에 반드시 포함시키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량 자회사를 많이 보유한 기업일수록 유리해진다.

다만 구체적으로는 기업마다 영향이 다를 수 있다. 토러스투자증권에 따르면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해 온 기업들을 대상으로 2003년 이후 연결 전후의 평균 변화 폭을 보면 연결 전에 비해 매출은 65%, 영업이익은 51% 증가했다. 자산총액은 63%,부채총액은 112% 늘었다.

즉 매출과 자산 확대로 기업의 외형이 커지는 효과가 나타났다. 반면 매출이 영업이익 증가 폭을 앞질러 영업이익률은 줄었다. 자산 역시 부채 증가 폭을 따라가지 못해 부채비율이 올라가는 현상이 벌어졌다.

토러스투자증권 이원선 투자전략부장은 “IFRS 시행으로 긍정적 효과를 보려면 연결대상 종속회사의 상장기업 비중이 적으면서 연결 이후 영업이익증가율이 연결 이전보다 높을수록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IFRS는 자산재평가를 통해 평가 차액을 자본에 포함시켜 영업활동과 상관없이 재무구조가 좋아지는 효과도 낼 수 있다.

이성주 연구원은 “작년 말 토지 재평가를 결정한 현대중공업의 경우 평가차액이 자산의 4.9%에 해당하는 1조2300억 원에 달했다”며 “이런 차액은 자기자본율 증가로 이어져 재무구조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또 외화 관련 파생상품의 평가손실을 손익계산서에 바로 반영하지 않고 주석으로만 기록할 수 있어 외화부채가 환율에 따라 과장되는 부작용도 막을 수 있다.

이런 효과에도 불구하고 회계기준을 바꾼다고 해서 기업가치가 얼마나 달라지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본질적인 영업력과 경쟁력이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회계기준의 변화만으로 기업가치가 늘거나 감소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약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IFRS의 도입만으로 기업의 현금흐름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회계기준이 전면적으로 개편된다는 점에서 상당한 영향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모든 자산을 공정가액으로 평가할 수 있게 되면 장부가액으로 평가되던 기존 자산의 가치가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연결회계 범위가 넓어지면 자산과 부채의 변동도 불가피하다. 대신증권 김용식 연구원은 “자산과 부채가 변화하면 주가순자산비율(PBR)이나 주가수익비율(PER) 등 장부가액 기준의 투자지표들도 함께 바뀌게 된다”며 “따라서 IFRS 적용 이전과 이후 투자자의 의사결정이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증권업계는 IFRS가 시행되면 항공, 해운, 은행, 자동차, 정보기술(IT) 등의 업종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항공주와 해운주는 IFRS가 결산일에 원화로 통화를 환산하는 기능통화 회계제도를 허용하고 있어 환율변동에 따른 재무제표의 왜곡 현상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은행업종은 IFRS가 당시 시점의 실제 발생손실에 바탕을 두고 대손충당금을 적립하도록 하고 있어 충당금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해외에 우량 자회사를 많이 두고 있는 자동차주와 IT주들의 전망도 밝다.

반면 조선과 건설업종은 부채비율 상승이 우려된다. 수주한 계약의 진행률에 따라 수익을 인식하던 것이 최종 판매시점에 한꺼번에 수익으로 반영하는 방식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손보업종은 부채로 인정받았던 비상위험준비금이 자본으로 인식되면서 과세대상에 포함돼 세금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투자증권은 연결재무제표 의무화로 수혜가 가능한 종목으로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물산, 삼성엔지니어링, 제일기획, 현대중공업, 현대모비스, LG전자, 한화 등을 꼽았다. 성우하이텍, 두산인프라코어 등도 지분법 이익 증가가 기대된다.

자산재평가로 기업가치 제고가 예상되는 종목으로는 KT, KT&G, 롯데쇼핑, 태광산업, 삼성전기, KCC, 포스코, 한국전력, LG전자, 현대건설 등이 포함됐다. IFRS 도입은 SKC&C, 더존비즈온, 동부C&I 등 회계 솔루션 기업들에도 반가운 소식이다.

다만 IFRS 시행으로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하이투자증권 이상헌 연구원은 “매도 가능 증권의 평가손익이 손익계산서에 포함됨에 따라 보유증권이 많은 기업일수록 손익의 변동성이 커지는 부담을 안게 된다”고 지적했다. IFRS는 그동안 자본으로 인식했던 상환우선주를 부채로 분류한다. 상환우선주가 많은 종목은 재무구조 악화와 이자비용 증가로 순이익이 줄어들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박해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