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원문화재단 김의정 이사장

2대를 물려온 차 사랑, 다구(茶具) 사랑
서울시무형문화재 제27호인 김의정 이사장은 평생을 다도 연구와 보급에 바친 사람이다. 김 이사장의 차(茶) 사랑은 어머니 명원 김미희 선생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2대에 걸쳐 한국 다도의 전통을 고수해온 집안답게 그녀의 집에는 국보급 다구가 많다. 한국 다도의 역사를 보여주는 김 이사장의 다구 컬렉션을 소개한다.

서울 성북동에 있는 명원문화재단은 한국 다도 종가로 국가에서 인정한 한국 다례 교육기관이다.

명원(茗園)이라는 이름은 김의정 이사장의 어머니 김미희 선생의 호로 차 밭을 의미한다. 명원 선생은 전통 다례법을 궁중다례, 사원다례, 접빈다례, 생활다례법으로 정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차문화 학술대회를 연 인물이다.
2대를 물려온 차 사랑, 다구(茶具) 사랑
평생을 한국 차문화 복원에 힘쓴 명원 선생은 그 공로로 보관문화훈장을 받은 한국 다도의 선구자다.

어머니의 뒤를 이은 김 이사장은 궁중다례보유자로 여성 최초로 세계 다인에 선정된 다인이다.

명원문화재단은 한국 전통 다례 재현과 문화체험, 문화교류 행사로서 우리나라 차의 예식·예절·문화를 국내와 세계에 알리고 있다.

한국 차문화의 시점에서 가야시대 다례, 신라 무상선사다례·화랑다례, 백제 성왕 궁중다례, 고려시대 궁중에서 행했던 공주하가의 다례의식, 조선 영조대왕 궁중다례·궁중 명부회례의 예식을 고증을 거쳐 재현 발표했다.

한국 차문화 육성과 전파를 위해 명원문화재단은 하와이 이민백주년기념 헌다례, 국제 청소년 차문화대전, 명원팔정 선다례, 전통 성년례 발표 등 여러 행사를 후원하고 열어왔다.

덴마크 왕실 오찬에서 받은 충격으로 시작된 차문화 복원
2대를 물려온 차 사랑, 다구(茶具) 사랑
처음 김 이사장에게 연락을 넣었을 때 그녀는 집필을 이유로 인터뷰를 사양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어렵사리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성북동 명원문화재단 전수관에서 만난 그녀는 전날 밤도 원고를 정리하느라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요즘 명원 선생의 일대기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김 이사장은 일대기를 준비하며 명원 선생을 기억하는 궁중상궁, 한복 연구가, 다기 장인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의 기억을 통해 명원 선생의 행적을 뒤쫓으며 김 이사장은 명원 선생님의 차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됐다.

명원 선생의 차 사랑은 1954년 헬싱키 올림픽과 인연이 깊다. 당시는 6.25전쟁 직후로 올림픽 출전은 생각도 할 수 없을 때였다.
2대를 물려온 차 사랑, 다구(茶具) 사랑
일찌감치 올림픽 출전을 포기한 이승만 대통령을 설득해 10명의 단출한 선수단을 구성한 것이 쌍용그룹 창업주인 아버지 성곡 김성곤 전 회장이다.

“나중에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데, 우리 선수보다 헬싱키 사람들이 자전거를 더 잘 타더래요.(웃음) 그때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수행하셨는데, 핀란드를 거쳐 덴마크까지 가셨답니다.

덴마크에서 마침 왕실 오찬에 초청되셨는데 그때 테이블 세팅과 식사예절을 보시고 큰 감명을 받으셨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전후라 먹고 살기 바쁠 때였잖아요. 그러던 차에 유럽 상류층 문화를 접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거죠.”

문화적 충격을 받은 명원 선생은 내친김에 일본에 들러 그곳의 식문화를 둘러봤다. 일본에서 명원 선생의 눈에 들어온 것이 차문화였다.

분명 한반도를 거쳐 건너간 차문화가 일본에서 성행하고 있었던 것. 차가 단순한 음식문화를 넘어 일본의 정신으로까지 발전한 차문화를 본 명원 선생의 충격은 컸다.
2대를 물려온 차 사랑, 다구(茶具) 사랑
명원 선생은 일본의 차문화 중 유독 다기에 관심이 갔다. 특히 일본인들의 사발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일본의 국보 1호가 ‘기자에몽’이라는 사발임은 일본인들의 사발 사랑을 짐작케 한다.

일본인들이 애지중지하는 그 사발이 사실은 임진왜란 직후 도공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다.

차 마시는 나라는 흥하고, 술을 마시는 나라는 망한다
2대를 물려온 차 사랑, 다구(茶具) 사랑
그 일을 계기로 명원 선생은 한평생 한국 차문화 복원에 앞장서게 됐다.

사실 우리나라는 어느 나라보다 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예전에는 제사를 지낼 때 술이 아닌 차를 올렸다.

그러던 것이 일제 이후 차 대신 술을 올리게 된 것이다. 어릴 때부터 음복이라고 제사를 지낸 후 술을 마시게 해서 민족 정신을 흐리게 한 것이다.

‘차를 마시면 나라가 흥하고, 술을 마시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이 있다. 명원 선생의 속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저희가 6남매인데, 제가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어요. 그래서 늘 어머니 곁에 있었는데, 심부름을 하면 예쁜 그릇을 하나씩 주셨어요. 유럽에서 오실 때도 예쁜 그릇을 선물로 사오셨어요.
2대를 물려온 차 사랑, 다구(茶具) 사랑
그때 아버지가 어머니 짐꾼 노릇을 하셨는데, 들어오셔서는 ‘외국 나갈 때 다시는 너희 엄마 안 데리고 갈란다’고 불평을 하셨어요. 지금도 그때 주신 선물을 간직하고 있어요.”

명원 선생은 한국에 돌아온 후 차문화를 복원하려 했지만 시작부터 막막했다. 차에 관한 문헌은 고사하고 변변한 다구조차 없었다. 그때부터 명원 선생은 차를 안다는 사람이 있으면 오지를 마다않고 찾아다녔다.
2대를 물려온 차 사랑, 다구(茶具) 사랑
차문화는 차와 다구, 예절, 복식, 테이블 세팅 등이 복합된 종합예술이다.

그중 하나만 빠져도 완벽한 차문화 복원은 어렵다.

명원 선생은 궁중 상궁과 차에 조예가 깊은 스님을 찾아다녔다.

그러는 한편 전국의 가마를 찾아 후원금을 대며 청자와 분청자기 연구를 독려했다.

김 이사장은 사업을 하던 아버지의 후원이 있었기에 그런 일이 가능했다고 한다.

차문화 복원으로 시작된 후원은 다양한 문화 분야로 확대됐다. 나중에는 김자경 오페라단 후원으로까지 이어졌다.

“원로스님을 주인공으로 한 오페라였는데, 당시 큰 스님 몇 분이 어머니를 찾아오셨어요. 어떻게 신성하신 분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릴 수 있느냐고요. 또 기독교에서는 훌륭한 예수님 제자도 많은데 왜 스님이냐고 항의를 했고요. (웃음) 다양한 곳에 후원을 하다 보니 생긴 에피소드들이었죠.”

컬렉션을 넘어 실력있는 장인들 후원해 조선백자 다구 직접 생산
2대를 물려온 차 사랑, 다구(茶具) 사랑
한국의 다도는 이 같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명원 선생을 통해 다시 태어났고, 지금은 김 이사장이 그 명맥을 잇고 있다. 50년 이상 차를 아껴온 집안답게 김 이사장은 많은 다기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

고대 주전자부터 고려와 조선시대 다구, 화로까지 시대도 종류도 다양하다. 개중에는 국보급 희귀품도 적지 않다.

그녀는 다례전수관과 자택, 경기도에 있는 농장 등에 컬렉션을 보관하고 있다.

김 이사장 집안의 다구 사랑은 컬렉션을 넘어 제작으로까지 이어졌다. 현재 명원의 로고인 찻잎이 새겨진 다구는 우일요에서 빚어지고 있다.

우일요는 도자예술의 꽃은 백자이고, 세계의 수많은 백자 중에서도 으뜸은 조선의 백자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1978년 탄생했다.

우일요는 조선백자의 미에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더해 많은 차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은 게 없죠. 그중에도 화로는 제가 유달리 아끼는 겁니다. 어머니와의 추억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죠. 아버지만큼이나 어머니도 무척 바쁘셨어요.
2대를 물려온 차 사랑, 다구(茶具) 사랑
주변에 늘 사람들이 있어서 단둘이 차를 마신 기억이 그리 많지 않아요. 그러다 어머니와 마주앉아 차를 마실 기회가 생겼는데, 그때 차가 좀 오래된 차였어요.

오래된 차는 화로에 한 번 더 덖어서 마시는데, 어머니가 차를 덖은 화로를 저한테 주셨어요. 화로를 보면 어머니를 보는 듯해서 저한테는 더없이 소중한 물건이에요.”

김 이사장에게 컬렉션은 단순한 작품을 넘어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차에 대한 사랑이 복합된 결정체인 셈이다.

그녀는 대중에게 차문화를 알리기 위해 인터넷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글 신규섭·사진 서범세·이승재 기자 wawoo@moneyro.com